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왕을 맞이하라!

부활 주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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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어린 왕자가 어느 별에 도착했을 때, 한 여우를 만납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 해.”
어린 왕자는 여우와 조금씩 시간을 함께 보내며 관계를 맺어 가다가, 어느 날 정말로 여우가 말한 의미를 깨닫습니다.
여우는 다시 말합니다:
“너는 네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 왜냐하면 네가 그 장미에게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이제 장미꽃이 자기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다른 꽃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그 장미를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본론

I. 주님이 가까이 계셔도,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24:16)

📍 엠마오 마을의 위치와 상징성

본문에 등장하는 **엠μαοῦς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약 60스타디온(약 11km) 떨어진 곳이라 설명됩니다 (24:13).
정확한 지리적 위치는 고대 자료마다 다르지만, 누가복음의 내러티브 안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는 방향’**으로 상징적 기능을 합니다.
🧭 신학적 의미:
예루살렘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중심지 →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절망과 후퇴를 의미
이후 두 제자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회심과 신앙의 회복을 상징

👥 이름이 밝혀진 제자: 글로바

24:18에 등장하는 **“글로바”(Κλεόπας)**는 누가복음에만 등장하며, 정확한 인물 동일성은 논란이 있으나 전통적으로는 **요한복음 19:25의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연관되어 해석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열두 제자(사도)는 아니지만 부활 공동체에 속한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 적용적 포인트:
예수의 부활은 사도들만의 경험이 아님 → 모든 신자들의 삶에 침투하는 실제 사건임을 강조

ὁδός (길)

“그 날에 그들 중 두 사람이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는 길에 있었다” (24:13)
의미: 단순한 거리 정보가 아니라, 영적 여정의 시작을 상징
누가-사도행전의 일관된 주제: ‘길’은 삶의 여정, 믿음의 방향 전환, 회심의 상징
구조상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변화의 무대

ἐγένετο ἐν τῷ πορεύεσθαι (가는 도중에 일어났다) (24:15)

**‘가는 도중에’**라는 어구는 삶 속에서 벌어지는 우연한 만남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주권적 계시의 시점을 담음
여정 중 만남은 누가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며 (예: 삭개오, 여리고 맹인 등), 항상 삶을 전환시키는 계기로 작용

✝️ 1. 성자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주님의 인격적 동행과 계시

✅ 성품:

인격적, 친밀하신 분
실망한 자들을 책망하지 않고 함께 걷고, 말씀으로 해석해 주시는 선한 목자

✅ 사역:

고난을 통과한 후 영광을 입은 부활 주님(24:26)
말씀을 해석하시고(24:27), 떡을 떼며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24:30–31)

🎯 삶의 적용:

예수님은 오늘도 실망하고 낙심한 자들과 동행하신다.
말씀 속에서 나를 해석해 주시고, 내 상처와 실패를 부활의 관점으로 바꾸신다.
그분은 나를 몰라보는 나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알아볼 때까지 기다리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 FCF 진단:

우리는 때때로 실망과 자기 기대에 갇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함
지식은 있지만 믿음은 없음 (24:22–24, “여자들이 우리에게 알리긴 했으나…”)

📌 복음의 은혜:

주님은 침묵하지 않고, 먼저 다가오시며 질문하시는 분이시다

🎯 적용:

지금 내 삶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못 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보고 싶은 예수만 찾고 있는 건 아닐까?

II. 우리의 마음은 둔하고, 진리를 믿기 어려워한다

📖 “너희가 마음이 둔하여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믿지 아니하는도다” (24:25)

καρδία (마음)

24:25 “너희는 마음이 둔하여”
24:32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였느냐”
이 단어는 이야기 전반에 걸쳐 내적 반응의 변화를 나타냄
둔한 마음 → 말씀을 통해 뜨거워지는 마음
눈(외적 인식)과 마음(내적 반응)의 병행 구조

