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3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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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s 13:25–33 NKRV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본문 해설

오늘 본문 배경을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광야를 거쳐 마침내 가나안 남쪽 경계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여러 차례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뽑혀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40일 동안 구석구석을 탐사하며 그 땅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돌아올 때 커다란 포도송이와 석류, 무화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런 과일을 가지고 온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러한 과일이 있을 정도로 그 땅이 비옥한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다.
이렇게 정탐이 끝이 나고 본대에 그 땅에 대해서 보고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이다.
오늘 본문을 보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오늘 본문 이전인 민수기 13:1-2을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한 것 같아 보인다.
Numbers 13:1–2 NKRV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정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신명기에 보면 출애굽한 2세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Deuteronomy 1:20–24 NKRV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23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24 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정탐할 것을 요구한 것이고 모세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해주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뽑아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점탐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정탐을 허락하셨는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정탐하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남아공 선교를 가는데 두려워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인정하셨고 그래서 정탐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정탐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탐을 보내시고는 아마 이런 마음이셨을 것이다. “거봐 맞지? 내가 이전에 너희들에게 약속했던 그대로지?” 하나님은 정탐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사실임을 직접 눈으로 보아 알게 하고 싶으셨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은 현실을 보고 돌아온 사람들의 해석이 둘로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열두 명 중 열 명의 다수는 그 풍요로운 열매보다도 거대한 장벽과 적들에 주목했습니다. 그들도 그 땅이 비옥한 너무나도 좋은 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Numbers 13:27 NKRV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런데 28절이하를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한다.
Numbers 13:28–29 NKRV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무슨 말인가? 그 땅이 비옥하기는 하다 그건 사실인데 그 땅의 주님들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읍도 견고해서 도저히 우리가 뚫을 수 없을 뿐더러 그곳에는 아낙 자손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그곳의 사람들을 이길 수 없으니 우리는 가나앙 땅에서 살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지은 것이다. 13장 33절을 보면 그들은 자기들 눈에 보기에 자신들이 메뚜기만 같았다고까지 말합니다 (민 13:33).
반면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은 똑같이 거인의 성읍을 보고 왔지만 30절을 보면 “올라가자 우리가 이길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정반대의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품은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을 두려워했던 이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품었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다면 그렇게 주장 하지 못 할 것이다.
반대로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품었기에 그 땅을 정복 할 수 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라고 주장한 것이다. 민수기 14:8-9에서 갈렓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길 두려워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Numbers 14:8–9 NKRV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이것으로 보아 이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품고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을 품은대로 보인다. 우리는 보이는대로 믿는게 아니라 믿는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보고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듣는다. 물론 보는것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가 마음이 있기에 그것을 보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을 결심하고서 같이 길을 가다가 이런이야기를 한다. “어머 여기도 교회가 있네, 저기도 교회가 있네” 목회자의 아내가 되기로 하니깐 주변의 교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품은 마음대로 보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렌즈로 가나안 땅을 본 것이고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욕심으로 가나안 땅을 보니 두려워져 가나안 땅을 정복 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 두려운 일이 일어났는데 출애굽한 1세대 이스라엘 백성중에서는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 다시말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던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탐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하나님도 그 정탐을 허용하셨고, 가나안의 실상을 보는 일은 유익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열 명이든 두 명이든 모두 그 땅의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을 객관적으로 조사하긴 했습니다. 잘 살펴보는 일, 현실을 직시하는 일은 우리 삶에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지요.
그래서 어디를 보느냐, 무엇을 보느냐 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열 명의 정탐꾼은 현실을 해석할 때 믿음이 아닌 불신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 눈앞의 문제만 크게 보이고 하나님은 작게 보였습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토대 위에서 현실을 해석했습니다. 문제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은 그보다 크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결국 열 명에게 정탐은 두려움과 불신앙의 시험거리가 되었지만, 두 명에게 정탐은 믿음을 입증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정탐 행위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가 핵심임을 이 말씀은 보여줍니다.

적용

오늘 말씀을 들으며, 우리 청년들의 삶에 있는 ‘가나안 정탐’의 순간들을 떠올려 봤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꿈이 있지만, 한편으로 눈앞 현실의 장벽들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영역은 무엇인가요? 혹시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현실을 정탐하다가 두려움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몇 가지 예를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취업의 영역: 스펙을 쌓고 이력서를 준비하면서도, 문득 뉴스에 나오는 취업난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다들 스펙도 뛰어난데, 나는 안 될 거야.” 마치 가나안의 거인들을 본 정탐꾼처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의 땅보다 현실의 높은 벽만 크게 느껴집니다.
연애와 결혼: 주변에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정작 내 현실은 외로움과 불안감일 수 있습니다.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 좋은 사람 만나기 힘들 거야”, “결혼해도 집 마련은커녕 살기가 팍팍할 텐데”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죠.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된 가정을 믿음으로 기대하기보다는, 당장의 환경만 보고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명과 진로: 어떤 청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비전이 있습니다. 선교나 목회, 혹은 사회 속에서 정의를 세우는 일 등 여러 형태로 부르심을 느끼지요. 하지만 막상 현실을 보면 “내 형편에, 내 능력에 그게 가능할까” 싶어집니다. 필요한 자격, 재정적 어려움,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 등 넘어야 할 산들만 바라보다가, 결국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주저앉아 있지는 않은가요?
이처럼 우리의 삶 곳곳에서 현실의 정보를 모으다가 두려움에 빠지는 상황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나 꿈이 있음에도, 내 눈에 보이는 장애물이 너무 커 보여서 믿음의 걸음을 멈추고 싶은 유혹이 찾아오는 것이지요. 바로 그 순간이 오늘 말씀처럼 결정적인 갈림길입니다. 똑같은 현실을 보지만 어떤 눈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담대히 직면하되, 믿음의 프레임을 가지고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되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함께 덧붙여서 해석해야 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은 냉엄한 경쟁 현실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내 길을 인도하시고 필요한 능력도 주실 것”**을 믿기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겁니다. 연애와 결혼을 놓고 불안해하는 청년은 “하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시니 합당한 때에 좋은 배필을 예비해 주실 거야” 하고 마음을 지키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명의 길을 주저하는 청년은 **“내가 약해도 하나님이 보내시면 반드시 감당케 하신다”**는 확신으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냅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의 크기를 줄일 수는 없어도, 믿음의 눈으로 볼 때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 함께 보이기 시작합니다. 상황은 같아도 마음에 찾아온 두려움이 희미해지고 소망이 자리잡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우리 각자가 직면한 현실의 자리에서, 이제 어느 쪽 정탐꾼이 될지 결정해야 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처럼 하나님을 빼고 현실을 해석하여 두려움에 주저앉을 것인가요, 아니면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도전할 것인가요?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도 함께 다뤄야 할 질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 예배 후에 소그룹으로 모일 때 서로의 “가나안 정탐”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각자가 현실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의 거인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서로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혹여 나 혼자 보기에는 감당 못 할 문제라도,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면 믿음의 시각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이 있다면 결단의 기도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두려움에 물러서지 않고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며 서로 축복합시다.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약속의 땅 앞에 선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곧 오늘 약속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인생의 향방이 달라집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보다 현실의 장벽을 더 크게 바라보다가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두 명의 믿음의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고 끝내 그 땅을 밟았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 곧 이루어 가실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 길에 높은 산과 거인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 내딛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실제를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두려움의 광야를 떠나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enduringwor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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