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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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 말하는 이들

본문: 요 19:14-22
요한복음 19:14–22 NKRV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일년중에 오늘처럼 우리의 마음이 무거운 날도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일년중에  또 오늘만큼 우리자신의 죄에 대하여 이토록 실랄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날도 또 있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날보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날보다도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시간 본문의 말씀에 준해서 가이사외에는 왕이 없다 말하는 이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하겠습니다.
1. 예수님을 십자가로 끌고 가는 유대인들
우리는 보통 로마병정에 의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 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좀 다른 관점에서 이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십시요.
요한복음 19:16 NKRV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가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락하고 그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넘겨버렸다 말씀합니다.
본문에 나온 그들이 누구입니까?
15절에 소리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9:15 NKRV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락한 그들이 누구인지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들입니다.
17절에 보면 그 다음장면이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19:17 NKRV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예수님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을 째찍질하고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게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이와 달리 대제사장들이 그렇게 하였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 대치되지 않습니다. 둘다 그렇게 한것입니다. 로마군인들을 군인들대로 대제사장들은 대제사장들대로 말입니다. 다만 다른 복음서는 눈에 보이는 부분에 집중하여 묘사한 반면, 요한복음은 좀더 영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서술한 것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유대인들은 로마권력에 호소했을뿐이고 예수님을 직접 십자가에 죽게 한 것은 로마권력이라고 할수 있지만 영적으로는 오히려 반대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빌라도와 로마권력은 곁다리 역할을 한 것일뿐이고 실지로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 유대종교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지금 그것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일어납니다. 특별히 본문의 말씀은 더욱 그러하다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모욕을 당하시고 심지어는 예수님이 죄인처럼 비춰지는 상황이 오늘날 믿지 않는자들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보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들로 인하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신뢰도 자료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으시게 한 장본인이 로마군인이 아닌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역설입니다.
2.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 말하는 이스라엘
요한복음 19:15 NKRV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만일 평상시 길거리에서 만일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쳤다면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하나님 모독죄로 돌로 쳐 죽이려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그 유대교를 대표하는 대제사장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무엇이라 외치고 있습니까? 가이사 외에는 자신들에게 왕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하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그들은 이토록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 하는 것입니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들의 권한, 명예, 부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들의 권한 명예 부를 지켜내기 위해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마저 부인하며 가이사를 자신들의 왕이라고 목청껏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데는 당시정치적 배경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로마시대에 모든 정치인들에게는 후견인들이 있었습니다. 총독 빌라도에게도 후견인이 있었습니다. 세자누스라는 사람인데요. 로마황제의 근위대장이었습니다. 권력의 최핵심부였죠. 이 세자누스의 정치적 후광으로 인해 빌라도는 총독으로 유대에 올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얼마전에 이 세자누스가 반역죄로 인해 처형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빌라도 역시 불안을 느낄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만일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는 이 유대땅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더욱 빌라도의 정치적 위치가 위험해질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빌라도의 약점을 잘알고 있었던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이사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12 NKRV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예수가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이 상황에서 만일 이 일을 그냥 덮으려고 하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한말은 아주 정확하게 빌라도의 약점을 잡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자신들의 요구의 프레임을 예수가 유대의 왕이라고 한 가이사의 반역자라고 하는것으로 가져가면서 자신들은 변함없는 가이사의 충신들이고 그러기에 자신들이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와중에 그들은 하나님마저 버리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가이사가 자신들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빌라도의 관정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부정한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더렵히지 않기 위해서 이방인의 집도 들어가지 않았던 그들이 지금은 하나님이 아닌 가이사를 자신들의 유일한 왕으로 목청껏 외치며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도데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3. 죄인들의 왕이신 예수님
19절, 20절입니다. 요 19:19-20
요한복음 19:19–20 NKRV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비록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예수를 십자가 사형에 내어주었지만 빌라도는 무엇인가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가 말씀하신대로 유대의 왕이라는 사실을 그는 분명하게 알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 쓴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가 ,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가 유대인의 왕이시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좌우편에 강도둘과 함께 십자가에 오르시게 한 것은 예수님을 정말로 극악무도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몰아가기 위한 유대인들의 술수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죄인중의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죄인들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교우님들 집을 을 들어갈려면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현관문으로 들어오시는 것이고 하나는 가라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라지 문은 보통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현관문으로만 저희집으로 들어갈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의 집 창문을 깨고 들어올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여 호된 대가를 치루게 할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들어오면 도둑이고 강도이기 때문입니다. 집 주인을 만나시려면 문으로 들어오셔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시려거든 여러분 자신의 죄를 위해 오신 예수님을 보실수 있으셔야 합니다.
전도지인 사영리에 인간은 죄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으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도 없습니다.”
이때 나타나는 죄의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적극적일때는 하나님께 반항하고 소극적일때는 하나님께 무관심합니다.
절도죄는 내것이 아닌데 다른사람의 것을 내것처럼 가져다 사용하거나 매매할때 성립되는 죄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시작할수도 없고 마칠수도 없습니다.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난것을 스스로 결정할수 없습니다. 킹스턴은 백인인구비율이 90% 정도 이르는 백인도시입니다. 그래서 흑인을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위니펙에 오니 진짜 버라이트 합니다. 정말 세상에 많은 종족과 민족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구도 자기 얼굴과 자기 얼굴색깔과 자신의 성별, 그리고 라스트네임을 결정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인간은 던져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모두는 던져진 존재입니다. 이 말은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만든 이가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것이 아닌데 자기것이라고 우기면서 자신을 만드시는 일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예레미야 2:19 NKRV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 볼수 있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오르신 분이 나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수 있게 될것입니다.
두가지중에 하나만 없어도 사실은 가짜일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죄를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하거나, 또는 나의 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는데 여전히 나는 나의 죄가 좋고 세상이 나의 왕이라고 하는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죄를 보고 예수님을 만나면 그 예수님은 나의 왕이요 구주가 되시기 마련입니다.
죄인임에 대한 인식과 동의 그리고 그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이 나의 왕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복음의 실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들으면 두가지 반응이 항상 나타납니다.
첫번째는 그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통해 예수님을 왕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6–37 NKRV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두번째는 자신의 죄를 들추어내는 복음을 전하는 이를 죽이거나 그 복음을 완강히 거절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54 NKRV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사도행전 7:57 NKRV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당시 십자가에 처형되는 죄수들은 십자가를 지고 법정을 나서는 순간부터 자신의 죄목이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십자가를 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실은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붙이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목에 그 죄패를 붙이고 가셨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십시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목에거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하나님의 아들이 오르고 계시는데,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 자신을 구원해보라고 조롱하며 희롱하고 침뱉고 때릴뿐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예수님이 자신의 그 죄를 대신하여 지고 가심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사도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졌고 그 복음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의 죄와 예수님의 왕되심을 깨닫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인 사람들도 있었고 말입니다.
오늘밤에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바라보고 그 죄의 문을 통해 예수님을 본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우리의 심령에 더 이상 정죄는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죄책감은 없을 것입니다. 왜 입니까?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대가를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평화가 그 은혜가 이 아침에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나의 죄를 보고 주님의 왕되심을 보는 저와 여러분에게 가득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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