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6일 (토)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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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매인 자

사도행전 20:17–25 NKRV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도입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핵심 구절인 1장 8절의 말씀처럼 살았던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이란 인물 자체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여기에 모인 우리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사도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가는 그 길에 그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

분명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고 사도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시작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9:3–9 NKRV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이 때 사도바울이 만난 예수님은 12제자들을 파송한 예수님이셨지만 똑같은 존재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 인지 할 수 있고 만나실 수 있는 “소위 부활체”를 가지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가장 지독한 박해자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 변화 된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설명 할 길이 없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도 바울의 변화 또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 파송 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은 사도행전의 주제의 말씀이면서 교회를 교회되게하고 저와 성도님들의 삶 전체의 주제가 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님이 임하시면 ...” 오직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의 증인이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증인이라는 단어 헬라어로 “말튀스”입니다. 법정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법정에서 증인이 되려면 “범죄 현장”이나 “사건의 중요한 현장이나 인물을 직접 본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직접 본 사람”이어야하는 것입니다. 직접 본 사람만이 순교자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성령에 매인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에 매인 자 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증인이었으며 그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 중요한 부분을 볼 수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약 20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면 그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믿게되었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도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본 “목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또한 증인의 삶은 학위나, 전문적인 공부를 한 사람이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사역의 목격자이면 누구든지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원 마다 잘 치료하는 분야가 다릅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특출난 한 명의 의사입니다. 그 의사 때문에 그 병원이 소문이 나는 것이죠. 한 번 그 의사를 경험한 사람이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이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데는 의학적인 전문지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사가 아니어도 됩니다.
-단지 그 의사를 통하여 치료 받은 것을 경험했고 그 의사를 만난 인것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전도자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지식이 있어야 하거나 학자가 되어야 하거나 특별한 과정을 거치는 자가 복음 전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 둘 중에 하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 경험자들이어 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말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된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그 복음의 사건을 직접 보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 매인 자는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직접 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성령에 매인자였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배소교회의 장로들에게 전하는 고별설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무슨 일을 일어날지 나는 모른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결박과 환난이다.” 그러면서 아주 유명한 구절 아주 잘 알고 계시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20:24 NKRV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생명에 대한 부분을 확답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상황은 불확실하고 아무것도 예상 할 수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신하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명을 보장 할 수 없는 순간에도 달려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입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성령에 매인 자는 어떠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까? “말튀스” 앞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복음을 증언 하는 일”입니다. 에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새롭게 태어났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담보 할 수 없는 상황에도 성령에 매인자였던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서도 이렇게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4:5–8 NKRV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7절에서 말씀하는 선한 싸움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달려가야 할 길”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 복음을 위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증인의 삶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매인자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또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고 있는가? 이것은 기독교 사역에서 “전도”라는 사역의 일부분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물어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삶”자체가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의 증인으로 살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종교인과는 다릅니다. 참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 자체가 예배이며 그 사람이 삶 자체가 “증인”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제자 또는 그리스도인일 할 수 없고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현상적인 경험, 치유, 기적적인 사건이 성령충만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령충만의 완전한 열매는 아닙니다.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증인의 삶을 살아 갈 때 그서이 성령충만의 완전한 열매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현상에만 집중하며 종교인으로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처럼 “오직 성령님이 임하시면 ...” “증인이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에 매인자는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성도님은 성령에 매인자입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 증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하여 신을 섬기는 종교인입니까?

마지막으로 2가지만 더 언급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성령에 매인 자는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른다. (오히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그리스도 예수님께만 확신을 두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증인들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특별한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사회변화 주기가 10년이 아니라 5년 아니 1년도 안되서 각 분야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분야의 책을 쓰려고 할 때 책을 출판할 때 쯤 1년 안되서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급박한 변화 앞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브람이었을 때 주님의 음성에 확신하고 순종했던 것이지 미래를 확신했던 것이 아닙니다.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결박과 환난 일지라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예수의 재림이 다가 올수록 이 세상과 대적들은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괴롭게 할 것입니다. 그때에라도 주님만 의지하고 그것을 피하여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히려 부딪혀야하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고로 가치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의 생명보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심플”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방향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팅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의 사도 바울에 고백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빌립보서 3:7–12 NKRV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이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또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외에는 배설물로 여긴다.
-어떠한 순간에도 안주하지 않고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달려 갈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에 매인 자였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인생이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성령에 매인 자는 “내게 유익하다고 쫗았다녔던 것을 그리스도 때문에 다 해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금욕적인 경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지식, 다른 가치는 우리에게 배설물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에 매인자는 어떠한 순간에도 안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삶의 모든 방향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 할렐루야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 책에 기록된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우리 삶 가운데 영향력 끼치고 있느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증인된 우리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하나닙니다. “증인의 삶”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일부터 시작되는 한 주도 예수님께 매인 자로 성령의 매인자로 증인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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