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방문 2025 룻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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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h 1:6 NKRV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서론: 우리 안의 '돌봄' 갈망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우리 안에는 누구나 '돌봄'을 받고 싶은 깊은 갈망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안정감을 느끼듯, 우리는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내 편이 되어주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기를 바랍니다.
혹시 '돌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어린 시절,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호호 불어주며 약을 발라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혹은 시험을 망치고 풀 죽어 있을 때, 말없이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격려해주던 친구의 따뜻한 눈빛을 기억할 수도 있겠죠.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지쳐 돌아온 나를 위해, 식탁 위에 덮어둔 따뜻한 밥 한 공기와 쪽지. 몸살감기에 끙끙 앓아누웠을 때, 이마의 물수건을 갈아주며 밤새 간호해주던 가족의 사랑.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소중하고 감사한 '돌봄'의 모습들입니다.
이런 돌봄은 우리의 메마른 마음에 단비가 되고, 지친 영혼에 힘을 줍니다. '아, 나 혼자가 아니구나. 누군가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은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우리는 이 돌봄을 통해 관계의 온기를 느끼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갈 용기를 얻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은 없으신가요? 분명 주변에 사람들이 있고, 나름대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외롭고 공허하다고 느낄 때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돌아와 홀로 남겨졌을 때 밀려오는 깊은 고독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지만, 아무도 나의 수고와 눈물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은 서러움.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고 오해받을 때의 아픔.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돌봄을 갈망하지만, 인간적인 돌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깊은 허기를 느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바로 이 '돌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간적인 차원의 돌봄을 훨씬 뛰어넘는, 아주 특별하고 놀라운 돌봄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돌봄'입니다.

나오미, 절망의 끝에서 들려온 소식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룻기 1장을 보면, 나오미라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이름 뜻은 '나의 기쁨', '나의 즐거움'이지만, 그녀의 삶은 이름과는 정반대로 흘러갔습니다. 고향 베들레헴 유다에 흉년이 들자,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났고,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에게 장가보냈지만, 그 두 아들마저 10년 만에 죽고 맙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이방 땅에서 남편도 잃고, 의지했던 두 아들마저 모두 잃은 나오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재산도,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뿐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십여 년, 풍요를 찾아 떠났던 길 위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빈손이 되었습니다. 아마 나오미는 하나님을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토록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하셨습니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기쁨'이라는 뜻의 나오미 대신, '괴로움'이라는 뜻의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깊은 슬픔과 고통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룻 1:20)
바로 그때, 그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나오미는 한 가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룻 1:6)
고향 베들레헴에 기근이 그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는 소식! 이 소식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던 나오미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주저앉아 있던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갈 용기를 주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돌보시다' - 익숙한 단어 속 놀라운 비밀, '파카드'(פָּקַד)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돌보시사'라는 단어입니다. 앞서 이야기 나눈 것처럼, 우리에게 참 익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이 원래 쓰인 언어인 히브리어로 이 단어를 보면, 그 안에 훨씬 더 깊고 풍성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이 단어를 **'파카드'(פָּקַד, paqad)**라고 합니다. 이 '파카드'라는 동사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무려 300번 이상 사용될 정도로 매우 중요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정말 다양한 의미로 번역됩니다. 단순히 '돌보다'라는 뜻 외에도 '방문하다', '계수하다', '점검하다', '조사하다', '임명하다', '맡기다', '기억하다', '찾다', 심지어는 '벌하다', '심판하다'라는 의미로까지 사용됩니다.
마치 다이아몬드가 여러 각도에서 빛을 반사하며 다채로운 빛깔을 내는 것처럼, 이 '파카드'라는 단어 하나에 하나님의 성품과 행동의 다양한 측면들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파카드'라는 창문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이 얼마나 깊고, 넓고, 세밀하며, 능력 있는 것인지 함께 발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파카드 ①: 하나님은 '방문'하십니다 (He Visits)

'파카드'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바로 **'방문하다'(Visit)**입니다. 단순히 안부를 묻거나 얼굴을 보러 가는 차원의 방문이 아닙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방문'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임하는 것,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저 멀리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마치 우리가 TV 드라마를 보듯 팔짱을 끼고 우리의 인생을 관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의 현장 속으로, 우리가 울고 웃는 바로 그 자리로, 직접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파카드'의 첫 번째 의미, '방문하시는 돌봄'입니다.
창세기 21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후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바로 그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파카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여기서 '돌보셨다'는 '파카드'는 하나님께서 사라의 불가능한 상황 속으로 직접 '방문'하셔서 약속을 성취하시고 생명을 창조하시는 놀라운 개입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 아래서 고통받으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출 3:7-8). 그리고 1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파카드)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여기서 '파카드'는 고통받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고통의 현장 속으로 직접 '방문'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이 '방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예배하는 이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홀로 눈물 흘리는 외로운 밤에도,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져 좌절하는 순간에도, 우리가 기쁨으로 환호하는 축제의 자리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방문'**하십니다.
혹시 지금 깊은 외로움 속에 계신 분이 있습니까?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느끼며 홀로 힘겨워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파카드'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삶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돕겠다."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야말로 하나님의 '파카드'의 절정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방문'하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방문', '파카드'입니다.

