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7:28 요한보다 큰 자 – 은혜의 영광을 누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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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보다 큰 자 – 은혜의 영광을 누리는 자”

본문: 누가복음 7장 28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 서론 – 누가 크냐는 질문

예화: 인스타그램 속의 나’
요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켭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며 개인의 화려한 이력 뿐만아니라, 친구의 화려한 여행 사진, 고급 레스토랑 음식 사진,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하지?"
오늘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더 성공해야 해.” “더 멋져야 해.” “더 특별해야 해.” 너의 친구봐라/./~~ 얼마나 화려하고 멋지냐~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은 스펙, 더 예쁜 외모, 더 인정받는 직함을 가지려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비교하면 할수록 정작 작고 초라한 자신을 보며 원망하며 불평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끝에 정말 '큰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늘 누가 더 큰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에서는 직위, 학력, 재산, 영향력으로 사람의 크기를 따지지요.
예수믿는 우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죠!! 자녀들이 판사 의사 교사 아니면 전문가직종에 직업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지금과 다른 신분 상승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주님을 따라 다녔지만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쫓았던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대부분이 예수님을 통해 지금보다 나은 지위와 권력을 얻어서 신분 상승의 기회로 여겼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누가 크냐 이것 때문입니다. 마태에 보시게 되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께 와서 앞으로 주님이 이스라엘 왕이 되시면 내 두 아들을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혀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다른 제자들일 얼마나 불편했는지 서로 다투었다는 것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크나 / 누가 더 나으냐.
우리교회 안에서도 직분과 신앙생활 하는 것이 서열로 따질 때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직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중직자가 되면 교회에서 그래도 인정받고 존중받는 높은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연중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이러한 문제는 당연한 관심사이고 우리가 이세상을 살고 있는한 이러한 신분 상승을 향한 도전과 열정은 계속 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린 분명 살면서 내 위치에서 더 나은 자리를 꿈꾸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더 좋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더 큰 역할을 하고 이것을 감당하는 것을 우리는 모두 다 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1. 세례 요한은 왜 큰 자인가?

오늘 예수님은 한사람을 소개하며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눅 7:28)
여러분!! 세상에 큰사람이 얼마나 많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세례요한이 크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만 해도 권세나 위치적으로 로마 황제 밑에서 총독 헤롯이 있고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 군대적으로도 막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자를 큰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세례 요한은 멋진 옷을 입은 사람도 아니었고,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광야에 있었고,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십니다.
이는 모든 인간, 모든 선지자 가운데 최고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운데 신앙생활 할 때 아브라함도 있고 여호수아도 있고 다윗도 있고 엘리사도 있고 이런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보다 세례요한이 더 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① 요한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자였습니다.

구약 마지막 예언자인 말라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말라기 3:1)
요한은 바로 그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바로 앞에서 준비한 유일한 인물입니다.

② 요한은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자였습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과 율법이 그리스도께로 향하고 있었고,
요한은 그 중 마지막 “전령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속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증거한 자입니다.
요한의 사역은 겉보기에는 단순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며 회개를 선포하고, 때로는 권력자에게 책망을 하다 옥에 갇혀 죽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의 사역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자기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내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
세상이 말하는 '크고 멋진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려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큰 자'는,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로 크고 멋진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큰 자라 하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느냐 에 따라서 큰 자와 작은 자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좋은 옷에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옷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낙타털옷을 입구요 허리에 가죽 띠를 디고 먹는 것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의 말을 듣기 위해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선포하는 회개하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영향력이 있습니다.
지위나 권세자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왕궁으로 몰려가야 합니다. 어떤 종교적이나 지식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회당이나 바리세인들을 찾아가야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가장 힘이 없는 세례요한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를 찾아간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놀라운 은혜와 영향력 때문에 그럴 찾아 간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오늘 여러분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은 세상적인 지위나 신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가장 큰 자라고 인정하시는 것은 오늘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내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 큰 자와 미미한자를 나눈다는 사실입니다.
내 지위요. 내 연봉이요. 내가 지니고 있는 어떤 신분으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가늠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을 두고 니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천국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부~!! 헤롯성전이 너무나도 화려합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복장 그리고 그 성전에 화려한 제의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모습과 모양은 사람들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가에선 세리요한은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의 허리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모습은 우리 주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은 그 화려한 궁궐과 성전의 의식을 찾기 보다는 주의 길을 예비한 회개의 길을 예비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세리요한을 따랐고 세리요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광야로 몰려나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자를 큰 자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길을 예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길을 예비했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그의 영향력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세례요한이 가장 큰 자이냐 하면은 세례요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나왔고 주의 나라를 위해서 그들이 회개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 때문에 그가 가장 큰 자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주님이 오실 그 길을 예비하며 예수님의 그 길을 예비했던 요한이 이러한 자였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력을 많은 자들에게 끼친 자 였기에 요한을 가장 큰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이 뭐라 말하고 있습니까??
눅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한번 따라합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

2.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말씀하신 후, 놀라운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눅 7:28)
이 말씀이 충격적인 것은 예수님께서 가장 크다고 하신 그 세례 요한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가 더 크다?
여기서 말하는 ‘작은 자’는 누굽니까?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 능력이 없는 자? 신앙이 연약한 자? 그렇습니다. 바로 그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작은 자’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자,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자, 자격이 아니라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입니다.

① 하나님의 나라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한 자였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길을 닦았고,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어디까지나 복음의 문 앞까지 인도한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의 완성을 바라보기만 했지, 그것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요한이 분명 위대했지만,
그는 은혜의 시대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부활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약의 복음을 살지 못했습니다.

