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7일 주일오후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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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도입: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를 살게하는 원동력이다.
도입: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를 살게하는 원동력이다.
벌써 부활절 후 한 주가 지났습니다. 어떻게 한 주를 보내셨습니까? 아마도 오늘 오후예배 드리신 성도님들은 부활절 주일 하루를 분주하게 보낸 분들일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오후의 연합예배까지 그렇게 분주하게 보내는 가운데 부활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시고 경험했는지 궁금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단순히 절기로만 기념하고 기억해야될 사건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중심이며 기독교의 시작이며 현재 우리가 있게 한 유일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특별히 그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날마다 기념하며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예수님의 부활이 핵심 교리나 지식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존재를 탄생하게 했으며 여전히 우리를 살게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의 몸의 심장과도 같습니다.
심장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 뛰게 되어있습니다. 심장이 없이는 우리는 존재 할 수 없고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집니다. 그리도인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주님의 제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생명을 공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예배 시간을 통하여 그 십자가 죽으심와 부활 앞에 서기를 축복합니다. 다시 한 번 그 생명을 공급받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 재창조의 순간
1.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 재창조의 순간
요한복음에 보면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7가지 기적을 특별히 선택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
요한복음 4장에 왕의 신하 아들을 고치신 기적,
세 번째 요한복음 5장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네 번째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 기적 ,
다섯 번째 요한복음 6장 물위를 걸으심,
여섯 번째 요한복음 9장 날때 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심,
일곱 번째 -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이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 믿게 하는 기적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고장난 것을 치유하시는 창조자 하나님과 예수님을 연관짓게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예수님을 정의하면 “재창조자 예수 그리스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록하고 있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과 연결이 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보여주라는 요구에 이렇게 답을 하시죠. “요나의 기적 밖에는 너희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 나사로의 부활과 연결된 기적이면서 실제적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마지막 기적은 바로 십자가 죽으심과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마지막 기적을 통하여 탄생한 것이,창조된 것이 그리스도인,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의 성경의 증거를 보통 3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는 빈 무덤과 여성 목격자들입니다. 안식일 다음 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무덤의 문은 열려 있었고 예수님의 시체는 없었습니다. 빈무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마가복음의 의하면 세 여인이었는데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였습니다.
당시 여인들의 인권 상황이나 위치를 보았을 때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신빙성있는 이야기로 꾸밀려면 여성 목격자가 아닌 남성 목격자를 그 이야기에 넣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저자들은 빈무덤의 첫 목격자로 여성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증거입니다.
두 번째 증거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셨고 약 500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증거는, 완전히 변화된 제자들입니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제자들이 극단적으로 변화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완벽하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극적인 변화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살기 위하여 예수님의 세 번이나 저주하며 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베드로나 제자들의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살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관계를 부정했는데 십자가에서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변화 몇십년이 흘러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함께 하셨고 그리고 오순절이 되었으니 10일을 더하면 50일 만에 일어난 제자들의 변화였습니다. 넉넉하게 잡아도 두 달이 안되는 기간에 일어난 변화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변화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놀라운 창조가 일어난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죠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이 구절의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순 있겠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다른 창조물의 창조와 달리 특별한 창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것을 쏟아부은 창조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십자가와 부활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섭리, 사랑과 인내를 다 쏟으신 순간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은 이 사건으로 향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부활을 향하고 있습니다.
마치 빛이 있으라 하셨던 그 순간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그 순간 엄청난 생명이 솟구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의 변화는 이것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고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바로 새로운 존재 탄생이었던 것입니다.
2. 새롭게 태어난 우리 : 선택받은 이스라엘
2. 새롭게 태어난 우리 : 선택받은 이스라엘
이러한 새로운 변화, 새로운 존재의 탄생에 중간 과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연결된 부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게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절은 이것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바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는 마가다락방의 성령세례 사건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특히,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자들인데? 성령세례를 받아야 할까요?
누가복음 24장 11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그 소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부활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믿게 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세례 받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믿은 믿음을 선물로 받고 실제적인 힘으로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교리적으로 인정하더라고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우리 삶 가운데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임할 때, 실제적인 힘으로써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우리를 완전히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태어나네 하시는 것입니다. 그 강력한 증거가 누구입니까?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다르게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거나 파송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그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으며 그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정말 바울도 제자들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 있는데 바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순간입니다. 두 돌판 새겨진 십계명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특별한 표시였습니다.