🗣️ 부활을 믿기 어려운 시대 분위기

유대인들은 부활을 종말론적으로는 기대했지만, 한 개인이 역사 속에서 부활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함
제자들이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생각했노라” (24:21)고 말하는 것은,
메시아 사상 = 정치적 해방자라는 생각이 강했음을 보여줌
📍 문화적 충격:
십자가 = 실패, 부끄러움
부활 = 오해와 혼란의 대상 → 주님께서 말씀으로 해석해 주셔야만 인식 가능

🏠 여행자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고대 유대 문화 (24:28–29)

유대 전통에서 나그네 대접은 매우 중요한 덕목
제자들이 예수를 붙들어 "우리와 함께 유하소서"라고 권한 행위는 극히 일상적인 환대처럼 보이지만,
그 환대 속에서 계시의 문이 열림
🙌 은혜의 패턴:
일상의 친절과 환대가 하나님의 계시를 경험하는 통로가 됨
이는 누가복음 전체의 주제이기도 함: “작은 자를 환대하는 자에게 임하시는 주님”

🔥 2. 성령 하나님: 눈을 열고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조명자

✅ 성품:

은밀히 역사하시되 강력하게 변화시키시는 분
눈을 열고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시는 내적 사역자

✅ 사역:

제자들의 눈을 열어 예수를 인식하게 하심 (24:31 – 수동태 강조)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 (24:32) → 성령의 조명과 내적 각성

🎯 삶의 적용: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은 성령의 역사다.
눈이 가려진 상태는 지식 부족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 없이는 절대 진리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을 연구할 때 늘 “성령님, 제 눈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한다.

🔍 FCF 진단:

타락한 인간은 성경 말씀의 메시지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
감정과 경험 중심으로 판단하고, 고난의 메시야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함

📌 복음의 은혜:

예수님은 성경 전체를 해석하시며,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게 하심

🎯 적용:

나는 말씀을 정말로 믿고 있는가, 아니면 듣기만 하고 있는가?
내가 거부하고 있던 진리는 무엇이었는가?

III. 예수님은 공동체 속 말씀과 떡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 “떡을 떼실 때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 (24:30–31)

διηνοίχθησαν οἱ ὀφθαλμοί (눈이 열려졌다) (24:31)

주제와 구조 모두의 중심
수동태 사용: 제자들이 스스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계시적 사건
창 3:7의 ‘눈이 열림’과 대조적 병치 가능 → 죄로 인한 눈의 열림 ↔ 은혜로 인한 눈의 열림
본문의 정점이자 전환점

ἐπέγνωσαν αὐτόν (그를 인식했다) (24:31)

‘보다’(βλέπω)보다 훨씬 깊은 단어 – 실제로 정체를 분별하고, 이해하며, 인식했다는 의미
전체 내러티브가 이 인식의 순간을 향해 흐르고 있음
인식 후 예수는 사라짐 →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님, 믿음으로 살아 있는 인식이 중요함

ἐλάλει αὐτοῖς ἐν τῇ ὁδῷ… διήνοιγεν ἡμῖν τὰς γραφάς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열어 주실 때) (24:32)

‘말씀하심’ + ‘성경을 열어 주심’: 부활 주님을 인식하게 하는 핵심 수단
‘성경을 풀다’(διηνοίγνυμι)는 단어가 눈이 열리다와 동일한 어근 → 성경이 열릴 때 눈이 열림 → 말씀과 계시의 연결

📖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대한 해석 (24:27)

유대 문화에서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율법(모세)과 예언서(선지자)에 깊이 기초함
예수께서 고난과 영광을 가진 메시아로서의 자기 해석을 직접 시도하신 장면
이는 초대교회의 해석 전통, 즉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케리그마(kerygma)**의 구조와 일치
📜 문화적 이해: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은 고난받는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았음 → 제자들의 ‘둔한 마음’과 슬픔은 이 맥락에서 이해 가능

ἐν τῇ κλάσει τοῦ ἄρτου (떡을 떼실 때) (24:35)

