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13) 열등감이 낳은 영적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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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약 3 분)
서론 (약 3 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니고데모와의 밤 이야기가 끝난 바로 그다음 장면―
요단 강가의 새벽으로 걸어가려 합니다.
성경은 단 한 구절, “그 후에”(22절)라고만 말합니다.
니고데모를 통해 배운 ‘거듭남’의 모델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Ⅰ. 시기의 정체 ― 비교가 낳은 영적 독
Ⅰ. 시기의 정체 ― 비교가 낳은 영적 독
(요 3:26을 천천히 읽는다)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있던 그분 곧
당신이 증언하시던 그분이 요단 저편에서 세례를 베푸시는데
모든 사람이 그에게로 가나이다!”
‘모든 사람.’
여러분, 이 말은 과장이 섞인 탄식입니다.
백 명 중 열 명만 가도,
우리 마음은 ‘전부 다’로 느끼는 법이니까요.
1. 시기의 뿌리: “나도 인정받고 싶다”
1. 시기의 뿌리: “나도 인정받고 싶다”
시기는 사실 아주 인간적인 갈망에서 시작됩니다.
사랑받고 싶고,
이름이 불리길 원하고,
내 노력도 빛나길 원하는 마음.
문제는 그 갈망이 비교라는 거울을 만나면
즉시 독성(reaction) 으로 변질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상담 사례—익명, 각색)
(실제 상담 사례—익명, 각색)
몇 해 전 한 청년이 상담실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 친구가 스타트업 대박이 났대요.
‘너무 축하해!’ 메신저를 보내놓고,
잠이 안 옵니다.
사람이 될수록 못난 마음이 커지는 것 같아요.”
그는 친구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왜 나는 뒤처진 느낌일까?”
시기는 종종 타인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칼을 들이댑니다.
2. 성경 속 시기의 족보
2. 성경 속 시기의 족보
가인과 아벨
제사는 ‘예배’였지만, 가인은 예배의 자리에서
형제를 보며 시기를 키웠습니다.
시기는 흔히 가장 거룩해 보이는 자리 에서도 자랍니다.
사울과 다윗
“사울이 죽인 자는 천 천, 다윗은 만 만.”
노랫말 한 줄이 사울의 왕관을 흔들었습니다.
왕관은 머리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요셉과 형제들
아버지 야곱의 편애, 화려한 채색옷, 요셉의 꿈 이야기.
작은 편애가 시기를 부추기자, 형제들은
결국 ‘피 없는 살인’—노예로 팔아 버리는 극단을 선택했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시기는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방치하면 반드시 행동으로 번역되고,
그 행동은 죄를 잉태하여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Ⅱ. 시기의 증상 ― 세 단계의 내면 파괴
Ⅱ. 시기의 증상 ― 세 단계의 내면 파괴
시기는 감기처럼 단계적으로 심각해집니다.
1단계 불편 → 2단계 비하 → 3단계 적의.
1. 불편(Discomfort)
1. 불편(Discomfort)
SNS 스크롤:
여행사진, 커플사진, 새 차 사진.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만 심장이 미세하게 쪼그라드는 느낌.
직장 이메일:
“축하합니다! 승진을 확정합니다.”
읽는 순간 얼굴은 미소, 등줄기는 서늘.
카페 자리 예약:
친구는 책 출간 인증샷을 올리고,
나는 그대로 미리 써둔 글을 ‘임시저장’만 반복.
‘불편’ 단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작은 미세 균열이 시작됩니다.
“나도 저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나?”
이 독백이 2단계로 우리를 밀어 넣습니다.
2. 비하(Devaluation)
2. 비하(Devaluation)
타인을 깎아내리는 말로 내 열등감을 완충합니다.
“저 집, 부모 지원이 크대.”
“SNS 사진은 다 뻥이야.”
혹은 자기 자신을 깎아내립니다.
“나는 원래 되는 게 없어.”
“난 저 사람만큼 노력해도 소용없어.”
두 방식 모두 영혼을 손상합니다.
타인을 깎으면 관계가 꺾이고,
자기를 깎으면 정체성이 마모됩니다.
3. 적의(Hostility)
3. 적의(Hostility)
사울: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요셉 형제들: 살의까지는 아니지만,
‘구덩이·노예·침묵’이라는 간접 살인을 실행했습니다.
