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여기 계시기에 (2)

임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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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셨다. 이를 인정하고 믿는 자들이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Notes
Transcript

여호와 삼마

오늘 본문은 시편 95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95편은 열한 절의 말씀으로 그리 길지 않은 말씀입니다.
오늘 이 새벽 이 열한 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찬양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찬양을 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음악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음이 우울할 때는 좀 밝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습니다.
마음에 쉼이 필요할 때는 잔잔한 경음악, 클래식, 자연의 소리등을
듣습니다. 그리고 대중 가요 중 가사가 좋은 발라드도 즐겨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 기분이 좋아집니다. 스트레스가 좀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어떠한 감정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음악의 장르와 템포등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분을 예배하고 싶을 때 저는
찬양을 즐겨 듣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평생에 가장
즐겨 듣고 많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면 분명 찬송일 것입니다.
Psalm 146:2 NKRV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시편 기자는 자신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살아 있을 때 즉 과거와 미래의 시제를
강조했다기 보다 ‘현재’라는 시제를 강조하여 찬양의 생동감을
강조해 주고 있는 듯 싶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현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Psalm 95:7 NKRV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본문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기 때문에
어제 그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합니까? 아니면 내일 그분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7절 하반절은 “오늘” 즉 현재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합니다.
현재는 오늘입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로 지금’입니다. 바로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바로 지금을 붙잡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에게
오늘 본문은
‘안식’이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바로 지금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에 매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Psalm 95:11 NKRV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바로 지금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놓쳐버리고 현실이라는 눈 앞에 펼쳐진
암울한 상황만 바라 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걱정해야 할 다양한 삶의 문제들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건강의 문제, 정신적 문제,
경제적 문제, 관계의 문제, 신앙의 문제등 다양한
문제들이 오늘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새벽 만나를 하고 있는 이 시간도 우리는 다른 생각에
사로 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나와 찬송을 하고,
내 손은 손벽을 치고 있는데 내 생각은
온통 나의 문제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심각한 것은 오늘, 아니 지금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신앙고백하지도
못하고, 실제 믿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그 모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의 벽 앞에서 하나 같이 불만, 불평을
늘어 놓으며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Exodus 17:3 NKRV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 내실 때 10가지 재앙을 일으켜 보이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신 중의 신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기 위해 추격해
왔던 이집트 군인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들의 삶에 펼쳐진 현실적
문제인 홍해를 가르심으로 그들을 이집트 군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그 놀라운 일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찮은 과거의
일들이 되었고 지금 당장
피부로 와 닿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현실의 문제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들처럼 다가와 하나님께
원망을 풀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8절의 말씀입니다.
Psalm 95:8 NKRV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므리바는 ‘다툼’을 뜻하는 단어고, 맛사는 ‘시험’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을 읽어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없어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지역 이름을 므리바 다툼이 많은 곳이라 정하고
또한 맛사, 즉 하나님을 시험한 곳이라는 뜻 또한 덧 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아니 지금 바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하나님 임재’에
대한 불신,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Exodus 17:7 NKRV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시험했다고 말합니다.
그 시험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잘 하실 때는 그 옆에 계셔주시고,
여러분들이 범죄할 때는
멀리 떠나는 그런 분이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말씀드리길 원합니다.
이삭의 아들 중 야곱과 에서가
있습니다. 에서가 이룬 민족이
에돔입니다. 에돔 민족은
야곱이 이룬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
늘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에돔 민족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으니 이제 우리가
그들의 나라를 점령해야 겠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 에돔의 생각이 맞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에돔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는 에스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Ezekiel 35:10 NKRV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두 땅은 다 내 것이며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여러분 여기서 말씀하고 이는 ‘네가”는 바로 에돔 국가를 말하는
표현입니다. 에돔이 말하기를 “두 민족, 즉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돔이 이 두 땅은 다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돔에게 하셨던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즉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범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라는 뜻입니다.
그 그러나 뒤에 어떤 내용이 등장합니까?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에돔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노리고
