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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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운전

제가 지금 화요일, 금요일 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데요, 제가 주로 운전을 해서 가는데, 참 제가 한국에서 운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참 법대로 운전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먼저는 수도권에서 아주 좁은 공간에 인구가 밀집되다보니까 주차공간이 적어서 당장 저희 교회 주변에만 봐도 주차 공간이 아닌 곳에 막 주차해놓은 차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수가 있지요. 그렇게 안하고 싶어도 주차할 곳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제천에서 그렇게 도로에 주차해놓은 차 때문에 소방차가 출동하지 못해서 화재를 진압하지 못해서 인명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특히 수도권에서는 내가 잘 가고 있는데 갑자기 끼어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빨리 가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모두가 끼어들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안 끼어들면 양보해주지도 않고, 앞에서 다 끼어들고 있기 때문에 안 끼어들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전세계에서 거의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가 있습니다. 비상등을 딱 켜서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거죠. 막 누군가 끼어들어서 화가 나도 비상등을 켜면 “그래~ 잘못하긴 했어도 회개했구나”라는 마음이 드는게 신기합니다.
아무튼 이런 문화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운전할 때는 저도 회개를 참 많이 합니다. 너도 나도 다 잘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라고는 해도, 그러면 안되는데 자꾸 잘못 운전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읽은 아모스서의 아모스 예언자도 모두가 잘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 자기 잘못을 알려고하지도 않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모두가 운전을 잘못하고 있는 와중에, “남들 다 그렇게 하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하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렇게 운전하면 안됩니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예언자인데요,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아모스는 누구인가

아모스의 활동시기

먼저는 저희가 아모스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Amos 1:1 NKRV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아모스는 유다에서는 웃시야 왕이,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 왕의 시대에서 활동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아주 크게 부흥했던 시기라는 것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이 때 당시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회복했던 지역들인데요, 남유다의 경우에는 저 밑에 에돔 땅까지 정복했고, 블레셋과 암몬도 그들에게서 조공을 받으면서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경우에도 아주 윗쪽 지역까지 크게 정복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2 Kings 14:25 NKRV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이 구절은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큰 전성기 였던 다윗-솔로몬 시대 때 점령했던 영토들을 거의 회복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북이스라엘에게 황금기였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아주 풍요로운 시절이었구요, 사치가 넘쳐났었습니다.
Amos 6:4–5 NKRV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또한 이 시기의 특징은 아주 풍성한 종교 활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Amos 4:4b–5 NKRV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침마다 희생제사를 드렸구요,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리고, 수은제와 낙헌제를 드리면서 아주 기쁨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특히 원래 유대인들의 종교 중심지, 이른바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근데 예루살렘은 남유다에 있고,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드리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벧엘에서 예배를 드리게끔 했는데요,
Amos 7:10a NKRV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Amos 7:13b NKRV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유다 왕국에서 예루살렘이 왕이 거주하는 정치적인 수도이자 종교적인 수도였다고 한다면, 북이스라엘에서는 벧엘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벧엘이라고 하는 곳은 어디냐면 야곱이 돌을 베개로 삼고 누워서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환상을 본 곳입니다.
Genesis 28:18–19 NKRV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이 벧엘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야곱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고 그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하신 장소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1세, 처음 솔로몬 이후에 나라를 분열시키고 우상을 숭배했던 왕은 이곳에 금송아지를 세워서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 Kings 12:27–29 NKRV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등장하는 금 송아지가 저희가 출애굽 때부터 봐 왔던 것처럼 하나님 대신에 숭배할 우상, 그러니까 다른 신을 숭배하기 위해서 세우는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요,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이 금송아지”를 믿어라! 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들을 보시면, 메소포타미아 문명, 대체로 고대 바벨론의 우상 신들에 대한 묘사인데요, 황소의 위치가 대체로 바닥에 자리합니다. 이 말은 황소 자체가 숭배의 대상인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신들을 떠받치는 받침대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성한 존재로 여기기는 했지만, 그것은 신을 떠받드는 신하로서 그렇게 여겨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는 그 자체로 금송아지를 숭배한다기 보다는 “이 금송아지가 떠받들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에배하라”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는 우상숭배라기보다는 마치 언약궤처럼 “여기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로 하자!”라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송아지는 우상숭배 보다는 하나님 예배에 왕권이 개입했음을 나타냅니다.

