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11)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2 views
Notes
Transcript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1. 광야의 배경과 ‘하찮은 음식’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나온 신앙의 여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본래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약 40일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려 사십 년의 광야 생활을 겪게 됩니다.
애굽(이집트)에서 경험했던 열 가지 재앙, 그리고 갈라진 홍해 속을 걸어가며 이집트의 강력한 군대가 수장되는 장면을 목도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에는 기대로 가득했습니다. 불과 한 달만 참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달하리라는 큰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모세는 곧장 가나안으로 진입하지 않고 시내산을 거쳐 광야를 빙빙 돌았습니다.
그런 삶이 지속되자 일년만에 원망이 터져나왔다.
Numbers 11:4 NKRV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그들은 이집트에서 고된 노예생활은 잊은지 오래였다.
머릿속에 먹을 것들과 편안한 잠자리가 떠오르며 그곳에서 누렸던 것들이
모두 ‘값없이’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울며 불평불만하는 백성들의 원망에 모세는 죽을지경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내가 낳은 자식들도 아닌데 이 많은 사람들을
내 자식처럼 길러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질리도록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보내주셨다.
다시 21장에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농사조차 어려운 삭막한 환경에서, 백성들은 “고기라도 먹고 싶다” 울부짖다가 급기야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부르며 원망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민수기 21:5)
우리가 이미 받은 복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하면, 원망과 불평이 우리의 시야와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동안의 은혜를 망각한 채, 없는 것과 부족한 것만 바라보고 절망하게 되기 쉽습니다.

2. ‘불뱀’이 주는 교훈

백성들의 거듭된 원망에 하나님은 그동안 보호해 주셨던 은혜를 잠시 거두십니다. 광야에는 원래 독사와 전갈, 맹수 등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불뱀이 나타나 백성들을 물게 하였고, 이는 많은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죽음 앞에 서자 백성들은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닫고 모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목회자 같은 역할을 감당했던 모세는 곧바로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렸고, 그때 하나님이 주신 방법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무척 ‘엉뚱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수기 21:8)
광야 한가운데서 놋뱀을 제작해 높이 매다는 일이라니, 이성을 벗어난 일처럼 보였습니다. 수백만 명이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구조물을 만드는 일은 쉬운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방법이야말로,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유일한 길이 되었습니다.

3. 놋뱀 제작과 ‘우리 손에 있는 것’의 쓰임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짚어보겠습니다. 놋뱀을 만드는 데 사용된 놋은 원래 백성들의 일상 도구나 장신구, 무기, 농기구 등에 쓰이던 재료였습니다. 밥그릇, 국그릇, 숟가락, 반지, 팔찌, 칼, 호미 등—그저 집집마다 흔히 사용하던 금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모세의 손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쓰이자, 죽어가던 사람들을 살리는 ‘놋뱀’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같은 금속이라도 “누구 손에,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와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흥미롭게도 ‘뱀과 지팡이’의 이미지는 오늘날까지도 의술과 의료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비록 문화와 기원의 세부 맥락은 다르지만, 이처럼 뱀과 지팡이가 치유와 생명의 이미지를 전해주고 있는 점은 우리가 광야의 사건에서 보았던 ‘생명을 살리는 상징’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재능과 물질, 시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질 때, 일상에 불과한 것들이 지극히 거룩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쓰이며 생명을 세우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온 인류가 죄로 인해 멸망의 길을 갈 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바로 앞 구절에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요 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이 살아났듯,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죄의 독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선행으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죄로부터 회복되고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나 방법에만 집착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실족하게 됩니다. 교회를 세우고 봉사하며 사역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헌신하는지”만을 의지하다 보면, 결국 지쳐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5. 교회를 세우는 일과 장대에 든 놋뱀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광야에서 ‘놋뱀’을 만들어 높이 달았던 일과 비슷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을 모든 사람의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더 높이 들어야 합니다. 거기에 필요한 수고와 헌신, 재정과 시간이 결코 적지 않지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모두 얼마간의 ‘놋’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물질이든 재능이든, 시간을 들든, 우리의 그릇과 장신구, 농기구와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하나님께 내어놓을 때, 그것이 곧 생명을 살리는 ‘놋뱀’이 됩니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손에 들린 교회는 세상을 향해 십자가를 더욱 높이 들어 올리고, 많은 사람을 회복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6. ‘예수를 바라봄’이 우리의 길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굶주리고 목마를 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외롭고 불안할 때,
인생의 광야에서 길을 잃었을 때조차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야말로,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가 받은 은혜와 축복을 하찮게 여기게 되고, 눈앞의 고난만 크게 부각돼서 원망이 터져 나오는 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언어와 행동까지 지배당하여 스스로 광야의 불뱀을 초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에 우리의 진짜 희망이 있고,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맺는 기도

