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후서 2:1-4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025. 4. 21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랜만에 고린도후서 말씀을 보는데요. 잠깐 이전 내용을 설명하자면, 바울이 갑작스럽게 계획을 변경한 것에 대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해명을 했었죠. 바울이 계획을 바꿔서 고린도에 두 번 가기로 했었는데, 한번만 방문을 하고 그 뒤에 다시 방문을 안 했어요. 왜냐하면, 한번 방문했을 때 서로간에 상처만 받고 헤어졌기 때문에, 다시 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다시 가면 더 큰 상처가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오늘 본문 위에 23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하죠.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바울이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않은 이유가 뭐예요? 너희를 아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너희를 너무 아끼고 사랑해서 가고 싶어도 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은 가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을 오해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이라서 안 가는 게 아니고, 내가 켕기는 게 있어서 안 가는 게 아니고, 너희를 사랑해서, 사랑해서 안 가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달라는 겁니다.
자, 그리고 이제 이어서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맥락이에요. 내가 고린도에 다시 가지 않고 편지만 보낸 것에 대한 해명이에요. 오늘 본문 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1절 시작,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바울이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죠. 내가 너희에게 다시 가지 않은 이유, 내가 다시는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않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근심 중에, 이 말의 뜻이 “슬픔 속에서, 아픔 속에서” 이런 말이에요.
고린도에 가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기쁨 속에서 가야되는데, 바울의 마음이 너무 슬프고 아파요. 한번 방문했다가 상처만 입고 헤어진 상황이라, 아직 마음이 아물지 않았어요. 지금 이 마음상태로는 도저히 고린도로 다시 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솔직하게 고백하는 거예요. 지금 이런 마음상태로는 다시는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 2절에서 바울이 이런 말을 해요.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내가 근심 가운데 너희에게 나아간다면, 나 때문에 너희가 근심하게 될 것인데, 그러면 누가 나를 기쁘게 할까?’ 이런 말이에요. 바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자는 고린도교인들 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바울이 가서 교인들을 근심하게 만들어 버리면, 그들이 어떻게 근심 속에서 바울을 기쁘게 할 수 있겠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다시 갈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바울이 갈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편지를 보내는 거죠. 그래서 보낸 편지가 바로 “혹독한 편지”예요. 바울이 고린도에서 상처만 입고 돌아와서 곧장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화가 난 상태로 편지를 쓰는 바람에, 편지 내용이 심한 내용들이 들어있었어요. 말도 세게 쓰고, 책망하는 내용을 많이 썼어요. 특히 나를 반대하는데 앞장 선 사람을 권징 조치하라는 내용을 써놨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혹독한 편지”라고 불러요.
그래서 바울이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 후회했어요. 너무 말을 세게 써놔가지고, 성도들이 상처를 받을 것 같은 거예요. 내가 왜 그렇게 썼을까? 내가 왜 편지를 보냈을까?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성도들이 이 편지를 받아보고,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되었다는 겁니다. 돌처럼 굳어져 있던 성도들의 마음이 이 편지의 펀치를 맞고 부드러워진 거예요. 우리가 바울에게 너무 심했구나. 우리가 잘못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성도들이 회개하고 교회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어요. 바울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너무나 기뻐서,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신 것이라고 고백을 해요. 그리고 그 기쁨 속에서 고린도후서를 써서 보낸 겁니다.
이 고린도후서에 바울이 자기가 보냈던 혹독한 편지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데요. 내가 왜 그 편지를 써서 보냈는지를 설명하는 겁니다. 내가 왜 그 편지를 보내야만 했는가?
자, 오늘 본문 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아멘.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혹독한 편지를 쓴 이유는, 이런 말이죠. 내가 그걸 왜 썼는가? 그 이유를 말하는데,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3절 말씀이 첫번째 이유예요. 바울은 고린도에 섣불리 갔다가 성도들에게 근심을 주고, 또 그들로부터 근심을 얻을까봐 직접 가는 대신 편지를 쓴 겁니다. 서로간에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편지를 쓴 거죠. 이것이 첫번째 이윱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밑에 4절이에요. 4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이 편지를 쓴 두번째 이유가 뭡니까?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하여 썼다는 것이죠.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것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쓴 겁니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예요.
성도들을 근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이 두 가지 이유로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쓸 때 바울이 그냥 쓴 게 아니에요. 큰 눌림과 걱정 속에서 많은 눈물로 쓴 겁니다.
여기서 눌림은 헬라어 뜻을 보면, “환난”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걱정은 “감옥”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편지를 쓸 때, 마치 환난에 에워싸인 것 같은 눌림과,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고통 속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사랑했어요. 그들이 근심하게 될 것을 걱정하고, 그들이 어떻게든 회복되기를 바랬습니다. 마치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바울은 편지를 쓴 거예요.
아버지가 자녀를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다투고 헤어지더라도, 그 관계를 어떻게 끊을 수 있겠어요? 비록 바울이 그들에게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편지를 통해서나마 그 관계를 이어가고 있잖아요.
사랑한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돼요.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을 알려줘야 돼요. 편지를 쓰고, 문자를 보내고, 선물을 보내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소통하고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도요, 고린도교회를 보세요. 혹독한 편지를 보내서 정말 생각지도 않게 성도들의 마음이 열리잖아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마음이 열립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태신자 관계맺기 3단계로서, 모바일 기프티콘을 보내는 주간입니다. 작은 것 하나를 태신자들에게 보내는 거예요. 꼭 모바일로 하지 않아도 돼요. 문자 한 통이라도 보내십시오.
그래서 혹시라도 쌓인 오해가 있거든 풀어지도록, 해명할 것이 있으면 해명하고, 풀 것이 있으면 풀고, 관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 함으로써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해라 풀리고, 관계가 회복되는 놀라은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