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1 새벽기도회: 열왕기하 1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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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488장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하심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없는 저희는 생명이 없는 죽음 가운데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자와 같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죄에 빠지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을 갈구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생명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가기 위해 이 자리 가운데로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도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복된 백성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13:20-25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13:20–25 NKRV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번 한 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잘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먼저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열왕기하 13장의 말씀으로 북이스라엘의 두 왕인 여호아하스와 그의 아들 요아스 때의 말씀입니다. 함께 오늘 이 말씀을 깨닫고 언약과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그럼에도 죄를 짓는 나약한 백성의 모습에 대하여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읽은 본문은 20-25절이지만 사실상 13장 전체를 다루면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13장에서는 두 왕이 등장하는데요. 여호아하스와 그의 아들 요아스입니다. 이 두 왕은 하나님께서 아합으로 북왕국을 구하시기 위해 세우신 예후 왕조의 왕들입니다. 예후는 북이스라엘을 개혁하기 위해 세움받은 왕이지만, 그도 결국 여로보암의 길을 똑같이 걸어갔고, 그의 후손인 여호아하스와 요아스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걸어갑니다. 특별히 이 두 왕의 시기의 북이스라엘의 국력은 아주 쇄퇴한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에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아람 왕국을 일으키셨고, 이들은 아람에 의해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심했는지 7절을 보면 아람 왕이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 그리고 보명 만 명만 남겨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아주 최소화시켰다고 말합니다. 당시 기병과 병거는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나 겨우 오십 명과 열 대 밖에 남겨두지 않았고, 가장 많이 쓰이는 보병 또한 겨우 만 명만 남겨두었습니다. 다시는 자신을 침공하지 못하게 이스라엘을 아람이 무력화시켰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아하스는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무력하게 만든 이 고통 가운데서 결국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가 아버지 예후를 따라 금송아지를 섬겼지만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금송아지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깨닫고 그분에게 부르짖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북이스라엘에 구원자를 주셔서 아람의 손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13장 5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아람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였으니 금송아지도, 그 외에 다른 이방신도 아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뼈저리게 깨닫고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고 또 다시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게 되는 죄를 짓고야 맙니다.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푸셨으나 이에 대한 백성들의 응답은 배신과 범죄였습니다.
그리고 이 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아들인 요아스가 북왕국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이 요아스도 아버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요아스는 아버지 때와 마찬가지로 아람에 의해 국력이 아주 약해진 북이스라엘을 물려받았습니다. 그에게 왕으로서 주어진 과제는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아람 왕국을 무찔러 승리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북이스라엘의 희망인 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이 소식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가 슬퍼하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를 향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간의 모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엘리사 덕분이기에 북왕국의 진정한 군사력은 엘리사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렇기에 지금 아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엘리사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요아스의 마음을 투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여호아하스가 아람의 핍박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처럼 말입니다.
이에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두 가지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요아스가 두려움의 대상인 아람을 무찌를 것을 각인시켜줍니다. 이를 위해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라고 하고, 요아스는 순종합니다. 첫번째로 엘리사는 동쪽 창문을 열고 “활을 쏘라”고 지시하자 요아스는 엘리사의 말대로 활을 쏩니다. 요아스의 이 행위에 대하여 엘리사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라고 말하며 설명합니다. 아벡은 북이스라엘과 아람 두 나라에게 매우 중요한 성읍입니다. 엘리사는 이곳에서 아람을 요아스가 멸절할 것을 예언합니다.
