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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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과 법 감정

요즘에 뉴스가 온통 대선 얘기로 가득하죠? 막 이 후보가 뭔 얘기를 했니, 경선이 어쨌니 하면서 많은 후보들이 대선을 위해서 공약을 내세우는 걸 저도 유심히 보고 있는데요. 그 중에 좀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사형 집행에 대한 공약 이야기가 나오는 걸 봤습니다. 저희나라는 사형을 선고하고 있지만, 그러니까 이 사람은 사형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린다! 하고 판사가 선고는 하지만 집행은 하지 않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가 된지 27년 정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사형 집행을 실시하겠다! 혹은 어떤 사람은 아니다, 지금처럼 계속 유예하겠다! 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에 따른 반응들을 살펴보면요, 사람들이 각자 의견을 내는데 “흉악범은 사형에 처해야한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니다, 사형은 너무하다. 종신형으로 하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저희가 어떤 사건 사고 인물 등에 대해서 “우리의 법은 이래야 한다! 저 사람은 이런 처벌을 받고, 저 사람은 이런 보상을 받아야한다”와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는 것을 법 감정 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도 아마 사형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의 법에 대해서 다양한 법 감정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특히 이 법 감정은 남이 겪은 일에도 어느정도 가지게 되지만, 특히 본인의 일에 대해서는 더 격렬한 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저도 최근에 SKT에서 해킹 소동이 나가지고 이주혜 전도사님이 쓰시는 통신사로 이번 주 월요일에 변경을 했을 때, 아주 “과징금을 수천 억을 때려버려라!” 하는 법 감정을 가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제가 이야기한 법 감정은 대한민국의 법에 대한 법 감정인데요, 사실 저희들에게는 한 가지 더 특별한 법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법 감정입니다. 저희가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일들을 저희는 단순한 우연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구나, 하나님의 섭리구나,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면서 생각할 때가 많이 있는데요, 가끔씩은 하나님이 대체 왜 일을 이런 식으로 하시지? 하나님,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요? 라고 하면서 따질 때가 간혹 있습니다.
이를 테면, “하나님 뜻에 따르겠습니다”하면서 하나님의 판단에 순응하거나, “하나님, 저 나쁜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바로 저 같은 착한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못 사는거예요?”하면서 따지거나 하는 것들이 있는데, 여러분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법 감정을 가지고 계신가요?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법 감정으로 분노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누구인가

오늘 함께 읽은 본문말씀은 요나서는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예언자일겁니다. 요나라고 하는 예언자는 하나님의 판단에 아주 격렬하게 반대하고 싸우고자 하는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판단에 슬퍼하면서도 순종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반대하는 법 감정을 지니는 것은 드문 일인데요,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려다가 풍랑을 만나고, 바다 속으로 집어던져지고,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이 지나 하나님께 회개하고 육지로 돌아와서, 다시 니느웨로 향해서 말씀을 전했더니 사람들이 회개하여 니느웨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았다라는 내용을 여러분이 아마 다 기억하고 계실겁니다.
그런데 사실 요나가 누구인지, 니느웨는 대체 어디이고 다시스는 어디인지, 왜 그렇게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기 싫어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 요나라고 하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저희가 예언서를 살펴볼 때 가장 먼저해야할 것, 바로 1장 1절을 확인해보는 것이죠.
Jonah 1:1 NKRV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요나는 사실 그렇게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밋대라고 하는 아버지를 둔 요나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다, 정도로만 저희가 알 수가 있는데요, 다만 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는 성경에 한번 더 등장하게 됩니다.
2 Kings 14:25 NKRV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바로 여로보암 2세, 북이스라엘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회복했던 왕의 시대에 활동했던 것을 열왕기에서 저희가 확인해볼 수가 있는데요. 이 시기가 요나라는 사람을 알아볼 때에 아주 중요한 점입니다.
저희가 계속해서 예언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많이 언급된 나라가 있습니다. 어디였죠? 아주 강력한 군사 국가였고, 주변 나라를 휩쓸고 다녔던 나라인 앗수르 왕국입니다. 이 앗수르 왕국은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게 있어서 아주 큰 위협이었다는 것을 저희가 계속해서 역사를 살펴보면서 알아보았습니다.
근데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을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Jonah 1:2 NKRV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이 니느웨는 다른 어떤 장소가 아니라 바로 앗수르의 수도나 다름없는 앗수르의 대도시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했던 요나에게 있어서 이 니느웨는 증오의 대상일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사실 요나서를 잘 읽어보면 조금 의아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딱히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게끔 그 죄악이 내 앞에 도달했음을 알려라”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실제로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전한 말씀을 살펴보면요
Jonah 3:4 NKRV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 라고만 말하지, 그러니까 빨리 회개해라! 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여태까지 살펴본 다른 예언자들은 어땠습니까? 이사야, 미가, 아모, 호세아에 이르기 까지 예언자들은 하나같이 하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회복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빨리 회개하라는 말씀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요나서에서는 “회개해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요나가 겪은 재앙과 환난, 회개 그리고 구원, 또한 니느웨에 전달된 멸망의 말씀과 회개, 그리고 구원만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요나서의 말씀이 주로 회개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회개만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실패?