다른 민족들과는 구분된 새로운 존재들로 변화된 것입니다. 십계명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오순절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을 히브리어로 샤부옷이라고 하는데 출애굽 후 50일째 되는 날로 십계명을 받은 날을 기념했던 것입니다. 그날은 동시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 세우심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님께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이 다른 날이 아닌 그 오순절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로 새 언약의 존재, 공동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전의 언약 공동체는, 이스라엘은 돌 판에 새겨진 율법이 중심이었지만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데 그 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두 가지로 압축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셨죠. “네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몸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이 말씀을 그대로 삶 가운데 실천하십니다. 바로 그 순간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순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씀 자체이셨고 그 절정이 바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었습니다. 하나님아버지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우리를 우리를 위하여 목숨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쉽게 이야기하면 성령세례 받은 그 순간 하나님의 법,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게 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게 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자들의 고백은 어떠합니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성령세례 받은 자가 하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제자들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베드로의 변화는 이것으로 밖에 설명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에게도 이러한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가 임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변화도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온통 이렇게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 뿐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소위 부흥인 것입니다.
3. 반드시, 증인의 삶을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
3. 반드시, 증인의 삶을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어떠한 삶으로 열매를 맺었습니까? 그렇게 새롭게 태어난 존재로 끝이 납니까? 아니죠. 새롭게 태어났다면 삶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갓난 아이의 탄생 —> 삶이 있어야 한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그것에 만족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택된 백성으로 율법을 받은 백성으로 살라고 그 십계명을 돌판에 주신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집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사도행전 1:8 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 믿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게 되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살게 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마음에 말씀이 새겨진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예수님 내 안에 사는 존재가 되고
그 결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긑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다른 것들은 다 곁가지입니다. 성령세례 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목격하게되고 복음을 듣고 깨닫게 되어있으며 누구도 예외 없이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증인 삶에서 믿음 따로 행위가 따로 일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티켓은 마련해놓고 하나님께서 합당하다고 여기는 삶은 나중에 기회가 될때 준비가 될 때 사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 그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이 증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 기독교전부이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증인-마르튀스 - 법정의 용어인데 어떠한 사건이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그 사건, 그 현장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살게 되었고
예수 처럼 살게 되었으있으며
예수만 바라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마무리-부흥을 사모하는 공동체
마무리-부흥을 사모하는 공동체
부활절 이후. 설교할 때마다 이러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성령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는 갈망, 주님의 제자로서 살고자하는 갈망이 샘솟는 상태가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예배가 주님의 제자로 살고자하는 갈망,열망,열정을 샘솟게하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설교를 들을 때 찬양할 때,"정말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싶다." "삶의 한 절이라도 예수님의 닮았으면 좋겠다."
우리와 세상 사람들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자들은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는 것,무엇인가 소유하는 것.
이 세상의 사람들은 이러한 갈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세상은 그런 곳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다시 태어난 우리들은 무엇이 달라야 하겠습니까? 그들과 목표가 같아야 하겠습니까? 단순히 내가 성공해서 교회 일 도와야지 이정도 수준이어야 하겠습니까?
삶으로는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적선하듯 교회 일에 헌금하고 시간을 내서 봉사한다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독교인의 삶, 부르심 받은 제자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서 나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을 볼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삶을 원하고 바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나의 전부라고 고백하는 그러한 삶이어야 되지 않을까요?
점점, 젊은 세대 중에 그리스도인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세대를 세우는 것도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과 다른 모습으로 제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러한 삶을 살아갈때, 그러한 갈망으로 충만할 때 다음세대가 잉태되고 출산이 되는 것입니다.우리 어른들이 다른 것이 관심이 많고 다른 가치로 충만한데 절대로 신앙의 다음세대가 탄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기독교는 복잡한 종교가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고 심플한 종교입니다. 그 중심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봐 부활을 목격하고 복음을 듣고 깨달은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신앙의 훈련을 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더하는 것이기 보다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는 -단순한 삶으로 세팅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훈련은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이 복음을 위하여 사는 삶으로 심플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성령으로 충만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심장.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직접 목격함으로 충만한 생명의 능력을 공급 받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가정에서 사랑방에서 각 부서에서 이러한 부흥을 사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요.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는 부흥이 우리 삶과 우리 교회 사역 가운데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부흥을 사모합니다. 제자의 삶을 살기를 갈망하는 그 마음이 우리 안에 차고 넘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