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5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Notes
Transcript
십자가에 죽으심
십자가에 죽으심
본문: 요 19장 31절 -42절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력한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얼마나 약하신지 양쪽의 강도보다 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이 무력한 죽음을 죽으시면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성경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죽음까지도 그 성경을 응하게 하시며 죽으신 것입니다.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아침 9시에 달리셔서 오전 12시부터 3시까지 흑암속에서 고통당하시다가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6시부터 안식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지 아니합니다. 아니 꼭 안식일이 아니어도 십자가에 죽은 자는 다음날까지 시신을 두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는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은 자의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여러분 구약성경에 실지로 이렇게 저주받아 죽은자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꿈을 해몽해준 빵굽는자의 죽음이 그러합니다. 왕의 저주를 받고 나무에 매달려 죽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다섯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가나안땅을 더럽힌 죄를 물어 나무에 매달아 죽게 합니다.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선 압살롬이 도망가다가 머리가 나무에 걸려 매달려 있는 것을 요압이 보고 그대로 창으로 찔려 죽게 합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에스더와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해 하만이 계략을 꾸미고 결국 모르드개를 죽일려고 교수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결국 그 교수대에 모르드개가 아닌 하만이 왕의 저주를 받고 매달려 죽게 됩니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이것이 나무에 매달려 죽은 자에 대한 성경의 기록입니다. 하나같이 저주를 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바로 이러한 나무에 주님이 달리신 것입니다.이러한 죽음의 공통점은 다음날까지 시신을 그대로 두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려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그 땅이 더렵혀지니까요.
더구나 안식일날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는 것은 유대인들로서는 있을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십자가의 달린 죄수들을 처리하려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를 받고 군사들을 보내니 아직도 양쪽의 강도들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다리를 부러뜨려 (다리를 부러뜨리면 공중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몸을 지탱할 수가 없어서 호흡이 불가능해져 죽는 것입니다.) 억지로 죽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니 예수님은 이미 죽으신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뼈를 꺽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게 됩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그 뼈가 하나도 꺽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였다 말씀합니다.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이 성경이란 유월절 어린양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유월절 어린양임을 분명하게 드러내시고 확증하는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물과 피가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에게서 물과 피가 나온 것을 두고 성경은 이렇게 또 증언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가 믿음을 통해 믿는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실체란 무엇입니까? 바로 물과 피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말씀하는 물과 피란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신 주님의 죽으심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 그 자체를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물과 피로 임하신 분으로 단정지어 선포합니다. 왜그렇습니까? 이 십자가가 예수님의 모든 기적과 이적과 삶의 결정체이고 하나님의 뜻의 결정체이고 성경의 결정체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을 자랑할것이 없다 한것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세상을 이기는 자냐고 사도요한은 반문합니다. 여러분 이 능력과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받은줄 믿습니다. 우리도 세상 근심으로 근심합니다. 그러나 근심할 지언정 세상에 우리의 삶의 주권을 빼앗기지는 않습니다.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때론 넘어지고 좌절할지언정 우리는 또다시 이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고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에 붙들린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아리마데 요셉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봅니다. 38-39절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예수님을 장사지낸 사람이 두 사람이 나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과 니고데모입니다. 우선 요셉을 봅시다. 요셉은 방금 마태복음에서 부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보면 공의회 의원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공의회에서 예수를 죽이자는 결의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은휘하였다고 합니다. 속으로는 인정하지만 겉으로는 숨긴 것입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우리가 요한복음 3장에서 본 것처럼 밤중에 예수님께 찾아온 유대 랍비입니다. 왜 밤중에 찾아 왔을까요? 다른 사람들의 이목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남의 눈치를 살피던 사람들이 어떻게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지금 분위기는 어떤 분위기입니까? 예수를 죽었으니 그를 따르는 자도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다 도망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살아 있을 동안에는 드러내어 놓고 나서지 못하더니 어떻게 죽고 나자 따라 나서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는 그 이루심의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서 세상의 복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의 힘과 의지를 가지고 따라 갈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십자가에 정과 욕심을 세상을 못 박자, 라고 하는 길을 스스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란 단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택한 백성을 끌어당기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기적이라도 일어날까 하고서 따라나선 자들이 예수님의 물과 피를 흘리심을 보고서는 이제 죽었다, 끝났다, 하면서 돌아가고 있는 그 자리에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같은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요 십자가의 기적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물과 피를 흘리심이 우리에게 효험이 되어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죽으심을 이사야 53장에서 봅니다. 7-9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지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께서 악인과 함께 죽으셨지만 그러나 죽고 나서는 부자와 함께 되셨다는 것까지도 이루심을 통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그 대신 고난당하심을 믿는 자는 자신의 고난과 고통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