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새 4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4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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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살의 의미

본문: 마26장 26절– 29절
마태복음 26:26–29 NKRV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군대시절 모시던상관의 장인어르신이관내에 있어서모시던 상관을따라 자주쉬러갔었다. 그때그어른은 전형적인인심좋은 어르신이셔서객지에 나와군생활하는 저를굉장히 이뻐해주셔서볼때마다 맛있는음식과 따뜻한 격려로 대해주셨다.살림도 넉넉하셨고인품과 자녀들도다 훌륭하게잘 양육하신모든면에서 뵙기좋은 그런어르신이셨다. 그런데그 좋은어르신이 교회이야기만나오면 정색을하셨다. 교회것들은 이상하다고, 왜 나보고사람피를 먹으라고하냐고, 왜나보고 사람살을 먹으라고하냐고 , 한번교회갔다가 그소리듣고 기겁을하고 다시는교회에 가지않는다고, 말씀하셨던기억이 난다. 그냥 정직하게살고 하나님이란분이분명 살아계시니 나쁜짓하지말고 선하게살으라고 하면좋은데 가입한다 셈치고 교회를 다녀볼수있을텐데 , 무슨피를 마셔야산다고 하고살을 먹어야산다고 하니.. 이것을 어떻게정상적인 사람이라면믿을수 있겠는가말이다. 
피와 살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문자적해석하고 볼때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날도예수님의 피와살에 참여하는성찬식을 하면서도그 피와살을 먹는다는의미를 알지못한채그저 예수님이 기념하라고 하신 일을 기념하는 수준에서 생각할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의 최후의만찬 말씀을 통해 피와 살의 의미를 살펴보자.
피의 의미 (27-28)
마태복음 26:27–28 NKRV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구약성경에서 피는 생명이라고 하셨다.창 9:3-6). 피를 흘린자는 피를 흘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 피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의을 의미한다.
창세기 9:3–6 NKRV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정리하면 피는 생명이고 그 생명의 내용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래서 피를 흘리거나 피를 먹는다는 것은 그 하나님의 생명을 업신여기는 것이 되는 것이다. 
율법은 그래서 피를 먹는자는 백성중에서 끊어진다 경고하셨다.(레17:10
레위기 17:10 NKRV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주를 들면서 이것은 나의 피라 하시고 그것을 마시라고 하신다. 율법으로 보면 마치 율법을 어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을 어긴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인 피, 그 피의 내용인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성품의 그 본질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히 10:1, 9-10
히브리서 10:1 NKRV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9–10 NKRV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피는 생명이다. 그럼으로 예수의 피를 마시라 하심은 예수의 생명을 받으라고 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율법의 목적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로마서 10:4 NKRV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 예수님을 생명으로 받는것이 바로 율법의 목적이고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예수님의 생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를 먹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예수님의 생명을 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저는 가끔 복음을 이야기하면 느껴지는 반응이 꼭 에스키모인들한테 냉장고 파는 기분이 든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는데 배고픔을 못느끼면 아무리 맛있는 밥을 차려도 소용이 없는것처럼, 스스로 의에 관하여는 철저히 죽은자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자체를 알아듣지를 못한다. 그래서 결국 예수믿는다는 것이 마치 뜬그름 잡듯이 느껴진다. 제 자신도 삶이 너무 평탄하고 문제가 없으면 예수님을 생명으로 믿는것이 힘들어진다. 그런면에서 삶의 고난은 우리에게는 축복이다.
아무튼 예수님의 피는 예수님의 생명을 의미하고 , 그것은 나에게 생명이 없음을 알고 예수님을 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우리가 성찬식때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이다.
나의 존재와 나의 본질이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없음인 사망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산자로 옮겨지는 복음의 이야기인 것이다.
