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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함께 말씀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의 은혜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다들 한주간 잘 지내셨나요? 지난주에는 함께 성찬식을 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더욱 주님 아래 하나되는 시간을 가졌는데, 더욱 주님과 가까워진 한주간을 보내셨나요?
아마 시험기간이라 여러모로 어려움들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분명히 실패하고 무너진 순간들도 있었을거에요.
하지만 늘 말씀드리듯이, 주님은 우리가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무너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붙잡으시며 주님의 뜻을 따라 나아가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오늘 말씀도 그러한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에 대한 말씀인데요, 함께 이 말씀을 보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3절부터 보시면, ‘그 날에’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시간적 배경을 알려주는 건데요, 그러면 그 날은 대체 어떤 날일까요.
본문에 안나와있으면, 바로 위를 살펴봐야겠죠? 바로 앞 본문을 보면 어떤 내용이 나타나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그 사실을 여인들이 알게 된 내용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장례를 위한 향품 등을 준비해가던 여인들이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놀란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죠.
여인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걸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바로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제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느냐,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제자들 중 유일하게 베드로만 혼자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게 됩니다.
바로 이 날이 오늘 본문이 일어나는 날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으로 간 것이 그날 동틀 새벽이었기 때문에, 아마 아침정도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말씀은 시간적 배경 후에 바로 등장인물을 알려줍니다. 그들 중 둘이라고 하죠.
여기서 그들은 앞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으나 믿지 않았던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자들은 열두 제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열두제자와 함께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두명의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곳으로 향합니다.
이들이 왜 엠마오로 향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통해 당시 제자들이 가졌던 마음상태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마음상태였다는 것이죠.
이것은 열두제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도 다시 이전처럼 그물을 잡고 어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과의 모든 일들이 존재하지 않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이 두 제자들은 본래 자신들의 일상이 존재했던 엠마오로 가면서 그날 새벽 있었던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서로 나눕니다.
그러자 15절에 또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죠.
그런데 놀랍게도 16절을 보면,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말씀은 그 이유를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을 하신 것도 아니고, 원래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나셨지만, 제자들은 아예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잊은마냥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 사건을 향한 믿음이 그들에게 없었기에, 바로 앞에 나타나는 부활을 인지할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이 부활이라는 사건은 우리의 이성이나 세상의 지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온전히 부활을 믿고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두 제자들에게 나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슬픈 빛을 띠고 가던 길을 멈춥니다.
그리고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글로바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아니 예루살렘에 지내면서도 이 이야기를 어떻게 몰라요?’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시죠. ‘무슨 일인데요?’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요.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인데, 우리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우린 그 사람이 우리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생각하고 또 그러길 바랐는데, 그 사람이 죽고 벌써 사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어떤 여인들이 오늘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시체를 못보고 와서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천사들을 보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몇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정말 시체가 없는걸 확인했는데, 부활했다는 예수는 보지 못했습니다.’
아주 놀랍게 자신들에게 최근 벌어진 일들을 잘 요약해줍니다. 사실 그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가장 잘 아시는 본인에 대한 이야기였죠. 이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이 미련하고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스도는 그런 고난을 받고 영광스러운 자리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기록된 말씀,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 다시 말하자면 구약의 모든 말씀을 예수님과 연관지어 풀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풀어주신 것은 그들이 말씀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앞서 그 두 제자가 말했던 내용을 봅시다. 그들은 분명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을 속량할, 즉 구원할 메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그들이 생각한 메시야는, 그들이 생각한 구원은 오로지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는 정치적 메시야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이전 일제강점기 시기 독립운동가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독립군 대장으로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웅으로서 예언된 메시야가 오히려 로마에 의해 박해받고 목숨까지 잃은 것을 보니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랬기에 예수님은 말씀을 다시금 말씀하시면서 이미 예언에서 메시야가 고난을 받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두 제자는 길을 가면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엄청나게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목표했던 마을에 도착했는데, 예수님이 더 가시려는 듯 보이자 예수님을 붙잡습니다. ‘이미 날이 다 갔는데, 우리랑 머물다 가시죠.’
당시 이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지나가는 행인 1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인이 자신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말씀으로 풀어내는 것을 보니, 지금껏 자신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이해하지 못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이자와 좀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마을에서 함께 유하게 된 것이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보내시며 음식을 나누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저녁자리에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그들에게 나누어주십니다.
이 장면,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이죠? 우리가 지난주에 했던 것처럼, 마치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하시듯이 그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신들의 앞에 있는 자가 예수님인지를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유대인들이 평소에 하듯 저녁을 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예수님이 나누어주신 떡을 먹자, 그들은 그제서야 자신의 앞에 계신 이가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으셨죠.
