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까지 복종하기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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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순종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중고등부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무슨 주일인가? 성례 주일이다. 성례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세례와 성찬이다. 성례는 곧 누구와의 연합인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연합과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성례이다. 그러면서 무슨 주일인가? 종려주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실 것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산나 호산나 찬양하며 환영했던 일에 대한 기념일이다. 그렇게 이번 주는 고난주간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를 기억하며 더욱 깊이 생각하는 날이다. 그러면 다음 주는 무슨 주일인가? 부활 주일이다. 우리는 이 절기 때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날마다 생각하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만약에 평소에는 생각을 안하고 이 절기에만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한다면 절기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 특별히 이번 절기동안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을 전하는 절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여러분은 하기 싫은데 부모님이 원하시니까 순종하는 부분들이 있는가? 첫 번째로 학교가서 뭘 성실히 하는가? 학업을 성실하게 아침부터 일어나서 등교하며 공부하는 것을 한다. 또 제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 휴대폰 적당히 사용하는 것,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것, 어른께 인사 잘하는 것, 친구들과 다툼 없이 지내는 것, 주일 예배에도 오늘 특별히 평소보다 더 일찍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방 정리, 쓰레기 버리기, 식사할 때 수저 놓기, 설거지 하기 등등 있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부모님의 말씀을 우리가 순종하는 것은 부모님이 유익한 것도 있지만, 진짜 유익을 누리는 대상은 누구인가? 바로 ‘나’이다. 부모님이 요구하시는게 세상에서 엄청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다. 작은 일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점점 우리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모님이 단순히 억누르는 것이 아닌 통제와 절제를 통하여서 우리의 인격이 자라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따를 때 믿음도 깊어지고 성장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부모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들을 이유도 따라갈 이유도 없다.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잔소리 같아도 결국 나를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훗날 가장 감사한 분들이 되어간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곳은 어디인가? 겟세마네 동산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올리브 동산이다. 이곳은 제자들과 자주 모이는 장소이다.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도 이 장소를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읽은 본문 이후에 가룟 유다가 이곳으로 군인들을 데리고 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다. 이 때 예수님이 함께 데려갔던 제자가 누구인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셨다. 그들을 단순히 망을 보고 있으라고 데려간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다. 이 세 제자들은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예수님의 모습이 바뀌었던 사건이었다.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처럼 하얗게 된 모습으로 구약의 인물인 몇 천 년 전의 사람이었던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 대화하는 장면도 함께 봤었고, 죽었던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에도 함께 있었던 핵심 멤버의 제자였다. 이 세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 제자들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이 세 자자들을 데리고 간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제자들과 함께 있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 데리고 갔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죽음의 고난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하신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여기서 예수님의 신성의 모습보다는 인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음의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신다. 그렇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신다. 간절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기도한다. 기도의 내용은 단순하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여기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잔’은 구약에서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읽어보면 ‘진노의 잔’으로 의미한다. 그러니까 진노란 하나님의 진노를 뜻하고 그 진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잔이었다. 그러니 진노의 잔은 하나님의 재앙과 심판을 상징한다. 그 잔을 누가 대신 마셔야 한다는 것인가? 예수님께서 이 잔을 옮기실 수만 있다면 옮겨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신다. 예수님이 마셔야 할 이 잔은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대신 당하시는 고난이다. 죄를 범하여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당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예수님은 인성을 입고 있기 때문에 죽음의 고난을 잘 알고 계신다. 또 단순히 고통스러워서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신 분이시기에 성부 하나님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으셨다. 그 죽음이 성부 하나님과 부활까지 잠시동안 단절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원하시기 않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이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아들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버지께 불순종했지만,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한다.
