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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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아가서 2:8-17
서론
오늘은 봄의 청혼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아가서는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입니다. 특별히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까닭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교회의 관계를 설명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특별히 자신의 사랑 안으로 초청하고 있는 솔로몬의 노래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또한 술람미 여인의 반응을 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고백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절입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이 독백은 술람미 여인의 것입니다. 그녀가 하는 말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로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그녀는 귀로 무엇까지 듣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인데, 그가 자신을 위하여 무수한 산들과 작은 언덕들을 뛰어넘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녀의 모든 신경과 모든 감각들이 사랑하는 임에게만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술람미 여인의 모습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반응이 나타나는 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 사람의 모든 신경과 감각이 사랑의 대상에게로 향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부모님들은 첫 아이를 키우실 때의 그 감각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이가 내는 작은 소리 하나, 작은 인기척 하나까지도 감지해낼만큼 부모는 어떻습니까? 모든 신경과 감각이 아이에게로 향하여 있지요. 물론 아이가 혹시나 잘못될까 하는 걱정 때문도 있겠지만 여러분 사랑할 때 나타나는 반응은 무엇인가? 온 마음과 신경과 생각이 상대방에게로 집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작은 것 하나까지도, 어떤 표정이나 어떤 소리까지도 감지해낼 수 있는 민감함이 생기는 것이죠. 반대로 여러분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어떤 일들이 나타날까요? 상대방에 대해서 둔감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하고 심지에 대놓고 이야기를 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죠. 아무리 말로는 “내가 사랑한다니까” 백번 말을 한다해도, 상대방에 대한 나의 감각이 무뎌져 있다면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여러분들의 영적인 감각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무수한 소리들과 여러가지 자극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하루 속에서 여러분은 얼마나 민감하게 하나님의 것을 캐치해내고 계십니까? 하루에도 여러가지 유혹들과 생각들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시선과 하나님의 표정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지수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반응 상대방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여인은 솔로몬이 자기를 위해서 무슨 수고와 무슨 댓가를 지불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솔로몬이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보여주는 열정입니다. 지금 솔로몬은 산을 어떻게 오르냐면 낑낑거리면서 천천히 오르고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 험한 산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작은 산들도, 천천히가 아니라 서둘러 넘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두번째입니다. 그가 술람미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수많은 장애물들을 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술람미 여인은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의 산은 어떤 곳이었는냐? 생명의 위협들이 널려있는 장소였습니다. 고대의 산과 언덕들은 오늘날처럼 등산로가 잘 깔려있는 것도 아니었고 관리가 잘 되어있는 곳도 아니었기에 수많은 절벽들이 있고 또 그곳에는 짐승의 위협과 산적들의 위협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홀로 그 산을 넘는다는 것은 그 많은 위협들을 각오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애물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애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이 시골의 한 처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수한 사회적 차별과 오해의 산들을 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술람미 여인은 감격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 자신을 위하여 내딛은 한걸음의 발자국 조차도 감사할 줄을 알았던 것이죠. 성경은 이 여인의 모습을 뭐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복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1편1-3절을 보십시오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것으로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유로 표현하기를 시냇가의 심겨진 나무가 시냇물의 공급으로 인해 철을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갈 때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깨달을 때마다, 감격으로 반응할 줄 아는 것. 그 말씀에 따라 삶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피워낼 수 있는 것. 이것이 복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어떻습니까?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하여 이루신 일이라는 그 감격이, 그 감탄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우리의 영혼에 어떤 감격도 어떤 위로도 어떤 만족도 없는 메마른 나무와 같은 상태는 아닙니까?