우리 시대:
소셜미디어 악플, 음해성 루머,
‘같이 못 살아!’ 하고 교회를 떠나는 결별 선언.
적의까지 진행되면, 시기는 나도, 상대도, 공동체도 찌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왜 제 잔은 이렇게 비어 있습니까?”
이 순간, 시기는 하나님을 공급자가 아니라
부족분의 책임자로 바꿔 버립니다.
예배는 차갑게 식고, 감사는 얼어붙습니다.
이런 내용은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잘 설명되어 있다.
아들러는 인간의 생활 양식의 근본을 결정하는 것으로 열등감을 꼽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을 느낀다.
적당한 열등감은 현재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신을 평가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완성을 이루기 위해 이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
이 내용을 중심으로 일본의 철학자가 쓴 베스트셀러가 ‘미움받을 용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약 10년 전에 대히트를 했던 책이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이렇게 열등감을 극복하라고 결론내립니다.
‘당신은 누구의 인생도 살아줄 필요가 없다.
당신은 단 한번, 오직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삶을 선택하려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철학자의 사상은 10년 동안 사회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사람들에게 행동 가이드를 준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부모나 상사나 어른들의 요구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자기자신으로 살아보려고 몸부림 쳤다.
하지만 결과는 더 큰 혼란과 방황이었고, 삶에 대한 길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초래했다.
어떻게 이 열등감이라는 바이러스를 극복할 것인가??
Ⅲ. 시기의 치료 ― 은혜의 백신
Ⅲ. 시기의 치료 ― 은혜의 백신
세례 요한은 제자들이 ‘모든 사람이 그에게로 간다’고 호들갑을 떨 때
이 백신을 즉각 꺼내 듭니다.
1. 은혜 인지 백신
1. 은혜 인지 백신
(27절)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모든 칭찬·인기도·열매조차 하늘의 선물입니다.
선물을 선물로 인식하면
‘빼앗길까 두려워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현대 예화—숨은 기도의 열매)
(현대 예화—숨은 기도의 열매)
영국 런던의 한 동네 교회가 있습니다.
늘 20~3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공동체였지만,
몇 년 사이 인근 대형교회가 부흥하며
젊은이들이 대거 이동했습니다.
그 교회 부목사님 한 분이 솔직히 고백해 주셨어요.
“처음엔 속이 상했습니다.
무릎 꿇어 기도하다가 깨달았지요.
주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영혼이구나.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은 성도들이 오히려 더 깊은 돌봄 을 경험하게 됐어요.”
하늘에서 주셨다는 시각이 바뀌니,
‘잃음’이 아니라 재배치된 은혜 로 보이더랍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묻는 것은
하나님이 니고데모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을 때에 그 마음에 대한 의지적인 선택으로 인해
여러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그것을 묻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판단한 니고데모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으로 인하여 니고데모는 진리를 알게 되었고, 거듭남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또 구원과 심판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제자들과 더불어 오늘 날 우리들도 거듭남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부자청년에게 예수님을 찾아갈 마음을 주셨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계명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청년은 반가운듯 자기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어서 예수님은 그에게 그렇다면 이제 한가지만 네가 하면 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말씀했다.
이것은 누구나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시험이 아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재산을 전부 팔아서 나눠주라는 것은 그에게 거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보와와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겉모양은 영원한 것에 관심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속사람은 세상의 것이나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심히 근심하며 떠났다.
이 시기에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허덕이며 고통을 당하고 있어서
하나님은 그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사람을 찾으셨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사람으로 부자 청년을 부르셨다.
그러나 그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19장에 하나님은 다음 부자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신다.
삭개오라는 부자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한 번 보고싶은 마음이 들어
나무 위에 올라가 그를 만났다.
예수님은 그를 보고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한 뒤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고백했다.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2. 정체성 재부팅 백신
2. 정체성 재부팅 백신
(28절)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
세례 요한은 자신을 웨딩 사진 속 친구로 인식했습니다.
신부·신랑이 중앙에 서고,
친구는 한 걸음 뒤에서 두 사람의 행복을 환호합니다.
(적용)
(적용)
가정:
부모인 우리가 주연(Star)일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가 칭찬받을 때 “저것도 주님이 키우셨다” 하고
뒤에서 박수쳐 주십시오.
