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올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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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올때
시험이 올때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우리에게 가장 큰 유혹은 무엇입니까?
삶의 다양한 혜택들, 예를 들어 성공, 유명해지는것, 돈을 잘 버는것, 경쟁에서 이기는 것, 더 많이 가지는 것 등 있겠죠. 그런데 이것이 정말 우리를 위협하는 유혹일까요? 성공하는 것이 죄가 되나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것이 죄가 되나요?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은혜를 누리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질문해본다.
집사님은 십자가 은혜를 받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왜요?
오늘 성경의 장면은 예수에 대한 신학적 초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의 답을 누가복음에서는 끈질기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을 때
누가복음 3:22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복음서 곳곳에서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1 “1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구약의 예언으로 다윗의 후손이자 유대인의 왕으로 오심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10:45 “45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섬기고 희생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시작이
누가복음 4:3 “3 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입니다.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을 하고 끝나는 시점에 사탄이 나타나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고 시작합니다.
이 의미는 사탄이 예수님을 의심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원문을 가지고 이 말을 다시 말하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맞지만, 그걸 한번 증명해봐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가지로 유혹하면서 증명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를 짓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가장 간절한 욕망일 수도 있는 것으로 시험을 합니다.
이 시험을 cs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첫번째 사탄은 육체적 필요를 가지고 시험합니다.
누가복음 4:3 “3 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여러분은 금식을 해 보셨습니까? 40일 금식 후에 얼마나 허기가 찾아왔겠습니까. 만약 이 빵을 먹으면 예수님 자신의 배고픔도 해결 되겠지만, 다시 사람들속으로 돌아가서 흉년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바닥에 뒹굴고 있는 돌맹들을 다 빵으로 만들어서 흉년을 해결 해 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된다면 사람들은 모세처럼 떠 받들 것입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이렇게 편지 합니다.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먹고 마시고, 쉬도록 만들어라. 그러면 그들의 영혼은 점점 더 나태해지고, 결국 하나님을 찾을 마음이 없어진다.”
코로나 이후로 가나안성도가 부쩍 늘어났습니다. 물론 교회의 대한 실망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그 이유로 바꿀 수 없습니다. 편안한 신앙생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신앙은 희미해지고 하나님을 찾을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모세와 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하는 시험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 자신이 원하는대로 먹고 마시고 쉬고 하면서 하나님의 대한 관심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거봐, 교회 밖의 사람들과 똑같지 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시험입니다.
두번째는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시험합니다.
누가복음 4:6–7 “6 그리고 나서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7 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예수님의 초상화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30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어떻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이 세상의 통치자 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자신에게 절을 하면 통치권을 예수께 넘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통치권은 정치적 권력, 로마의 권력은 넘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정권교체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스크루테이프가 웜우드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인간이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출세와 돈, 권력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게 만들어라.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돈과 명성을 섬기게 될 것이다.”
세상권력은 정의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숨겨진 욕망, 돈과 명성이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도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는 정치인도 자신의 모든것을 내어 놓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보세요. 정치적으로 뛰어든 수많은 종교인들이 결국에는 권력을 통해 얻어질 것들을 위해 소리지르고 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인 예수님은 이것을 거부합니다. 세상 권력자로 서길 거부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선택합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권력의 비참함을 보고 있습니다. 이 권력자인가 저 권력자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정의인가 아닌가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편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번째는 하나님께 충실할 것인가를 시험합니다.
누가복음 4:9 “9 그래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사탄은 교묘한데요, 시편 91:11–12 “11 그가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네가 가는 길마다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니, 12 너의 발이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게 천사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줄 것이다.”
이 말씀에 부딪히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에서 안전해
교회 다니면 복을 받아. 교회다니면 근심이 사라져, 어려움이 없어져, 성공할 수 있어, 대학갈 수 있어
번영신학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것으로 유혹합니다.
여기가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이잖아. 여기서 뛰어 내리면 하나님이 두손을 딱 받아주실거야.뛰어내려!
스크루테이프가 편지하기를
“인간이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내 모든 바람을 들어주셔야 해’라고 생각하도록 조종해라.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종인 것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예배를 좀 드린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무조건 들어 주어야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시험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구원받았다며 세상사람들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깁니다.
동일한 죄가운데 있으면서 우리는 마치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인것 마냥 정죄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시험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모든 시험에 기록된 말씀으로 대답을 합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이 대답은 모세오경, 가장 권위있는 성경말씀을 인용합니다.
지금도 살아있고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시험을 통해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우리를 삼키려고 합니다.
시험이 올때 그것을 이기려는 노력보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께 신실한가라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신실하다는 의미는 믿음안에 있다라는 말입니다.
나는 지금 믿음안에 있는 사람인가?
대단한 해답을 찾으려고 이것 저것, 이사람 저사람, 심지어 점까지 … 그러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 있으면 시험으로 사단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할 것입니다.
시편 37:23–24 “23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24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시험이 올때 우리는 신실한 믿음, 하나님께 신실함을 지킨다면 믿음안에 있는다면 우리는 유혹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