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앙의 죄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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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iah 17:5–13 NKRV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4번째 시간 /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데, 죄를 지적하시며 질책하시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가 죄라고 말합니다.
인기없는 주제이지만, 오늘도 죄에 대해서 살펴볼텐데요. 오늘 본문은 흥미롭습니다. 예레미야는 죄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에게 두 그루의 나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나무는 사막의 떨기나무인데요. 예레미야는 사람을 믿고, 육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마치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나무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입니다. / 여호와를 의지하며, 신뢰함으로써 복을 받는 사람이 마치 이 나무와 같다고 말합니다.
8절을 보면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걱정이 없다고 하죠. / 이게 정말 가능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걱정과 불안과 염려 가운데 살아갑니다. /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 언뜻 보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 해도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불안과 걱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의 근원인 죄를 살펴봐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두 그루의 나무가 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총 3가지입니다.
죄의 뿌리, 죄의 열매, 죄의 치료.

1. 죄의 뿌리

첫번째, 죄의 뿌리입니다. 죄의 뿌리가 무엇이나면, 뿌리의 종류가 아닙니다. 뿌리의 위치입니다.
죄의 뿌리는 하나님께 뿌리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막의 떨기나무가 나오는데요. 왜소한 향나무를 말하는 거라 합니다. / 히브리어로 “아르에르”라고 하는데, ‘벌거벗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합니다. / 실제로 왜소하고, 잎도 별로 없고, 못생긴 나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나무는 물가에 심긴 나무죠. 이 나무는 떨기나무와는 반대죠. 앞이 싱싱한 푸른 나무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두 나무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무의 종류가 아닙니다. 뿌리의 위치입니다. 물론 이 두 나무가 다른 종류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어떠한 나무가 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뿌리가 어디에 심겼냐입니다. / 뿌리의 위치에 따라 나무의 잎과 줄기,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예레미야는 죄를 지적하면서 뿌리가 어디에 심겼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뿌리는 두 가지의 역할을 합니다. / 첫번째 역할은 나무를 땅에 고정시키는 역할이고 / 두번째 역할은 땅 깊숙이 있는 영양분을 빨아들여 흡수하는 역할이죠. 이러한 기능을 하는 뿌리가 어디에 심겼느냐라는 것이죠.
만약 그 뿌리가 하나님 말고 다른 곳에 내렸다면,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죄를 생각하게 되면, 죄와 거룩을 어떤 단계나 점수로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런 겁니다. 10개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죄인인데, 그에 비해 3개의 규칙을 어긴 사람에 대해서는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5개 어긴 사람은? 그에 비해 덜 거룩한 사람. 2점 부족한 거룩한 사람이죠. 여러분은 몇점짜리 죄인이고, 몇점짜리 거룩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죄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에 뿌리를 내렸나,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이라 말하는 겁니다. 어디에 뿌리를 내렸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 태도가 결정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죄와 거룩함은 어떤 점수와 등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두 나무가 동일한게 있죠. 두 나무 모두가 뿌리를 내렸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뿌리를 내렸다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신뢰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을 의지하는 자. 이런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이 자도요. 뿌리를 내린 자죠. 무언가를 신뢰하는 자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복 있는 자도요. 뿌리를 내리하죠. 신뢰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모두가요. 모든 나무에 뿌리가 있듯이 무언가에 신뢰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즉 신앙이 있다는 것이죠. / 하나님을 믿는 것도 신앙이지만, 육신을 믿는 것도 일종의 신앙입니다. /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을 얻기 위해 뿌리를 내립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뿌리를 어디에 내렸는가에 따라 / 신뢰의 대상이 어디냐에 따라 / 떨기나무가 될지 물가에 심은 푸르른 나무가 될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것을 점검하기 위한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각자 여러분 자신을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첫번째는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어디에 뿌리를 내렸는가입니다. 삶의 안정감이 어디에 있는가 / 그곳이 여러분이 뿌리를 내린 곳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장 큰 두려움을 무엇입니까? 가장 큰 걱정은 뭐에요?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내 인생은 뿌리가 뽑힌채 끝장날거야라고 생각하는 그것. 그것이 여러분의 안정감이고 여러분의 뿌리일 수 있습니다.
두번째 뿌리의 역할은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이라고 했죠? 여러분은 어디에서 삶의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습니까?
