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쳐서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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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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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기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장 26절-31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 27).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이것이 우리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근거입니다(창 9:6).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사람은 동물과 같은 날에 창조되었지만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혼자 계신 분이 아니라 관계 속에 계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본성 자체에 성부 성자 성령 즉 삼위일체라는 관계성을 포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람도 관계성을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뜻합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할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성을 갖고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찬양하고 순종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갖지 않고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타락이전의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사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소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눈은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 항상 열려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대하여 감사와 사랑으로 반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전 생애를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이 형상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 신뢰, 복종, 예배하는 사람, 하나님에게 기도, 감사, 응답, 반응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그대로 반영하는 탁월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짓기 이전에도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창세가 2장 18절 말씀에 아담이 혼자 있을 때 좋지 못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혼자 일 때는 좋지 못했는데 둘이 되니 심히 좋아졌습니다.
혼자서 100점이 되는 것은 죄가 하나도 없었던 아담도 안 된 일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혼자 백점을 맞을 수는 없었습니다. 둘이 합쳐 백점을 맞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둘이 합치면 그에게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드러납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합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를 온전이라고 바꾸어 표현해도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온전할 수 없으나 '우리'는 온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가정, 좋은 교회가 되는 비결도 이 안에 있습니다.
우리 각각이 100점이 되려고 하거나 100점이 되라고 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교회는 합해서 100점이 되려고 하는 교회입니다.
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둘이 합해 100, 천이 합해 100이 되면 됩니다.
이건 너무 쉬운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대부분 점수가 95점은 됩니다.
거기다 내 5만 보태도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아집니다.
둘이 합하면 쉽게 100이 됩니다. 셋이 합해 100이 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타나는 현상이나 결과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100을 이루는 것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합해서 100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각각 100을 이루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인 사람들끼리 모자라는 부분을 내가 채워 100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너는 30이 모자란다, 너는 15가 모자란다, 45나 모자라는 네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비난합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100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점수가 95로 나와도 나머지 5를 채워 100이 되라고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모자라는 5를 지적하고 그 5를 비판합니다.
그 모자라는 몫이 하나님께서 채우라고 하신 자기 몫임을 모릅니다.
그걸 자신이 채워 주어서 100을 만들 생각을 못합니다.
자신이 모자는 50은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모자라는 5를 더 크게 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인색합니다.
그러니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5 모자라는 사람을 미워하며 시기합니다.
저 사람의 모자라는 것 때문에 될 일이 안된다고 여기며 원망하고 미워하다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도 다 일어버립니다. 원망하고 비판하다보면 자신이 원망의 노예가 되어 끌려갑니다. 너무도 힘든 고역입니다.
제가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점수가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95점 이상 100점인 분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95점은 혼자 맞을 수 있는 한계 점수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홀로 95점을 맞은 사람에게 조금 더 노력해 100점을 맞으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 5는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100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합해서 100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상대의 100에서 모자라는 점수는 그 모자람을 발견하는 분의 몫입니다.
만약 우리가 만나는 분이 70점이면 신납니다. '우와, 내가 30점만 보태도 우리 100이되네.' 자신의 점수가 60, 혹은 70이 되어도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만날 사람들이 그 부족한 점수를 채워 100이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홀로 100 점을 맞으려는 할 수도 될 수도 없는 일을 위해 뛰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러주신 복된 길이 있습니다. 합쳐서 100을 이루는 겁니다.
