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진짜 승리

하나바이블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4 views
Notes
Transcript

승리

고린도전서 15:55–58 NKRV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랑합니다! 오늘은 무슨 예배인가? 부활주일이다. 부활절하면 떠오르는게 무엇이 있는가? 보통은 달걀이나 토끼를 떠올리게 된다. 왜 부활주일에 토끼와 달걀이 상징이 되었을까? 김계란이라는 헬스 유튜버는 예수님도 근손실을 피할 수 없었으니, 그것을 방지하려고 계란을 먹는게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부활절을 지키라는 이야기와 또 달걀을 먹는 것, 토끼가 구약에 제사드릴 때 번제물로 등장한 것도 아니였다. 그렇다면 부활절 영어로 무엇인가? Easter이다. 부활은 영어로 무엇인가? resurrection이다. 부활절을 영어로 해야한다면 Happy resurrection이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것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부활절은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인가? 봄이다. 봄에는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게 되면서 새싹이 자라나고 생명력을 가지는 시기이다. 옛날 아주 먼 고대 북유럽 신화에서 숭배했던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를 기념하면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달걀과 토끼를 사용했다. 토끼가 동물 중에서 강할까 약할까? 우리는 보통 토끼가 초식동물이고, 공격력이 하나도 없어서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토끼를 무시할 수 없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토끼는 엄청나게 번식력이 뛰어나다. 토끼는 최대 1년에 최대 4,556마리를 생산했다는 기네스 기록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동물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는 임신기간이 100일이며 최대 6마리를 낳는다. 아무리 일 년 동안 열심히 새끼를 낳는다고 해도 최대 18마리 밖에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공격력이 강한 동물이 강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생존하는 동물이 제일 강한 동물인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봄이 오면 자연스럽게 토끼와 달걀을 보면서 ‘에오스트레’라는 여신을 생각하게 되는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4세기에 춘분(낮과 밤이 똑같은 때 낮 12시간, 밤 12시간)을 기준으로 보름의 첫 번째 주일에 부활절을 지키기로 했다. 춘분에 세계에 많은 종교들이 축제를 벌였다. 이 때 유대인들의 가장 큰 절기 ‘유월절’도 이때 지켰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면서 진정한 생명은 에오스트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진정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제물이 되신 분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기에 토끼와 달걀을 보면서 누구를 생각하게 되는가? 모든 만물을 소생시키시는 진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저번 주에도 말하지만, 우리는 절기에만 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감사를 하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오늘 말씀에서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바울은 부활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도전하고 있다. 55절에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호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무엇에서 무력한가? 아무리 강한 왕이라고 하더라도, 세계를 정복한 장수라고 하더라도 모두 죽음 앞에서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진 시황제도 어떻게든 늙어보지 않으려고 죽지 않겠다고 발악하며 신하들을 보내서 전국방방을 돌아다녀서 무엇을 찾아오라고 했는가? ‘불로초’라는 절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약이지만, 결국 그는 진시황릉이라는 무덤에 묻혀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인간은 왜 죽는가?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사람 안에 무엇이 있기 때문인가? 바로 ‘죄’때문이다. 죄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불순종이다. 그 죄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독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라는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의로워진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자 엄청나게 힘써 노력했다. 그러나 누구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이 있었을까? 단 한 명도 없었다. 왜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죄인이며 율법을 하나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주셨다. 그러니 오늘 사도바울도 죄의 권능, 죄의 파워가 무엇이라 말하는가? 율법이다. 그러나 이 율법을 완벽하게 다 지키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 그 분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 그 자체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고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면 완벽하게 율법을 지키신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아 고난을 받으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모두 부활할 것을 확신했다. 왜냐하면 바울은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무엇인가? 인간이 절대로 해결할 수 없던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사건이다. 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그 사실을 믿는 모든 자에게는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사건이 이제는 나의 사건이 된다. 의롭다라고 불려질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이 성취하신 의 때문에 믿음으로 그 의가 나의 의가 되어 의롭다고 칭함받아 심판대 위에서 당연히 지옥가야 마땅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는 무죄를 선고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도 주님 다시오실 때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모든 세계 역사 속에서도 죽음을 이기신 분은 유일하게 누구 밖에 없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에서 승리가 결국 누구의 승리가 되는 것인가? 우리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주님 다시 오실 때 나의 부활이 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구원 받을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택하신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할 때 우리의 반응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구원을 길을 허락하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가 터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은 당당하게 부활 앞에서 무력한 죽음에 대한 강력한 조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챗GPT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네가 만약에 사탄이라면 교회다니는 크리스찬 청소년들에게 어떤 계략을 세울 것 같아?”