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이 있을지어다!

25년 중등부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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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평강이 있을 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아침 주님의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 여러분에게 평강이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하는 평강은 무엇 인가요?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강은 무엇일까요?
같은 걸까요?
평강 이러면 좀 와 닿지 않을 수 있는데, 우리 교회에서 많이 하는 인사중에 ‘샬롬’ 이 있죠?
샬롬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평화, 평안, 온전함, 완전함 등등 말이죠
우리한테 평화로움 온전함 완전함의 상태는 어떤 느낌을 주나요?
모든게 채워져 있는 느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단단함 저는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걱정할꺼 하나 없는 그런 상태 있잖아요.
그런 느낌 느껴본적 있으세요? 사실 쉽지 않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기에는 어려운 상태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부활하고 처음으로 제자들을 방문하셔서 이말을 전하십니다.
요한복음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참 재미있는 점은 이날 제자들이 모여있었던 이유 입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닫고 있었다고요. 사실이죠 3년동안 메시아 인줄 알고 쫓아 다녔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날부터
제자들은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겁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형벌은 그당시 사형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방법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바로 십자가에서 내려지셨지만
십자가는 로마에게 반항한 반란 자들을 처벌하고 경고하는 의미가 있는 형벌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주일 세워놓기도 했다고 해요
다들 보라는 거죠. 로마에게 반항하는 사람이 어떤 최후를 마지 하였는가 경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 전날에 이 십자가 형이 시행되었기 떄문에 빨리 내릴 수 있었던 거에요
유대인들 입장에서 부정한 시체 그것도 나무에 메달려 있는 시체를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 날까지 세워둘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일찍 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로마에 대한 반항을 벌한다고 말했었죠? 그럼 그 십자가에 메달린 사람을 따라 다닌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우리나라 사극 보시면 역모를 꾸미면 어떻게 됩니까? 그냥 역모 일으킨 한 사람 벌하고 끝납니까? 아니면 그거 동조한 사람들 주요 인물들 다 끌어내서 유배도 보내고 사약도 먹이고 참하기도 합니까?
후자죠?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의 직속 이잖아요?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다음은 우리 차례다 이제 유대인들이 와가지고 우리를 죽일꺼야 하고 엄청 무서웠을 겁니다.
근데요 안식 끝나자마자 가보았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도 없는 겁니다.
이야..…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가져 갔다고 막 길길이 날뛰고 있고, 정작 제자들은 예수님 시신이 없어져서 우왕좌왕 하고 있는 그런 상황 입니다.
그렇게 모여서 벌벌 떨고 있는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오서셔 말하십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은 가장 혼란 스러울때 가장 두려움에 가득 차있을때 다가오셔서 ‘평강’ ‘샬롬’을 선언 하십니다.
제자들 아니 우리들의 눈으로 볼때는 이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터 우리들의 상황은 계속해서 안좋아 지기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심의 진짜 의미는 어때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눈으로 제자들의 눈으로 볼때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패배의 사건 같아 보였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산나 호산나 하며 예수님을 마지하던 군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진거 같아요 진짜 메시아가 아닌 것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났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패배 하신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완성 하셨습니다. 평안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짜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관계를 획복시키시는 평안을 완성 하십니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무엇인가요? 바로 부활 입니다. 하나님의 승리 선언 이었습니다.
많은 인간들 그것도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다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인간들이 모여서 내놓은 결론은 하나님의 아들을 저주하고 십자가에 메달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도망갑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부인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 십자가의 그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 하나님을 안다고 소리나 지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모든 것을 대속제물로 내던져 버린 그 사랑, 그 사랑 그 자체인 예수님의 승리를 선언하십니다.
그증거로 예수님이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 앞에 나타나셔서 저와 여러분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선언 하십니다.
무슨 평강이에요 이게?
하나님과 너희의 관계의 회복! 그게 평강입니다.
여러분 이 부활의 아침 여러분은 어떤 평강속에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삶이 너무나 고단합니까? 여러분을 시험하고 넘어뜨리려 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까?
네 사실 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그것들을 몸에 부닥치면서 깎여나가면서 삽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께 ‘평강’을 선언하셨습니다. 여러분을 회복시키시겠다고 먼저 선언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말을 붙잡으십시오. 백날 거짓말 하는 세상의 평강 말고
진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붙잡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을 받으라

이 말을 전하신 예수님은 이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백성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마로 성령님 입니다.
우리가 왜 성령님을 찾습니까? 여러분 수련회때 눈물 흘릴려고 성령님 찾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나 오태식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는 그런 삶을 만들어 가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제 우리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게 이해가 되죠. 하나님과 죄는 같이 있을 수 없는데, 사실 나로 있을때는 그 죄가 안보여요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게 되면 이 죄들을 속속들이 다 들어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를 눈물로 고백할 수 밖에 없어요. 여러분 죽을 수 밖에 없다는게 확정되면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데, 죄때문에 사실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내가 잘 알지도 못했던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고 하는 겁니다. 그 사랑이 느껴지면 마음이 터져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감정적인 격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안되요. 성령님의 임재를 내 안에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죄의 고백으로 끝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 말했죠. 죄의 고백과 나의 죽음으로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것이 시작된다고요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는 그 삶의 자리에 서는 것이 성령님의 임재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착해서 선을 행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진짜 못됬습니다. 우리는요 조금만 나한테 이득이 된다고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수많은 선택에서 우리들은 나를 기준으로 무엇이 더 이득인지를 보고 결정 할겁니다. 우리 모두 그렇잖아요?