제가 청년 때 본 인상적인 책 제목이 있었는데요. /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책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Jeremiah 17:9 NKRV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인간의 마음은 심히 부패해서 남도 속이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세상의 모든 시선이 거두어지고, 아무도 보는 없을 때 진정한 인격이 드러난다라는 것이죠.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 골방에서의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그래서 윌리엄 템플이라는 대주교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 하는 일이 곧 당신의 신앙이다” 월리엄 템플
아무도 없이 홀로 있을 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들이 있죠. 스스로 즐기는 공상들. 여러분의 생각을 차지하는 것. 그곳이 바로 여러분이 뿌리를 내린 곳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나요? 어디에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고, 안정감을 얻고, 회복을 하나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 평소에 사고 싶었던 아이템을 결제하고, 택배를 기다립니다. / 오늘 하루가 너무 괴로웠는데, 택배가 오늘 도착한다는 문자가 오면 어떻죠?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힘과 위로를 얻죠. / 택배가 도착하고, 언박싱을 하면서 삶의 만족과 기쁨을 얻습니다. / 물론 삶에서 이런 소소한 기쁨들 소중하죠.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근데, 이게 여러분 인생의 근본적인 것이라면, 여러분은 계속해서 물건을 사기 위해 결제를 할 겁니다. 중독이죠. 여러분은 쇼핑이라는 토양 속에서 삶의 영양분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양분을 얻을 수도 있죠. 흔히 관계중독이라고 하죠. 항상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항상 사람들의 인정에 목마르고, 팔로우 수와 좋아요 숫자에 따라 여러분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 물론 인간은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 하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것이라면, /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궁극적인 공급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공급 받고 있다면/ 예레미야 표현대로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을 의지하고 있다면 / 여러분은 관계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러한 사람들은 관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신앙도요.
이것이 성공이 될 수도 있고, 돈이 될 수도 정치적 이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궁극적인 위로가 금융치료에 있다면, 여러분은 돈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린 겁니다. 돈이라는 토양의 흙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종교이고, 여러분의 궁극적인 신뢰의 대상, 믿음의 대상, 여러분이 뿌리를 내린 곳입니다. / 종교가 있든 없든, 교회에 다니든 안다니든 / 누구나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어디에 뿌리를 내렸나이죠. / 뿌리를 더디에 두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삶의 방식과 모습이 결정됩니다. / 사막의 떨기나무가 될 수 있고,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이죠,
윈스턴 처칠의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처칠이 하인과 말다툼이 한적이 있다고 합니다.
처칠이 하인에게 막말을 하고, 무례하게 대했다고 하죠.
어쨋든 하인이 화해를 하기 위해 먼저 사과를 하고, 말합니다. “처칠씨, 저도 잘못이지만, 당신도 무례했어요”
그러자, 처칠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맞아. 하지만, 난 위대한 사람이야”
처칠은 지금 무얼 하는걸까요? 무엇으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합니까? “그래서, 어쩔건데. 난 위대한 사람이야. 내가 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을 봐. 2차 세계대전가운데 난 위대한 일을 했어.”
처칠은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정당화할겁니다. / 이것이 처칠의 뿌리입니다. 자신의 성취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린 것이죠.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아랫사람에게 함부러 합니다. 발레파킹 직원에게 함부러 하고요. 마트 직원에게 막말하고, 함부러 대합니다. / 여러분, 아파트 경비원에게 갑질하고, 함부러 하는 사람들 있죠? “내가 누군데 너 따위가 나한테 그래” / 이게 이 사람들의 뿌리에요. 그들의 종교입니다.
교회라고 다를까요? / “내가 이 교회에서 어떤 일을 했는데, 누가 나한테 함부러 그래?” / 교회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 정말로 애쓰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자신의 의로움과 성취라는 곳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자, 이쯤되면 죄가 무엇인지 감이 오죠? 규칙을 어기는 것이 죄다. 이건 표면적인 것이고요. 더 깊은 의미에서의 죄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내 뿌리를 내리는 겁니다. 나의 안정감과 신뢰, 나의 기쁨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 두는거에요.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나요? 마음의 소원을 더 기뻐하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더 만족을 느끼고, 기뻐하는 것, 이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어떤 율법이 가장 크냐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 겁니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잘 보세요. 예레미야는 지금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이 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 “사막의 떨기나무는 믿지 않는 자들이고,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믿는 자들이다” 그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뿌리는 사막에 내리고 있는 떨기나무와 같을 수 있다라는 것이죠.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최종 믿음, 최종 신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정작 나의 기쁨은 나의 소원에 있다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저 내 소원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죠. “내 소원을 기뻐하라, 하나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닌 소원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 그게 여러분의 실제 믿음이에요.
