용서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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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배우다 (눅23:32-38) , 25-4-13
더 글로리라는 넥플릭스 시리즈물을 보면 한 사람이 용서한다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통해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되면 피해자는 수치심과 분노심으로 오랜시간 괴로워합니다. 용서해준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 글로리의 어떤 PD도 자신의 과거 학교폭력 의혹을 뒤늦게 인정하고 사과한 적 있을 정도로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 경우 그것또하나 수치스럽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수치를 주고 수치를 받는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과 관계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까요?
먼저 우리는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죄인이라는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용서를 통해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기초적이고 중요한 신앙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용서라는 것은 예수님의 삶의 목표였고 핵심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역의 절정인 십자가에서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은 죄용서가 십자가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기초와 시작점입니다.  
용서라는 말은 헬라어 ‘아피에미’ 인데, 그 뜻은 자유롭게 하다 해방하다 떠나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서 자기 몸을 둘러싸고 있던 베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장면이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예수님의 가상칠언 십자가상에서 하신 7마디 말씀 중, 순서상 가장 첫번째에 나오는 말씀이 누가복음의 말씀입니다.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누가복음은 명백하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도 십자가에 못박힌 두 죄수가 있었다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두 행악자 이것은 보통 잡범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십자가 형을 받는 거 보면 로마 제국에 저항했던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열심당에 속해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역사가 외국에 지배에 있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 민족독립을 위해 애쓰고 무기를 갖고 로마에 대항하려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되는 인물들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라고 하는 정치적 형에 붙잡혀 달리시게 됩니다. 예수님도 일종의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 자체가 정치적 형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죄목이 위에 기록되어 있다고 복음서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목이 뭡니까?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유대인들을 선동했고, 로마제국에 저항하려고 하는 반란을 일으킨 범죄인이다라고 예수님을 몰아간 것입니다.
38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말은, 죄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가 스스로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해서 로마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유대를 독립시키는 인물이라고 하는 죄목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을 보면, 위에 INRI 라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 다쓰여있다고 하는데
헬라어로 된 것을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I 예수스, N나사렛 사람 R 렉스 왕, I 유대인
나사렛 사람인데 그가 스스로 왕이라고 하는 정치범이라는 뜻입니다. 거기 두행악자가 정치 흉악범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게 된 것입니다.
당대 십자가는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십자가를 노예들이 당하는 가장 극단적인 징벌이다,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다. 로마인들은 이런 형벌을 당해선 안된다. 요세푸스 역사가는 가장 비참한 죽음의 형틀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죽고 싶은데 죽지가 않는 것입니다. 빨리 내 인생을 끝내고 싶은데 죽음의 고통속에서 자기의 고통을 오롯이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은 수치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모든 달린 사람을 다 뻘거벗겼습니다. 우리는 성화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옷을 가린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냥 다 벌거 벗긴 것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너의 수치를 만천하에 드러내라는 의도가 있습니다.  모든 치부를 다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그리고는 손목과 발목에 대못을 박아서 자기 죽는 모습을 스스로 보면서 죽고 싶은데 죽고 싶지 못하는게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이 십자가를 당했을 때 그의 오른 편 왼편에 두 행악자가 달려 있는데,
3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3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여기 해골이라고 하는 곳은, 갈보리 언덕 골고다 언덕이다라고 말합니다. 해골처럼 생긴 언덕에 올라가서 그곳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양쪽에 행악자도 죽임도 당하게 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이때 얼마나 예수님이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첫번째 말씀은 아주 위대한 말씀입니다.
마태, 마가는 두 행악자가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5:32 (NKRV)
32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 23장에는 놀랍게도 그 중간 와중에 한 행악자가 변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23:41–43 (NKRV)
41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 동기가 뭘까요? 바로 이 구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내용, 바로 모든 죄악의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면서 첫번째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바로 34절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3:34 (NKRV)
3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은 용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아버지여!
하나님을 가장 친근한 아바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이 고통에서 나를 해결해 달라거나 다른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저들을 나를 십자가를 못박는 저 사람들을 용서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들이 하는 것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위대한 용서의 복음을 가르쳐줍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있노라면,  와 나같은 사람은 몇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말을 하기가 어려울텐데, 어떻게 고통을 당하면서 자기의 죽음을 스스로 지켜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첫마디로 저들을 용서해달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실까?
우리가 이런 상황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분노하고 울분이 솓구치고 이 못된 놈들 저 놈들 다 혼좀 나야 될 겁니다. 하나님 저들 다 징계해주세요! 그냥 내 앞에서 싹쓰리해주세요. 이렇게 우리 마음 속에 분노와 증오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데 예수님은 반대로 갖고 계십니다.
아니 지 잘못 사과도 안하는 무슨 용서를 해? 지 마음데로 하는데 용서가 되는거야 하나님 이런거에 용서하면 정의가 사라지는데 용서를 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갑니까?  악은 징계하시고 선은 칭찬하시는 하나님의 그 깊은 뜻 정의는 우리가 찾아볼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 속에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떠오르십니까?
용서의 걸림돌1 . 반성하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해야 합니까? 저놈은 내가 용서 못해, 저놈은 어떤 순간이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하는 마음의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데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가 용서하는게 가장 보기 좋지만 용서를 구하는 경우는 참 많지 않습니다.
