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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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12:12–14 NKRV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마음 열기: 폭싹 속았수다

여러분 폭싹 속았수다 봤어요? 그 드라마를 보면 1960년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우리 부모님 세대,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참,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예요. 관식(박보검)이라는 남자가 나오는데, 가족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모습이 나와요. 또, 관식의 딸은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담대히 세상을 살아가는 내용도 나와요. 부모가 점점 시들어감에 따라 딸은 점점 푸릇푸릇해지고, 또 부모님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딸이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 덕분이에요. 언제나 부모님이 뒤에서 지켜주시니까, 일이 잘못되어도 빠꾸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것처럼 우리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또다른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어요.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을까요? 함께 알아봅시다.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

때는 예수님께서 유월절이라는 이스라엘 명절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고 계셨어요. 성경에서는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요 12:1)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거기는 어떤 곳이냐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던 곳이에요. 거기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에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소문이 들리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오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못해도 몇만 명은 모였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때는 유월절 5일 전이기 때문이에요.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면서부터 지키기 시작한 절기였는데, 하나님께서 이집트로부터 구원하신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시신 족속임을 기억하기 위한 명절이었어요. 그런데, 유월절이 예루살렘에 사람 많은 것과 무슨 상관이냐? 성경 말씀 신명기 16장 5-6절의 기록 때문이에요.
Deuteronomy 16:5–6 NKRV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시에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으로 몰려들었어요.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루살렘에는 평소에는 60만 명 정도 살았으나 유월절 명절에는 270만에서 300만 명이나 모였다고 해요. 어마어마하게 많죠?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면 방이 부족했겠죠? 지금처럼 여기어때로 예약하지도 못하니까, 사람들은 아마 몇 주 전부터 미리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 근처에 방을 예약했을 것 같아요. #유월절 #성전뷰 #OMG.
아무튼, 그렇게 많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거기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들리는 거예요. 당시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뚫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그렇게 많이 보이신 분이 없었거든요. 죽은 사람을 살리고, 아픈 사람을 일으키고,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지혜가 있으시니 사람들은 그분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메시아. 우리의 왕. 승리의 왕이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자신들의 옷을 벗어서 깔고, 또 종려나무의 가지를 가지고 와서 흔들면서 외치는 거예요.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종려나무 가지는 당시에 “영광”, “기쁨”, “승리”를 상징했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들이 환영할 때 사용했었어요.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시며, 지혜 있으신 분으로써, 다윗과 같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강대국으로 만들어 줄거라 믿었어요.

폭싹 속아버림.

그런데, 이 사람들 다 폭싹 속았어요. 예수님은 한 번도 엄청난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어요.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만들 거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데로 보고, 믿고자 하는 데로 믿은 거예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속고 만 거예요. 오히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승리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었어요. 헌신의 길이었던 것이죠. 같은 장면을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 19장 4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Luke 19:41 NKRV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예수님이 우시는 거예요. 사람들은 환호하고 좋아하지만, 예수님은 그 속에서 홀로 울고 계셨어요. 예수님은 5일 뒤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리고 저들이 나를 배신하고, 모욕하고 끔찍하게 죽일 것도 알고 계셨어요. 하지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예수님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 사이에 주인공으로 있었지만, 예수님은 외톨이였던 거예요. 너무 외롭고, 슬픈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계속해서 나아가시는 거예요.
예루살렘 성전에 가면 분명 온갖 모욕을 당하며, 배신을 당하며, 죽을 만큼 맞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치욕스럽게, 저주를 받으며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 뻔한데도, 앞으로 나아가시는 거예요. 놀랍죠?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에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힘이 있어요.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쫒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거예요.
그 사랑은 여러분이 잘났든 못났든,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돈이 많든 적든, 예쁘든 못생겼든,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을지라도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사랑이에요. 우리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Romans 5:8 NKRV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조금 부족하겠지 부모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줘요. 부산의 산성교회 원로목사이신 허원구 목사님이 칠레에서 선교사로 나가있을 때 뉴스로 보셨다는 이야기인데요. 건물이 붕괴해서 엄마랑 딸이 갇혔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둘은 서로의 목소리와 체온에 의지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아이는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 울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는 울 힘도 없이 지쳐 잠에 들었어요. 엄마는 그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제발 이 아이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때, 손에 날카로운 것이 만져지는 거예요. 엄마는 그걸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어요. 그러고는 잠들어 있는 아이에게. “예야, 엄마가 물을 구해왔어, 이거 마셔”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먹였어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 구조대는 그 둘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발견될 때 모습은 손목에 피 흘려 말라죽은 어머니와, 비교적 건강한 아이가 구조되었다고 해요.
여러분, 부모님의 사랑도 자신을 희생해서 자녀를 살립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모도 계중에 있어요. 하지만 보통의 부모님은 자신을 희생해서 자녀를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랑을 만드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실까요?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은 단 한 가지예요. 우리와 서로 사랑하고 싶으신 거예요.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고,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거예요. 아멘?
저는 우리 모두가, 그 사랑을 받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요한일서 4장 20-21절에 답이 나와 있어요. 우리 함께 읽어봅시다.
1 John 4:20–21 NKRV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그 방법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친구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해요? 그쵸?
여러분, 분명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사랑할만한 구석이 있어야 사랑하죠. 맨날 미운 짓만 하고, 마음에 안 들고, 재미도 없고, 못생겼고, 장난만 치고, 무엇보다도 나랑 안 맞아요.
그런데, 그런 마음에 안 드는 친구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데요. 그 친구도 하나님의 형상이레요. 내가 그 친구를 미워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고, 예수님을 미워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힘들겠지만, 예수님 봐서 치열하게 사랑합시다. 미운 사람도 우리가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건 분명 세상 기준으로 봤을 때 엄청난 손해의 길이에요. 죽음의 길이이에요. 우리가 죽어야 갈 수 있는 길이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치열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다가 인생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 품에 안길 때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폭싹 속았수다(제주도 방언: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말하며 눈물 닦아주시며,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그 사랑을 받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다가 마지막에 예수님 품에 안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도와주시는 성령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니,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으니 그 사랑받은 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나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세상의 두려움의 길로 갈 때에 사랑으로 이겨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도 가시는 그길 쉽지 않으셨습니다. 눈물도 흘리시고, 땀이 핏방울이 되시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을 믿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우리 안으로 찾아와 주시옵소서. 이제는 세상의 논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시간 함께 기도할 때에, 예수님 내 마음 속에 찾아와달라고, 그 사랑이 느끼게 해달라고, 나도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님의 이끄심으로 살게 해달라고 주여 한번 외지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한주간도 보살펴주시다가 이렇게 주님 앞에 예배 드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그 은혜에 감사해서, 이시간 우리의 작은 예물을 정성껏 올려드립니다. 이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시옵소서. 이 예물이 사용되는 곳곳마다 주님의 사랑이 흘러가고, 죽어가는 곳에 생명이 넘치에 하여 주시옵소서. 바치는 손길 기억하여 주셔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 안에서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가운데, 연약한 자들 있으며, 마음이 약한 자들 있습니다. 삶에 치여 고통 당하는 자들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 모든 아픔을 치유하여 주시고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주님 바라보며, 주님 음성을 들으며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시험기간에 있습니다. 또 각자의 삶이 바쁨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 굽어살피시사 시험들지 않게하여 주시고, 한주간 기쁨 가운데 살다가 다음주에도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다시 만날 때에도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모일 수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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