둘이면 둘이 함께 100을, 셋이면 셋이 함께 100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와 함께하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교회가 힘이 있으려면 서로에게 100이 되라고 하지 않고 나를 더해 100을 만들려는 성도들로 가득 차야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함께 100을 이루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습니다. 세상 시험은 혼자서 100점을 맞으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합해서 100점을 맞으라니 이 얼마나 은혜입니까?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신나는 일 아닙니까?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합해서 100점을 맞는 이런 특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특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장 26절-31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 27).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이것이 우리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근거입니다(창 9:6).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사람은 동물과 같은 날에 창조되었지만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혼자 계신 분이 아니라 관계 속에 계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본성 자체에 성부 성자 성령 즉 삼위일체라는 관계성을 포함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람도 관계성을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뜻합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할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성을 갖고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찬양하고 순종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갖지 않고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타락이전의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사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소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눈은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 항상 열려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대하여 감사와 사랑으로 반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전 생애를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이 형상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 신뢰, 복종, 예배하는 사람, 하나님에게 기도, 감사, 응답, 반응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그대로 반영하는 탁월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짓기 이전에도 사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창세가 2장 18절 말씀에 아담이 혼자 있을 때 좋지 못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혼자 일 때는 좋지 못했는데 둘이 되니 심히 좋아졌습니다.
혼자서 100점이 되는 것은 죄가 하나도 없었던 아담도 안 된 일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혼자 백점을 맞을 수는 없었습니다. 둘이 합쳐 백점을 맞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둘이 합치면 그에게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드러납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합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를 온전이라고 바꾸어 표현해도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온전할 수 없으나 '우리'는 온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가정, 좋은 교회가 되는 비결도 이 안에 있습니다.
우리 각각이 100점이 되려고 하거나 100점이 되라고 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교회는 합해서 100점이 되려고 하는 교회입니다.
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둘이 합해 100, 천이 합해 100이 되면 됩니다.
이건 너무 쉬운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대부분 점수가 95점은 됩니다.
거기다 내 5만 보태도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아집니다.
둘이 합하면 쉽게 100이 됩니다. 셋이 합해 100이 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타나는 현상이나 결과는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100을 이루는 것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합해서 100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각각 100을 이루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인 사람들끼리 모자라는 부분을 내가 채워 100을 만들려고 하기보다 너는 30이 모자란다, 너는 15가 모자란다, 45나 모자라는 네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비난합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100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점수가 95로 나와도 나머지 5를 채워 100이 되라고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모자라는 5를 지적하고 그 5를 비판합니다.
그 모자라는 몫이 하나님께서 채우라고 하신 자기 몫임을 모릅니다.
그걸 자신이 채워 주어서 100을 만들 생각을 못합니다.
자신이 모자는 50은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모자라는 5를 더 크게 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인색합니다.
그러니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5 모자라는 사람을 미워하며 시기합니다.
저 사람의 모자라는 것 때문에 될 일이 안된다고 여기며 원망하고 미워하다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도 다 일어버립니다. 원망하고 비판하다보면 자신이 원망의 노예가 되어 끌려갑니다. 너무도 힘든 고역입니다.
제가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점수가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95점 이상 100점인 분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95점은 혼자 맞을 수 있는 한계 점수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홀로 95점을 맞은 사람에게 조금 더 노력해 100점을 맞으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 5는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100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합해서 100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상대의 100에서 모자라는 점수는 그 모자람을 발견하는 분의 몫입니다.
만약 우리가 만나는 분이 70점이면 신납니다. '우와, 내가 30점만 보태도 우리 100이되네.' 자신의 점수가 60, 혹은 70이 되어도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만날 사람들이 그 부족한 점수를 채워 100이 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홀로 100 점을 맞으려는 할 수도 될 수도 없는 일을 위해 뛰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러주신 복된 길이 있습니다. 합쳐서 100을 이루는 겁니다.
둘이면 둘이 함께 100을, 셋이면 셋이 함께 100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와 함께하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교회가 힘이 있으려면 서로에게 100이 되라고 하지 않고 나를 더해 100을 만들려는 성도들로 가득 차야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함께 100을 이루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습니다. 세상 시험은 혼자서 100점을 맞으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합해서 100점을 맞으라니 이 얼마나 은혜입니까?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신나는 일 아닙니까?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합해서 100점을 맞는 이런 특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특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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