직장:
팀원이 스포트라이트 받을 때,
한 발 물러나 “나는 조연이어도 괜찮다”
속으로 고백해 보십시오.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리만큼 시원해지는 해방을 맛볼 것입니다.
3. 축복 선언 백신
3. 축복 선언 백신
(29절)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기뻐하나니 기쁨이 충만하도다.”
기쁨이 충만하면 입은 자동으로 축복을 뿜어냅니다.
축복은 시기를 질식시키는 천연 항생제!
(구체 도전)
(구체 도전)
이번 주에 마음이 씁쓸해지는 바로 그 사람에게
음성 혹은 2) 손글씨 카드로
축복 문장을 보내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놀랍게도, 축복하는 순간
시기의 불씨가 꺼지고,
대신 영혼의 산소가 공급될 것입니다.
결론 ― 마음 PCR 검사와 기도
결론 ― 마음 PCR 검사와 기도
여러분, 지금 머릿속에 비교 대상 한 사람이 떠오르셨나요?
그 이름을 잠시 가슴에 품고,
우리 오늘 영적 PCR을 합시다.
21세기는 ‘무증상 감염’이 가장 위험하다지요.
시기도 그렇습니다.
“나는 별로 시기 안 해” 하며 방치하면
언젠가 예배 자리까지 잃습니다.
빨강 : 남과 비교하며 불편할 때―즉시 기도카드를 꺼내
“주님, 제 마음에 시기가 일어납니다”라고 고백하기.
노랑 : 칭찬 듣고 싶은 마음이 과해질 때―잠시 숨 고르고
“모든 칭찬은 주님이 주셨다”고 속삭이기.
초록 : 남을 진심으로 축복할 때―바이러스 면역력이 생긴 순간입니다.
(기도로 초청하며)
(기도로 초청하며)
“주 예수님,
내 안의 시기를 십자가의 피로 소독해 주십시오.
모든 것은 하늘에서 왔음을 믿습니다.
나는 신랑이 아니라 신랑의 친구임을 감사합니다.
오늘 내가 시기했던 바로 그 사람을
지금 이 자리에서 축복합니다.
그의 삶에 은혜를 더하시고,
내 마음엔 기쁨을 더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잠시 침묵을 준 뒤, 얼굴을 들어 청중을 바라본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기의 바이러스는 기도 한 번에 완치되는 ‘주사형’이 아닙니다.
그러나 은혜·정체성·축복 삼중 백신을
매일 투약하면,
우리는 날마다 더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랄 것입니다.
이번 주, 여러분 가정·직장·교회가
축복의 호흡으로 맑아지기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 공동체에 가득 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설교를 마칩니다.
아멘.
① 마음을 파고드는 ‘시기의 바이러스’ (5-6 분)
① 마음을 파고드는 ‘시기의 바이러스’ (5-6 분)
“모든 사람이 그에게로 가나이다.” (26절)
설명
누군가 칭찬받고, 나는 조용히 뒤로 밀릴 때 마음 깊숙이 들어오는 작고 차가운 감정, 그것이 시기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대형교회-소형교회, 직장 동료, 심지어 가정 형제 사이에도 숨어듭니다.
예화
SNS에서 친구 사진 한 장을 볼 때 “나도 저 정도는 …” 하는 순간 마음이 뻣뻣해지는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적용
이번 주에 ‘시기 신호등’을 한번 만들어 보십시오.
빨강 : 남과 비교하며 불편할 때―즉시 기도카드를 꺼내 “주님, 제 마음에 시기가 일어납니다”라고 고백하기.
노랑 : 칭찬 듣고 싶은 마음이 과해질 때―잠시 숨 고르고 “모든 칭찬은 주님이 주셨다”고 속삭이기.
초록 : 남을 진심으로 축복할 때―바이러스 면역력이 생긴 순간입니다.
② **‘하늘에서 주신 선물’**을 기억하라 (5-6 분)
② **‘하늘에서 주신 선물’**을 기억하라 (5-6 분)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7절)
설명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몰려온 인기도, 설교 능력도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라 고백합니다. 선물임을 알면 빼앗길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화
어린아이가 생일 선물을 받으면 잠시 후 친구에게 “네 것도 열어 보자!” 하고 함께 기뻐하지요. 선물은 경쟁 재료가 아니라 함께 즐길 기회입니다.
적용
이 한 주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 리스트를 적어 보십시오.