두 번째로 엘리사는 화살들을 잡고 땅을 칠 것을 명령합니다. 이에 요아스는 세 번만 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화를 내며 “왕이 대여섯번을 쳤다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을 것이지만,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번만 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시킨 이 행동은 북왕국을 향한 아람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요아스가 엘리사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곧 하나님을 그가 믿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땅을 세 번 친 요아스는 아람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정확하게 몇 번 치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저 땅을 치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엘리사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땅을 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고 자기 식대로 엘리사의 말을 해석하여 땅을 세 번만 쳤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의도적으로 19절에서 “엘리사”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지시한 이 두 가지 행동과 이 행동의 의미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엘리사는 죽었고, 그가 장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엘리사가 죽은 뒤에 해가 바뀌었을 때 모압의 도적 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마침 장의사들이 시체를 장사하고 있었는데, 도적 떼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 그만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체들이 되살아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보고 장의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을 것이고, 도적 떼들은 이 장면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휩싸여 모압으로 도망쳤을 것입니다. 되살아난 사람은 북이스라엘의 백성이었을 것이고 이 사람은 엘리사의 뼈에 닿자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이 장면을 열왕기하 저자가 갑자기 보여주는 이유는 바로 북이스라엘의 백성, 즉 언약의 백성이 죽음 상태에 있더라도 엘리사의 뼈에 닿기만 해도 살아난 것처럼 모든 북이스라엘의 백성은 엘리사가 남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산다면 그들이 생명을 얻고 살아날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여전히 북이스라엘이 엇나가고 자신을 따르고 있기는커녕 계속해서 반역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이들에게 다시 돌아올 기회를 주시고, 언제든 돌아오면 아람의 위협이라는 죽음이 드리우고 있어도 이들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계십니다.
22-25절에서도 이것이 너무나도 잘 나타납니다. 여호아하스 때에 아람이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23절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라면서 북이스라엘을 아람을 통해 징계는 하시나, 멸망할 정도로는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 즉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일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요아스는 엘리사의 예언대로 아람의 왕인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찔러 아버지가 아람에 의해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게 되었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왕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예후 왕조는 여로보암과 결코 다르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우상을 숭배하였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람을 채찍으로 사용하셔서 북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국력은 바닥을 찍게 되었고, 여호아하스 때에 아람의 위협은 정점에 달했습니다. 더 이상 그 박해를 견딜 수가 없어 그때서야 비로소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통치해야 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치 사사기가 보여주었듯이 여호아하스는 계속해서 여로보암의 길을 걸어갔고, 북이스라엘의 국력을 최약체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아들 요아스가 이스라엘을 아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고, 마침내 뺏앗긴 성읍들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통치를 잘해서가 아니라 선지자 엘리사 예언의 성취이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었습니다. 죽은 언약의 백성의 시체를 되살린 엘리사의 생명력은 왕과 백성들이 개인의 삶과 이스라엘의 국정에 깊게 뿌리내린 여로보암의 길과 우상 숭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죽은 그들도 다시 살아나서 언약 백성의 신분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메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여로보암을 답습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아하스와 요아스가 그동안 보고 자란 조상 왕들의 통치는 우상숭배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죄가 체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상숭배가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죄가 죄인 줄 모르고 딱딱하게 굳어져 죄가 무뎌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죄가 체질화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강력한 메세지를 주셔도 뿌리깊게 내린 죄는 고통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잠시 찾을 뿐 다시 죄의 길로 걸어가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실하게, 간절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고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받아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죄가 결코 우리에게 체질화, 체화가 되어선 안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약속에 신실하시고 죄로 인해 죽은 백성에게 생명을 언제든 주신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죄가 우리에게 체화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죄라고 알려주시는 것 또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적하고,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혼내는 이유는 자녀가 올바른 길로 갔으면 하는 부모의 사랑이듯이 우리 하나님 또한 우리의 죄를 지적하시는 것은 그분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죄가 체화가 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우리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그 언약을 지금도 여전히 지키고 계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인 이 교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언약 안에 가두시고, 언약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언약의 백성인 우리는 죄가 죄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죄가 우리에게 체화가 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죄인줄 깨닫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비극 중 비극입니다. 마치 진흙탕 속에서 구르고 있는데도 자신이 더러운 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이미 죽음 속에 있으면서 죽은 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한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생명을 주십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면서 오직 언약의 하나님만을 믿고 생명을 얻게 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죄가 체화가 되지 않고 죄를 깨달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든 새순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이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죄는 저희에게 있어서 참으로 무섭습니다. 죄가 익숙해지면 그것이 저희에게 체질화가 되어 결국 죄가 죄인 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죄로 인해 죽은 저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고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갈구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저희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삶을 살아가면서 저희를 유혹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는 복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입니다. 오늘 하루도 지켜주시고 하루를 무사히 정리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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