이 새벽에 이두가지를 스스로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민감한 감각이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감격과 감사가 있는가?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게 될까요? 점점 율법주의 신앙생활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행하는 모든 수고는 짐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 집에 바래다줘” 그러면 제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들까요? “아 또 짐하나가 늘었군” 이렇게 생각할까요? 아니죠. 오리를 가자고 하더라도 십리까지 같이 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순간, 오리가 아니라 다섯걸음을 함께 걸어주는 것도 일이되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은 일이 되어버립니다. 주님을 위한 예배도, 주님을 위한 사역도, 어떠한 모임도, 어떠한 봉사도 다 일처럼 다가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일처럼 느껴질 때에는 잠시 멈추어 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새벽 말씀 앞에 나를 가만히 비추어 보며, 이 술람미 여인에게 있었던 그 민감한 감각과 기쁨의 감격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노루와 젊은 사슴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솔로몬의 발걸음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발걸음이 얼마나 활력이 있고 역동적인지를 노루와 사슴에 빗대어 이야가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산들과 언덕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온 이 사슴이 넘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술람미 여인의 집 담벼락입니다.. 그는 어떤 장애물도 고민없이 넘나들었지만 그 사랑하는 여인의 담벼락 앞에서는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문도 두드리지 못하고 그저 애틋한 눈빛으로 여인을 훔쳐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은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평소에 사자와 같은 왕입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여린 사슴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사랑은 대등한 계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솔로몬이 “여봐라 이리오너라”라고 하면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더라면 여인에게 있어서 애인으로서의 의식은 달아나는 것입니다. 대신에 백성으로서 고개를 조아리며 예를 갖추었겠지요. 솔로몬이 바란 것은 자신과 사랑하는 여인과 이 그런 관계로 얽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과 백성이 아니라 한 남자와 여자로서, 그녀와 대등한 한 연인으로서 관계맺기를 원했던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자신을 낮추어 말하자면 눈높이 사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고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를 목적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을 하는 상대가 되자는 말입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대놓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를 하는가 하면 나는 너희에게 장가들은 신랑이고 너희는 나의 신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낮아지셔야 했고 반대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자라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낮아짐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요? 인격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격적이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말은 우리를 조작하시거나, 위협하시거나, 힘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우리와 관계 맺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자발성을 존중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조작하여 사랑의 감정을 집어넣는다거나, 아니면 힘을 과시해서 억지로 사랑을 시키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줄 알고 그 사랑에 반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러한 수준으로 자라나기까지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가? 설득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직접 경험하게 하시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그 모든 과정, 우리의 전 생애를 사용하셔서 우리를 자라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아버지가 자식을 어떻게 길러내는지 말입니다. 자식이 말을 안듣는다고 아버지가 집나가려는 그 자식을 강제로 붙잡아두거나, 아니면 생각을 조작하거나, 협박하고 위협해서 자식의 무릎을 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가려는 자식을 내버려두는 겁니다. 그 자식의 패륜으로 인한 수모와 손실과 고통을 참으면서 그 아들을 보내주는 겁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끝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들은 어떻게 아버지의 무엇에 무릎을 꿇습니까?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인내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겁니다. 하나님이 왜 질투하셔야만 할까요? 우리의 자발성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솔로몬은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여우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포도원은 무엇을 뜻하냐면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이 사랑을 나누는 공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여우가 와서 이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겁니다. 고대 근동 시대에 여우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 색을 밝히는 정욕적인 남성들의 이미지로 사용되는 동물입니다. 솔로몬의 걱정은 이것입니다. 그런 여우들이 그래서 그녀에게 접근해서 그녀의 관심을 빼앗고, 그녀의 시선을 차지하고, 그녀의 몸을 가지려 할까봐 걱정을 하고 질투를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 술람미 여인이 기가막힌 대답을 합니다.
성경전서 새번역 2장
16 임은 나의 것, 나는 임의 것. 임은 나리꽃 밭에서 양을 치네.
솔로몬의 모든 걱정과 질투를 잠재우는 말을 하는 것이죠. 내 사랑하는 님은 나의 것이고, 나는 백합화들 가운데서 목양하는 님의 것입니다. 질투할 필요가 무엇있습니까? 나는 변함없이 당신의 것이고 나또한 당신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수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사랑이 이것익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