시간 : 하루 24시간 중 15분을 말씀 묵상으로 다시 하나님께 드리기.
재능 : 잘 쓰는 글, 다정한 미소, 작은 재능 하나를 누군가 은밀히 섬기는 데 사용하기.
리스트를 쓰면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맡기신 것”이라는 시각이 열립니다.
③ 신앙의 법칙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한다” (5-6 분)
③ 신앙의 법칙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한다” (5-6 분)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30절)
설명
‘흥하다’(increase)는 예수님의 이름이 커지는 것, ‘쇠하다’(decrease)는 내 자아가 자리 비켜 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리 바꾸기입니다. 나는 운전석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예수님이 운전대에 앉으시는 것이죠.
예화
자동차 네비게이션이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고 할 때 우리는 기기를 믿고 핸들을 약간 돌립니다. 신앙도 같습니다. 내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이 ‘쇠함’이요, 동시에 주님 계획이 ‘흥함’입니다.
적용
이번 주 한 가지 결정에서 **‘예수님 네비’**에게 양보해 보십시오.
예: 휴일 계획, 소비 결정, 관계 대화 하나를 주님께 묻고 그 답에 따라 행하기.
작은 양보가 거듭되면 습관의 쇠함이 시작되고, 그 자리를 주님의 흥함이 채웁니다.
결론 (약 2 분)
결론 (약 2 분)
사랑하는 여러분, 시기의 바이러스가 들려주는 속삭임은 “네가 커져야 해!”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려주는 노래는 정반대입니다.
“그분이 커지실수록, 나는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지금 이 시간 짧은 기도로 마치겠습니다.
“주 예수님, 제 마음의 운전대를 주님께 드립니다.
제가 작아질 때, 주님은 커지시고 교회도 살아납니다.
한 주간 이 법칙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론
서론
니고데모와의 깊은 밤 대화가 끝난 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내려가 세례를 베푸십니다.
그 광경을 본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당황합니다.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로 가고 있습니다!”
― 이 말 속에서 우리는 **‘시기’**라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발견합니다.
오늘은 이 본문이 새신자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아주 간단한 세 가지 진리만 살펴보겠습니다.
Ⅰ. 시기의 바이러스
Ⅰ. 시기의 바이러스
(성경책을 들어 26절을 또렷하게 읽는다)
“랍비여, 당신과 함께 있던 그분께로
모든 사람이 가나이다!”
이 울음 섞인 보고 속에 숨어 있는 영적 질병의 이름은 ‘시기’ 입니다.
남의 칭찬이 내 칭찬을 뺏어 가는 듯할 때,
남의 성공이 내 실패처럼 느껴질 때―
바이러스는 이미 혈관 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청중을 바라보며 천천히 질문)
(청중을 바라보며 천천히 질문)
네,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시기는 ‘큰죄’로 자라기 전에 ‘작은 바이러스’로 침투합니다.
지금 미열을 무시하면 영혼의 폐렴이 됩니다. 장애가 됩니다. 죽을 수 있습니다.
- SNS를 스치듯 넘기다가 친구의 여행 사진 앞에
마음 한구석이 톡 쏘인 적, 있으십니까?
- 직장 동료의 승진 메일을 읽다가
얼굴이 이유 없이 뜨거워진 적, 있으십니까?
-지인이 새 집에 입주한 것을 축하해주러 갔다가
마음에 묘한 감정을 느낀적이 있습니까?
-내 친구의 연인이 외모도 좋고, 다정하고, 학벌, 재력, 집안이 더 좋을 때
내 연인에 대한 감정을 느끼신 적 있습니까?
-내 자녀가 다른 자녀들과 비교될 때 느끼는 감정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이 마음의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에는 누구나 노출되기 때문에 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면역이 약한 사람들은 바이러스로 인한 병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마음의 병입니다.
이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과 똑같이 중요하고, 어느 때에는 육체의 질병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흔하게 보이는 이 마음의 병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간과하거나
방치해버리는 모습들을 자주 봅니다.
그러나 아프고 그러다 죽습니다.
교회는 영혼의 병원입니다.
아이들이 병원에 자주 가듯이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이
교회에 자주 와서 진단하고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바이러스에 막강합니다.
(간단한 실천 제안, 말을 끊으며)
(간단한 실천 제안, 말을 끊으며)
이번 한 주, 여러분의 가슴에 신호등을 하나 세우십시오.