② 우리는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에 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지금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압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단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자가 아니라, 그 안에 거하며, 복음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위대한 자지만, 너희가 누리는 은혜는 그것보다 더 크다.”
이 말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격려입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작고 초라하고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복음을 누리는 자는 요한보다 더 큰 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인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기에 빈약 할 수 있습니다. 초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향력은 이 땅의 유명한 정치지도자 연예인보다 못합니다. 만약에 이 예배하는 자리에 유명한 월드스타가 온다 그러면요 설교를 듣기 보다 그를 보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 들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우리 주님 앞에서 큰 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3. 왜 우리가 ‘더 큰 자’인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이 달라서 더 큰 자입니까?

① 복음의 빛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림자를 보았지만, 우리는 실체를 보고 있습니다.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말했지만, 우리는 그어떤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어도 어린 양의 보혈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입니다.

②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령은 임시적으로 임했지만, 오늘 우리는 성령이 영원히 내주하시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큰 사역이 아니라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은혜를 누리는 자가 큰 자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경험하였고 그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된 것입니다.

③ 구속의 확증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의심하며 옥에서 질문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누가복음 7:20)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분이 확실한 구주이심을 알고, 이미 그 나라의 유업을 보증받은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 된 자, 성령 안에 사는 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 그가 바로 요한보다 큰 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 십자가를 내 마음속에 세우고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소망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가 큰자라 합니다.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요한보다 크다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예수그리스도 말미암아 그 나라 백성이 된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영원한 나라를 얻었기에 우리는 세례요한 보다 큰 자라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큰 자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권사님으로 장로님으로 섬긴자가 큰 자가 아닙니다. 여러분 세상 조건 때문에 세상에 어떠한 일을 했느냐 이것이 큰 자가 아닙니다.
비록 내가 직분이 없지만 신앙생활이 짧아도 십자가와 부활을 온전히 믿고 믿음 안에서 진리의 말씀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처럼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주님을 기대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자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성도가 신자가 많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4. 결론: 더 큰 은혜, 더 깊은 책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 누구도 세례 요한처럼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요한보다 크다.” 왜요? 우리는 자격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는 실수도 많지만, 우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있습니다.
요한은 외쳤고, 우리는 듣습니다. 요한은 예비했고, 우리는 믿습니다. 요한은 지켜봤고, 우리는 받아들입니다. 요한은 길을 닦았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그 은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보다 큰 자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교만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낮아지게 합니다. 더 감사하게 합니다. 더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겸손하고, 담대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큰 자가 된 우리는 큰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어떠한 자가 되기 원합니까? 너희가 크고자 하느냐 1등이 되기 원하느냐 으뜸 되기를 원하느냐
너희가 섬기는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독생 성자를 위해서 여러분 주님 나라를 위해서 섬기는 자가 될 때 이 자를 가장 큰자라고 주님께서 보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들이 처하는 직장에서 내가 처하는 학교에서 오늘 주를 위해서 섬기는 자의 삶을 살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고 세리요한처럼 그리스도의 영향력 있는 삶을 살 때 오늘 주님께서 가장 큰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작 꿈꾸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를 가지고 어떤 신분상승 어떤 주위에 상승을 꿈꾸고 있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분상승은 이 땅의 연봉이나 신분상승 좋은집 좋은 학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줄 아십니까? 바로 주를 위해 이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리요한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처럼 우리도 다시 오실 주님을 전파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갈 때 주님께서 그자를 큰 자라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여러분 한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그 귀한 영혼을 내가 천국으로 인도할 때 여러분은 천하를 산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내 영혼을 바라보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귀하게 보는 영혼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여러분들이 한 영혼을 바라보면서 전도하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갖고 있는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 앞에서 어떠한 신분상승을 꿈꾸고 있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분상승은 오늘 주님 나라를 위해 주를 위해서 예비하는 자가 되는 것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가치 있게 바꾸셔야 합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셔야 합니다.
내가 비록 중직자가 되지 못해도 내 자리에서 한 영혼을 바라보면서 주님 나라를 위해 섬길 때에 여러분 그자를 주님께서 가장 큰 자라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사람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골목길을 쓸고 딲는 자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내가 그 자리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의 삶을 산다면 그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수 십년 교회를 다닌다 할지라도 전도한명 못하고 아직 갖난 아기신자라한다면 수 십년 교회를 다닌다할찌라도 주의 나라를 위해서 예수에 대한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면 큰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자가 낳은자 중에 가장 큰 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천국의 삶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나라가 아름답게 전해질수 있도록 나로 말미암아 천국 가는 길을 전해준다고 한다면 그자가 큰자라는 것입니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자가 큰 자인 것입니다.
세리라 할지라도 죄인이라 할지라도 창녀라 할지라도 병자라 할지라도 가난한자라할지라도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하는 열망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 진주장사가 가장 좋은 진주를 발견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 진주를 소유하는 것처럼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물단지를 발견하고 나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보물단지를 발견하는 것처럼 천국가치를 발견해서 내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둘 때 그자가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자가 큰 자가 되어지고 영원한 천국에서 미래의 천국 바라보면서 큰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이 귀한 천국을 전하고 이귀한 예수를 전하는 자가 바로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마치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땅을 살면서 높은 자리에 혹은 낮은 자리에 있든지 잘살든지 못 살든지 여기에 어떤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 은혜가, 이 복음이, 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우리 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천하보다 중요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함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 가슴에 불타오르는 자 이러한 자가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를 때 천국에서 가장 큰자로 불려 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 적용을 위한 묵상 질문

나는 요한보다 큰 자로서, 복음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내가 누리는 복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는가?

🙏 마무리 기도

“주님, 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잊지 않게 하시고, 그 은혜에 합당한 자로,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게 하소서. 겸손하되 담대하게, 작아 보이되 복음으로 큰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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