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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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빌립보서 2:5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온유(溫柔)는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 :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말함
온유(溫柔)는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 :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말함
한자 : 따뜻할 온(溫) / 부드러울 유(柔)
딱딱한 것은 부러지기 쉽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쉽고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부드러운 것은 약해 보이지만, 강한 것을 이기고 잘 부러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따뜻함을 준다.
□ 따뜻한 성품입니다.
□ 따뜻한 성품입니다.
사람마다 온도가 있어 어떤 사람은 따뜻하게 느껴지고 어떤 사람은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 사람의 온도는 그 사람의 분위기(언행)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따뜻한 사람 : 예수님, 이삭, 모세, 사도 바울 등
냉냉한 사람 : 이스마엘, 사울왕,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 등
1) 따뜻한 마음은 말씀과 기도가 공급되어야 합니다.
1) 따뜻한 마음은 말씀과 기도가 공급되어야 합니다.
따뜻한 언행은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마음이 따뜻하지 않으면 따뜻함은 나올 수 없습니다. 따뜻한 마음은 말씀과 기도가 공급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따뜻하게 해야 따뜻한 언행이 나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의 에너지로 바뀝니다.
몸과 머리가 운동하는 25%, 몸의 체온을 유지하는데 75%를 사용합니다. 36.5도의 온도를 일정하기 계속 항상 유지하는데 음식이 결정적으로 필요하듯이 마음의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는데 필요한 양식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매일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따뜻한 성도의 공통점은 말씀과 기도 시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열정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질 때 마음에 열정이 생깁니다. 불같은 말씀을 먹어야 마음에 불(열정, 따뜻함)이 생깁니다.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레미야 23:29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2) 따뜻한 마음은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2) 따뜻한 마음은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가집니다. 차가운 마음은 무관심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미움은 아직도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 부드러운 성품입니다.
□ 부드러운 성품입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피하는 사람이다.
수욕을 받아도 참고 분을 제어하고 싸움을 피한다
잠언 12:16 “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성경 가운데 인물 중에 이삭을 한번 보겠습니다. (모세, 다윗 등)
1) 이삭은 이스마엘 희롱에 대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1) 이삭은 이스마엘 희롱에 대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이스마엘의 희롱은 악의에 찬 조소(비웃음)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약속받은 언약의 아들인 이삭을 희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비웃음 거리로 만드는 행동으로 마땅히 책임을 져야할 행동이였습니다. 이에 하갈과 이스마엘은 내 쫓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에 어떻게 행했다라고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희롱에 대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약속받은 언약의 아들로서 감히! 괴씸하게! 종의 자녀인 네가!
하지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사라가 보았고 근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결정을 하게 도와 주셨습니다.
2)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가지고 시비를 걸 때 온유하게 싸움을 피했습니다.
2)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가지고 시비를 걸 때 온유하게 싸움을 피했습니다.
이삭이 가나안 땅(그랄)에서 번성하자 이를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판 모든 우물을 매우고 이삭을 쫓아 냈습니다.
이후에도 이삭이 이주하는 곳마다 찾아와 그가 판 우물을 계속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이들의 무례함에 얼마든지 무력으로 대항할 수 있엇지만 온유하게 대처했습니다.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그랄 골짜기 우물 :에섹, 싯나, 르호봇 / 이삭은 그 당시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는 물의 근원인 우물을 빼았기고 다투었을 때 피함
창세기 26:22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의 온유함과 하나님의 축복은 결국 블레셋 왕 아비멜렉을 감동하게 하였음(창 26장)
사람들은 외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온유한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온유한 자는 사람들을 자신의 올바른 믿음으로 설득하거나 선교하지 않아도 그의 온유함이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우리는 힘들고 답답하고 속상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악한 자들에게 조롱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끝까지 온유함으로 이겨야 합니다. 어둠은 절대 어둠을 이기지 못하고 오직 빛이 어둠을 이깁니다. 마찬가지로 온유함으로 선을 행할 때 비로소 악을 이길수 있다. 같이 미워하고 다투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회사에서 한 직장인이 동료에게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았습니다. 동료는 뒷담화를 하고 일부러 실수를 떠넘겼습니다. 하지만 이 직장인은 화를 내거나 맞서 싸우지 않고, 오히려 동료가 힘들고 어려워 할 때 도와주며 거들어 주었고 작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동료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사과했고, 두 사람은 진정한 동료가 되었습니다. 선과 온유함이 악을 이긴 순간이였습니다.
