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신앙으로(히브리서 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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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30주일청년 - 20240714주일새벽 --
제목: 성숙한 신앙으로
‌‌​본문: 히브리서 5:11-14
찬송: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1. 도입
아이가 태어나 나이가 먹어가면 키도 자라고, 몸도 자라고, 마음도 자라가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난 나이를 먹어가며 키가 자라고, 몸이 자라고, 마음이 자라가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낍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가 나이를 먹으면서도 키와 몸과 마음이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에게 아픔이 됩니다.
“피터 팬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있는데요.
“정신의학신문”에 올라온 기사에서 이 용어의 내용을 설명줍니다.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83년 미국의 심리학자 댄 카일러가 쓴 책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구체적으로 “피터팬 신드롬은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으나 그에 따른 책임과 역할을 거부하고, 언제나 어린이 같은 심리 상태에 머무르고자 하는 심리적 퇴행 상태에 빠진 어른들을 가리킨다”라고 합니다.
“언제나 어린이 같은 심리 상태에 머무르고자 하는 심리적 퇴행”이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말하는데요. 다시 말하면 나이가 들어서 어른이 되었는데요 마음이 자라지 못해서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반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를 기사에서는 ‘성인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몸이 자라듯 마음이 자라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자라는 데 마음이 함께 자라지 못한다면 부모에게 근심과 아픔이 됩니다.
왜냐하면 자라지 못하면 퇴보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신앙도 자라야 합니다.
자라지 못하면 퇴보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히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니 되었을 터인데”
사도 바울이 보기에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시간으로 보면, 그들의 신앙생활을 한 기간으로부터 이미 교사가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12절 중반절이요.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해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다시 하나님 말씀의 기초를 배워야 할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 연수가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영적 상태가 성장하지 않고 신앙의 성인 아이의 상태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본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표현된 구절입니다.
여러분 시간이 지나면 몸이 자라듯, 마음이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자라듯 우리의 신앙도 자라 성숙해 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어린 아이 상태로 있으면 퇴보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신앙을 이룰 수 있을까요?
2. 본론
첫 번째 (성숙한 신앙을 위해서는) 말씀을 경험해야 합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말씀을 경험해야 한다.
13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히5: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린 아이’ 상태에 머무는 이유를 성경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여기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입니다. 복음을 들어 알지만, 복음의 능력을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함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 “말씀을 내 삶에서 살아낸 경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었지만, 그것을 내 삶에서 실제적으로 적용하여 살아낸 경험을 말합니다.
성경 구절의 “경험”이라는 단어의 원어의 의미에는 “실제적인 경험이 부족한”,
“한번도 시도해 본적이 없는”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알고 경험했으니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그래서 두 번째 해석으로 ‘경험’의 원어의 의미를 첨부해서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낸 경험이 부족한, 한번도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려고 시도한 적이 없는
그 상태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상태를 성경은 어린 아이의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알고 경험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11장 8절입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❶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을 때
아브라함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가 나아갈 때 붙잡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보이지 않는 걸음을 걸어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었고 그의 믿음이 자랐습니다.
❷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소망을 잃어버리고
그의 집안에서 길린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삶겠다고 하나님께 말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5장 3절.
창15: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내 집에서 길린자가 내 상속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시고,
또 하늘의 별등을 보여주시며 그에게 후사를 다시한번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자녀를 얻게 되었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실제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살아낸 결과입니다.
말씀을 실제적으로 살아냄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자 그 믿음이 성장하고 자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서 실천하고 경험할 때 반드시 우리 안에 “믿음의 갈등”이 있습니다.
현실과 하나님의 말씀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야 하는 아브라함.
그의 현실은 부양할 가족과 삶의 안전한 터전을 버리고, 목적이 없이 그곳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을 보면 믿음의 갈등이 생깁니다.
