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third day 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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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중고등부>
누가복음 24:1-12
“On the Third Day Rise”
2025. 4. 20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도 이 아침에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내용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난 주가 고난주간이었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고나서 5일이 지난 뒤에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목박혀 죽으셨어요. 예수님이 죽으신 날이 금요일이거든요. 금요일 새벽 4시쯤에 잡히신 다음에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심문을 받으셨고,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요. 그리고 6시간 뒤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시간표로 봐 볼까요? 새벽 4시에 잡히셨고, 그 뒤에 여기저기 끌려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시다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서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어요. 그리고 십자가에 6시간 정도 매달려 계시다가 15시, 오후 3시에 죽으셨습니다.
이때 당시에 십자가에서 6시간만에 죽는다는 것은 굉장히 빨리 죽는 거예요. 보통 하루에서 이틀 정도 시간이 지나야 죽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6시간만에 죽으셨어요. 그래서 마가복음 15장 44절을 보면, 빌라도가 이렇게 생각하는 장면이 나와요.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빌라도가 이상히 여겼어요. 예수가 벌써 죽었다고? 어떻게 벌써 죽지? 이게 이상한 거죠. 그만큼 예수님이 빨리 죽으신 겁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이 이렇게 빨리 죽으신 걸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너무나 심하게 고문을 당해서 몸이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몸이 거의 죽을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6시간 만에, 그토록 빨리 죽으신 겁니다.
여러분, 혹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 보셨나 모르겠어요. 이 영화가 제가 고1때 나왔거든요. 그런데 너무 끔찍해. 15세 관람가 영화인데, 19세 이상으로 바꿔야 된다고 할 정도로, 예수님이 채찍에 맞는 장면이 너무 끔찍해요. 앞에 그림을 보면, 예수님 시대에 사용되던 채찍이 있는데요. 가죽끈으로 길게 채찍이 이어지는데, 채찍 끝에는 뾰족한 뼛조각이나 쇳조각, 쇠구슬 같은 것들을 달아놔요. 그래서 채찍에 맞으면 살이 뜯어져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 보면, 쇳조각이 예수님 몸에 착 박혔다가 팍 뽑히는 장면이 있거든요. 이 채찍이 그런 채찍이에요.
그런데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것도 굉장히 순화시킨 장면이라는 거예요. 실제는 이것보다 더 끔찍했다는 거죠. 3세기의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채찍질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그리고 내장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라고 그래요.
예수님도 그런 모습이었을 거예요. 온몸의 피부가 다 뜯겨지고, 근육과 핏줄이 드러났을 거예요. 사람의 형체가 아니죠. 눈 뜨고 볼 수 없는, 그런 상태다 보니까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도저히 지고 갈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다른 사람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어요. 마가복음 15장 21절에 보니까,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이 뭔 일인가 하고 보러 왔다가 지나가려고 하는데, 병사들이 갑자기 시몬을 붙잡았어요. 예수님이 도저히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는 상태라서 아무나 골라 잡았는데, 시몬이 걸린 거예요. 아마 시몬이 덩치도 좋고 십자가를 잘 지고 가게 생겼었나 보죠? 시몬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억지로 십자가를 졌어요. 이거 한다고 돈 주는 것도 아니고, 쌩고생만 하는 거예요. 시몬 입장에서는 재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나중에 시몬이 이 사건을 계속 기억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시몬의 아들도 나중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의 리더가 돼요.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이 일이 아마도 시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되었을 거예요.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져드렸다. 나같은 죄인이 예수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드렸다.” 평생의 간증거리가 되고, 또 그의 자녀들도 자기 아버지 얘기를 자랑했겠죠.
이처럼 억지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당장은 힘들고 재수가 없는 일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축복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어요. 그만큼 예수님이 몸이 말이 아니에요. 그리고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 도착해서, 거기서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로 매달리셨어요. 그리고 6시간 만에, 오후 3시에 죽으셨습니다.
죽으신 뒤에는 그 시체가 무덤 속으로 옮겨졌어요. 이스라엘의 무덤은 우리나라 무덤하고 달라요. 우리나라는 땅속에 묻는데, 이스라엘은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넣어요. 안을 넓게 파서 안에 시신을 넣고, 입구를 돌로 막는 거예요. 사진에 보면, 동그란 돌문이 있죠. 이걸 굴려서 입구를 막는 거예요.