 
2. 몸의 의미(26)
마태복음 26:26 NKRV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떡은 또한 몸이라고 하시면서 먹으라고 하셨다. 피가 생명의 내용이라면 몸은 생명의 형식이다. 그 생명을 형식화하고 외부화 하여 밖으로 드러내는 도구가 바로 몸이다. 고양이의 생명이 있는 고양이의 몸은 그 고양이의 생명을 드러낸다. 그래서 야웅 야웅한다. 그러고 싶어서 하는것이 아니라 고양이의 생명을 담은 고양이의 몸이기 때문에 야웅야웅밖에는 다른것을 담아내지 못한다.고양이의 몸이기 때문이다. 개의 생명이 있는 개의 몸은 개의 생명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그래서 멍멍만 한다. 몸은 이렇게 그안에 들어 있는 생명을 드러내는 형식이요 도구가 된다. 예수님의 몸은 예수님의 생명을 밖으로 나타내고 드러내는 형식이었다. 예수님 자체가 사실은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의 몸인 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인과 성품의 형식이요 외부화된 분이셨다. (요1:14
요한복음 1:14 NKRV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럼으로 몸을 먹으라는 것은 그 생명을 드러내는 모든 표현양식을 따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을 피로 마시는 자는 몸도 함께 먹어야 한다. 피만 마시고 몸을 먹지 않는 것은 마치 형식없는 내용과 같아서 외부적으로 형식화되거나 드러날방법이 없다. 그말은 예수님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을 받아들인자는 예수님의 말과 행동도, 즉 예수님의 삶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피를 마시고 몸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성품을 나의 의 , 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고 몸을 먹는다는 것은 그런 존재로서 그 생명을 드러내는 삶을 살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 먹는다는 것의 의미
 구약에서 재물을 먹는다는 것은 재물의 의미와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재단에 올려진 재물은 거룩한 곳에서 거룩한 제사장만 먹도록 하셨다.(레10:18
레위기 10:18 NKRV
그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는 것이었으니 그 제물은 너희가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니라
왜냐하면 그 재물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재물을 먹는자는 또한 거룩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재물을 먹는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하다고 인정된 제사장이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인정한 곳에서만 그 재물을 먹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인 피와 예수님의 삶인 살을 먹는다는 것은 이와같은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과 삶과 내가 하나가 되고 일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찬식을 할때 숨겨진 죄가 있으면 그 사람은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고전11:27-29
고린도전서 11:27–29 NKRV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의 본성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그 죄를 다 자복하고, 즉 생명없음의 사망의 절망을 다 고백하고 주님을 온전히 생명으로 받아들이는자만 예수의 피와 살을 먹을수 있는것이다. 그럼으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의 생명과 삶에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고 생명이고 성도의 정체성이 되는것이다.
믿음은 이렇게 나의 존재와 본질이 바뀌는것이지 착한 일 하나 더하고 조금 더 마음 편안해 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생명이 되어 예수의 삶이 되어 이땅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성전됨의 의미(고전3:16-17
고린도전서 3:16–17 NKRV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경은 우리를 성전이라 말씀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것으로 형상화시키지 말라 하셨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그 영이신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새긴다면 새긴 그 순간,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은 왜곡되고 말것이다. 영이란 육신으로 표현될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영이신 하나님을, 눈에 보이도록 형상화시킨 것이 구약에 단 하나가 있다. 그것은 성막이었다. 광야 40년동안 하나님의 임재는 항상 구름의 형태로 그 성막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 성막안의 모든 기구는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대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출애굽기의 성막안의 모든 기구를 만들때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표현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되었더라. 이 말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의대로 되었다는 말의 표현이고 그래서 성전의 모든기구는 성물이 되어 거룩한 것으로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막의 모든 것, 작은 그릇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성품을,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보면서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의, 성품을 볼수 있었던 것이다. 성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내는 유일한 표현창구였던 것이다. 이것이 율법안에서의 성전의 역활이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우리가 성전이 되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생명과 예수님의 생명을 표현하셨던 십자가의 삶이 우리안에 머물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안에 성령으로 담겨있으니 우리가 성전이 된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세상가운데 거룩으로 나타나야 한다. 성도가 거룩하게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성품은 땅에 짓밟히게 된다.
오늘날 하나님의 거룩이 무너지는 것은 세상때문이 아니다. 세상은 원래 죽은자였고 하나님의 의와 생명이 없는 곳이었다. 세상에 세상되는것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교회가 세상처럼 되는것이다. 어둠이 어둠속에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속에서 그 빛을 잃어버린면 이것은 심각한 것이다. 우리의 행동 , 우리의 말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거룩을 담아내는 성전임을 인식하고 공유하는 것이 그래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오늘도 우리안에 예수의 피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우리의 하루의 삶이 그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는 몸의 삶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 그곳은 거룩한 곳이 되고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도 거룩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성전에 죄가 있으면 그 죄로 인하여 더욱 죄인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날마다 내 안에서 확인되어짐을 우리는 확인한다. 그래서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것이다.
그리고 그 죽어짐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과 삶이 드러나는 성전의 삶으로 날마다 세워져 가는것이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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