라고 물어보았다. 사탄은 우리가 상상하는 악마처럼 무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유혹적인 얼굴, 정당해 보이는 명분,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첫 번째 사탄의 전략은 ‘정체성 혼란을 유도’한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하나님이 너를 진짜 사랑하시는 게 맞을까?”라고 말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 외모, 성 정체성, 꿈에 대한 혼란을 극대화시킨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인정, SNS의 좋아요, 외모, 학업 성취에 가치를 두게 한다.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라는 정체성을 잃게 만든다. 두 번째로 말씀은 지루하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QT? 나중에 해. 유튜브가 더 재밌잖아”라고 생각하게 하여 말씀과 기도를 ‘지루한 종교 활동’처럼 느끼게 유도하고, 대신 중독성 강한 미디어, 게임, 유흥으로 마음을 분산시킨다. 영적 민감성을 마비시키는 전략이다. 세 번째로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가치관을 심어준다. “네가 행복하면 그게 진리지. 꼭 예수님만이 구원일 필요가 있나?”라는 말로 성경 말씀이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의 기준으로 생각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네 번째로 외로움과 소속감을 이용한다. “교회는 재미없고 나랑 안 맞아.. 그 사람들은 다 가식적이야.”라는 생각하게 유혹한다.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게 하거나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어 교회를 떠나게 한다. 그 틈을 타서 세상의 문화를 소속감의 대신하도록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죄책감을 이용한 정죄이다.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 실수와 죄를 반복하게 유도한 후, 죄책감을 이용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제 끝이야’라고 속삭이게 한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런 위기와 흔들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을 주고 있다.
고린도전서 15:58 NKRV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여기서 ‘주의 일’이 무엇인가? 이전에는 나를 위해서 살았던 사람이 이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삶,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 주의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주님의 뜻을 알려면 어디서 알 수 있는가? 성경 말씀을 펴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작은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우리가 그 순종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가? 말씀을 온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할 때, 우리는 온전히 주의 일을 더욱 힘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내 맘대로 살아오다가, 주일에 잠깐 1-2시간 나와서 말씀듣고 다시 세상에 돌아가 내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가 쉽겠는가? 사탄의 뜻대로 살기가 쉽겠는가? 사탄은 어떻게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여러분의 학원이다. 요즘 아이들은 합리적인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여러분이 돈을 내고 다니는 학원에 여러분이 스케줄을 맞추면서 학원 선생님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라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당연히 공부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는 곳은 아니다. 학원은 여러분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더 이상 책임져주지 않는 곳인데, 그곳에 모든 스케줄을 맞추어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원 진도에 밀려서 뭔가 뒤쳐진 듯하고 망할 것 같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망하지 않는 길이다. 왜인가? 하나님은 여러분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손을 놓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 말이 여러분들의 심령 깊숙히 들리길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들도 섬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만 섬겨야하는가?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풍요를 위해서 다른 신도 섬기다가 결국 그들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나라를 빼앗기게 되어 몇 천 년동안 뿔뿔히 흩어지며 살아가게 되었다. 우리도 생각해보라. 2000년 전이나 지금도 마찬가지로 세상이 주는 풍요, 물질, 안락함, 편안함이 우상이다. 그러한 마음이 가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통치할 수가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마음에 가득하다면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이끌어가실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주일 예배 때 우리가 무엇을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학원에 빼앗기지 말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고 주일에는 온전히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쉬길 소망한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속한 곳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일들을 전하는 일에, 즉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라고 사도바울이 강력하게 전하고 있다. 그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아니라는 것을 주의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이 주님의 일을 최선을 다한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그에 합당한 상과 위로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믿음으로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을 맡기길 바란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의 삶이 날마다 부활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는데, 그 분명한 사실을 앎에도, 들었음에도 여전히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회개하기를 바란다. 나의 육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은 곧 죽음을 향하는 삶이다. 그러나 그 길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도 나아가는 것은 사망으로부터 돌이켜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 길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 사실을 알 수도, 찾을 수도 없다. 그러니 회개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회개이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나를 위해서 살고자하는 그 마음에서 떠나 회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오늘 주어진 하루 어떻게 순종할 것인지 고민하고 온전하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로 하루를 살아내시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요한1서 5:4 NKRV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