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바를 요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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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평화의 인사
오늘도 이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2. 기도
“내 눈빛을 꺼 주소서, 그래도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하나님, 우리의 모든 몸이 주님을 향하고 아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헛된 것을 구하는 자가 아닌 영원한 것을 구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땅히 봐야할 것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3. 찬양
4. 기도
하나님, 세상의 요구들을 멈추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왜곡된 소리가 아닌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5. 성경봉독
Luke 23:13–25 NKRV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없음)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6. 설교
고난주간 셋째 날입니다.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진리이신 예수께서 어떤 판결을 받으실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예수님에게 진리는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인생의 이정표가 될 사람이나 진리의 말씀을 한 가지씩 붙들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온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붙잡은 삶의 이정표를 따라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진리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림]
여기 자기 신념을 불변의 진리로 붙잡았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와 총독 빌라도입니다. 왼쪽에 두루마리 율법을 안고 있는 사람이 대제사장 가야바이고요. 오른쪽에 물동이에 손을 넣고 씻는 사람이 빌라도입니다.
왼쪽에 있는 두루마리 율법을 들고 있는 사람이 제사장들을 대표하는 대제사장 가야바입니다. 종교지도자로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야바는 지금까지 목숨처럼 율법을 수호해 왔습니다.
가야바에게 율법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신성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 율법을 신성히 여겼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이라 여겼고 이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을 지켜주시리라 믿으며 살아갑니다. 가야바는 그 법을 지키는 일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의 희생쯤이야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지키는 자들의 개인주의적이고 경건주의적인 고집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데 율법, 그들의 법에만 갇혀서 법을 지키는 것에만 온 신경을 곤두 세웁니다. 법을 지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법의 목적을 알아야 하는데 법을 지켜서 자신만 거룩해 보이려 하는 좁은 신앙에 갇힌 자가 되어 버립니다. 율법 또는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야바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성경을 읽고 스스로 거룩하다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가야바는 법을 지키는 것을 진리로 여기며 정죄하며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제 오른쪽에 있는 사람을 보겠습니다. 빌라도입니다. 빌라도는 권력을 인생의 진리로 여겼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리일 것입니다. 빌라도는 권력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어느 누구와 타협하고 손을 잡든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우리 자신이 지금 따라가고 있는 길이 있으신가요? 내가 따라가고 있는 그것이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인생이 진리의 법정 앞에 서게 된다면 어떤 판결을 받을 것 같으신가요? 언제나 진리되신 그리스도는 우리 앞에 당당하게 서 계십니다. 참 생명과 구원의 길이 되신 주님을 눈 앞에 두고도 내 손에 쥔 그것을 내려놓지 못해서 진리를 놓쳐버리고 만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13절부터 보면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끌고 와서 고발하였기 때문에 빌라도는 심판하기 위해 예수님을 세워놓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죄라고 고발한 죄목은 3가지 입니다. 2절에 나옵니다.
1. 백성을 미혹하고 2.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3. 자칭 왕 그리스도라
이 세가지가 예수님의 죄라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요. 반란죄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반란군으로 만들어서 로마 총독에게 벌을 받도록 만듭니다.
첫 번째로 백성을 미혹한다는 죄명은 이스라엘과 로마를 향해 반역한다는 의미입니다. 갈릴리로부터 민중들을 일으켜서 기존체제에 대항하게 만들고 로마에 항거한다는 것입니다. 갈릴리로부터 민중들을 일으켜서 기존체제에 대항하게 만들고 로마에 항거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고 회개하라고 하니 백성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예수님의 인기도 많아지고, 영향력도 세져서 지도자들은 두려움을 느꼈고 예수님을 제압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의 따름과 변화를 ‘미혹’이라고 바꿔 말합니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기존체제의 지도자들에게는 위협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5 에서도 바울을 향해 말합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돌림병 같은 자입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유대아 사람들 가운데 분란을 일으키는 자요. 나사렛 사람들 분파의 우두머리입니다.”
이렇게 바울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명분으로 처벌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이유는 로마 통치에 반역하는 일이고 질서를 흔드는 일이기 때문에 적색분자를 색출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7:6-7 에서도 바울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처벌 받으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17:6–7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이처럼 로마는 자신들의 통치 질서를 어기고 반역하는 자들을 엄히 처벌했습니다. 거대한 제국이었기 때문에 각 나라들을 다스리려면 반란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힘의 제국입니다. 팍스로마나는 힘으로 제압하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빌라도도 로마 황제로부터 파견된 이스라엘 총독이기 때문에 반란을 막아야 했고 소란스럽다는 것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리고 빌라도도 총독으로서 반란을 일으키면 안 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반란군으로 처벌받게 합니다.
예수님의 죄명 두 번째는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게 했다는 것인데요. 예수님은 세금 논쟁이 있을 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의 질서에도 따르라는 것이죠.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따라 바울도 로마서 13:7 에서 세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13:7여러분은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십시오. 조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쳐야 할 이에게는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해야 할 이는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할 이는 존경하십시오.”