마태복음을 보면, 혹시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갈까봐 대제사장들이 병사들을 시켜서 무덤을 지키게 합니다. 그런데 지키고 있어봤자죠. 예수님이 죽으시고 나서 3일째 되는 날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요. 3일째 되는 날, 바로 오늘이죠. 일요일.
예수님이 금요일 오후에 죽으셨거든요. 그리고 금, 토, 일. 일요일이 3일째 되는 날인데, 바로 이 날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겁니다. On the Third Day Rise. 3일째 되는 날, 일요일 새벽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어요. 그리고 돌을 옆으로 굴렸습니다. 이 내용이 마태복음 28장 2절 3절 내용이에요.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아멘.
병사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지진이 나고 천사가 나타나서 돌을 옆으로 굴리고 하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벌벌 떨면서 꼼짝을 못했어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바짝 얼어가지고 움직이지를 못하는 거죠.
이 뒤에 병사들은 다 도망쳐서 대제사장에게 가서 이 일에 대해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말을 제대로 했겠어요? 벌벌 떨면서 제대로 말도 못했겠죠. “대, 대, 제사장님! 지, 지진! 천사! 무, 무덤! 우어어어!”
대제사장이 처음에는 뭐야 이 미친놈은, 이랬겠지.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까 내용이 심각한 거죠. 그래서 대제사장이 병사들에게 돈을 주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라고 시켰어요. 왜냐면 이 사실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면 난리가 날 테니까, 거짓말을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이 때, 무덤에 여자들이 찾아와요. 병사들이 대제사장을 만나고 있는 바로 이 때,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왔어요. 이때 이 여자들이 누구였는지, 성경마다 조금씩 달라요. 마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왔다고 하고, 마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왔다고 하고, 누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라아와 또 여러 여자들이 왔다고 하고,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 혼자 왔다고 해요.
이처럼 기록들이 다르긴 한데, 중요한 건 아니에요. 뭐 누가 온 거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왔을 때,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거예요. 무덤 문이 열려 있고, 안에 들어가서 봤더니 비어 있어요. 예수님의 시체가 어디 가버렸어. 자, 오늘 본문 1절 2절 3절을 봐 볼까요?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아멘.
안식 후 첫날 새벽, 안식일이 토요일이죠. 토요일 다음날 새벽, 그러니까 일요일 새벽이죠. 일요일 새벽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에 왔어요. 이스라엘에서는 시체가 부패하는 것을 막고,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 시체에 향품을 바르거든요. 그래서 여자들이 향품을 가져 온 거죠.
그런데 예수님의 시체가 없네? 뭐야, 누가 갖고 간 거야? 황당하죠.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근심하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천사가 나타났어요. 이때 천사에 대한 내용도 복음서마다 달라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천사가 1명 나타나고,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천사가 2명 나타나요.
그런데 이것 역시도 중요하지 않죠. 천사가 1명 나타나든 2명 나타나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천사가 나타났다는 자체가 중요하지. 어쨌거나 천사가 나타났어. 그리고 여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오늘 본문 5절 6절에 보니까,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아멘.
예수님이 이미 살아나셨는데, 왜 무덤에 와서 찾느냐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미 살아나셨다. 그리고 예전에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봐라. 이러는 거예요. 갈릴리에 계실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밑에 7절에 있죠?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나서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죠. 제삼일에, On the Third Day. 다시 살아나리라, Rise. On the Third Day Rise. 이 말씀을 갈릴리에 계실 때 하셨어요. 이것을 기억하라는 거예요.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살아나신 겁니다.
여자들이 이 말씀을 기억했어요. 8절에 나오죠?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이 정말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곧바로 이 사실을 알리죠. 오늘 본문 9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아멘.
여자들이 자기들이 보고 들은 사실을 사도들과 모든 제자들에게 알렸어요. 이때 여자들은 아까 병사들하고는 다르게 설명을 잘 했겠죠. 아까 병사들은 겁에 질려서 벌벌 떨면서 말을 했지만, 여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기쁨 속에서 말을 했어요. 자기들이 향품을 갖고 간 것부터 해서 무덤 문이 열려진 것,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 갑자기 천사가 나타난 것,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설명해 줬을 거예요.