그렇게 첫 번째 기도를 마치고 예수님은 세 제자들에게 오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함께 깨어 있어서 기도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세 제자는 어떤 상태였는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가 한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라고 하시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고 말씀하신다.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기 바로 이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이미 예고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베드로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깨어 있어 기도하는 데에 실패한다. 예수님이 두 번째 가셔서 동일하게 36절에서 기도하신 기도를 동일하게 두 번, 세 번 드리고 왔는데 제자들은 어떤 상태였는가? 눈에 이미 피곤함이 가득한 상태로 계속 자고 있었다. 이 세 번의 기도는 베드로의 세 번 부인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겟세마네 기도는 아버지께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누가는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이렇게 설명해준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이렇게 기도한 것이 무엇을 위해서 기도한 것인가? 자신의 뜻이 왜 안 이루어지냐고 전전긍긍하며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순종과 복종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기도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고백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우리의 삶의 모범은 예수님이시다.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 예수님은 분명한 자신의 원함이 있지만,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자신의 뜻대로 하지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하는지 예수님을 통해 배우게 된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씀, 형제와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수많은 말씀이 우리에게 불편하고 괴롭게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가 기도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순종하기 너무 싫은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전도사님은여동생이 있는데, 내 말을 잘 듣고 따랐을까 아니면 더럽게 안들었을까? 듣는다고 하더라도 싫은 티 팍팍내면서 투덜거리는게 내 여동생이었다. 어릴 때 동생과 말싸움으로 자주 다투었는데 그때 나의 아이패드를 던지는 것을 전도사님이 팍 잡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머리 끝까지 화가나서 상처되는 말을 던졌던 것 같다. 그때 동생은 상처를 받고 방에 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서 나를 거의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때 내 감정으로는 오빠한테 행동이 왜 그따위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설교 말씀에서는 예배오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고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계속해서 찔리는 마음이 함께 있었다. 그래서 내 감정을 다 내려놓고 자존심을 다 죽여서 미안하다는 카톡의 장문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답장은 딱 두 글자였다. “그래” 그때 욱하는 마음이 다시 올라왔지만, 이 마음 예수님은 다 아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또 크게 다투는 날에 나에게 잘한 것도 하나도 없는데 덤비는 모습이 정말 너무 꼴보기 싫은 마음이 커서 화가 잔뜩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마음 속에서 예수님이 그래도 동생인데 오빠인 네가 사과하는게 맞지 않겠냐는 양심에서 이야기하는 마음을 자꾸 주셨다. 그 마음에 부담이 커서 정말 사과하기 싫었지만 그 마음 꾹 참고 동생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하기 싫었는데 예수님이 자꾸 마음에 부담을 줘서 이렇게 말할게 화내면서 막말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는데, 동생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동생이 그렇게 방에 가고 정말 화나는 마음과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이런 삶이 반복되면서 내가 어떻게 변해가는가? 점점 화내는 것도 줄어들고, 말하는 것도 부드러워지면서 온유한 성품을 닮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수님 때문에 내 성품과 삶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동생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그렇게 동생은 지금은 나에게 고민과 신앙상담을 받으면서 오빠한테 정말 많이 배운다고 고맙다고 울면서 이야기한다. 또 동생은 가끔 내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설교하기 제일 어려운 대상이 가족이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나의 본모습을 가장 잘 알기때문에 “너나 잘살아라”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에 여전히 자존심 세우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가족들에게 가장 무시받는 전도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삶을 사는게 어떻겠는가? 생각해보라, 어느 누가 예수님의 성품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예수님처럼 완벽한 성품과 온유함과 따뜻함과 사랑을 무한으로 주시는 분을 싫어할 사람은 전세계에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예수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말 멋있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를 닮아야겠는가? 예수님을 닮아야 점점 아름답고 멋있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 예수님이 아름다우신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100% 완벽하게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대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처럼 자비롭고 은혜롭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분이 없기에 그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선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도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여 부모님을 공경하고, 내가 마음에 들든지 들지 않든지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자존심 다 내려놓고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을 닮았다는 최고의 칭찬을 받길 소망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번 고난주간에만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매일매일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좋으니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