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고 들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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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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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한 날입니다. 성경적인 표현으로 하면 안식 후 첫 날입니다.
부활주일이니까 주님의 부활에 관련한 성경본문으로 설교를 해야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사실 모든 성경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키고 있다면, 모든 성경 본문에서 부활을 설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가 계속해서 사도행전을 살펴보면서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대로 복음 전도자로서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부활과 우리의 소명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부활과 우리의 소명에 대해서 유익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베드로와 요한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을 전혀 두려워하거나 그들 앞에서 위축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위선과 교만을 명백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과 다닐 때에 제자들은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의 죽으시면 나도 같이 죽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의 능력을 알았기 때문에 설마 죽으시겠느냐고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아첨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에 베드로는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더구나 그저 모른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던 날 모두 흩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들어 버렸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오늘 베드로와 요한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붙잡아서 심문하는 공회원들이 놀라며 말합니다.
사도행전 4:13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베드로와 요한이 전에 어떤 인물들이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있다가 예수가 죽었을 때에 숨었던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본래 직업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본래 그렇게 학식이 있거나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므로, 종교지도자들도 그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의 태도의 변화에서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에게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지식이들이었던 종교지도자들은 정확하게 분석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의 변화는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예수의 부활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비난할 말이 없다. 즉 말 문이 막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 앞에 40년 동안이나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멀쩡히 고침을 받아 서 있으니 그 권능을 부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사람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난 여러 주간동안 말씀드렸던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 공감, 존중, 포용, 용기 등이 부활을 눈으로 확인한 제자들이 갖게된 삶의 태도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맞이해 주실 것을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 영원을 생각하며 오늘을 사는 인생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이 말이 쉬운 표현은 아닙니다.
쉬운 표현으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세상의 거짓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또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우리를 얽매이고 있는 죄와 거짓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가져다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종교지도자들의 거짓 주장과 협박에도 묶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담대하게 답변합니다.
사도행전 4:19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그들은 세상 권세, 물질, 건강, 평안 그 모든 것에 묶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왔습니다. 그 자유를 가지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유익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삶의 태도가 달라진 것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거기까지만 해도 Good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닮아, 또 그 명령을 따라서, Good 을 넘어 Great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라는 책을 다시 한 번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잘 창출하고 고용을 안정화시키는 기업은 Good company 좋은 기업입니다. 그런데, 사회를 돌아보며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이 더 오랫동안 존속하는 기업으로서 Great company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Good to Great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만 자신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개인적인 구원의 감격을 누렸습니다. 거기까지는 Good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전파하는 삶이 바로 Great한 삶이 됩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는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만 자신에게도 유익이 있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내일이면 저희 교회 튀르키예 단기비전트립팀이 출발하게 됩니다. Great한 삶으로 Great한 교회로 한 걸음을 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함께 하지 못한 여러 성도님들께서도 한 마음으로 기도로 동참해주시고, 그들이 가지고 올 놀라운 비전과 간증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부활주일을 보내면서, 여러분들도 영광스러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음으로,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그 복음을 증거하는 복된 주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찬예식
성찬예식
<성경>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기도>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방금 읽어 드린 성경 본문에서 자기를 살피고 죄가 있으면 회개한 후에 성찬에 참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간 나의 죄악을 주께 회개하고 참회하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어떠한 모습이든 여러분 마음에 생각나는 죄, 잘못된 것이 있다면 이 시간 회개하기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성경>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분병> 기도
<성경>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분잔> 기도
<성경>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