또 한가지 요나서의 주된 특징은 다른 예언서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사야서만 해도 66장이라고 하는 아주 방대한 양의 텍스트 사이에서 이사야서 6장의 소명이야기, 7-8장에 등장하는 아하스 왕과 대화하면서 전하는 임마누엘 예언 이야기, 20장에 등장하는 알몸으로 예언하는 이야기, 36-39장에 등장하는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를 빼면 나머지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으로만 나타납니다.
그런데 요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막 나열하는 부분이 단 한군데도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만 등장하지요. 그래서 저희에게 더 익숙하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은 다름 아닌 요나서의 핵심 이야기, 회개가 아니라 즉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음

먼저 본문말씀 1절을 보시면
Jonah 4:1 NKRV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니느웨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서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니까 요나가 막 화를 내고 성질을 내게 됩니다.
왜그럴까요? 저희가 보기에는 그냥 니느웨를 싫어해서,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아서 그런건가? 왜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결정에 이렇게 화를 내지? 싶지만 사실 요나가 화를 내는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요나가 전한 말씀은 딱 한가지 입니다.
Jonah 3:4 NKRV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지금부터 40일 후에 이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여기서 이 무너지다라고 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haphach(הָפַךְ)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원래 돌다, 뒤집어지다 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니느웨가 뒤집어질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다른 국가에 침략을 받아서 그렇게 되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서 아주 뒤집어 엎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Genesis 19:25 NKRV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쓰였던 다 엎어 멸하셨다에 쓰인 단어가 바로 하팤흐(הָפַךְ)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뒤집어 엎으시겠다는 말씀을 니느웨에 전했는데, 요나는 거기에 내심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랬을 텐데, 중요한 것은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Jonah 3:10 NKRV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희가 예언서 말씀들을 쭉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남은 자들로 하여금 회복시키실 것이다, 끌려간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다라는 말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정말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들입니다. 물론 막 온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막 솟아나고 하는 그런 예언자들의 과장법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천지가 개벽할만한 일들, 나라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리고 백성들이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일들은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근데 니느웨를 회개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씀도 안하셨는데, 소돔과 고모라처럼 뒤집어 엎어버리겠다는 말씀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신 말씀도 어기시고 “뜻을 돌이켜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정당성

둘째로,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요나에게 예언자의 정당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요나가 가짜 선지자로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됩니다.
Deuteronomy 18:21–22 NKRV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일에 성취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냥 예언자 혼자서 지껄인 말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은 요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아주 수치스러운 상황입니다.

하나님의 값싼 은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않은 과정을 보면, 니느웨가 앗수르의 수도로서, 수많은 나라를 군사적으로 짓밟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수많은 우상 신들을 숭배했구요, 장래에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큰 죄를 범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해도 수많은 신들 중에 하나가 우리를 멸망시키겠구나! 어떤 신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서 우리 죄를 회개하자! 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Jonah 3:5 NKRV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 우상을 없애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도 금송아지를 세웠지만 하나님을 안믿지 않았어요. 우상을 숭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외세의 침략을 받고 앗수르에 끌려갔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수많은 신들 중에 하나로 여겨지면서 회개했다고 용서해주시는 것이 납득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렇게 정의롭게 살아라, 하나님을 찾아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니느웨사람들에게는 왜 이렇게 값싼 은혜를 베풀어주셨을까요?