빨강 ― “왜 저 사람만?” … 그 순간 즉시 기도하십시오.
노랑 ― “나도 인정받고 싶은데…” … 주님의 십자가를 떠올리십시오.
초록 ― “주님, 저 형제를 축복합니다!” … 면역력이 생긴 순간입니다.
바이러스는 외부에서 오지만, 면역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랍니다.
Ⅱ. 하늘에서 온 선물
Ⅱ. 하늘에서 온 선물
(27절을 읽고, 다시 성경을 내려놓는다)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세례 요한은 인기와 영향력마저 하늘에서 내린 선물이라 말합니다.
선물은 경쟁의 재료가 아니라,
함께 열어 보고 기뻐하라고 주신 축복입니다.
(짧은 어린이 예화를 미소 띠며)
(짧은 어린이 예화를 미소 띠며)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면
조금 뒤에 아이는 친구 손도 끌어와 말합니다.
“이거 봐! 같이 먹자!”
선물을 선물로 아는 사람은
나누어도 모자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생활 적용을 천천히)
(생활 적용을 천천히)
오늘 집에 가셔서 노트를 펴고 이렇게 적어 보십시오.
시간 ― 하루에 15분, 말씀 앞에 비워 두기.
재능 ― 미소, 글, 친절… 그것 하나로 누군가 섬기기.
물질 ― “주셨으니 다시 드립니다.” 작은 헌금, 은밀한 구제.
적어 내려가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맡겨진 것이었구나!”
그 순간 시기의 열은 떨어지고,
감사의 맥박이 힘 있게 뛸 것입니다.
Ⅲ. 자리 바꾸기 ― 그가 흥하고, 내가 쇠한다
Ⅲ. 자리 바꾸기 ― 그가 흥하고, 내가 쇠한다
(30절을 천천히, 두 번 반복하여 낭송)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헬라어 원문은 두 번의 δεῖ―
‘반드시’ ‘필연적으로’라는 단어를 씁니다.
물처럼 땅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복음 안에서는 필연적으로
예수님이 커지시고,
나는 가벼워져야 합니다.
(운전대 비유를 꺼내며)
(운전대 비유를 꺼내며)
신앙은 핸들 을 주님께 드리는 자리 바꾸기입니다.
내가 운전석을 고집하면
길이 틀어질 때마다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러나 주님이 운전하시면
우리는 창밖 풍경을 즐길 여유를 얻습니다.
(구체적 결단을 초대)
(구체적 결단을 초대)
이번 주, 단 한 가지 결정을 예수님께 양보해 보십시오.
여가 계획을,
소비 습관을,
혹은 한 마디 말을.
작은 핸들 턴 하나가
**내 자아의 ‘쇠함’**이 되고,
주님의 영광의 **‘흥함’**이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생각하며 이 말을 기억하세요.
“시기를 내려놓으면, 선물이 보이고, 선물이 보이면 예수님이 커진다.”
결론 · 기도
결론 · 기도
(강단을 한 걸음 물러나 쳐다보며)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마음에 세 번의 종이 울렸습니다.
시기의 바이러스를 경계하라.
하늘의 선물을 기억하라.
자리 바꾸기로 자유를 누려라.
이제 눈을 감고 짧게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제 마음의 운전대를 주님께 드립니다.
시기의 바이러스에서 구하시고,
하늘의 선물을 다시 보게 하시며,
제가 작아질수록
주님의 이름이 커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잠시 침묵 후, 힘 있게)
주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흥하시어
이번 주간, 여러분의 영혼이
눈에 띄게 가벼워지기를 축복합니다.
‘그 후에’는 니고데모와 만남 이후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가서 머물며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세례는 ‘거듭남’의 고백이자 표현입니다.
그 모습을 보던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오던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자
조바심이 생겨서 세례요한에게 보고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찾아 온 은밀한 질병에 관한 내용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제자들의 소식이 들려올 때
순간적으로 마음에 ‘시기’라는 영적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누군가 나보다 더 주목받는 순간 우리의 내면은 나쁜 바이러스에 노출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수많은 바이러스에 내 몸이 노출되듯이
내 마음은 더 많은 영적 바이러스에 노출된다.