온유무엇인가? 어원적 의미 : 프라우스 = 파생) 프라우테스 말 = 길들여진 야생마
온유무엇인가? 어원적 의미 : 프라우스 = 파생) 프라우테스 말 = 길들여진 야생마
온유 : 헬) 프라우스(사랑을 기반으로 한 부드러움과 온화함)
"프라우스(πραΰς)"의 어원적 의미는 단순히 '부드럽다'거나 '나약하다'가 아니라, 강한 힘이 길들여져 통제된 상태를 뜻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단어를 주로 "길들여진 말"에 비유했습니다.
옛날에는 벌판을 질주하던 야생마를 길들여 교통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길들여져서 순해진 말을 “프라우테스 말”이라고 불렀다
사나운 맹수를 훈련시켜 주인의 명령에 잘 순종하고 따를 때, 주인은 이 짐승을 향하여 “프라우테스” 즉 온유 해졌다 라고 말했습니다.
야성은 살아 있지만 완벽히 길들여진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강한 성품을 주인말을 위해 쓰기 때문에
주인이 뛰어 가라고 명령하여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적직 속으로 뛰어가며 자기(말은)는 전혀 안 가고 싶겠지만 그래도 갑니다.
주인이 멈춰라고 명령하면 자기(말은)는 더 달리고 싶어도, 그 자리에 섭니다.
야생마가 훈련을 통해 주인의 고삐에 순종하며 힘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온유는 자동차처럼 엑셀과 브레이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 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영적으로 브레이크와 엑셀를잘 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66권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말해 줍니다.
행하라, 행하지 말라. Go 와 Stop, 갈 때와 멈출 때를 말해줍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는 무서운 사고를 일으키게 됩니다. 절제를 읽어버린 삶, 자신의 힘이 조절되지 못한 인격,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는 성품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습니다.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예수님께서는 절제의 온유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마태복음 27:40 “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러나 예수님은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온유는 무력함이나 무능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절제된 힘입니다.
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다윗은 인생중에 밧세바와 간음하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다윗은 목욕하는 밧세바의 아름다움을 보고 음욕이 올라왔을 때 양심은 ‘스톱(Stop), 멈춰, 브레이크를 밟아’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엑셀을 더 밟았습니다. 결국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는 큰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절제를 상실, 온유를 잃어버림)가 되었습니다.
잘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브레이크는 차가 멈추기 위한 것이기 보다 잘 달리기 위한 장치입니다.
무슨소리야 브레이크는 멈추는 장치지 부스터도 아니고 잘 달리기 위한 장치라니...
브레이크가 있으면 마음껏 엑셀레이터를 밟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멈출 수 있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속도는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절제는 영적인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껏 달려가야 하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브레이크 신호가 오면 멈춰야 하는 절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브레이크가 잘 작동되는 사람을 온유(프라우스)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향하여 길들여진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신을 다스리고 통제하시도록 내어 맡긴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죽는 삶,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 그래서 말씀에 사로 잡힌 삶(주님께 사로 잡힌 삶)이 진정으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9:23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5:31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행전 18:5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예수님 때문에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을 위해서 욕심과 성질과 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5:24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가 가진 힘이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집중이 되어 있는 것이 온유한 것이며 자신이 가진 힘을 주님을 위해 사용할 줄 하는 성품이 온유한 성품입니다.