파카드 ②: 하나님은 '세밀하게' 살피십니다 (He Attends Closely)

하나님의 '파카드'는 단순히 우리를 찾아오시는 '방문'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방문은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인 살핌'**을 동반합니다. '파카드'에는 '계수하다(number)', '점검하다(inspect)', '조사하다(examine)', '주의를 기울이다(attend to)'라는 의미가 함께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군대 지휘관이 병사들의 수와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민수기 1:3), 양을 치는 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듯(요한복음 10:3),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너무나도 정확하고 세밀하게 알고 계십니다.
시편 139편은 이러한 하나님의 세밀한 아심과 살피심을 너무나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חקר, khaqar - 조사하다, 탐색하다. 파카드와 유사한 맥락)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זרה, zarah - 키질하다, 흩뿌리다. 즉, 속속들이 아심)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 139:1-4)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 앉고 언제 일어나는지 아십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밤에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는 모습까지도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하기 전에 이미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계십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10장 30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위로가 됩니까! 세상은 때로 우리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합니다. 우리의 진심을 오해하기도 하고,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너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고, 이 넓은 세상에 나 하나쯤 없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외로움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아실 정도로 우리를 세밀하게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숨겨진 눈물, 남몰래 하는 기도, 마음 깊은 곳의 상처와 아픔까지도 다 주목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강점뿐 아니라 약점까지도, 우리의 성공뿐 아니라 실패까지도 다 아시고 품어주십니다.
혹시 지금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내 속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어'라고 외로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파카드'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가장 깊은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시며, 당신의 모든 상황을 세밀하게 살피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는 결코 익명의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눈동자처럼 아끼시는,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파카드'는 우리의 상태를 점검하고 조사하시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세밀한 아심은 반드시 돌봄의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에게 학대받고 광야로 도망친 하갈이 등장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광야에서 절망하여 울부짖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녀에게 나타나 말씀합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 16:8-11). 하갈은 자신을 찾아와 고통을 들으시고 미래를 약속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살피시는(רָאָה, ra'ah - 보다, 감찰하다. 파카드와 연결됨)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창 16:13). 하나님은 버려진 여종 하갈의 고통까지도 세밀하게 살피시고 찾아오셔서 돌보시는 '파카드'의 하나님이십니다.

파카드 ③: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He Remembers)

'파카드'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기억하다'(Remember), '마음에 두다'(Be mindful of)**입니다. 여기서 '기억하다'는 단순히 과거의 어떤 사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을 넘어섭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기억'은 마음에 새기고, 그 기억에 기초하여 행동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매우 적극적인 개념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어버리며 살아갑니까? 중요한 약속을 잊기도 하고, 감사했던 일을 금세 잊기도 합니다.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깜빡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조차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당신의 약속을,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파카드'의 세 번째 의미, '기억하시는 돌봄'입니다.
창세기 8장 1절을 보면, 노아 홍수 이후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זָכַר, zakar - 기억하다. 파카드와 밀접한 관련)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여기서 '기억하사'는 하나님께서 방주 안의 노아와 생명들을 잊지 않고 마음에 두셨으며, 그 기억에 따라 구원의 행동(물을 줄어들게 하심)을 시작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2장 24-25절에서도, 애굽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zakar)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파카드)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יָדַע, yada' - 알다, 주목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을 뿐만 아니라, 과거 조상들과 맺으셨던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에 따라 그들을 '파카드'(돌보시고, 방문하시고, 주목하셨다)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소망을 주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에도,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지고 죄를 지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계획을,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을 단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 같아'라고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고, 고난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신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분이 계십니까? 이사야 49장 15-16절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어미가 자기 자식을 잊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당신의 얼굴을, 당신의 삶을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두고 영원히 기억하십니다.
룻기 1장 6절에서 하나님께서 베들레헴 백성을 '파카드' 하셨다는 소식은, 바로 이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기근이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백성들은 어쩌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시고, 마침내 긍휼을 베푸사 양식을 주심으로 당신의 신실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파카드)은 우리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의 증표이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파카드 ④: 하나님은 '행동'하십니다! (He Acts)

