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6:9-15)
Notes
Transcript
서론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 16장 9절에서 15절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제자들이 보였던 충격적인 반응, 바로 ‘믿지 아니함’에 대해 준엄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펴보면 믿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왜 믿지 않는 지 의아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이 본문이 몇몇 후대의 사본에만 등장하기에 그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교회의 긴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는 초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이후 제자들의 반응, 그리고 주님의 명령을 이 짧은 본문 속에 요약하여 붙들고 기억하며 신앙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성령께서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고, 주님의 책망 앞에 겸손히 서며, 새로운 결단으로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사람의 생각과 기준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하라
1. 사람의 생각과 기준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가복음 16장 11절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증언을 들은 제자들이 “듣고도 믿지 아니했다”고 기록합니다. 13절에서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난 후 돌아와 전했지만, “역시 믿지 아니했다”고 말합니다. 왜 믿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고난과 죽음,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듣지 않았습니까?
마가복음 8장 31절에서 예수님은 처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9장 31절, 10장 33-34절에서도 반복하여 예고하셨습니다.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 사역의 핵심이며, 그분이 누구신지를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믿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 자신들의 이성, 자신들의 기대를 기준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재단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스승을 잃은 슬픔과 로마의 압제 하에 놓인 절망적인 현실이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증인이 “여성”들이었다는 점에 그 이유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실 여성들은 증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는거죠. 하지만 다른 두 제자들의 만남이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경험과 이성, 세상의 가치관과 관습, 선입관이라는 필터로 걸러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지금 시대에 맞지 않아”, “내 생각과는 달라” 라고 판단하며 말씀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조차 믿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불신하는 ‘내’가 믿음을 가지는 아무개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앞선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기준으로 말씀을 판단하는 교만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음으로 받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사실 믿지 않는 제자들의 심각한 문제는 예수께서 반복하여 말씀하신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증인들의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 아니었습니다.
2. 우리의 불신은 뿌리가 깊다
2. 우리의 불신은 뿌리가 깊다
제자들의 불신은 단순히 부활이라는 특정 사건에 대한 일회성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14절은 예수께서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다”고 기록합니다. 믿음 없음, 즉 불신과 마음의 완악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마음이 굳어 있으면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으려는 완고함이 마음을 더욱 굳게 만듭니다.
이들의 불신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했던 3년의 시간 동안에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능력을 보고도,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보고도 그들은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두려워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했습니다. 그들의 불신은 이미 그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경향성’이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러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거의 실패 경험, 상처, 세상의 끊임없는 의심과 냉소가 우리의 마음 밭을 딱딱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하신 뜻을 믿기 시작할 때, 우리의 역사는 달라집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순종했을 때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신실하신 계획을 믿을 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펼쳐질 것입니다. 믿음은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뿌리 깊은 불신을 성령의 능력으로 파쇄하고,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3. 합리적인 것과 마음이 굳어져 버린 완악한 것을 구분하자
3. 합리적인 것과 마음이 굳어져 버린 완악한 것을 구분하자
우리는 합리적인 의심과 마음이 굳어 완악해진 상태를 구분해야 합니다.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도마가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고 말했을 때, 그것은 어쩌면 인간적인 솔직한 반응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마까지도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는 놀라운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리라고 친히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일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심을 넘어선 ‘완악함’입니다. 마음이 굳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책망은 바로 이 지점을 향합니다.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 16:14).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마음을 닫고 믿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이 꾸짖으신 완악함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경 말씀을 통해, 교회의 역사를 통해, 우리 삶에 베푸신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능력을 분명히 보고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이성과 경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합리적인 탐구가 아니라 영적인 완악함일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마음이 이미 굳어버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여러 번 들었고, 지금도 들리고 있음에도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4. 믿음의 회복과 결단이 필요하다
4. 믿음의 회복과 결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책망은 제자들을 절망에 빠뜨리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불신과 완악함을 깨뜨리고, 참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한 사랑의 채찍이었습니다. 책망 이후,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지상 최대의 사명,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위대한 명령을 주셨습니다(막 16:15).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믿음 없던 자들, 마음이 완악했던 자들을 향한 주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며, 그들을 향한 변함없는 신뢰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위대한 계획을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과거의 불신앙, 우리의 현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회복과 결단입니다. 더 이상 불신과 완악함의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이미 이루어진 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위대한 승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안에서 역사하며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 저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의 완악한 마음을 깨뜨려 주옵소서. 이제 주님의 부활을 나의 능력으로 삼고,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주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승리를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불신앙의 잠에서 깨어나 믿음으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5. 믿음의 회복을 위해서, 작은 것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하다
5. 믿음의 회복을 위해서, 작은 것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믿음을 회복하고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거창하고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믿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상의 거대한 흐름과 불신의 풍조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앞에 놓인 ‘작은 것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작은 것’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일 수 있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 한 구절일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주시는 작은 확신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성도의 간증일 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작은 역사들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세상의 기준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하여도, 주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또한 그들을 통하여 얼마나 큰 일을 이루고 계신지 바라볼 수 있어야하겠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큰 증거’를 요구합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 세상적인 성공,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며 우리의 믿음을 흔듭니다. 그리고 ‘큰 사람’의 증거를 요구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가진 것이 많음 사람이 이야기해야 설득력 있다고 합니다. 제자들도 그래서인지 예수님의 십자가 직전까지 ‘누가 크냐’를 가지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종종 지극히 작은 겨자씨와 같습니다(마 17:20).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고, 결국에는 큰 나무로 자라나 많은 이들에게 쉼을 주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불신앙적인 흐름에 저항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작은 은혜들, 작은 약속의 성취들, 작은 인도하심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 오늘도 저에게 호흡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읽은 이 말씀 한 구절을 붙들고 살겠습니다”, “저 작은 믿음의 지체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작은 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훈련을 할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자라갈 것입니다. 거대한 불신의 파도 앞에서, 작은 말씀 하나, 작은 기도 하나, 작은 순종 하나를 붙드는 믿음이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16장 말씀을 통해 “믿지 아니함일러라” 하시는 주님의 준엄한 책망을 들었습니다. 이 책망은 단순히 과거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경고이며, 동시에 사랑의 초대입니다. 다 이루어졌는데, 믿음이 없어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발견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기준으로 말씀을 재단하는 교만을 버리십시다.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불신과 완악함을 성령의 능력으로 깨뜨리십시다. 합리적인 탐구를 넘어선 완고한 불신앙에서 돌이키십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이미 이루어진 위대한 승리를 바라보며 믿음의 회복과 결단을 이루십시다. 세상의 불신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작은 말씀과 은혜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믿음을 키워나갑시다.
주님은 믿음 없는 우리를 책망하셨지만,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명령은 믿음으로 회복된 자들에게 주시는 특권이며 능력입니다. 우리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결단하여 일어설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해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놀라운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믿지 아니함일러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서 우리의 완악함을 깨뜨리고, 온전한 믿음으로 응답하며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