따라서, 죄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소망을 두고, 기뻐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저 그 일을 이루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이죠.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사막에 뿌리를 내린 자입니다. 그래서 삶이 불안한거죠. 만족이 없는 겁니다. 쉽게 흔들리죠. 안정이 되지 않고, 항상 목마르고, 항상 메마른 겁니다.
여러분, 사막이 아닌 하나님의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죄는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2. 죄의 열매

두 번째 죄의 열매입니다.
Jeremiah 17:6 NKRV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다시 말해, 사막의 떨기나무는 번성의 때가 와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Jeremiah 17:8 NKRV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혹독한 더위가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걱정이 없다고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떨기나무는 번성의 시기가 와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물가에 심겨진 나무는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다. 가뭄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 더 간단히 말해 떨기나무는 좋은 것을 받지 못하고, 물가에 심긴 나무는 나쁜 것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떨기나무를 한번 봅시다. 떨기나무는 사막에서 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황폐한 사막을 적시는 축복의 소나기가 하늘에서 내린다고 할지라도 떨기나무는 변하지 않습니다. 딱히 좋을게 없죠. 사막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사막의 떨기나무는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물가의 심긴 나무는 어떻습니까? 뜨거운 햇빛이 작렬하는 가뭄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뜨거운 열기에 영향을 받겠죠. 하지만 이 나무의 생명력은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날씨가 아니에요. 뿌리를 내린 물가입니다. / 따라서, 가뭄은 이 나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에례미야는 하나님께 뿌리 내리면 좋은 일만 일어나고, 다른 곳에 뿌리 내리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막의 뿌리를 내린 자에게 번성의 시기가 올 수 있고, 물가에 뿌리 내린 자에게 뜨거운 가뭄이 찾아온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뿌리를 내려도요. 인생의 가뭄은 찾아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막에 뿌리 내린 자는 번성의 시기가 와도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가끔 사막에 비가 내릴 때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떨기나무는 여전히 떨기나무일 뿐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 왜냐하면, 그 뿌리가 하나님의 물가에 심긴 것이 아닌 사막에 심겼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이러한 사람은 축복의 소나기가 내려도 사막과 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번성의 시기가 와도요. 여전히 사막과 같이 목마르고 황페합니다.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관계, 성취와 성공, 유명세라는 번영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구원해줄줄 알았어요. / 하지만, 여러분, 그 소원은 여러분을 배신할 겁니다. 허무함과 실망감을 안겨줍니다. / 여전히 떨기나무와 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물가에 심긴 나무는 어떠합니까? 힘든 더위와 가뭄, 고통과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뿌리내린 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은 힘든 시기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뿌리가 아닌 날씨를 보죠. 상황을 봅니다. 내 삶의 문제는 비가 오지 않아서라고 말합니다. / 내가 그 학교에 들어갔더하면, 그 직장에 들어갔더하면, 내가 저 사람을 만났더라면, 내 삶에 비만 내렸다면.
아닙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내 삶에 무엇이 내리느냐가 아니에요. 내가 물 가에 얼만큼 가까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안에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이 있어요? 날씨 때문이 아니에요.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물가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한거고, 두려운 것이고, 걱정이 드는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어디에 뿌리를 내렸는냐에 따라 여러분은 번영 가운데 있지만, 쪼그라 죽을 수도 있고, 반대로 힘든 역경 가운데 있을지라도, 오히려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내가 궁극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 뿌리가 어디에 심겼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담대함을 가져다 줍니다.
왜냐하면, 내 삶에 날씨가 좋지 않아도, 좋은 것이 내리지 않아도, 물가에 심긴 나무는 절대로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과 어떠한 상황이 있던지 열매맺는 인생을 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십시오,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을 섬기세요.
상황 탓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강 가로 가시기 바랍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로 여러분을 적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흔들리며, 목마르고 만족이 없는 이유는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삼지 않고 다른 곳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3. 죄의 해결

그렇다면, 마지막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Jeremiah 17:14 NKRV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나를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 분명히 9절에서 만물보다 거짓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부패한 마음을 누가 고칠 수 있을까. / 그럼에도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한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부패한 인간의 마음을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떨기나무는 사막에 있지만, 물가의 나무는 뭐라고 말합니까? / 심어졌다고 말합니다. / 물 가에서 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날 수 있잖아요 / 그런데, 왜 예레미야는 물가의 나무가 그냥 있지 않고 심어졌다고 말했을까요?
