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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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사랑을 노래하다
아가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사랑을 노래하다
우리가 살펴보게 될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 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먼저 아가서는 구약성서 중에 시가서로 구분되며.. 솔로몬, 술람미 여인, 그리고 친구들이 등장하여 노래를 부른다. 특별히 아가서를 읽을 때에는 여러분들이 개역개정이 아니라, 새번역 성경으로 보길 바란다. 개역개정에는 등장인물들의 구분이 없이 쭉 글이 나열되어 있어서 어떤 사람이 어떤 구절을 말한 것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새번역은 어떤 사람이 어떤 구절을 노래하는지 볼 수 있어서 묵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아가서를 외적으로 보게 되면 남녀의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성경처럼 직접적으로 주는 영적 교훈들을 찾기 어려운 책 중에 하나.. 게다가 아가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사실 딱 한번 나오기는 하는데, 사랑의 위력을 설명하기 위하여 수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터라 초기 독자들은 아가서를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책’.. 구약에 들어올만한 가치가 없는 책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아가서를 연구하는 학자들로 인하여 이 아가서는 남녀간의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이라는 영적 시각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가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강력한 영적통찰을 준다.
첫번째는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서 사랑이 어떻게 성장하고 깊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것일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마음이 깊어질 수록 우리들은 더 깊은 사랑에 들어가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라면 하나님이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 아이의 신앙에서 벗어나 나의 신랑되신 하나님께 마땅히 사랑을 드릴 수 있는 깊은 성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우리가 지닌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회복시키고 지탱해 주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들은 인생을 살면서 연약해지고, 힘을 잃는 때가 찾아온다. 그렇게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강건케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것.
세번째 우리들은 고난 가운데 처하나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교회가 핍박과 환난 가운데 살아가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이 아가서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
나는 검으나 아름다운 자이다
나는 검으나 아름다운 자이다
오늘 본문은 꽤 긴 구절이지만, 두가지로 분류하여 말씀을 상고하고자 한다.
먼저 1:1-17까지 나의 정체성을 무엇으로부터 세워야 하는가를 볼 것이고, 나머지 2:1-7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호받고 있는 우리를 볼 것이다.
오늘 본문 1:5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가 1: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해당 구절은 술람미 여인의 자기 고백과도 같은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여인은 대조되는 단어들을 나열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검으나 아름답다. 게달의 장막 같으나 솔로몬의 휘장같다고 하는 것이다.
검다, 본래 피부색이 검다는 의미도 있지만 6절을 보게 되면 햇볕에 많이 노출되어 그을려 보인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게달의 장막은 당시 야만인이라 불리웠던 게달사람들이 검은 염소털로 만든 장막이다. 게달 사람들은 문명지에서 벗어나 아라비아 사막 광야에서 생활했는데 광야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먼지 폭풍으로 인해서 장막이 지저분해보이기 마련이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외형이 거므스름하고, 오빠들을 돕느라 지저분해 보인다는 명확한 자기객관화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여인은 자신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솔로몬의 휘장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평가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자기 외모에 대한 어마어마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성경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술람미 여인이 검으나 아름답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외적 아름다움이 출중했기 때문이 아니다. 왕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명확한 자기 인식이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술람미 여인을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게 했고, 솔로몬의 휘장같이 귀한 사람으로 살게 한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은 검으나 아름다운 자이다. 우리들은 사실 외형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 내면이 검은 자들인 사람이다. 죄를 짓고, 죄에 휘둘리며, 죄로 인하여 낙망할 때가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정죄를 당하기도하고 오해를 당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기연민과 자기정죄로 인하여 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날이 훨씬 많다. 그러나 기억하라. 우리의 삶에 분명 검은 부분이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분명한 사랑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하여서 아름다움을 입게 되었다. 1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가 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그러니 나의 정체성을 자기연민과 저기정죄로 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검으나 나를 어여쁘게 보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명확한 자기 인식을 갖고 살기를 바란다.
보호받고 있는 성도
보호받고 있는 성도
우리들이 정체성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더라도 때로는 삶 속에서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아가 2: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사람의 사랑도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는데에 많은 시간과 주변의 도전들을 마주하고 나아가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 사랑은 몸과 마음에 많은 에너지나 소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술람미 여인이 그런 것이다. 사랑을 하는 시간들이 너무 좋지만, 이 사랑을 지키고 살아가는데에 많은 도전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인은 자신의 여인에게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해달라고 하고 있는 것. 여러분 사랑하는 일에는 이렇게 몸과 마음에 힘이 소진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하지만 내게 어느 것도 소진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이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때 술람미 여인의 연인은 어떻게 하는가?
아가 2: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팔베개를 해주고, 오른팔로 끌어 안다. 여기서 안다는 친근하다, 팔짱을 끼다라는 말로 연인이 할 수 있는 강한 포옹을 의미한다. 사랑으로 지친 여인을 솔로몬이 그 사랑으로 더 강하게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로 사는 일도 많은 에너지가 소진되는 법이다. 주님과 나와의 사랑을 유혹하고 도전하는 많은 시험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님에게 내 힘이 되는 건포도와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과를 원하는 기도를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때 주님은 더 큰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바로 주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사, 우리를 안아주시는 것.
여러분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을 입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보호이다. 주님의 품안에는 건포도와 사과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과 힘이 있다. 우리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그 평안함이 있다. 그러니 주님의 팔을 의지하여 변함없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살아가길 축복한다.
사랑의 정체성과 사랑의 보호
사랑의 정체성과 사랑의 보호
사랑하는 주의 권속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할까? 자기연민과 자기부정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한 명확한 자기인식을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 우리는 검다. 그러나 아름답다.
사도바울이 말하길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말하길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고 하였다. 강권하다. 우리를 휘어잡는다.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단단히 무장하면서 살기를 바라고, 더불어서 그 사랑은 우리를 도전하는 수많은 유혹 속에 우리를 보호하는 능력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여러분 세상의 유혹 시험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님 뿐이다. 오늘도 주님 한 분 의지하며, 매일 마다 그 사랑으로부터 오는 능력이 내게 임하기를 틈틈이 기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