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희생으로 지켜내야 할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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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전투(bc490)
마라톤 전투(bc490)
BC 491년 페르시아는 그리스 본토의 도시국가들에게 사절을 보내 복종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흙과 물을 보내라고 요구하는데, 여기에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사신들을 처형해 버리는 것으로 응수한다.[5] 이에 분노한 다리우스 대왕은 그리스를 공격하기로 결정하며 이전에 이오니아 반란 때 반란군을 지원하기도 했던 에레트리아와 아테네를 1차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원정군을 보낸다.
지상군 2만 5천과 600척의 함대로 구성된 페르시아 원정군은 에레트리아를 공격하여, 제압하고 아테네 공략을 위해 마라톤 평원에 상륙한다. 이에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포함한 여러 도시국가들에 지원군을 요청함과 동시에 9천의 중장보병으로 구성된 군대를 밀티아데스에게 위임해 마라톤으로 파견해서, 페르시아군과 대치했으며 이후 펼쳐진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하고, 기병을 포함한 주력을 함대에 탑승시켜 아테네 시 근방으로 접근하려던 페르시아 함대가 도착하기 이전에 신속히 아테네로 돌아와 상륙을 저지한다. 결국 아테네 공략에 실패한 페르시아군은 철수했다.
이때 마라톤 전투의 소식을 먼저 전하기 위해 전령이 달려온 것이 마라톤의 기원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는데, 실제로는 전령만 먼저 달려온 게 아니라 아테네군 전체가 함대가 오기 전에 아테네로 황급히 달려왔다고 한다.
살라미스 해전(bc480)
살라미스 해전(bc480)
다리우스 대왕은 아테네 정벌의 실패 소식을 듣고는 충격을 받아 그리스에 복수를 맹세하며 2차 원정군을 보낼 준비를 하나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를 진압하다가 병사하고,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 뒤를 잇는다. 크세르크세스는 이집트 반란을 진압하고 바빌로니아에서 일어난 반란도 진압한 다음 대규모 원정군을 직접 이끌고 그리스 원정길에 나선다.
헤로도토스는 이 원정군을 아시아 일대에서 소집한 180만, 유럽 일대에서 추가적으로 합류한 30만, 하인과 수행원 및 여타 잡역부들이 260만으로 육군만 470만이며 해군은 갤리선 1207척과 수송선 및 보급선 3000여 척에 해군 인력은 25만이어서 총 규모 500만이라는 초월적인 수치[6]에 달한다고 제시하고 있지만, 현대의 연구에서는 모두 과장이며[7] 실제로는 대략 20~50만 사이로 추정한다. 헤로도토스는 이외에 헬레스폰토스(다르다넬스 해협) 일대에 부교를 건설해 육군을 옮겼다고 하며, 아칸토스 일대에 운하를 파서 함대를 안전하게 옮기기도 했다는 일화를 들기도 한다.
이에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헬라스 동맹' 을 결성해 대향하기로 정하고 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국가들에게도 지원을 요청하지만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나 아드리아해의 코르키라(오늘날의 코르푸)와 같은 힘있는 다른 도시국가들은 눈치만 보면서 합류하지 않는다.[8]
그리스 연합은 1차 방어선을 테르모필레와 아르테미시움 일대에 구축하고 테르모필레에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중장보병 6천여 명(스파르타는 이때 또 다른 종교축전 중이어서 근위대 300명만을 보냈고, 펠로폰네소스의 다른 도시국가들과 보이오티아의 테베, 포카스등이 추가적인 병력을 보탰다.)과 여기에 딸린 시종 및 노예들을 포함해 1만여 명 정도 되는 병력을 이끌고 방어선을 쳤고, 아르테미시움에는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갤리선 271척과 기타 함선 50여 척(나중에 겔리선 53척 추가)을 이끌고 방어선을 친다. 이것이 유명한 영화 300(영화)의 배경이 된다.
여기에 페르시아군이 접근해 3일 동안 테르모필레 전투와 아르테미시움 해전이 펼쳐지는데, 3일 만에 테르모필레가 뚫리면서 아르테미시움의 그리스 해군도 방어를 포기하고 철수한다.
이후 페르시아군은 아테네를 점령하고 시가지를 방화한 뒤[9], 펠로폰네소스 일대까지 공격하려 하나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속아 넘어가 지형적으로 대단히 불리한 살라미스 해협으로 들어가(함대가 너무 대규모다 보니 좁은 해협에서는 그리스 함대보다 불리하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하고 테실리아로 돌아가서, 겨울이 다가오자 마르도니오스에게 상당수 병력을 떼어주고 크세르크세스 자신은 철수한다.