이 점이 핵심인데요. 심겼다는 건 누군가 심었다라는 것이죠. 나무는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심겨질 수 없습니다. / 외부의 누군가가 심어야 합니다. / 그리고, 뿌리가 뽑힌 나무가 어딘가에 다시 심긴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잘 들으세요. 여러분의 삶의 문제, 두려움, 걱정. 심기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 잎이 푸르게 자라려면 심겨야 하고, 열매를 맺으려면 심겨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누구를 심을 수 없어요. 완전히 다른 존재만이 우리를 심을 수 있는데, 그 존재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의해 하나님의 물 가에 심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의해 심겨져야 해요.
자, 이제 누군가 묻습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 여러분 중 일부는 알고 계실 겁니다.
홍수나 더위를 겪어 보신 분들도 계시니까요. 더위가 찾아왔는데 감당하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홍수가 당신을 울부짖고 견딜 수 없게 만들었거나, 더위가 당신을
사람들이 사막의 홍수보다 훨씬 더 많은 더위를 겪는다는 걸 아시죠?
더위가 찾아왔고 당신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이제 한 가지 제안해 드릴게요. 여러분 중 일부는 자신이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시겠죠. 제 제안은 이렇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을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막 나무는 자연 그대로입니다. 그냥 야생으로 자란 거죠.
하지만 강가 나무는 심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은 건 나무가 심어졌다는 걸 안다는 거예요.
뭔가가 뿌리를 오래된 것에서 뽑아내어 새로운 것에 놓는 걸 느껴본 적 있나요? 영적인 전환점이 있었던 적이 있나요? 영적인 갈등을 겪어본 적이 있나요? 
혹시 "아니요"라고 말한 적 있나요? 저는 항상 꽤 좋은 사람이었어요. 저는 항상 교회에 다녔어요.
저는 항상 그게 아주 나쁜 징조라고 믿어왔어요.
당신은 무언가의 뿌리가 뽑혀 다른 것에 옮겨진 적이 있나요?
아니요, 저는 그런 경험은 해본 적이 없어요.다시 태어나야 해요.
30:22 당신은 거듭나야 합니다. 당신은 이 재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기독교가 약하다고 생각하거나 종교 없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그 열기(고통)를 경험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뭔가를 가지고 있나요? 기독교는 당신에게 뿌리를 내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영양분을 줄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의사가 와서 "곧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할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30:51 더 이상 직업도, 돈도, 경제적 안정도, 섹스도, 외모도 없습니다.
기독교가 당신에게 그런 것들을 마주할 수 있는 무언가를 준다는 걸 알고 있나요?
당신은 여전히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우주의 드라마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나요?
인생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열을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약한 사람들이라고 감히 말하지 마세요. 그들에게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31:20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것이 있습니까? 없다면 다시 심겨져야 합니다. 어떻게 다시 심겨질 수 있습니까?
첫째
죄를 깨달으십시오
죄를 깨닫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정의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나는 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합니까?
당신은 그를 온전히 기뻐합니까?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십니까?
31:47 만약 그분이 모든 영광과 선의 근원이라면, 만약 그분이 모든 아름다움과 조화의 근원이라면, 물론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그분을 사랑해야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실패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의 정의를 보면, 당신의 필요를 알게 될 것이고, 당신이 실패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돌아서서 저를 고쳐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어떻게 당신을 고쳐주실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32:09 세계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목마르고 영적으로 헐벗은 광야에서 인도되어 강가에 버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셨지만, 역사상 강가에 있었다가 뿌리째 뽑혀 광야에 던져진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혹을 받으셨을 때 왜 광야에 던져지셨을까요?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훈련소였습니다.
32:40 왜 그럴까요?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진정한 사막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서의 그분의 모든 삶을 다 바치셨습니다.
그분은 강가에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강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뿌리째 뽑히고 쫓겨난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영적인 사막에 버려지셨습니다.
33:10 그는 목말랐습니다.
그의 영혼은 말라붙어 산산이 조각나고 백만 조각으로 부서져 바람에 날려 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강을 잃었기에 우리는 그것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사막이 되었기에 우리는 강가에 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답은 이렇습니다.
