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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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삼상 13장 8절- 14절
사무엘상 13:8–14 NKRV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서 반드시 우리의 믿음의 진의가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시험하신다 라고 표현합니다. 영어로는 test입니다.
시험이 세 종류이지요 첫번째는 test이고 두번째는temptation이고 세번째는trail 입니다. 우리 한국말로는 다 시험이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어서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영어성경에는 구분을 해 놓았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나 시험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시험이 어떤 시험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세가지 각각의 시험의 내용과 각각의 대응방법도 다 다릅니다.
trail 고난이라고 표현되는 이 고난은 견뎌내야 합니다.
야고보서 1:2–3 LEB
Consider it all joy, my brothers, whenever you encounter various trials, because you know that the testing of your faith produces endurance.
야고보서 1:4 NKRV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우리의 본성은 trail 을 만나면 견디려고 하지 않고 도망가려고 합니다. 피하려고만 합니다.
두번째 temptation 는 무조건 도망가야 합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가야 합니다. 이 시험은 마귀가 합니다.
요셉이 잘했지요. 보디발의 아내, 노예인 자신의 주인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할때 옷까지 내팽개치고 도망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억울한 누명도 썼습니다만 , 결과적으로 보았을때 요셉이 총리가 된것은 바로 이 고난에서 잘 도망을 쳤기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이러할때 도망가지 않고 머물려고 합니다.
사무엘하 11:2 NKRV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여기서 본다는 말이 원어적으로 의도적으로 주목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fixed his eyes on , behold. 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창가에서 복음을 전한답시고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포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유혹은 인내하면서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다 집니다. 넘어집니다. 도망가야 합니다.
세번째 test는 쭉 앞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temptation이 사탄이 하는것이고 test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누군가의 믿음의 어떠함을 드러내시려고 그에 걸맞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고자 상황을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통과할때가 된 사람에게 시험을 주셔서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못하면요? 다시 제자리이지요. 아니 어쩌면 더 뒤로 후퇴할수도 있습니다. 민수기 큐티에서 가데스바네아의 정탐 사건이 정확히 그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그자리에 오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회전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시험을 이기고 극복하면, 하나님은 다음단계의 세계를 열어주시고 축복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을 재물로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22:1 LEB
And it happened that after these things, God tested Abraham. And he said to him, “Abraham!” And he said, “Here I am.”
창22장 1절은 그것이 분명 하나님에게서 온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을 달아보시기 위해서이셨습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것도 순종함으로 받을수 있는지를 시험해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어떻게 통과했습니까? 하나님이 이삭을 정말로 죽여서 없음으로 하시지 않을 것을 믿었습니다. 왜 입니까? 이삭을 통해서 메시야를 주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어길분이 아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히브리서 11장 18절부터 19절까지는 그때의 아브라함의 심정을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이렇게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11:18–19 NKRV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축복을 받습니까?
창세기 22:17–18 NKRV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오늘 사울에게 이것과 동일한 시험이 왔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상황을 붙드냐의 시험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 제사를 인도할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사무엘이 오기로 약속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기간이 일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다 되도록 사무엘이 오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동요하면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은 암몬군대와는 비교가 안되는 강력한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암몬은 으샤으쌰하면 이길수 있는 나라였지만 블레셋은 병거가 삼만, 마병이 육천명, 나머지 군사들은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질려버릴 만큼 압도적인 군사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도 질려버릴만큼 위세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3:5 NKRV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이런상황에서 7일안에 온다고 하던 사무엘이 오지 않자, 백성들은 흩어지고 있었고 그것을 보다못한 사울이 예배를 인도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때에 사무엘이 약속을 어기고 완전히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늦어버렸으니 어떻게 할수 있었겠느냐.. 늦은 사무엘이 잘못이지 어찌 사울탓만 할수 있겠나? 그렇죠? 또 반대로는 사무엘이 아무리 늦어도 기다려야 한다며 목회자의 귄위나 위치를 쓸데없이 높힐려고 하는 것입니다. 둘다 틀렸습니다.
10절에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일이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3:10 NKRV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그런데 영어성경이나 원어 성경을 보면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냥 예배가 아니고 그 예배입니다. 그냥 예배는 사무엘이 아니어도 제사장을 통해서 드려도 됩니다. 이 그 예배는 사무엘과 사전에 약속된 예배를 의미합니다. 사무엘이 와서 인도하기로 한 그 예배입니다. 그냥 예배가 아니고 말입니다. 아마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이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전쟁을 치루게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안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그 예배를 인도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끝나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를 들면 이런것입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사이에 예배를 드리기로 사무엘과 사울이 약속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까지 기다렸는데 사무엘이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배를 사울이 인도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가 토요일 해질녘쯤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가 끝나자 마자 사무엘이 온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약속의 날이 채 다 지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오기로 약속한 날이 채 저물기도 전에 사울이 서둘러 예배를 드려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사울이 성급했던 것입니다. 최소한 마지막 날 저녁까지는 기다려야 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할수 있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칼을 들어 이삭을 치려할때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셨습니다. 끝까지 지켜보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날때까지 말입니다.  
사울은 그 마지막까지 기다릴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하나님이 이 전쟁의 주관자이시고 지금 이 예배는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임을 솔직히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보다는 지금 눈앞에 흩어지는 이스라엘백성들을 붙잡는 것이 더 중요했고 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상대화시키고 상황을 절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테스트의 실체입니다.
사울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인격적 도구가 아닌 역할의 분담으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 역할을 해버리면 예배는 드려진 것이고 그 예배가 드려지면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십시요. 철저히 하나님이 없습니다. 왕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붙잡아 두는 것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이 가진 믿음의 밑천이었습니다.
사울이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며 진정으로 예배할려고 했더라면 사울자신에게도 이루 말할수 없는 영광이요 축복이 될뻔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13절을 보십시요.
사무엘상 13:13 NKRV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시험이 아브라함 개인에게도 결코 복이었을 수밖에 없었듯이 만일 사울이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신뢰함으로 겸손함으로 나아갔더라면 그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믿음있는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날마다 커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더욱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셨으면 그것을 붙잡고 그렇게 실제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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