본문연대 추정역사적 사건의미
에스더 1:1–3BC 483 크세르크세스 제3년, 잔치원정 준비기
1:10–22BC 483 와스디 폐위왕권 강화 시도
2:16 BC 479 크세르크세스 제7년원정 이후, 에스더 즉위
3장 이후 BC 478경 하만의 음모제국 내부의 위기와 유다 공동체의 시험
에스더 이야기
에스더 이야기
옛날 옛날, 페르시아라는 큰 나라에 아하수에로 왕이라는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유했고 권세가 있었지만, 아내 와스디 왕후가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바람에 왕비의 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후 왕은 새로운 왕비를 찾기로 결심했고, 온 나라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불러모아 왕후를 고르게 되죠. 그때, 유다 민족의 고아 소녀, 에스더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조용하고 지혜로웠고, 삼촌 모르드개의 보살핌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에스더는 왕 앞에서 눈에 띄었고, 마침내 온 나라의 왕후가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정체, 곧 유다인이라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왕의 오른팔인 하만이라는 악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권세를 휘두르며 모든 사람에게 절하라 했고,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뿐 아니라 유다 민족 전체를 없애려는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왕의 이름으로 유다인을 죽이려는 조서가 온 나라에 퍼졌습니다.
모르드개는 왕후가 된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네가 이때를 위하여 왕후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는 깊이 기도하고, 죽음을 각오하며 왕 앞에 나아갑니다. 당시에는 왕이 부르지 않은 자가 왕 앞에 나아가면 죽임을 당할 수 있었지만, 에스더는 결단하고 말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의 섭리로 왕은 에스더를 반기며 그녀의 부탁을 듣습니다. 에스더는 잔치를 베풀고, 그 자리에서 하만의 음모를 밝혀냅니다.
결국 하만은 자신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세운 장대에 오히려 자신이 달려 죽게 되었고, 유다인을 향한 조서는 뒤집히며, 유다 민족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날은 훗날 **‘부림절’**이라는 절기로 기억됩니다.
1. 공동체는 위기의 순간에 진실을 드러냅니다
1. 공동체는 위기의 순간에 진실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동체란 언제나 평온한 항해만 하는 배가 아닙니다.
폭풍이 몰아칠 때, 그 공동체의 진짜 모양이 드러납니다.
에스더가 살던 시대, 유다 공동체는 절멸의 위기 앞에 놓였습니다.
하만이라는 악인이 꾸민 음모는 단순한 정치가 아닌 민족 말살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예기치 않은 사람, 한 여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고아였고, 이름조차 숨기고 살아가던 사람 – 바로 에스더였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 질문은 곧 공동체의 위기를 향한 부르심의 질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공동체를 살리시려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2. 하나의 결단이 공동체를 살립니다
2. 하나의 결단이 공동체를 살립니다
에스더는 두려움에 망설였습니다.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이렇게 말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공동체는 누군가의 이 한마디 위에 세워집니다.
그 한 사람의 결단이, 수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능력보다, 깊은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이 시대, 교회라는 공동체 또한 많은 위기 속에 있습니다.
세상의 시선, 내부의 상처, 세대 간의 벽, 영적 침체…
이 모든 혼란 속에서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결단입니다.
3. 나는 지금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헌신하고 있는가?
3. 나는 지금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헌신하고 있는가?
에스더의 위대함은 ‘왕후’라는 위치에 있던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위대함은 그 자리를 하나님과 공동체를 위해 내어놓았을 때 드러났습니다.
당신이 가진 시간은 ‘이 때’를 위한 것 아닙니까?
당신이 가진 은사와 지위, 그리고 지식은 ‘이 때’를 위한 것 아닙니까?
지금 당신이 있는 이 교회, 이 가정, 이 사역지에 있는 것 – 바로 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아닙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지금 너는 무엇을 위해 침묵하고 있느냐?
이 때를 위하여 내가 너를 여기 두지 않았느냐?”
4. 결단 없이 지켜낼 수 있는 공동체는 없다
4. 결단 없이 지켜낼 수 있는 공동체는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동체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이상도, 그 어떤 비전도,
그것을 붙드는 사람의 헌신 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모두가 물러설 때,
한 사람이 일어나는 것이 공동체를 살립니다.
모두가 두려워할 때,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 공동체를 이끕니다.
모두가 침묵할 때,
한 사람이 말하는 것이 진리를 드러냅니다.
🕊 결론 – 지금이 바로 그 때
🕊 결론 – 지금이 바로 그 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
함께 예배드리는 것,
함께 이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 –
이 모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 때를 위하여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고백이 에스더의 것이 아닌,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교회를, 이 공동체를, 당신의 헌신과 결단으로 지켜내십시오.
🙏 마무리 기도
🙏 마무리 기도
주님,
에스더를 부르신 것처럼
지금 우리도 부르심의 자리에 서 있음을 믿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나의 자리, 나의 헌신, 나의 결단이
하나님의 큰 섭리와 만나게 하소서.
이 때를 위하여,
우리 모두가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고백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