또 자녀를 약속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왔지만, 여전히 자녀가 없는 현실에,
대안이 자신의 집에서 키운 종밖에 대안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늘의 별과 같이 자녀가 있을 것이다 말씀합니다.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너무나도 큰 차이 때문에 믿음의 갈등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순간들이 찾아올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살아내는 것을 시도하고,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때
우리의 믿음은 자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함으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차원의 축복의 문이 펼쳐지길 소망합니다.
마치 꿈꾸는 것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두 번째 (성숙한 신앙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선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선악을 분별해야 한다.
히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아멘.
장성한 자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각을 사용한다”라는 의미는
한 주석에서 “영적, 도덕적, 지적으로 훈련된 사람”을 말합니다.
신앙이 성장해서 장성한 사람들은 “영적, 도덕적, 지적으로 훈련”받아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선과 악을 바라보는 기준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서 선과 악의 기준을 달리합니다.
성경의 탕자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❶ 먼저 집나간 막내 아들이 생각하는 선의 기준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2절과 13절을 보시면
눅15: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눅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둘째 아들이 생각하는 선의 기준은
아버지의 재산을 나눠 받아서, 아버지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먼 나라에 가서 탕진합니다. 이게 둘째 아들의 선의 기준입니다.
❷ 그 다음 형의 선의 기준은 “아버지의 집에 머무는 것”입니다. 28절과 29절입니다.
눅15: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형의 선의 기준은 “아버지의 집에 머물며 하나님의 명을 따르고, 여러해 동안 아버지를 섬기는 것”입니다. 집 나간 동생보다는 낫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동생을 위해 하는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선하게 여기시는 행동을 통해 화를 냅니다.
그의 선의 기준은 거지꼴을 하고 돌아온 동생을 품어주는 것보다, 아버지의 집에 머무는 것이 그에게 선이기 때문입니다.
❸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기준의 선의 기준은 “품어주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눅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나눠가지고 집을 나가 모두 탕진했습니다.
그리고 거지 꼴을 하고 돌와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왜 집에 들어오냐고, 나가라고” 호통을 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선의 기준은 “품어주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내 눈 앞에 옳고 그름보다 다시 아버지 품에 찾아온 자녀를 품어주는 것 아버지의선의 기준,
아버지의 신앙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성숙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선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보는 눈과 시야가 달라집니다.
순교자이신 사랑의 원자폭탄 손양원 목사님이 있습니다.
1948년 여수, 순천 사건으로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사건이 일어났으니 당연히 옳고 그름을 따져서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은 일입니다.
그것이 그분 가진 선의 기준이었습니다.
“반란이 진압된 이후 손양원 목사님은 실제로 반란군 안재선, 이란 좌익학생이, 자신의 두 자녀 살해했다고 자백하자, 용서하고 안재선씨를 자신의 양자로 삼습니다.
이 과정에서 ”격분한 마을 사람들과 애양원 환자들에 의해 안재선 씨의 처형이 집행되려 할 때, 손 목사는 설교 일정이 잡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여고생이던 딸 손동희 씨에게 '빨리 가서 안재선 씨가 마을 사람들에게 처형당하는 것을 말리고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손동희 씨는 당연히 자신의 친오빠들을 죽인 살인자를 살리는 것도 모자라 한 가족이 되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립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처형장으로 갑니다. 아버지의 부탁에 처형장으로 가면서도 '이놈을 죽일까, 살릴까?'하고 수백 번도 더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목숨을 건진 안재선 씨는 자신의 행동을 참회했고, 진심으로 손양원 목사를 자신의 아버지로 따르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선의 기준은 아버지의 ”품어주는 신앙“입니다.
손양의 목사님의 원자탄과도 같은 폭발적인 사랑이 없었다고,
여순 사건이 있던 현장은 미움과 피비린내 자는 살인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목사님의 신앙으로 그곳으로 사랑이 넘치는 용서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3. 결론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도 성숙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퇴보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경험하고, 말씀을 삶에서 적용하는 것을 시도하십시오.
선의 기준을 내 기준을 넘어 아버지의 ”품어주는 신앙“으로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성숙한 신앙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으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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