용서의 걸림돌2. 감정적으로 용서가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 제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 중 하나는 감정적으로 용서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내가 용서까지 하면 남는 것이 없어라고 하면서 거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용서라고 하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용서를 안 하면 내가 누군가에게 불의한 일을 당했을 때 용서를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마음 속에서 힘들어하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이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울분이 생겨집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가장 먼저 상하는 사람이 있는데 누굽니까? 그것은 내가 용서를 해야 할 사람 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가해를 한 그 사람이 아닙니다. 제일 먼저 상하는 것은, 내가 상하고 내 마음이 상하고
내 울분이 생기고 내 속에 미움이 생기고 내 속에 나를 얽어매는 한맺힌 모습이 나를 꽉 붙들어 매게 됩니다. 그러면 과거에 생각된 것이 끊임없이 내 안에서 악순환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내 삶의 통제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나를 가해하고 나에게 몹쓸짓을 한 그사람에게 통제권이 갑니다. 그러면 내가 갖고 있는 자유와 내가 갖고 있는 자율성을 우리는 상실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신적인, 영적인 자유를 위해서도 먼저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용서는 그러나 쌍방적이지 않아요. 여러분 화해라고 한단계 올라간 단계가 있어요. 화해라는 단계가 있어요. 쌍방적이예요 그러나 용서의 단계는 쌍방적이 아니라 일방적이예요 그래서 이 용서는 먼저 내가 해야 돼요. 내가 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쌍방적이 되는 것은 저사람도 아 내가 정말 잘못했어 하면 쌍방적이 되면서 화해가 되요. 우리가 바라는 바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많이 없어요.
그러나 그 관계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내 속에서 용서를 해야 내가 눌려 있었던 울분에서부터 자유할 수 있어요 특별히 예수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것을 실천해야해요
내 마음은 내키지 않더라도 내 마음은 거절해도 내가 용서를 선택해야해요. 선언해야되요
나는 용서하겠다 내가 갖고 있는 통제권을 스스로 지겠다. 내가 용서하지 못해서 분노하고 울분이 생겨서 저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기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야되요.
하지만,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울분과 미움과 한맺임으로 가면 이것은 우리에게 슬픔이 되고 아픔이 됩니다. 여러분 남이 잘못했을 때 괘씸하다 느끼는 것은 괜찮아요 화가 난다 그것도 괜찮아요 이 놈 못됐다 욕설을 좀 해도 괜찮아요.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그런 것들이 일시적으로 나를 화가 나게 하는 것을 넘어서울분이 되고 미움이 되서 내속에 꽉 들어차게 되면 그러면 이게 내 속에 망가지고 있는 내 자신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참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들 자유롭게 합니다. 하지만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늘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 용서해야해요. 아직 화해는 안된 것 좀 놔둬도 괜찮아요. 괘씸하다 화가 난다고 이야기하세요. 그러나 지속하는 순간에 울분이 되고 미움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용서의 최고의 수혜자는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저는 예수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으실 겁니다.
이 놈들 도대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이렇게 하다니 이놈들 어떻게 하지? 예수님이 인간으로 이땅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도 이런 아픔이 있으셨을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으로 용서를 시작하셨습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용서의 복음때문에 우리같은 죄있는 사람도 주앞에 나올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이 용서의 복음앞에 응답을 하게 될 때 예수님과 내가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응답이 뭐예요?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주님의 용서를 믿음으로 내가 주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과 막혔던 모든 담이 깨뜨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화목 제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들은 희롱합니다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너 스스로는 못 구하냐?하고 예수님을 조롱하는것, 이 모든 것을 잠재우셨습니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아버지 저들이 자기 하는 일을 모릅니다 예수님의 이 위대한 선언이 우리의 삶을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편가르기와 차별과 경쟁과 투쟁을 부추깁니다. 정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원수를 만들고 싸움을 일으킵니다. 종교, 인종, 이념, 이해관계, 출신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원수라는 단어가 그리스도인들의 사전에서 지워지기를 원합니다. 참된 사랑은 아무도 원수로 여기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원수까지도 살아하라는 말씀이 누구도 원수로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우리 마음 속에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떠오르십니까? 미움을 너무 오래 간직하시면 안되요. 내가 상해요. 이걸 주님앞에 토해내야 해요.  주님 앞에 화를 이야기하세요. 불평하세요. 쏟아내세요. 내 영혼이 자유롭게 될거예요
고난 주간 지내면서 내속에 그런 미움이 있었는가 분노가 있었는가 여러분들이 풀어나가셔야 해요. 십자가에서 죄인을 용서하신 주님의 참된 사랑을 저희에게도 충만하게 허락하게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사순절 기간 주님 보여주신 용서의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수치를 당하면서 수치주지 않으시고 용서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주님! 저희의 사랑이 참으로 무력함을 인정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사랑의 능력을 구합니다. 쪼개지고 찌그러진 저희의 사랑을 주님의 기적의 손으로 온전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참된 사랑을 저희에게 충만케 하셔서
누구도 원수로 여기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옵소서.
우리 안에 원한과 분노가 주의 은혜로 자유케하시고 풀려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원수가 점점 적어지게 하시사
마침내 주님처럼 모두가 다 사랑할 사람으로만 보이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께 물질로 드린 손길, 시간과 봉사로 드린 손길,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물질을 위해 땀을 흘리면서도 물질의 지배를 받기 보다는 물질을 다스리게 하소서
학업을 위해 땀을 흘리면서도 학업의 지배를 받기 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주의 청년들이 땀흘리며 노력하는 모든 일들, 주님 형통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서.
마음이 상한 청년,  주님께서 심령의 깊은 속 평강과 기쁨을 더하여 주시소
몸이 연약해진 청년들에게 주님의 오른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사
온전히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르으로 기도하오며,
이제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감동 역사하심이
십자가 상에서 드리신 주님의 용서의 기도를 본받아,
울분과 증오를 덜어내고, 원수와 같은 사람까지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할 사람으로 보  
도록 기도하기를 결단하는 모든 청년들위에 학업과 직장과 가정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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