그 두 땅이 자신의 영통가 될 것을 욕심부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 있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와 함께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이 그 유명한
‘여호와 삼마’의 뜻을 담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Ezekiel 48:35 NKRV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멸망 가운데에서도
그 역사의 한 가운데 그들과 함께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여호와 삼마”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 주변에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십니까?
다양한 환경이 여러분들의 눈과 귀를 가리도록
만들어 그저 형식과 의식만 갖추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본문은 그런 자들의 심령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미혹”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Psalm 95:10 NKRV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여기서 사용된 ‘미혹’이란 단어의 헬라어 뜻은
‘마음의 방황’입니다.
방황이란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지금 당장 목이 마르다고
홍해를 가르시고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혹된 모습
방황하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10번째 장자의 재앙을 통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었더니
목마름이란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큰 기적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와 행동이
바로 미혹에 빠져‘방황’하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혹이고,
그 미혹이 저와 여러분들을
오늘, 아니 바로 지금
옆에 계신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안식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광야에서
‘미혹’ 받아 ‘방황’하는
바람에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생활 가운데에서 서서히 죽게 됩니다.
그들은 안식에 들어가 못합니다.
이 사건을 그들이 구원 받지 못한
사건으로 해석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모세도 구원 받지 못한
자가 됩니다.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그 앞에 놓여진 현실 앞에
혈기를 부리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되는 미혹 즉 방황
때문에 결국 출애굽 1세대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Psalm 95:11 NKRV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오늘 본문은
모세를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바로 여기
지금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그릇 행하였다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이지 그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받지 않았는지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안식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다양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늘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행동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천국도 살아 있는 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가나안 입성과 비슷할 수는
있으나 가나안 입성이 천국 입성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의 모습보다는 가나안 7족속과 같은
악한 자들이 우굴 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히브리기자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안식’에 대해 말할 때 ‘오늘’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는지? 듣지 않았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행동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여기서 말하는 안식의 특징에
대해 히브리서 3장에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Hebrews 3:7–11 NKRV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히브리 기자가 말하는 이 안식의 특징은
히브리서 3장 7절의 말씀과 같이 “오늘, 아니 바로 지금 그의 음성을 듣는데”
있습니다. 내 삶이 반듯해 보여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그 분은 나를 버리신다는 그 생각이 바로
미혹의 생각이고 그 미혹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현실에 충실한 방황의 삶을 살다 안식에 들어가
못했다고 히브리 기자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돔 족속들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모습이 멸방 받을 만한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함께 하고 있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함께
하셨다고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범죄할 때도 많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복음이고, 가장 큰 희망인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잃어 버릴 때
우리 신앙은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로
미혹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동해야 합니다.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입니다.
Psalm 95:1 NKRV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오라’이 뜻은 이동하라!, 출발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입니다.
어디로 이동하고 출발하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주님 여기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듣고 싶고 부르고 싶은 노래가 생길 것입니다.
그 찬송의 내용이 오늘 본문 1~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그것들을 다스리고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역사에 갇혀 계신 하나님이거나
미래에 오실 하나님이시라면 저와 여러분들은 절대
그 분을 찬양할 수도 예배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7절의 내용처럼 “오늘”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그분이 여기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임재 의식 앞에서만
오늘 본문 6절의 말씀을 우리는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Psalm 95:6 NKRV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굽히다’, ‘무릅 꿇다’의
단어는 히브리어 ‘바라크’라는 단어에서
파생 됐습니다. ‘바라크’는 바로 ‘복’입니다.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를 ‘안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 여기 계시기에
오늘 나의 삶에 주어진
삶의 현실 앞에서도
나는 주님을 찬양, 예배하겠습니다.
혹 내 삶이 이렇게 끝난다고 하여도
나는 절대 주님이 나와 지금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라고 선포하시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바르크’
하나님께 무릎 꿇는 자들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무릎 꿇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축복’ 즉 안식이
따른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이 아침
주님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도
그 안식의 바라크
‘축복’이 따를 줄 믿습니다.
오늘 한줄 타이핑은
주님 여기 계시게에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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