그런데 성령님의 임재 속에 사는 사람들은 요기가 달라요. 내가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가 됩니다.
이게 단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잘알고 있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광야를 지나갈때 몇년이 걸린줄 기억 하십니까? 10년? 20년? 아니요 40년이 걸렸습니다.
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는게 40년이 걸릴정도면 엄청나게 멀거 같죠?
아니요 사실 그당시에 나있던 길로 가면 2주면 가는 길이고요 거기서 뭔짓을해도 1달이상 안걸리는 길입니다.
그런데 40년이 걸렸어요. 왜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고 서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서라고 하시면 스는거고 가라고 하시면 가는 겁니다.
근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요 1달 2달이면 괜찮아요. 그런데 자그마치 40년을 이렇게 돌아다닙니다.
광야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면 하나님한테 엄청 짜증이 나있습니다. 맨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이게 맞냐 저게 맞냐
이런 40년을 광야를 돌아다니면요 부처 할애비가 와도 화를 낼 겁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세상이 바라보는 눈 입니다. 성령님 없이 바라보는 상황이에요. 성령님 없이는 이게 이상한 짓으로 보여요. 신이 길 잃은거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눈으로 보았을때 이 광야의 시간들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는 그 마음으로 보았을때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웠던 시간 입니다. 그곳 광야에서 하나님 없이는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외부인들의 침략에서 승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없이는 이상한 짓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그곳이 바로 광야 였습니다.
성령의 눈으로 보고 있던 한사람 모세만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받으십시오. 성령을 받으면 시야가 바뀝니다. 이제 겨우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님의 임재를 고대하는 우리 대양교회 중등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죄를 사하라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담대하게 죄 사함을 선포하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평강을 완성하셨다는걸 그 복음을 가지고 이제 전하라는 겁니다.
여러분 평강 안에 있는 여러분 성령님의 임재안에 살아가는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받았던 그 사랑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 안믿기실 거에요. 저도 여러분 나이때 그랬습니다.
교회가 참 답답하게 느껴지실 거에요. 세상은 점점더 도파민 팡팡 터지는 걸로 중무장 하죠
여러분 저도 그런데 쇼츠나 릴스 같은거 보면 하루 녹는거 근방이지 않아요?
저라고 다르겠습니까? 교회 보다 우리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이나 하는게 즐겁잖아요 그쵸?
그런데 여러분 저는 왜 여기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을 전할까요? 여기 있으신 선생님들은, 우리교회 목사님들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 교회 구성원 모두가
뭐가 재밌어서 예수를 전할까요?
여러분 부모님들은 아침마다 여러분이랑 싸우면서까지 교회에 왜 데리고 나올까요?
사실 여러분 어른들도 늦게 일어나는거 좋아해요. 여러분을 위해서 섬기는거 고단합니다. 저도 말씀 준비하는거 피곤해요.
그런데요. 이 모든걸 뛰어 넘어서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목놓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다는 이 말씀이 내 마음에 쾅 하고 박혀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어버리던 그 죄가 사해졌습니다.
이 말이 믿어지시는 분들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이 믿어지시는 분들, 여러분들은 이제 복음을 전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게 나의 체험이 되고 삶이 되지 않으면 복음 못전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기억 없이는 못전하는 이것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이 되었든 내일이 되었든 한달 후가 되었든 몇년이 되었든 전할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 하나님 십자가만 바라보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평강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이고 거짓된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진짜 평강입니다.
그리고 그 평강을 경험한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며, 이제는 복음을 들고 나아가 죄 사함을 선포하는 삶으로 부르십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말씀을 들었다면, 이제는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샬롬.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던 그 은혜를 오늘 우리에게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시험과 고민, 세상의 유혹 속에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이 진짜 현실임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로 하나님의 승리를 선언하신 예수님, 그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 그 성령님을 우리 중등부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그 죄를 덮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눈물의 감동으로 끝나는 신앙이 아니라, 삶으로 예수님을 살아내는 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주님,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 그 은혜를 이제 세상 가운데 전하게 하옵소서. 내가 먼저 받은 그 사랑을 나누고,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는 작은 전도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활하신 예수님, 오늘 우리에게 평강을 선포하신 주님, 그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봉헌
사랑과 생명의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신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 속에 찾아오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진정한 평안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저희가 드리는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이 예물에 우리의 마음과 믿음을 담아 드립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듯이, 저희도 감사의 마음으로 기꺼이 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이 예물이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데 쓰이게 하시고, 저희도 삶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믿음의 일꾼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봉헌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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