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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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서론]
요즘 ‘결혼지옥’, ‘이혼숙려캠프’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심한 부부가 있을까? 혹시 연기하는 건 아닐까?
대본이 있는 건 아닐까?"
실제로 이런 의심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이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 되어버린 부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이 문제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처음 가졌던 소중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인 아가서는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가서를 영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또는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많은 신학자들은 아가서를 ‘문자적 사랑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아가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성경 안에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통해 깨진 사랑의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가서 5장 2절부터 6장 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랑의 질서가 무엇이며, 그 사랑을 어떻게 지키고 회복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본론]
첫째, 사랑에는 반드시 위기가 찾아옵니다.
5장 2-6절입니다.
본문을 보면 여인이 잠자리에 든 가운데 남자가 문을 두드립니다.
그의 머리는 밤이슬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밤늦게 찾아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긴급하고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면, 남자는 어떻게든 문틈으로 손을 넣어 문을 열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바로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미 몸을 씻고 옷을 벗고 눕고 난 후였기에, 번거롭고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쩌면 사소한 다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여인은 망설이다가 화장까지 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지만, 그때는 이미 남자가 떠난 후였습니다.
아가서 앞부분을 보면 두 사람은 서로를 간절히 찾고, 뜨겁게 사랑했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어느새 식어버렸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는데, 작은 지체와 오해가 사랑의 열정을 식히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항상 한결같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작은 오해가 쌓여서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인은 더 빨리 반응했어야 했고, 남자는 더 오래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여인에게는 ‘배려’가, 남자에게는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둘 중 하나만이라도 사랑의 자세를 유지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한쪽에만 책임을 묻는 것도 공평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함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랑의 위기는 대부분 큰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갈등과 오해, 사소한 서운함이 쌓이고 쌓여 결국 큰 문제로 터지는 것입니다.
저 역시 아내와 함께 살면서 종종 사소한 일로 갈등을 경험합니다.
엊그제는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반드시 닫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제가 뚜껑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화를 내며 제게 경고를 날렸습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 한 여름이 아니니까 꼭 뚜껑을 닫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저는 아내가 조금 더 참아주길 바랬고, 아내는 제가 조금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제게 필요한게 인내일수 있고, 아내에게는 배려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서로의 사랑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길에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위기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나의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지연될 때, 내 삶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합니다.
그 오해가 쌓이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럼 관계가 멀어질때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까요?
둘째, 사랑은 위기를 겪으며 확고하고 견고해 집니다.
5장 7절입니다.
여인은 밤이 깊었는데도 사랑하는 임을 찾아 거리로 나섭니다.
그 당시 문화에서는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인은 창녀로 오해받기 쉬웠습니다.
창녀는 겉옷을 입을 수 없었고, 그래서 여인은 파수꾼들에게 옷을 빼앗기고 매를 맞는 수치와 모욕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임을 찾습니다.
이 고통과 수치의 시간을 통해 여인은, 자신이 임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를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위기를 겪은 사랑, 아픔을 통과한 사랑은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깊어집니다.
여인이 친구들에게 임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5장 10절부터 16절입니다.
그녀는 임의 외모를 찬란하게 묘사합니다.
피부는 맑고 깨끗하고, 머리는 검고 단정합니다.
눈은 물가에 앉은 비둘기 같고, 수염과 볼은 향기나는 풀밭 같습니다.
입술은 즙이 뚝뚝 흐르는 듯 촉촉하고, 손은 길고 가지런하며, 허리와 다리는 견고하고 당당합니다. 무엇보다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달콤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어떻습니까?
장동건, 정우성이 따로 없습니다.
요즘 친구들 표현을 빌리자면 '선재 업고 튀어'의 변우석 같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면, 남자는 여인을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떠난 얄미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임을 칭찬하고 또 칭찬합니다.
그 위기 속에서 오히려 임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외모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자세히 칭찬하고 있습니까?
부부가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면, "예뻐", "잘생겼어" 정도는 말할 수 있어도 구체적으로, 따뜻하게 칭찬하는 일은 점점 줄어듭니다.
아가서 1장을 보면, 여인은 포도원에서 일하다가 햇볕에 얼굴이 검게 타버렸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매력적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녀를 ‘솔로몬의 휘장’ 같다고 찬란하게 칭찬합니다.
그녀를 향해 "나의 누이, 나의 사랑, 티 없이 맑은 나의 비둘기"라고 부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이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칭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솔직히 그렇게 말하기는 좀 부끄러운데요..." 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면, 표현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너는 객관적으로 봐서 내가 좋아할 만한 조건이 아니야"라고 하시는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누군가에게 우리를 설명하신다면, 우리를 가장 따뜻하고 아름답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이렇게 여인은 위기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다시 확고히 세워갑니다.
이전에는 열정만 가득했던 사랑이었다면, 이제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단단히 서는 사랑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의 여정에는 반드시 위기가 찾아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을 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될 때,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고,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위기와 침묵, 아픔의 시간은 사랑을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을 더 깊이 뿌리내리라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고난을 먹고 자란 믿음은 더 단단합니다.
시련을 견디고 난 후,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집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사랑의 위기와 고난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셋째, 사랑은 공동체의 격려와 도움이 중요합니다.
6장 1절입니다.
여인이 사랑하는 임을 잃어버리고 슬퍼할 때, 친구들이 그 곁을 지킵니다.
단순히 말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임을 함께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인에게 끊임없이 격려의 말을 건넵니다.
"너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예쁜 사람이다.”
"네 사랑은 특별하고 소중하다."
친구들의 격려와 도움은 여인이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지켜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사랑은 혼자서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 힘으로 버티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함께 걸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결코 혼자 걸을 수 없는 길입니다.
힘든 시간을 지날 때,
믿음이 흔들릴 때,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공동체의 격려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주며,
"하나님은 너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어."
"너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야."
라고 말해줄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넘어질 때 곁에서 붙들어 줄 친구,
눈물이 날 때 함께 울어줄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공동체는 서로를 붙잡아 주고, 서로를 세워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한 교회가 소중한 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함께 사랑을 지키고, 함께 믿음을 견고히 세워가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럼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가요?
내 주위에 지쳐 있는 사람,
사랑을 잃어버린 듯한 사람,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힘내", "잘 될 거야" 이런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는 알고 있어."
"나는 네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이런 진심 어린 격려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신앙을 견고히 세워가기 위해,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야 함을 배웁니다.
사랑은 공동체 안에서 더욱 깊어지고,
믿음도 공동체 안에서 더욱 견고해집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중 하나가 나의 해방일지입니다.
거기에 보면 염미정이라는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한번도 제대로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갸여운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자기집에 머물며 일을 도와주는 구씨를 발견합니다.
염미정이 그 사람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추앙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그럴때 서로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조건이 아닌 존재자체로 상대를 바라봐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때 우리는 채워집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야기인 아가서가 성경이 된 이유입니다.
서론에서 던졌던 질문을 기억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처음 가졌던 소중한 사랑을 끝까지 지켜갈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여기 있습니다.
위기 앞에서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인내로 사랑을 지키고,
아픔 속에서도 사랑을 확인하고 그 사랑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은 칭찬 하나를 해보십시오.
이웃에게 진심어린 격려를 건네보십시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조건 없이 추앙하시듯,
당신도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사랑해주십시오.
서로를 추앙하는 사랑, 하나님을 닮은 사랑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