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24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45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시 하나님, 오늘도 생명의 호흡을 주시고, 이른 새벽,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님의 전에 나올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둠을 밀어내며 떠오르는 새벽빛처럼, 저희의 마음에도 주님의 빛을 비추사 잠든 영혼을 깨우고, 흐려진 시선을 다시 주님께로 향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낙심되는 일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 주님 앞에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물 있습니다. 이 예물 기쁘게 받아주시고 드린 손길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 주시고, 기도 제목마다 주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응답하여 주옵소서.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성숙한 신앙, 자라나는 신앙
성숙한 신앙, 자라나는 신앙
서론
서론
자녀를 키우다 보니 자녀가 이쁠 때가 있고 미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쁜 3살 미운 7살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말도 알아듣고 떠듬떠듬 말도 하면서 이제 막 걷기 시작 할 때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첫째가 2-3살 정도 되었을 때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종종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만큼 지금의 자녀가 이쁘다 것 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아이가 9살이 되니 말을 안들을 때도 있고 고집을 부릴 때도 있어 부모를 화가 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춘기를 지내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는 앞이 캄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정말 자녀가 그렇게 이쁘다는 3살에 멈춰있다면 그것은 큰 일입니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라야하고 성장하는 것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라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말하길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단단한 밥을 줄 수 없고, 젖만 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는 은사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배도 잘 드렸습니다. 그들은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어떤 모습을 보며 그들의 신앙이 어린아이 같다고 한 것입니까?
오늘 본문 3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신앙은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서로 질투하고, 다투었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 파,라고 하며 교회 안에서 파가 나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바울은 육신에 속한 것이며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라고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모두 신앙 안에서 자라고 또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시간 ‘자라나는 신앙’을 위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세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마음에 새기고,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간다면 우리의 신앙도 분명히 더 깊고 튼튼하게 자라날 것입니다.”
첫째, 말씀과 기도라는 영적 양식을 사모해야 합니다.
첫째, 말씀과 기도라는 영적 양식을 사모해야 합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마치 어린아이가 자라나듯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다”고 한 것은, 그들이 아직 단단한 영의 양식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미숙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처음에는 젖을 먹다가 차츰 이유식을 거쳐 밥을 먹고 성장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처음에는 기초적인 가르침으로 시작하여 점차 깊은 말씀의 양식을 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5:12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내용, 성숙한 교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장성한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신앙 성장의 첫 걸음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2 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양식을 매일 갈망하고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일에 힘쓰고, 깨달은 대로 순종하며 실천할 때 우리의 영적 근육이 자라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볼로가 그랬습니다. 아볼로는 많은 것들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특히 성경 지식에 능통하며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아볼로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24-25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전하긴 했지만, 복음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의 설교를 듣고 그를 따로 불러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더 깊은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그 이후로는 더욱 성숙한 복음의 이해를 가지고 교회를 힘있게 섬기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배움에 대한 겸손한 태도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은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늘 학생의 자세로 나아갈 때 더욱 깊이 있는 믿음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랑과 겸손으로 시기와 다툼을 버리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둘째, 사랑과 겸손으로 시기와 다툼을 버리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 한 것 처럼 고린도 교회의 미성숙은 시기와 다툼으로 드러났습니다.
서로 질투하고 분열하는 모습은 영적으로 아직 육에 속한 아이와 같다는 증거입니다.
성숙한 신앙의 사람은 사랑 안에서 하나됨을 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서로 사랑 할 때 예수님의 제자임이 증명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시기와 분쟁은 미성숙의 표식이고, 사랑과 용서는 성숙의 표식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날수록 이웃을 향한 사랑과 이해, 겸손한 태도가 더욱 풍성해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에도 사랑을 강조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선포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성장은 자기 중심적인 다툼을 버리고 그 자리 대신 예수님의 사랑을 채워가는 과정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을 신뢰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사울은 다윗이 자신보다 더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을 시기하여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쫓아다녔습니다. 철저히 시기와 분쟁의 영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사울이 다윗이 숨은 동굴에 홀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부하들은 “지금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라고하며 사울을 죽일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24:6에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울 왕을 자신의 손으로 해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한 분노나 복수심보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을 택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향한 부당한 시기와 공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분노를 이겨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과 용서, 겸손과 절제의 모습이 믿음의 성숙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시기와 다툼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나 가정과 일터에서,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마음이나 분쟁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은 그런 육적인 충동을 주님의 사랑으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과 겸손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시기심을 이기는 길은 낮아져서 섬기는 사랑임을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용서를 요구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시기 대신 사랑을 선택할 때 우리의 신앙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도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말씀합니다.
사랑 가운데 행하는 것이 주님 안에서 자라는 길입니다.
혹시 우리의 마음에 누군가에 대한 시기심이나 미움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용서를 구하길 바랍니다.
사랑으로 시기와 다툼을 이길 때, 우리의 신앙은 주님 안에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셋째, 사람을 따르기보다 하나님께 속 할 때 우리의 신앙은 자랍니다.
셋째, 사람을 따르기보다 하나님께 속 할 때 우리의 신앙은 자랍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나 아볼로 같은 사람에게 집착하여 분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5절에 분파를 만든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5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씨를 뿌렸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하고, 수고한 사람이 있어도, 진짜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해지려면 사람에게만 기대거나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목회자나 신앙의 멘토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들을 믿음의 중심에 두면 안 되고, 그분들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에게 너무 기대거나, 사람을 지나치게 따르게 되면,
그건 아직 신앙이 하나님께까지는 가지 못하고 사람에게 머물러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줄 아는 믿음입니다.
바울도 자신과 아볼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집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돕는 일꾼일 뿐이고,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자랑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사람을 우상처럼 따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고,
우리는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신앙의 성장과 성숙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말씀과 기도의 양식을 꾸준히 먹으며 자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사랑과 겸손으로 시기와 분쟁을 버리는 것,
셋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며 자라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방향은 결국 하나로 모아집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의 중심을 예수님께 두고, 그분 안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5절의 말씀처럼 “범사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처럼 우리도 때로는 영적으로 침체되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성장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성장하고자 하는 갈망과 방향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매일매일 한 걸음씩 자라가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고 물을 주며 때를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말씀의 씨를 심고 기도의 물을 주고 사랑의 햇빛을 비출 때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자라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오늘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 신앙의 현재 상태를 돌아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는 자라나고 성숙해지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더 사모하게 하시고, 기도의 무릎을 놓지 않게 하시며, 사랑으로 서로를 품고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은혜를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더욱 닮아감으로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다함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