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에서 평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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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큰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지금의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죄악이 만연한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배웠고, 그것이 평안의 길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고,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정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길,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미 우리의 삶에 명확한 명제가 있습니다.
삶 = 예수 그리스도
사실 이 명제는 우리가 이 땅에 만들어져 태어나는 순간 정해졌습니다.
창세기 1:26–27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것이 사람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시는 성부 하나남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의 관계로 계시는 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게 완벽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첫 사람이 아담입니다.
그러나 그 완벽한 아담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벽히 만들어진 아담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 한번의 결정, 선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담이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어느 한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동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을 잊은 것이지요. 그러니 너무 어이없게 유혹에 넘어가고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2:17
아담에게는 그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오니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에게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상황도 만드셨습니다. 죄를 지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사람은 죽음을 걱정해야했고,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비참함이 생겼습니다. 죽기가 두려워 숨어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가죽옷을 입혀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통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우리를 포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냥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단순히 하나님이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서 죄에 대한 부분도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 죄악을 덮어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을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이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이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방향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구원에 임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까지도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자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의 창조 역사라고하면 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하나님의 역사가 됩니다. 죄를 존재하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며 허락하신 장치이자 하나님의 존재 이유입니다.
완전한 장치를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죄를 제공하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아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장치인 것입니다.(성도다운성도 p94)
놀랍게도 이 논제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야하는 목적을 만들어주셨는데, 창조 섭리 안에,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주셨다는 것은 그 형상대로 살아야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며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미 사람이 만들어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살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창조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
이미 창조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라서 신약시대에와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은 이미 창조의 순간부터 성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면서 사람의 삶의 목표를 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목표!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따로 영생을 위해 특별히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면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이미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우리를 창조하시며 그 창조 과정 안에서 하나님이 증명해주셨습니다.
(증명), 성부 성자 성령의 형상대로 살아가라,
그렇게 살아가면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은혜의 결과,
하나님이 증명하셔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 역사에 임하는 일반 은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의 목적(하나님이 보여주신 증명대로 살아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어진 상황에 살아가기에 급급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시는지 아시나요?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는 것이 바로 ‘증명’하는 일입니다.
첫 출산하여 이땅에 태어나면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 났음을 ‘증명’해야했고,
그 아이가 커서 학창 시절에는 성적으로 삶을 ‘증명’해야했고,
직장 다닐 때는 직장 안에서의 진급으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결혼 할때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으로 ‘증명’하려했고,
그들이 가정을 이룬 후 자녀들을 낳으면 그 자녀의 됨됨이를 통해 ‘증명’하려고 합니다.
‘증명’하는 일에 일생 일대에 계속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 본질을 잊어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증명’하려고 합니다.
증명하려고 하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고 불리는 다윗도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스스로가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진노한 때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이 아니라 군사의 수를 세서 막강 무력을 증명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려 했습니다.
사무엘하 24:1
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그러자 다윗을 따르던 요압이 말립니다.
24:3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 하게 해주실 텐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백성들의 인구를 계수하는 일) 기뻐하시나이까?”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압의 말이 들리지 않는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에 두려우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믿고 군사를 계수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후에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었음을 깨닫습니다.
바로 10절에서 자책하며 반성합니다.
10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다윗의 불손한 마음에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7만명이나 죽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삶의 증명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명’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목적과 방향대로,
하나님이 증명해주신 방법대로 살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삶 =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우리 삶의 명제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해내야 할꺼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증명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읽은 야고보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야고보서에서 유명한 구절이 있죠?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거이라는 이 말씀의 핵심은,
온전한 믿음이 있는 자에게 행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가 예화를 든 것이 아브라함 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릴 만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이 없이는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행위만 보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저런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느 무엇보다도 확고했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행할 수 밖에 없는 행동입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믿음을 따라 자동으로 행동으로 보여줬고,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의 상황에 자신이 어떻게 해보려고 자신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증명했습니다.
(삶 = 예수 그리스도)
결국 이삭은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의 증명을 드러낸 아브라함을
야고보는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표현을 쓰며,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며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하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하나님은 의롭다 여기셨고, 심지어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온전하면 온전한 신앙 생활을 당연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행함은 자동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삶 가운데 ‘증명’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계획과 일맥 상통하면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표, 우리의 삶의 목표와도 연결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보이시는 방법,
하나님이 ‘증명’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3장을 보면 야고보가 이렇게 말합니다.
3장 초반부에 말의 실수가 없는 자라야 온전한 사람인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임을 보여줍니다.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하지 않으면 한 입으로 찬송하고 한 입으로 저주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3장 9절에 보면,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절 후반에,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온전한 신앙 생활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온전한 신앙 생활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증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입으로 내 스스로 내 삶을 증명하는 일이 됩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본문을 지금까지 가져온 관점으로 살펴보면,
야고보서 3장 후반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래서 신앙 생활을 하겠다는 너희들이 도대체 무엇으로 증명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13절에서요.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증명하는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13절
“선행(하나님이 하시는 일)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온유함이 우리의 행함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온유함’은 히브리 사전으로 살펴보면 태도(Atitude)로 정의하고 있는데요.
1)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2) 타인 앞에 다투지 않고 3) 자기 의를 앞세우지 않는 태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행동, 조용한 감정적 태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함을 보일지니라’는 것은 결국 삶에서 하나님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4절을 보면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독한 시기, 시기와 다툼은 죄입니다. 설교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 또한 삶에 한 부분으로 제공하십니다.
이런 죄가 작용할 때 우리는 그 죄를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가 우리 안에 작용하게 되면 마치 내 스스로가 지혜있는 자로 드러내기 쉽습니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죄가 들어오면 거짓말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온전하면, 다시 말해 신앙 생활을 온전히 하게 되면 거짓말하기 어렵습니다.
13절에서 말한 온유함이 태도로 작용되기 때문입니다.
행동에서도 거짓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신앙 생활에서는 그렇습니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거짓된 행동, 죄는 정욕입니다. 귀신의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는
16절에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시기와 다툼이 있고, 거짓과 죄가 있고,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습니까?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온전한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본받은 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며,
하나님과 벗하며 살면서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며 구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 성결, 곧 거룩합니다.
두번째, 화평, 삼위 하나님의 관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들어온 것처럼 화평한 관계를 이루며 살게 될 것이며,
세번째, 관용, 어떤 상황에서도 너그러움으로 관용을 배풀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며,
네번째로, 양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고,
다섯번째, 긍휼,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상황에 마음의 공감을 갖고 보듬을수 있는 섬세함이 생기고,
여섯번재, 선한 열매, 곧 은혜의 열매를 맺게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땅을 살아가며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아갈 때 우리 인생에 편견과 거짓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다같이 읽기)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화평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관계 질서가 온전하게 되면서.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보여주시는 ‘증명’입니다.
//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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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이 증명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아가면,
하나님의 증명대로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그리고 선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결국 의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열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입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는 성도님들과 함께 보내는 오늘은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금요일입니다.
하나님이 증명하신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고난 주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내가 너희를 위한 구원을 위한 계획,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증명하였으니,
평안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증명하는 삶 가운데
우리의 평안이 있음을 기억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우리를 창조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신 하나님,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확정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된 삶 가운데 우리 스스로가 증명하려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 가운데, 우리의 삶이 살아가게 하소서
세상의 지혜 : 시기, 다툼
하나님의 지혜 : 온유
세상의 결과 : 정욕
하나님의 결과 : 열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