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를 만져보라 (누가복음 24: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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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과 의심에 사로잡힌 제자들 앞에 서신 그 결정적인 순간으로 함께 들어가 보려 합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이 돌아와 그 감격적인 소식을 나누던 바로 그 자리, 바로 그 때에 예수님께서 홀연히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첫 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눅 24:36)
평강의 선포.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은 평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눅 24:37) 기록합니다. 조금 전까지 부활의 증언을 나누던 그들이었지만, 정작 부활하신 주님이 실재로 눈앞에 나타나시자, 그들은 기쁨 대신 공포에 휩싸였고, 심지어 주님을 유령으로 오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이 모습이, 부활절을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입술로는 "예수 다시 사셨네!"를 외치지만, 삶의 문제 앞에서는 여전히 불안하고, 부활의 능력이 내 삶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간단히 말해 마음에 “평안”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주시고 당신의 실재를 드러내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부활 신앙이 우리의 관념이 아닌 삶 그 자체가 되는 은혜를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활의 실재: 경험하고 만지는 신앙.
부활의 실재: 경험하고 만지는 신앙.
제자들의 혼란 앞에서 예수님은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들의 오해를 지적하시며 당신 자신을 증명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38-39)
"나를 만져 보라!" 이 말씀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나, 슬픔을 이기기 위한 자기 위안, 혹은 어떤 영적인 의미 부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육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못 자국 난 손과 발을 내미시고, 만져보라고 하시는 예수님은 살과 뼈를 가지신, 우리와 같은 인격적인 존재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온몸으로 증거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눅 24:41) 물으시고, 제자들이 가져온 구운 생선 한 토막을 그들 앞에서 잡수시기까지 합니다 (눅 24:42-43). 음식을 드시는 모습! 이것은 예수님이 영적 존재나 홀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실재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왜 주님은 이토록 당신의 육체적 부활을 강조하셨을까요? 바로 여기에, 우리의 신앙이 빠지기 쉬운 치명적인 함정, 이원론적인 신앙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신앙과 삶을 분리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거룩함과 세상 속에서의 세속적인 삶, 영적인 문제와 육신적인 문제, 주일의 신앙과 평일의 삶을 나누어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는 간절히 주님을 찾지만, 정작 돈 문제, 건강 문제, 자녀 문제, 직장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주님을 저 멀리 밀어내고 내 경험, 내 지식, 내 힘으로만 해결하려 듭니다. 마치 부활하신 주님은 영적인 영역에만 계시고, 우리의 이 구체적인 삶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분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은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를 완전히 깨뜨립니다. 주님은 영으로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 땅의 삶, 먹고 마시고 일하고 관계 맺는 이 구체적인 현실 속으로, 바로 그 육체를 가지고 다시 오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육신의 고통, 질병의 아픔, 관계의 깨어짐, 경제적인 어려움 그 모든 것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뿐 아니라 모든 연약함을 짊어지셨듯, 부활하심으로 그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과 능력이 되심을 친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더 이상 교회 담벼락 안에 갇힌 반쪽짜리 신앙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 삶의 가장 치열한 현장이야말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무대임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 능력과의 동행: 삶의 모든 장벽을 넘어서
부활 능력과의 동행: 삶의 모든 장벽을 넘어서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와 함께 강력한 능력을 약속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는 더 이상 우리를 가로막는 궁극적인 장애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닫힌 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하여 그들 가운데 서셨습니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비로운 몸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상의 어떤 위협이나 권세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마음의 벽조차도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원수,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죽음조차 그분을 영원히 가두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보다 더 강력한 원수가 우리 삶에 어디 있겠습니까?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 아무리 거대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넘어뜨릴 수는 없습니다.
질병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이 숨 막히게 합니까? 관계의 갈등이 우리를 지치게 합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합니까? 이 모든 것은 마치 굳게 닫힌 문처럼, 때로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우리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이미 이기셨고, 지금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고 그분과 동행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문제 앞에서 좌절하는 대신, 그 문제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부활의 능력이 머무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생명의 나눔: 흘러가는 영원한 생명
생명의 나눔: 흘러가는 영원한 생명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두려움은 기쁨으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쁨과 확신은 그들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부활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눅 24:47-48).
여기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단순히 '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되지만,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zoe)은 훨씬 더 역동적이고 관계적인 개념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연합이며, 그 생명이 내 안에 머무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나누어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마치 샘물이 계속 솟아나 주변을 적시듯, 부활 생명은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순히 교리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생명을, 아직 그 생명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부활의 기쁨과 능력, 내 삶을 변화시킨 그 생생한 이야기를 나눌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듣는 이들 안에도 동일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의무이기 이전에 특권이며, 생명을 가진 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내 안에 있는 부활 생명이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아직 그 생명의 역동성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결론: 만지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부활 신앙
결론: 만지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부활 신앙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만져 보라." 우리의 신앙이 더 이상 머릿속의 지식이나 종교적인 의례에 머물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아프고 힘든 삶의 문제 속으로 당신을 초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1)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관념이 아닌 생생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가정의 불화, 재정적인 압박, 건강의 염려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실제로 만나고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문제들이야말로 주님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육체를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고,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에 관여하기를 원하십니다. 더 이상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시다. 우리의 모든 염려와 문제를 부활하신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그분의 손길을 구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는 능력이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은 부활 생명이 흘러넘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 생생한 부활 신앙으로 매일을 살아가며, 이 생명의 복음을 담대히 나누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미지근하고 이원론적인 신앙을 회개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삶의 문제 앞에서 주님을 배제했던 저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저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인정하고 초청하며 동행하게 하옵소서. "나를 만져 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저희의 아픔과 상처, 문제 속에서 주님의 만지심과 회복시키심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삶이 부활의 능력을 증거하며, 영원한 생명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복된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