아모스의 출신과 이동

이렇게 아모스 활동 당시의 북이스라엘의 경제적인 부유함과,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주 크게 활성화되어있음을 알아보았는데요, 그런데 반면에 아모스는 드고아 사람이었다 라고 1장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드고아라고 하는 지역은 예루살렘, 즉 남유다 왕국의 수도에서 남쪽으로 15키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저희가 지난 주에 알아본 미가와 같이 농촌 지역으로 잘 알려진 지역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도 목자이면서 동시에 농사를 지은 사람으로 나타나는데요,
Amos 7:14b–15 NKRV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자기를 설명하기를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아들, 다른 말로는 제자도 아니고, 양치는 목자이면서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이었는데, 양치고 있는 와중에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이스라엘로 가서 예언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양들과 자기 재산, 농사짓는 땅, 심지어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유다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스라엘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모스의 예언

그럼 이 아모스는 어떤 말씀을 주로 전할까요?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넘쳐나고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기에 목자이자 농부였던 아모스의 말씀은 미가서와 상당히 비슷하게 사람들이 공의에 대한 무감각, 즉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즐거운 인생처럼 보여도,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삶이 정의롭지 못한 것을 비판합니다.

의인의 말을 무시하고 학대함

Amos 2:6–7 NKRV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의인과 가난한 자들을 팔아넘기고, 약자들을 짓밟고 음란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이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Amos 5:12 NKRV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또한 의인을 학대하고 뇌물을 받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것이 이스라엘의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의인을 학대하고 팔아넘긴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다 악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누군가는 바른 소리를 하고, 분명히 누군가는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 가운데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을 멸시천대했다는 말입니다.
Amos 5:10 NKRV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원래 옳은 소리, 바른 소리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합니다. 아까 제가 한국의 운전문화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가끔씩 운전을 하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남들 다 끼어들기 하는데, 나도 안끼어들면 내가 어떻게 가?”라고 하는 거죠. 비상등이라도 켜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꾸짖는 의인들과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학대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만 잘먹고 잘사는 부유함

또한 부유한 삶의 이면에는 남의 것을 가로채서 자기의 것을 충당하는 일들이 있었는데요.
본문말씀 1절 말씀을 보시면,
Amos 4:1 NKRV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여기서 바산의 암소라고 하는 표현은 부유한 계층의 여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모스가 목동이기 때문에 소에 대해서 아마 잘 알고 있었을 건데요, 바산의 소는 풍요의 상징입니다.
Deuteronomy 32:14 NKRV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바산의 소와 염소와 같은 가축들은 살지고 기름진 가축들을 의미하는데, 넓은 들판에서 방목하여 기르기 때문에 이 소들은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그냥 눈 앞에 있는 풀을 뜯어먹고 놀면 되는 삶을 사는 소들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있는 가축들이 어떻게 살든 관심없고, 심지어는 가축으로서 끌려가게될 자기의 미래조차도 관심 없는 소들입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부유한 사람들이 이처럼 남들에게 관심없고, 자기 자신의 잘먹고 잘사는 것과 같은 행태를 꼬집으면서, 바산의 소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Amos 4:2 NKRV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지금 풍요롭고, 지금 잘먹고 잘살고, 지금만 사는 부요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만들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의롭지 못한 예배가 죄