이때에 면역이 약한 사람은 그 바이러스로 인해 크게 아플수도 있고,
심지어 죽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바이러스도 그 사람을 큰 위기에 노출시키거나
영적인 죽음을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세례요한은 면역력이 막강한 사람이었다.
어떠한 바이러스도 그를 흔들거나 넘어뜨리지 못했다.
당연히 그와 함께 했던 제자들도 세례요한 덕분에
바이러스의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세례요한은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건강할 수 있었는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살아가는 삶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살아가는 삶
먼저는 분수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청빈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유복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어느 정도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진하여 광야로 나가서 들판에서 메뚜기를 잡아 먹고, 돌에 있는 꿀을 찾아
영양분을 공급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천명이 오든지 한명이 오든지 일관성 있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척을 해서 사역을 시작할 때
가족들을 모으지 않고, 사례를 받지 않은 이유입니다.
개척 초기에 가족들의 십일조와 헌금은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거기에 의지하게 되면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매달 지출하는 비용이 커질수록 유지되어야 하는 덩치가 있기에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개인의 삶도 동일합니다.
내가 100을 버는데 100을 다쓰는 삶을 살다가 수입이 90으로 줄어들면 힘들어 집니다.
그런데 100을 버는 사람이 80만 사용하면 20만큼의 여유로움이 생기는 것이고,
100을 버는 사람이 50만 사용하면 50만큼의 여유로움이 생기는 것이고,
20-30만 사용하면 두려울 것이 별로 안생깁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버는 100 중에서 1-2만 사용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떠한 풍파에도 초연했습니다.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27절)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27절)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런 마음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거나
또는 더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위해 오지않는 사람은 예수님께 갈 수 없다.
내가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묻는 것은
하나님이 니고데모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을 때에 그 마음에 대한 의지적인 선택으로 인해
여러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그것을 묻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판단한 니고데모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으로 인하여 니고데모는 진리를 알게 되었고, 거듭남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또 구원과 심판에 관하여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제자들과 더불어 오늘 날 우리들도 거듭남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부자청년에게 예수님을 찾아갈 마음을 주셨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계명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청년은 반가운듯 자기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어서 예수님은 그에게 그렇다면 이제 한가지만 네가 하면 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말씀했다.
이것은 누구나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시험이 아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재산을 전부 팔아서 나눠주라는 것은 그에게 거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보와와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겉모양은 영원한 것에 관심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속사람은 세상의 것이나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심히 근심하며 떠났다.
이 시기에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허덕이며 고통을 당하고 있어서
하나님은 그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사람을 찾으셨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사람으로 부자 청년을 부르셨다.
그러나 그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19장에 하나님은 다음 부자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신다.
삭개오라는 부자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한 번 보고싶은 마음이 들어
나무 위에 올라가 그를 만났다.
예수님은 그를 보고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한 뒤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고백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성도들이 예수님께로 가버리는 것에
큰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세례요한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이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가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만약에 세례 요한이 이사야서 말씀을 읽었을 때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에 관한 말씀을 읽고, 이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자신의 부요한 삶을 버리고 광야로 나아가 광인처럼 사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에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대신 하는 사람이 나왔을 것이다.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예수님께서 굳이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고 기록한 것을 기억하자.
예수님은 세례의 의미 자체이시고, 요한과 제자들은 그 세례를 주는 역할을 감당했다.
예수님은 빛이고 세례요한은 그 빛을 증언하는 자였다.(3:26)
예수님은 말씀이고 세례요한은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 (소리를 통해 말씀이 전파된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고,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물 세례의 형식을 통해 성령세례도 행해진다.)
우리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신앙의 질문이다.
처음사랑교회
처음사랑교회
처음사랑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마음을
하늘에서 주신 바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가볍게 여기고 눈에 보이는 것에 더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부자 청년처럼 결국에 근심하며 돌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친히 보고 들은 것에 관한 증언이다.
이 증언을 받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더 이상의 신앙생활의 진도는 없다.
여러분이 교회에 가볼까? 교회에 가야지? 하는 마음들은 모두 하늘에서 주신 마음이다.
그리고 헌금생활과 십일조에 관한 마음도 동일하게 하늘에서 주신 마음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것을 착취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우리의 헌신과 반응을 원하시고,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시험하시는 분이시다.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거듭남’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쇠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흥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나의 자아와 욕심, 생각과 경험이 약해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각이 강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