많은 기독교 친구들이 "이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고 말하죠. "이건 나한테 맞지 않아. 난 강가에 심겨졌어."
음, 잠깐 생각해 볼게요.
아직도 걱정되세요?
33:47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은 깊이 걱정하고 있지 않으신가요?
오늘 몹시 괴로워하시는 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욥기 1장과 2장을 보세요.
하나님과 사탄이 욥을 두고 논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욥은 좋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욥을 아시나요? 사탄이 뭐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욥이 하나님을 헛되이 섬긴다고?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그는 주님을 신뢰한다고 말하지만 당신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의 신뢰 대상이 아닙니다.
그의 좋은 것들을 빼앗으면 그가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34:13 그리고 하나님은 욥의 삶에 닥치도록 허락하신 모든 고난을 통해 욥이 위선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십니다.
욥은 믿는 자입니다.
그는 강가에 심겨졌지만 더 가까이 심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 어떤 사람들은 강가에 있지만 훨씬 더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 있는 고난은 바로 그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강가에 뿌리를 더 내릴 수 있을까요?
34:39 아베소서 3장에서 바울은 아베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사랑 안에 뿌리를 박고 터가 굳건히 박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높이와 너비와 숨결, 그리고 깊이가 얼마나 큰지, 그 훈련의 깊이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에베소서 3장을 보면,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기에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교제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강가에 뿌리를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35:05 2년 전, 예수님께서 목마르셨던 기도를 묵상했습니다. 그분이 강에서 나와 사막으로 던져지시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목마름에 대해 생각하며 명상을 하던 중
하나님, 그분의 은혜로 저는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넘쳐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그분의 목마름을 생각하면 당신의 목마름은 끝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시간을 내야 합니다. 저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났는데 준비가 ​​안 됐고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설교문을 쓰기 시작하며 "내가 왜 이래?"라고 했지.
35:31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이번 주에 뿌리를 내릴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야.
네가 걱정하는 건 나도 걱정하니까 알아
네가 항상 무서워하는 건 나도 종종 무서워하니까 알아
우린 무서워하지 않아. 왜?
35:59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서서 그분의 갈증을 바라보고, 갈증이 사라질 때까지 그분이 행하신 일을 묵상하며 그분과 교제하고, 마침내 그분처럼 될 때까지 그곳에 뿌리를 내리십시오. 
성경 말씀대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셨듯이 말입니다.
  아버지께 기도합시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를 간구했습니다. 거듭남이 필요한 사람들이
36:35 심는 자는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주님, 저를 고쳐 주소서. 그러면 제가 나을 것입니다. 주님, 저를 구원해 주소서. 그러면 제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제 찬양이시며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 심겨졌지만, 당신은 우리의 찬양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땅히 찬양해야 할 만큼 당신을 찬양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치유되지 못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 각자가 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 진리를 우리 마음에 영으로 적용하여 변화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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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보여지는 예배 아닌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노래하는 찬양보다 삶으로 고백되는 예배
나를 위한 예배 아닌 주님 뜻을 향한 예배 내 맘과 정성 다하여서 주 앞에 드려지는 예배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온전한 예배 내 맘의 예배 내 모든 것 받기 합당하신 분
주 앞에 엎드려 예배합니다 나의 모든 삶 나의 모든 뜻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의 예배
드리기 원하네
(4)-V1-V2-C-(4)-V2-C-(8)-키업C-C
우리 모두 예배하는 자 되어 온전히 영과 진리로 주를 예배하자
주가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고 마르지 않는 샘물로 우릴 채우시리러
기도제목
하나님, 나의 기념비를 무너트리고 주 앞에 엎드려 주님을 예배합니다.
나의 죄와 실수를 정당화하지 않는 정직한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순종을 보여주는 자 되게 하옵소서.

봉헌기도

하나님, 거룩한 예배자로 세워 주옵소서.
주일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정직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예배자로 우리를 세워 주옵소서.
학교나 가정에서 자신의 실수를 정당화하지 않고 책임을 지는 정직한 자들이 되게 해주시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나의 연약함을 감추고, 속이는 세상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우리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목장모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내 삶과 소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은 이 헌금을 통해 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자신을 높이고 증명하려는 기념비를 무너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예배함으로
기념비가 아닌 하늘의 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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