바울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국가에 낼 세금을 잘 내라고 말합니다. 납세의 의무를 잘 지키라고 합니다. 종교인의 세금납부는 신앙인으로서 나라와 이웃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의무이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데요. 이슈는 무엇이냐면 마가복음 11장에서 성전을 엎으신 사건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성전세를 내야 하는데요. 세겔이라고 하는 화폐만 받았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유월절과 같은 명절이나 성전에 들어갈 때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요. 제사드릴 양이나 비둘기를 살 때도 마찬가지고요.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세겔로 환전해서 내야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수수료를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수수료로 자신의 지나친 이익을 챙겼기 때문에 그 부패에 대해 예수님께서 성전을 둘러 엎으십니다. 성전세의 뒷돈과 타락을 엎으신 것입니다. 그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없애 버릴지 그 방법을 찾고 있었다.”
라고 나옵니다. 자신들의 배를 불릴 일을 막아버리니 그때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복음 23:2 에 등장하는 세금 바치는 것을 금했다라는 것은 이 사건을 과장해서 고발한 것입니다. 성전세를 지나치게 걷는 지도자들의 타락을 말하며 거룩한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인데 제사장들은 성전세로 자신의 뒷돈 거래를 받지 못하게 하니 그것을 가지고 세금을 바치지 못하게 했다고 왜곡해서 고발합니다.
그 다음 세 번째 죄명은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인데요. 이것은 로마의 왕이 있는데 예수는 자신이 왕이라고 한다며 이것이야말로 반역이라며 고발합니다. 바울도 예수를 왕으로 여기는 것이 반역죄가 됩니다.
사도행전 17:7 “이들은 모두 카이사르의 명령에 맞서 행동하며 예수라는 임금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바울이 고발을 당할 때도 로마 황제가 아닌 다른 왕을 따른다는 죄명으로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반란이라는 공통 이슈로 고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합니다. ‘죽일 일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냥 고발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때려서 놓아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17절은 (없음)이라고 나오는데요. 다른 발견된 사본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빌라도는 반드시 명절 때마다 한 명을 풀어 주곤 했다.”
아마 빌라도가 먼저 제안을 했을 것입니다. 명절에는 내가 항상 특별 사면을 해주는 관례가 있었으니 이 예수를 특사로 풀어주는게 어떻겠는가? 이렇게 제안했을 것입니다. 보통 유월절과 같은 큰 명절에는 유대인들의 기쁜 날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유대인들을 감옥에서 석방시켜주는 특별 행사가 있는 것이죠.
로마 제국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특별하게 하사하는 선물이라는 의미로 정치적 행위입니다. 그렇게 하면 유대인들의 저항심도 어느정도 사라지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난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를 쓰면서 유대지도자들이 선택하게 만듭니다. 바라바와 예수님 중에 선택하게 만듭니다. 이번 특별 사면으로 누구를 풀어줄지 선택하게 만듭니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힌 자입니다. 바라바는 반란을 일으킨 자이고요. 살인을 행한 큰 범죄를 행한 죄수입니다.
그러자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를 없이 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라고 말합니다. ‘없이 하다’라는 말은 ‘αἴρω’ 라고 해서 ‘치워버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치워버려달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를 치워버려라, 없애라, 제거해라,’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과 바라바 중에 바라바를 요구합니다. ‘바라바를 달라’고 합니다. 진리이시고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예수를 치워버리고 죄인 바라바를 요구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예수님을 요구하는 삶인가요? 아니면 바라바를 요구하는 삶인가요?
은혜를 구하는 자인가요? 죄와 세상적 가치를 구하는 자인가요?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전통과 고집을 회개하게 만드는 예수를 없이하고, 치워버리려하고 바라바라고 하는 악, 세상적 가치를 요구합니다.
이시간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고 있는지 바라바를 요구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진리를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죄된 가치들을 요구하며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해서 악을 얻어서라도 세상에서 내 이익과 목표를 이루고자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진리로 붙잡기 원합니다. 세상에서 잘 되고 싶어서 세상의 것을 요구하고 예수님은 잠시 치워버리려고 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바라바를 요구하지 말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예수님만을 바라고 예수님의 다스리심만을 바라는 예수님을 요구하는 고난주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찬양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합심기도
이시간 기도할 때 하나님, 내 삶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로마의 제국적 가치가 아닌, 세상적 기준이 아닌, 악의 가치가 아닌, 예수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나는 예수님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내 안에 바라바를 요구하는 죄를 없이해주시고, 치워주시고 예수님만을 구하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바라바가 아닌 예수님만을 요구하고 예수님으로 충만한 내가 되게 하옵소서. 다같이 주여 세 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세상의 것을 너무 많이 요구합니다. 죄인줄도 모르고 죄의 가치를 요구하며 그것이 필요하다며 따라갑니다. 그런 유혹에서 이기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만을 필요로 하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바라바가 아닌 예수님이 오시옵소서. 그래서 이제는 바라바의 자리에 있지 않게 하시고, 바라바와 같은 자리에 있던 나를 대신하시고, 나를 살려주신 은혜를 아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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