지금까지 살펴본 '파카드'의 의미들 – 방문하시고, 세밀하게 살피시며, 기억하시는 것 –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지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행동'(Action)입니다! 하나님의 '파카드'는 결코 생각이나 감정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반드시 구체적이고 능력 있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파카드'의 네 번째 핵심 의미입니다.
다시 한번 룻기 1장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파카드)"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하나님의 '파카드'는 굶주린 백성들에게 실제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을 살리는 능력 있는 개입이었습니다.
성경 전체는 바로 이 '행동하시는 하나님'(파카드)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홍해 앞에서 절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행동 (출 14장)
광야에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이신 하나님의 행동 (출 16장)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행동 (수 6장)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지키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행동 (단 6장)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를 자유케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많은 기적들 (복음서)
성령 강림을 통해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게 하신 하나님의 행동 (사도행전)
이 모든 것이 바로 '파카드', 즉 당신의 백성을 방문하시고, 살피시고, 기억하사, 마침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행동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결코 무력하거나 방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행동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시간표에 따라 일하시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혹시 지금 문제 앞에서 낙심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더디다고 느껴져 지쳐 있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파카드'의 하나님,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당신을 위해 행동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동은 때로는 폭풍을 잠잠케 하는 극적인 기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잔잔한 물결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역사하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사람을 통해 위로의 말을 듣게 하시거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만나게 하시거나, 말씀을 읽다가 깨달음을 얻고 나아갈 길을 발견하게 하시는 등, 하나님의 '파카드'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하나님의 손길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결론: '파카드 돌봄'을 경험하고 흘려보내는 삶

오늘 우리는 '돌보다'라는 익숙한 단어 속에 숨겨진 히브리어 '파카드'의 풍부한 의미들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돌봄, 즉 '파카드'는 단순히 우리를 지켜보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의 현장 속으로 '방문'하시는 임재이며,
우리의 가장 깊은 필요까지 '세밀하게 살피시는' 관심이고,
우리를 향한 약속과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시는' 신실함이며,
마침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파카드 돌봄'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적인 사랑입니까!
모든 것을 잃고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나오미에게, 이 '파카드 돌봄'의 소식은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마라'(괴로움)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여전히 슬픔과 상실의 아픔을 안고 있었지만, 자신과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마침내 찾아오셔서 돌보시는(파카드) 하나님에 대한 희미한 희망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발걸음은 결국 룻이라는 이방 여인을 통해 다윗 왕가의 계보를 잇고, 더 나아가 온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놀라운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파카드 돌봄'은 단지 나오미나 성경 속 인물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며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파카드'하고 계십니다.
첫째,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파카드 돌봄'을 발견하고 감사합시다.
혹시 너무 바쁘고 분주해서, 혹은 너무 익숙해져서 하나님의 세미한 손길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때로는 평범해 보이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를 찾아오시고(방문),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세밀한 살핌), 약속을 이루시고(기억), 능력으로 역사하시는(행동) 하나님의 '파카드'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불평과 원망 대신 기쁨과 찬양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둘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파카드 돌봄'을 신뢰합시다.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침묵이 길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거나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파카드'하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크고 놀라운 계획 속에서, 가장 완벽한 때를 기다리고 계실 뿐입니다. 욥과 같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신뢰하며, 다윗과 같이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을 가집시다. 우리의 신뢰가 깊어질 때, 우리는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받은 '파카드 사랑'을 세상 속으로 흘려보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파카드'로 돌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향해, 그리고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해 '파카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삶입니다.
외롭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십시오 (방문).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필요를 세심하게 살피십시오 (점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작은 필요들을 채워주고, 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해주십시오.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관심을 지속하십시오 (기억). 한번 돕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 해주십시오.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행동).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나누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정의와 공의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향해 '파카드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직장이,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따뜻한 돌봄이 흘러넘치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각 사람을 '파카드'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세심한 방문과 살피심, 신실한 기억하심과 능력 있는 행동하심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놀라운 '파카드 돌봄'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시고, 또한 그 사랑을 힘써 나누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룻기 말씀을 통해 '파카드'라는 단어 속에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돌보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친히 우리의 삶에 방문하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실 정도로 세밀하게 살피시며, 우리를 향한 약속과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시고, 마침내 능력의 손길로 우리를 위해 행동하시는 '파카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때로 우리가 삶의 무게에 눌려 하나님의 돌보심을 잊고 살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저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일상 속에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수많은 '파카드'들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파카드 돌봄'을 굳게 신뢰하게 하옵소서.
더 나아가, 우리가 받은 그 놀라운 '파카드 사랑'을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세상 속으로 힘써 흘려보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서로를 찾아가 위로하고, 필요를 세심하게 살피며, 기도로 기억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따뜻한 돌보심이 온 세상에 증거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영원히 '파카드'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단찬양 - <주 안에 우린 하나(기대)> A
말씀노트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방문하심'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이 찾아오셨다고 느꼈습니까?
SNS와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파카드 돌'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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