그 두 제자는 서로 흥분해 이야기합니다. ‘왠지, 오늘 길에서 그자가 말씀을 풀어줄 때 마음이 뜨겁지 않았어?’
그리고 그 즉시 마을을 떠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이 진짜 부활하셨고, 반나절을 자신들과 함께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돌아가니 유다를 제외한 열한제자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이 먼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주님께서 과연 살아나셨고, 여기 시몬에게도 보이셨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 뿐만이 아니라 이미 예루살렘에 머물던 제자들에게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 두 제자도 자신들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저녁을 나누며 자신들에게 보이셨다는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오늘의 본문인 엠마오의 두 제자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이제 예수님과 함께했던 제자들 역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후로 말씀은 모든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이 한번 더 나타나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나타나신 후 제자들이 주신 생선도 드시고 말씀을 다시 전하시고 그들을 축복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이 말씀은 부활을 믿지 못하고 좌절하던 제자들을 다시금 말씀으로 일으켜세워주시는 주님의 사랑이 아주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었다고 했죠? 그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까지 열심히 주님을 따랐습니다. 자신의 모든 생업까지 내던졌을 정도로 주님께 올인하여 주님을 목숨과 같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좌절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모든 것을 내어놓고 따랐던 존재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이죠. 분명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랬기에 말씀 그대로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찌보면 엄청난 믿음을 소유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믿음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 스스로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쩌면 그 제자들의 모습,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삶의 모습과 닮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나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위해 나의 많은 것들을 내어놓고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 삶이 어때요? 좋지가 않은거에요. 분명 말씀에서는 말씀을 잘 믿고 따르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복이 임하고, 모든 것이 형통할 것처럼 말하는데, 현실이 그렇지를 못한 거에요.
그러니 우리는 방황하게 돼요. ‘주님, 왜 제 삶은 이런거죠? 왜 저와 함께하시지 않죠? 제가 잘못된 길을 택한건가요?’
그리고 우리 중 어떤 이들은 결국 이 두 제자와 같이 자신의 본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나의 이 길이 잘못된 것이었구나, 말씀의 길보다는 당장 세상에서 잘 사는게 일단 중요하겠구나.
그렇게 다시 이전의 모습대로 삶 속에서 이득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우리의 마음 속에 누가 찾아오시나요?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힘들어하고, 무엇으로 어려움을 겪는지를 아신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에게 나아오셔서 우리의 그 아픈 마음을 물으십니다. ‘왜 그렇게 힘들어하느냐, 무엇이 그렇게 문제냐?’
하지만 우리는 그 나아오는 손길이 주님인지조차도 모릅니다. 왜요? 우리가 주님의 올바른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앞서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했죠? 그들 마음에 주님의 부활을 믿는 온전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야가 이스라엘 나라를 구할 정치적 메시야라고만 믿고 있었던 것이죠.
그들의 메시야를 향한 믿음은 메시야의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종료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의 모습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말씀에 나타난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져있다는 것이죠.
‘나의 예수님은 이렇게 하셔야 해. 나의 예수님은 이럴 때 나에게 이렇게 행하셔야만 해.’
말씀에 비추어 나의 상황과 선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들에 예수님을 끼워 맞추는 것이죠.
그러한 예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만을 찾습니다. 왜 함께하시겠다고 하시면서 나를 보시지 않느냐고 아직도 자신에게 예수님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잘못된 예수님을 찾는 우리에게 이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함께하십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시하고 있는 것일 뿐이죠.
그리고 오히려 나의 문제를 물으시는 진짜 예수님께 ‘아니 왜 그것도 몰라?’라고 하면서 한풀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때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말씀을 보게 하시고, 우리가 잘못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잘못된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를 원하시고 바라보시는 진정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가 깨닫지도 못한 순간 우리와 함께하셨고, 결국에는 그 능력으로 우리가 알지도 못한 때에 우리 가운데 일하시며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이루셨다는 것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 주님이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여러분이 어떻게든 주님을 바라보도록,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그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성적을 올리고, 나를 다른 사람보다도 높은 곳에 있도록 하는 잘못된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분명 여러분들을 가장 알맞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가장 높은, 가장 빠른 곳이 아니라, 가장 선하고 가장 올바른 곳으로 여러분들을 아름답게 이끄실 것입니다.
그 주님을 기대하시며 가장 선한 자리에 거하는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제자가 예수님께 받은 것은 말씀 뿐만이 아니었죠. 또 어떤 것을 받았죠? 예수님의 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죠. 예수님은 말씀의 진리와 함께 우리에게 사랑의 교제도 허락하십니다. 바로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말이죠.