“주님, 때로는 광야 같은 이 땅에서 원망과 불평이 우리의 입술을 지배하려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손에 있는 작은 것들이 하찮게 보일 때조차, 그것을 주님 손에 올려놓으면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믿게 하소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높이 들게 하시고, 우리의 시선을 그분께 향하게 하여주소서. 이로 말미암아 방황하는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고, 주님의 교회가 생명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이야기는 구약성경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먼저 그 배경이 되는 내용을 알아야겠다.
Numbers 21:4–9 NKRV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수기는 신앙생활의 여정이 기록된 책이다.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이집트에서 가나안은 도보로 40일정도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이집트에서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그 신과 같은 바로왕이 굴복하고 엄청난 이집트 군대를 홍해에서 바다를 갈라 멸망하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던 백성들은 큰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약 한달 반 이후면 엄청나게 부요한 땅인 가나안 땅이 자신들의 차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약속한대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이집트 사람들이 각종 금은보화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기도 했다.
그렇게 신나는 마음으로 모세를 따라 나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한두달 그리고 두세달 흐르자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모세가 그들을 가나안이 아니라 시내산으로 인도했다가 광야를 빙빙 도는 것이다.
그곳은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다. 농사도 지을 수 없고 가축도 기를 수 없는 곳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삶이 불가능한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삶이 지속되자 일년만에 원망이 터져나왔다.
Numbers 11:4 NKRV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그들은 이집트에서 고된 노예생활은 잊은지 오래였다.
머릿속에 먹을 것들과 편안한 잠자리가 떠오르며 그곳에서 누렸던 것들이
모두 ‘값없이’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울며 불평불만하는 백성들의 원망에 모세는 죽을지경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내가 낳은 자식들도 아닌데 이 많은 사람들을
내 자식처럼 길러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질리도록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보내주셨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긴 여정이다.
눈에 보이는 복이 없을 수 있고, 심지어 힘든 일들이 생길 수 있다.
목사는 모세와 같은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된다. 광야의 여정은 마치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 원망하면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첫 해에 백성들의 원망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기를 주셨다.
그러나 21장의 본문에서는 물리면 얼마 못가서 죽게 되는 무서운 뱀을 보내셨다.
백성들이 원망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가나안 땅이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에 광야에서 불편함과 부족함 그리고 불안함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가나안이 눈앞에 보이는 땅인 호르마에서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했는데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다면 이제 백성들이 생각하기로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모세가 여기서 에돔 땅을 우회하니까 그 낙심이 얼마나 클지 이해가 된다.
정말 중요한 대목인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목회자의 결정이 때로는 성도들에게 큰 낙심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에 이 말씀을 기억하자.
섣부르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면 엉뚱한 말이 나와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에 대하여 ‘하찮은’이라는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야 만다.
여러분이 받은 복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세요. 셀 수 없이 많은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어려운 일 때문에 그 복들을 다 하찮게 여기고
나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으면
그때부터 지옥의 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 중에 불뱀을 보냅니다.
불뱀이나 전갈, 맹수 등 광야는 위험한 것들이 널린 곳입니다.
그러나 그 오랜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위험을 느끼지 못했죠.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평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거두시는 순간
자신들의 삶에 불뱀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뱀에 물린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합니다.
그제야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목회자에게 찾아와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또 목회자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백성들은 기도로 인해 병이 바로 치유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그 목회자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엉뚱한 응답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이기 때문에 모세는 그 광야에서
놋과 구리 등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이 놋뱀은 우리가 흔히 보는 지팡이 수준의 장대에 매달리는 뱀이 아닙니다.
25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1평씩만 자리를 차지해도 약 250만평이나 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도록 높게 지어져야하는 장대와 놋뱀입니다.
그 규모가 상상이 되십니까?
그냥 한번 보고 버릴 용도로 그 큰 구조물을 지어야 합니다.
누가 거기에 자기들의 밥그릇, 국그릇, 컵, 숟가락, 젖가락, 반지, 팔찌, 칼, 호미 등을 내어주겠으며
그것들을 얼마나 모으고 또 공들여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목회자는 앞장 서서 일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장대와 그 위에 매달린 놋뱀을 보는 사람은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안보는 사람들이 천지입니다.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맥과 방법을 동원하여 좋은 의사를 찾고,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삶을 포기해버립니다.
그 고통과 아픔에 희망과 꿈마저 모두 버리고 낙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걸어나오든, 기어나오든, 부축을 당해서 나오든
나와서 그 뱀을 보는 사람은 거짓말처럼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서 독이 퍼져 죽게 생겼으면 의사를 찾아야지
왜 엉뚱하게 놋을 모아서 뱀의 동상을 만들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그렇게 상식에서 벗어나게 행동할 때도 있고
이해못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모두 같아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왜 예수님도 들려야 해요?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서 있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낫기 때문입니다.
John 3:16 NKRV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다 멸망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장대에 매달려 주심으로 인해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은 멸망이 그치고
생명을 향해 살아가는 삶으로 전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장대에 놋뱀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매달릴 수 있도록 더 높게 더 멀리서 볼 수 있게 세우면 세울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데 이보다 더 큰 가치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Hebrews 12:2 NKRV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래서 히브리서를 쓴 기자는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외쳤다.
교회를 다니면서 엄청난 헌신과 열심으로 섬기던 사람들이
원망하며 낙심하며 실족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왜 그렇게 실족합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니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50가지 100가지 일이라도
모두 할 준비가 철저하게 되었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넘어질 일만 남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50가지 100가지 아니 1000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의지를 가졌어도
그 의지와 노력과 실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게 생긴 사람이 온갖 노력을 한다고 그것이 낫는 게 아닙니다.
장대 위에 놋뱀을 바라보아야 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 죽게 생긴 사람이 자기가 의롭다고 온갖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늘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애쓰세요. 우리가 할 일은 그것 뿐입니다.
그렇게 굶주릴 때, 가난할 때, 헐벗을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외로울 때, 답답할 때, 아플 때, 막막할 때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서
이런 ‘하찮은’음식을 준다는 원망과 불평이 내 입에서 바로 튀어나옵니다.
여러분 다른 것 하려고 애쓰지마시고,
믿음의 주요 또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기에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