자, 그러면, 사도들과 제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박수를 치면서, “옳다쿠나! 예수님이 부활하셨구나! 할렐루야!” 이랬죠? 아니에요? 어떻게 반응했어요? 11절 봐 볼까요?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사도들이 믿지 않았어요. 여자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린 겁니다. 이 허탄하다는 말이 영어로 idle tale이라는 말인데, “헛소리, 황당한 이야기” 이런 뜻이에요. 사도들이 듣기에, 여자들이 말도 안되는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안 믿은 거예요. ‘아이고, 이 여자들이 예수님이 너무 그리워서 미쳐부렀구나. 우짜쓰까이? 아이고, 불쌍한 거...’ 이런 거죠.
그런데 이때 베드로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어요. 그리고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밑에 12절에,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남들이 다 안 믿고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베드로 혼자 무덤으로 달라갔어요. 여자들의 말을 베드로도 믿지는 않았어요. 믿지는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궁금해서 자기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달려간 겁니다. 달려갔더니 정말 무덤이 열려있고, 안에는 예수님의 시체를 감쌌던 세마포만 남아 있었어요. 그것을 보고 베드로가 놀랍게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놀랍게 여겼다는 말은, 이상하게 여겨 머리가 혼란스러웠다는 말입니다. 무덤은 왜 열려있는지, 예수님의 시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진짜로 부활하신 건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혼란한 상태로 돌아갔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도 못 믿잖아요. 예수님이 전부터 계속 내가 부활할 거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제자들이 다 그 말씀을 믿지 않은 거예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거죠.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베드로도 예수님이 부활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지 않았어요. 그리고 여자들의 말을 듣고 무덤에 달려갔다가 돌아올 때까지도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비록 베드로가 부활을 여전히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가 일어나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절망 속에서 그는 일어났어요. 그리고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절망의 터널 속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한 거예요. 그 빛이 너무나 연약하지만 그 빛을 향해서 달려가는 겁니다.
달려간 그곳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베드로는 더이상 절망하지 않아요. 사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큰 절망 속에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했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누군가가 베드로에게 너 예수랑 같이 있던 사람 아니냐고 했을 때, 아니라고 했거든요. 나 아니야. 나 저 사람 몰라. 나 아니야. 이렇게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어요. 그것이 너무나 죄송해서 통곡을 했어요.
예수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왜 내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을까, 죄책감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을 겁니다. 계속 그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겠죠. 다른 제자들보다 더 큰 절망이에요. 그런데 그 절망에서 일어난 겁니다.
아직 믿음은 없어요. 하지만 더이상 울고만 있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2절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었거든요.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돌이키라는 거예요. 어디에서요? 절망에서, 슬픔에서, 죄책감에서, 돌이켜라. 그리고 너의 형제들을 굳건하게 하라. 이것은 베드로에게 하신 중요한 명령이었어요. 이 명령을 베드로가 따른 겁니다. 다만 절반만 따랐어요. 절망에서 돌이키긴 했지만, 형제들을 굳건하게 하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아직 믿음이 없기 때문에. 베드로가 머리가 지금 복잡해요. 더이상 절망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가득하지도 않아.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형제들에게 확실하게 뭐라고 말을 해줄 수가 없는 거죠.
하지만 여러분, 그래도 베드로는 한걸음 나아갔어요. 예수님의 명령을 절반이라도 지키게 됐어요. 절망에서 돌이켰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베드로를 돌이키게 했습니까? 여자들이 전해준 소식이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있는 사실 그대로 전했어요. 그것이 베드로를 돌이키게 만든 겁니다.
여러분,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자들이 소식을 전했을 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베드로에게 변화가 일어났어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달려갔잖아요.
부활의 소식은 절망으로 가득찬 세상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 변화는 아주 작아요. 처음에는 눈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다이나믹하게 커지지도 않아요. 아주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검정색 잉크통에 흰색 잉크를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 몇 방울 떨어뜨려서는 티도 안 나죠. 금방 검정 잉크 속으로 흡수돼버려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흰색 잉크 방울을 떨어뜨리고 떨어뜨리다 보면 조금씩 색깔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도가 이와 같은 거예요. 한번 전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변하지 않아요. 한번 하고 두번 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그 사람도 베드로처럼 돌이키는 때가 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신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가 이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여서, 세상에 희망의 변화를 만들어내기로 결단하고, 이 일에 앞장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