요셉은 총리대신이라는 막강한 힘을 복수(형들, 보디발의 아내)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을 건지는데 사용하였습니다. 7년 간의 풍년을 잘 준비하여 7년간의 흉년을 잘 견딜 수 있게 한 사람. 요셉은 참으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성품의 유익
온유한 성품의 유익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온유한 마음이 있어야 말씀을 잘 깨닫게 된다
□ 온유한 마음이 있어야 말씀을 잘 깨닫게 된다
시편 25:9 “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야고보서 1:21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는 자는 말씀을 잘 깨닫게 됩니다. 온유한 마리아는 주님의 발 밑에서 말씀 듣기를 좋아했고, 주님 말씀을 잘 깨달아 주님의 장사를 잘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습니다.
누가복음 10:39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요한복음 11:2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마태복음 26:12–13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 온유한 마음이 있어야 말씀을 잘 전파할 수 있다.
□ 온유한 마음이 있어야 말씀을 잘 전파할 수 있다.
베드로전서 3:15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전도하러 오셨고 온유함으로 전도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온유한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전도는 명령이라고 하셨습니다. (딤후4:1) 명령은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 명령인 전도를 함에 있어 우리는 온유한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마가복음 1:38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는(잠 15:1) 말씀처럼, 말 한마디로 천냥 빛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전도할 때 부드럽고 따뜻한 말로 전도해야 합니다.
온유는 얼음을 녹이는 봄바람처럼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이 다른 사람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전도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 무지하거나, 반대로 너무 공격적일 때 욱하지 말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온유함을 유지하는 것이 온유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자메이카 원주민들 : 당신들의 말속에 온유라는 말을 무슨 뜻으로 해석합니까? ‘사나운 물음에 대하여 부드럽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잠언 15:1 “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 땅을 차지, 풍부한 화평으로 즐긴다.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 땅을 차지, 풍부한 화평으로 즐긴다.
마태복음 5:5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시편 37:11 “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의미는 천국에서 상급이 있다는 말이고, 이 세상에서도 주님의 은총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폭력으로, 총 칼로 세상을 정복해 보려던 자들은 다 망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32), 칭기즈칸(65-67), 나폴레옹(51-52), 히틀러(56) 등은 잠시 땅을 차지 하는 듯 했으나 다 빼앗기고 말았고 제명에 죽지 못했습니다.
거듭난 성도만이 세세토록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진정으로 영원한 땅을 영원히 소유하는 자는 세상 영웅이 아니라 온유한 그리스도인 입니다.
요한계시록 21:1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온유한 자는 풍부한 화평을 즐긴다 : 나폴레옹과 헬렌켈러 비교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 황제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 : 라고 고백했고 시각 청각 언어 장애에 시달렸던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 라고 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19세기에서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인물은 나폴레옹과 헬렌 켈러다.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다 실패했고, 헬렌 켈러는 세계를 마음의 힘으로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태어난지 19개월 되었을 때 심한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났으나 그 여파로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말하지도 못하는 시각과 청각장애에 언어장애라는 삼중고를 안고 평생을 살아셨던 헬렌 켈러 여사가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라는 고백은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심령의 평강을 허락하신다.
전도서 2:24 “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 주님의 마음을 본받으면 :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고, 마음에 불평이 사라지고,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생기며, 주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된다.
예수님의 마음을 갑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갑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품는 것이다.
예수님의 태도는 사람들을 긍휼로 대하셨다. 우리도 사람을 긍휼로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예수님 마음으로 품는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 형제 자매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빌립보서 1:8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예수님은 온유 자체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유의 모델인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배운다는 것은 따라하는 것이다(예수님 따라하기).
매 상황마다 ‘예수님이라면 이 때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무어라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선택했을까?’를 염두해 두고 말하고 행하고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의 마음은 예수님 마음이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려고 평생을 노력했다.
다윗도 예수님 마음을 본받으려고 평생 노력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다.
고린도전서 11:1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사도행전 13:22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33구역 형제 자매님들도 온유한 자세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함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