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한 마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누리자!

하나바이블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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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로마서 15:5–7 NKRV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승리의 기쁨을 언제 느껴보았는가? 대표적으로 월드컵과 같은 축구 경기에서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이겼을 때 기뻐한다. 나는 2002년 대한민국이 4강까지 올라갔을 때, 전국이 환호성과 승리의 기쁨을 가장 크게 느꼈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당시 얼마나 열기가 대단했냐면 4강에 진출할 때 어떤 가게는 공짜로 음식을 내어주는 가게도 있었고, 엄숙해야할 장례식장에서 골을 넣었을 때 승리의 기쁨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끌어안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빰빰 빠바밤 빠바바밤 한국!’하면서 길가는 모르는 사람들과도 포옹하면서 기쁨을 누리는 것을 보았었다. 그리고 여러분의 학교에서 체육대회할 때 어떤가? 반이 이기는 승리의 기쁨을 누려본 사람이 있는가? 그 짜릿함을 느꼈을 때 반이 이기는 승리의 기쁨을 함께 즐기며 뭔가 단합되는 기분이 들게 된다. 이처럼 누구든지 우리나라가 이기든, 반 대항에서 이기든지 승리를 맛볼 때 그 순간은 하나의 공동체로 차별이 없이 이긴 승리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의 기쁨이 매일 우리에게 느낄 수 없다. 승리의 기쁨은 언제 더 배로 느껴지게 되는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아니면 1등할 수 없을 줄 알았던 경기에서 이기게 될 때, 온 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전율을 경험한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의 편지를 우리가 한 목소리로 읽었다. 로마서는 어디에 보낸 편지인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그러면 그곳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유대인이 많았을까, 로마 사람이 많았을까? 당연히 로마사람들이 주로 있었다. 로마는 황제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고, 너무나도 음란하고 탐욕적인 사람들이 가득했던 죄악의 핫플레이스 중에 핫플레이스였다. 동성애가 유행했었고, 로마에 유명한 검투사 경기장인 콜로세움에서 잔혹한 경기를 즐기며 배팅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또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면 황제에 대한 반란으로 여기는 핍박도 있었기에 예수를 믿겠다고 신앙생활하려고 하면 유혹과 고난이 심각하게 있던 곳이다. 그렇게 죄악이 가득한 도시에서 힙겹게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하나님께 간절히 소원기도를 한 기도가 우리가 읽은 본문이다. 그가 고백한 기도는 하나님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으로 부르며 시작한다. 그 하나님은 자신의 은헤 안에서 인내와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정한 인내와 위로를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힘듦과 괴로움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오래참는 마음과 위로하시는 마음을 부어주시기 때문이다.
다른 고백도 아니고 인내와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찾았을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부터 계속해서 15장까지 한가지 주제로 강력하게 선포한다. 그것은 바로 ‘로마 교회의 하나됨을 회복하는 것’이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인내하는 마음과 힘듦을 위로받지 못하면 사람은 금새 예민해지고 짜증이 가득하면서 서로 상처가 되는 말을 쉽게 내뱉기 쉽다. 그때 내가 이렇게까지 화내려고 한 것이 아닌데도 상대방은 이미 크게 상처를 받아 교회를 떠나거나 분열되어 점점 연합이 깨지면 교회 안에 힘도 점점 잃어가서 결국 소멸되기 쉽다. 이러한 이유로 인내와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오래참고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로마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고 우리 안에서도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 사람은 대부분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 부족한 모습이 보일 때 혼내거나, 답답해하거나, 왜 그것밖에 못하냐며 화내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믿음이 약한 사람은 마음에 시험이 들고 교회에 그 사람때문에 가기 힘들어진다. 또 우리는 서로 스타일과 생각과 성격이 모두 다르다. 어떤 친구는 단정하게 옷을 입고 예배당에 오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슬리퍼에 딱히 옷에 신경쓰지 않고 오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친구는 뛰면서 찬양하는 극E성향을 보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잔잔하게 묵상하며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 어떤 친구는 학교에서든지 교회에서든지 말을 예쁘게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입에 아직 욕이 습관인 친구들은 아직 고쳐지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욕이 나오는 친구도 있다. 어떤 친구는 예배 시간에 집중도 잘하고 성경 말씀이 쏙쏙 이해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들은 성경 말씀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친구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서로 다른 환경, 성격, 스타일이 다르더라도 전혀 하나되지 않을 것 같아보여도 딱 한 가지 공통된 관심과 목적이 있으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모두가 다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따를 때 우리가 비로소 하나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라. 하나될만해 보이는가? 그러나 예수님을 닮아가가고 싶어하고 예수님을 내 인생에 중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다같이 있을 때 우리는 마치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승리를 경험한 사람들보다 어쩌면 더 기쁜 모습으로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할 때 우리 안에 예수의 마음이 가득할 것이고, 그 예수의 마음이 곧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여러분의 손에 있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 안에는 어떤 이야기로 가득한가? 하나님이 이기신 승리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노아의 가족을 홍수로부터 구원하신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여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 이야기, 요셉이 죽고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노예의 신분에서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똑똑히 보고 승리로 이끄신 여호와를 경험했던 이야기로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세상 악한 권세의 머리를 완전히 무너뜨린 사건으로 승천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어떻게 자기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악의 잔재가 남아 있는 이 땅에서 어떻게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실지에 대한 구체적인 승리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신약의 이야기다.
그러니 날마다 그 승리의 이야기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넘치며 내 안에 승리의 기쁨을 성령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시는 것이다. 그 기쁨이 내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떻게 되는가? 오늘을 살아갈 때 겨우 힘겹게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즐거이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교회에 와서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신 승리의 기쁨을 서로 나누게 된다면 매 주일이 서로 차별없이 서로 끌어안으며 사랑이 가득한 공동체가 될 줄 확신한다. 나는 여기에 있는 꿈사땅 여러분이 서로를 수용하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 수용의 뜻이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 감정, 상태, 존재를 판단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고치려고 들기 전에 인정하고 품어주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나와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왜 그따구로 생각해?”가 아니라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구나”하고 받아주는 것이다. 교회에서 신앙의 수준이 다른 사람을 보고 “저 인간은 왜 저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도 이끄시고 계시겠지”라고 마음을 여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닮아가길 바라는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조건 없이 받아주신 것처럼 서로 받아주라고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 있다.
로마서 15:7 NKRV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예수님처럼 우리 서로 진짜 사랑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셨다. 나를 조건없이 사랑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할만한 대상이라서가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 전부가 아니다. 상대방이 예뻐보이고 잘생겨보여야 사랑을 해주는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심지어 정떨어져 보일지라도 그를 끝까지 사랑하기로 결단하며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사랑해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설교하는 나도 마찬가지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이 사랑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 안에 있을 때 이 사랑을 가능케할 수 있겠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날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사랑을 알고 깨닫고 삶에서 말씀으로 살아낼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완전한 사랑을 조금씩 닮아갈 수 있게 된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주시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풍성히 누리는 저와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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