또한 앞서서 벧엘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라고 말씀드렸는데요, 하나님께서는 공의롭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삶을 사는 이들이 드리는 예배 자체가 범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Amos 4:4–5 NKRV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까도 읽었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제사들을 살펴보면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렸구요, 수은제는 감사제물입니다. 낙헌제는 정해진 절기 헌금이 아니라 자기가 자원해서 드리는 자원예물을 뜻하는데요, 오늘날로 따지면 십일조, 절기감사헌금, 자원해서 드리는 감사헌금과 같은 예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제사를 드리고 봉헌하는 것에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기뻐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범죄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배는 어느 곳에서든 드릴 수 있어야 하는데, 예루살렘을 가지 못하게 하려고 왕들이 세운 벧엘에서 드리게끔 하는 것 역시 범죄입니다. 그렇기에 삶에서의 예배가 아니라 잔뜩 죄를 범하면서 예배드리고 봉헌하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앙과 깨닫지 못함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재앙들을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내리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끔 시도하셨음을 말씀하십니다.
6절부터 살펴보면, 이빨이 깨끗하게 될 정도로 먹을 것을 부족하게 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7-8절에는 비를 범추게 해서 가뭄을 불러오시고 물을 못마시게 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9절에는 곡식을 마르게 하고 깜부기, 곡식에 종양처럼 자라는 곰팡이 병을 내리게 하고 팥중이, 메뚜기로 열매들을 다 삼키게 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에는 모세가 파라오를 찾아가고 내려진 재앙들 가운데 있던 전염병처럼 전염병을 흩뿌렸는데도 돌아오지 않았고, 11절에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주로 전쟁과 외세의 침략을 통해서 성읍들을 무너뜨렸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겁니다. 나만 잘먹고 잘살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감사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바른 소리, 옳은 소리를 하는 이들을 학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배하긴 하지만 하나님을 찾는 예배가 아니고, 하나님을 찾긴 찾지만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라 마치 예수님을 통해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많은 제자들처럼 하나님께서 갑자기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위에 두시는 헛된 꿈으로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Amos 5:18 NKRV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내리신 재앙들을 말씀하시면서 그래도 돌아오지 않는 백성들에게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재앙들을 반드시 내리겠다고 말씀하시면서
Amos 4:12 NKRV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날,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잘못 찾고, 하나님을 잘못 예배하는 자들에게는 재앙의 날입니다.
저희가 사순절 기간 동안 요한계시록 전체를 살펴보면서 많은 재앙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하나님을 만나는 날, 여호와의 날, 주의 날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2 Peter 3:10 NKRV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나님께서 그 날을 준비하면서,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라고 하시는 말씀은 바로 그 재앙이 내려질 날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만남을 준비하라 라는 말씀은 재앙의 날을 준비하라는 뜻이지 재앙을 준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앞서 언급한 모든 재앙들이 내려지는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는 것이지만 그 재앙 자체를 준비하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2절에서 등장하는 준비하다 라고 하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쿤(כּוּן)이라고 하는 동사인데요, 이 동사는 재앙을 예비하다 할 때에도 쓰이고, 굳게 서다라고 할 때도 쓰이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준비할 때는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하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됩니다.
Exodus 19:10–11 NKRV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하나님께서 출애굽할 때에 시내산에서 백성들을 만나주신적이 있습니다. 이날에 성결하지 못한 백성은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을 경고하시고 백성들로 하여금 이틀을 준비하게, 즉 성결하게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성결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살아남게 됩니다.
또한 이 때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Exodus 19:21–22 NKRV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하나님께서 무서운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은 정말 그 재앙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기를 원하셔서 그런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날,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만나주시는 날에 성결하지 못한 백성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성결해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선을 구하고, 정의를 흐르게 하라

그럼 어떻게 저희가 성결하게 되고, 어떻게 저희가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할 수 있을까요?
먼저는 하나님을 제대로 찾는 것입니다.
Amos 5:4–6a NKRV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화려한 금송아지가 떠받들고 있고 많은 이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 오히려 착취하고 괴롭히면서 감사예물을 드리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Amos 4:13 NKRV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저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희가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두번째 방법은
Amos 5:14 NKRV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예물을 드리고 자원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나의 부를 축적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선을 구하여서 우리 중에 악을 저지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제하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되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Amos 5:24 NKRV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의 공의는 어쩌다 잠깐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마르지 않는 강같이 끊임없이 흘러가게끔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성결해지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저희는 하나님 만나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특히 이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을 저희는 어떻게 바라보고 부활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습니까? 그냥 매년 돌아오는 사순절, 매년 조금 찔리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고난 주간, 그냥 매년 계란 까먹는 부활절로 예배하고 있나요?
Philippians 1:6 NKRV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것, 여호와의 날, 그리스도 예수의 날을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여지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시작한 착한 일을 끝날까지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이 고난주간, 그저 매년 드리는 예배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며 하나님을 찾고, 선을 구하고, 공의를 끝없이 흘려보내고자 다짐하면서, 하나님의 성결한 백성으로서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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