초대교회의 성찬 언어로 사용됨 (행 2:42 등)
말씀 → 떡 → 인식의 구조 안에서 떡을 떼는 순간 인식이 일어남
공동체적 차원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방식을 상징

🍞 떡을 떼는 장면의 문화적 배경 (24:30, 35)

**“떡을 떼다(κλάω τὸν ἄρτον)”**는 단지 식사 행위가 아니라, 초대교회 성찬의 언어로 발전함
유대식 식탁 문화에서 주인이 떡을 들고 축복한 후 떼어 나눔 → 예수께서 손님이 아니라 **‘주인의 권위’**를 드러내는 행위
🍷 신학적 함의:
주님은 식사 속에서 ‘호스트’로서 인식됨
이는 교회 공동체의 성찬(예배)의 중심 주제가 됨

👑 3. 성부 하나님: 구속의 계획을 성취하시며,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아버지

✅ 성품:

신실하신 계획자 – 예언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
말씀의 중심에 계신 계시자

✅ 사역: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모세와 선지자들)에 기록된 대로 성취된 것 (24:27)
하나님의 구속사는 계획된 사건이며, 우연이 아닌 섭리의 결과

🎯 삶의 적용:

하나님은 나의 고난조차도 계획하신 구속의 일부로 사용하실 수 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듯이, 하나님은 고통 너머의 영광을 계획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지금 내 인생의 혼란스러운 장면도 결국엔 하나님의 큰 이야기 속에 들어맞게 될 것이다.

🔍 FCF 진단:

우리는 개인주의에 빠져 **공동체와 성례(말씀+성찬)**를 소홀히 여김
외적인 기적만을 기대하고, 말씀과 교제 속 계시는 무시

📌 복음의 은혜:

주님은 말씀과 떡을 통해 믿는 자 안에 살아 계심을 드러내신다
공동체적 예배와 성찬이 주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자리이다

🎯 적용:

나는 신앙생활을 혼자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예배와 공동체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IV. 예수를 만난 자는 돌아가 증언하는 삶을 산다

📖 “그들이 곧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24:33)

🔍 FCF 진단:

많은 이들이 예수를 알아보았으나 여전히 침묵하거나,
믿음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로 이어지지 않음

📌 복음의 은혜:

예수님을 인식한 자는 이전의 길을 되돌아가 공동체와 복음을 나눈다
부활은 개인 체험을 넘어 공동체 안에서 확증되고 전파된다

🎯 적용:

나는 예수를 만났다면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떠난 제자처럼 낙심의 길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결론

오늘 본문은 점진적 계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가려져 있다가 나중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바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문학적 반전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물리적인 방향의 변화를 통해 영적 회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핵심적인 요소로 말씀과 떡이 대칭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계시가 공동체적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오늘 본문은 계시의 절정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결국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님은 육안으로가 아니라, 말씀과 떡을 통해 계시되며, 인식된 부활은 삶의 방향을 바꿈을 메시지로 줍니다.

📜 교리적 진리 (Doctrinal Truth)

📌 핵심 교리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실제성과 존재 방식

예수는 육체적으로 부활하셨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셨지만,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영광스러운 몸을 지니셨습니다 (알아보지 못함, 사라지심 등).
이로써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모델이 제시됩니다. (고전 15장과 연결)

성경의 중심은 십자가와 부활

예수께서 모세와 선지자를 들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 기록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24:27).
이는 누가가 보여주는 성경 해석의 기초 교리입니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 중심, 그 중에서도 고난과 영광(부활) 중심.

말씀과 성찬을 통한 주님의 임재

초대교회 교리 중 가장 중요한 진리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떡을 통해 임재하신다.”
누가가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은 더 이상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믿는 자들 안에 살아 계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 본문이 말하는 보편적 진리 (Eternal Truth)

주님은 우리 삶의 여정 속에서도 말씀을 통해 동행하신다. 우리는 떡을 떼는 공동체 안에서 그분을 인식하게 된다.

이 진리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성도들에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실망하거나 의심 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며,
말씀을 풀어주시고,
공동체 속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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