주님은 우리가 말씀으로 올바른 곳에 거하길 원하시지만, 동시에 그 은혜를 혼자서만 누리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를 바라시죠.
엠마오의 두 제자도 그랬죠.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자마자 그들이 행한 것은 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그 진리는 혼자서 간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누리는 즉시 그 아름다움을 전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 교제라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저녁 상의 자리를 통해 보여주셨죠. 떡을 떼어주시고 함께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제자들은 예수님의 존재를 완벽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맛본 순간 그 진리를 온전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제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이 함께 모여 주님의 사랑을 나눔으로 더욱 풍성한 은혜가 모든 이들 가운데 임하는 것이죠.
우리가 지난주에 행했던 성찬 역시도 그것을 위한 예식입니다.
모든 믿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님의 이름으로 그의 몸과 피를 나눌 때, 성령께서 우리 모든 이들에게 임재하셔서 우리 안에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온전히 나누도록 인도하시는 것이죠.
그렇게 주님의 크신 은혜가 그 교제 가운데 임할 때, 두 제자는 자신의 마음이 뜨겁지 않았느냐고 고백합니다.
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을까요? 자신들이 이전까지 잘못된 진리로 무너지고 좌절하며 차갑게 식었던 그 마음이, 온전한 진리와 사랑으로 다시금 뜨겁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뜨겁게 변한 그들의 마음은 어떻게 나타났죠? 곧바로 그 사실을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전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일하시는 일의 결과입니다. 말씀을 통해 진리를 알려주시고, 교제를 통해 사랑을 더하여주심을 통해 우리가 다시금 주님의 일꾼으로서 행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었죠? 우리의 마음이 현실로 인해 무너지고, 실패하고, 그 가운데서 좌절하는 순간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한 순간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요, 우리가 특별히 못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다 똑같이 못난 사람들이에요. 다 죄인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제자들, 사도들도 예수님의 죽음 앞에 다들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쫓아내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 가운데 더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말씀의 진리를 직접 깨닫도록 일하셨고, 사랑의 떡을 떼어 우리 가운데 넣어 주십니다.
그렇게 실패하여 돌아가고자 했던 엠마오의 두 제자를 예루살렘으로, 새로운 사역의 현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실패하고 좌절한 우리에게도 주님은 함께하셔서 우리를 다시 주님을 전하는 삶의 현장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자리에 계신 모든 여러분들, 그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삶의 여러 문제로 우리가 무너지고 실패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일하셔서 말씀의 진리로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교제로서 우리에게 뜨거운 사랑을 불어넣어주시고 다시금 우리의 마음이 뛰도록 행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께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바로 여러분들의 이 하임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주님은 교제를 통해 우리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사랑을 나눌 자리로 교회를 허락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공동체가 함께 모여 사랑을 나누도록 교회를 주셨다는 것이죠.
우리 하임 공동체도 그러한 자리입니다. 물론 나아와서 말씀을 듣고 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오늘 본문의 주님께서도 말씀을 전하고 그냥 가시지 않고, 제자들과 떡을 나누어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듣고 그것을 나누는 교제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친구들도, 말씀을 듣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그 은혜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배 이후에 있을 조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해주시고, 그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함께하는 교제 속에서 분명히 주님이 또 새로운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실 겁니다.
그렇게 풍성한 은혜를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의 한주간의 삶이 또 은혜로 가득할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만약에, 여러분들의 삶이 너무나도 힘들어 하루만에 삶이 무너질 때가 있을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 공동체를 허락하셨고, 여러분들에게도 간식기도 시간, 조 모임의 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의 어려움들을 기도를 통해 주님께 아뢰고, 또 조에서의 교제를 통해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시간을 통해 또 우리에게 사랑의 떡을 넣어주실 것이고, 우리는 또 힘을 얻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하임 공동체가 너무나도 여러분들에게 귀한 기회라고 생각이 됩니다.
평소에는 어때요? 주일에 교회 갔다오면 다시 교회 잘 안가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어때요? 바로 여러분들 근처에 교회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또 그 해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자리로 보내신 이유도 이 하늘고에서의 시간을 통해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기를 바라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 여러분, 아마도 또 내일을 살아가면서 시험이라는 족쇄로 고통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족쇄가 아니라 주님 자신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주님과 우리 공동체에게 시선을 맞출 때, 어느순간 주님의 존재를 깨달았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어느순간 우리의 족쇄가 사라져 주님과 함께 자유함을 누리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말씀의 진리와 교제의 사랑으로 세상의 족쇄를 벗어나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또 그 자유함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귀한 하임 공동체 한사람 한사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주가 일하시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