뒤집어버림의 이중성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하팤흐라고 하는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다, 뒤집어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것은 다 뒤짚어 엎어버린다는 멸망의 뜻도 있지만, 사실 완전 정반대의 뜻인 돌이켜서 회복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Zephaniah 3:9 NKRV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여기서 깨끗하게 하다, 라는 말이 원문을 직역하면 순수한 상태로 뒤짚게 하다, 깨끗하도록 돌려놓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한 것은 아니에요. 실제로 니느웨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뒤집어서, 회개해서 재앙을 면한 것을 저희가 본문 말씀에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먼 훗날에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가 부흥해서 앗수르를 몰아내면서 이 니느웨는 완전히 멸망한 도시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결국 니느웨의 악행은 니느웨를 멸망으로 이끌었지만, 요나의 시대에서는 회복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죠.

박넝쿨 내러티브

그래서 요나는 아주 크게 화내면서 하나님께 말합니다
Jonah 4:2 NKRV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아 하나님, 내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아주 은혜롭고 자비로우셔서 재앙을 내리시지 않는 분인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저 죽어 마땅한 니느웨 사람 조차도 회개 조금 했다고, 하나님을 그렇게 열심히 믿지도 않는 사람들을 멸망시키겠다는 스스로의 말씀도 어기시고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시죠!
라고 말하면서 3절에 보시면
Jonah 4:3 NKRV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요나가 아주 수치스러움을 느꼈는지 이제는 자신을 죽여달라고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Jonah 4:4 NKRV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네가 과연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라고 질문하십니다.
그 이후에는 요나가 겪은 이야기를 말하는데요,
5절에 보시면,
Jonah 4:5 NKRV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요나는 끝가지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는가 확인하려고 미련이 좀 남았는지 성 동쪽으로 가서 초막을 짓고 초막 그늘에 앉아서 니느웨 성읍을 지켜보게 됩니다.
Jonah 4:6 NKRV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이때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요나를 햇빛으로부터 가려서 그늘을 만들어주셨어요. 여기에 요나는 “야 더운데 마침 잘됐다!”싶었는지 크게 기뻐합니다.
Jonah 4:7–8 NKRV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슨 바람이 부셨는지, 벌레를 보내셔서 그 박넝쿨을 새벽 사이에 다 갉아먹게 하시고는 또 뜨거운 동풍을 불게 하셔서 요나가 아주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뜨겁게 만드시니까, 요나가 또 하나님께 “내가 죽는게 차라리 더 낫겠습니다!”라고 항의를 합니다.
Jonah 4:9 NKRV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너가 대체 왜 이 박넝쿨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거냐? 그렇게 화내는게 왜 옳으냐?”라고 물으시니까 요나는 “제가 화를 내다가 뒷목을 잡고 쓰러져도 제가 옳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Jonah 4:10–11 NKRV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네가 뭘 열심히 일해서 이 박넝쿨을 키운 것도 아닌데, 그늘을 만들어준 이 박넝쿨을 아꼈으면서, 왜 12만명과 가축도 살고 있는 이 성읍을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법 감정

요나의 생각에, 인간의 생각에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요나를 보세요,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셔서 전했더니 그 전한 말씀은 이루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그 정반대의 결과만 나타났습니다. 요나는 사실 불순종한 예언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저희들의 반응이 요나의 삶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아까 말씀드린 하나님에 대한 법 감정,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대체 어떻게 저런 흉악범이 살아있을 수 있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나쁜 사람들만 잘먹고 잘살고, 착한 사람들이 못 먹고 못 살 수가 있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하는 질문들이요.
요나는 하나님과 싸운 사람입니다. 사실 저희들의 입장으로 보면 요나가 더 옳아요. 내 민족, 내 이웃, 내 친구들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말씀 전하기도 싫고, 그 사람들이 구원받고 잘먹고 잘사는 것도 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하고 하나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요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나는 한 가지 큰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고작 자신이 키우지도 않은 식물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는 십이만명의 사람은 죽어도 되는 존재였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통해서 살리신 자신의 목숨도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생명을 경시하고 있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삶을 인도하시면서 자신의 목숨도 경시하고, 남의 목숨도 경시하고 있는 요나를 다그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가는데 하나님이 도저히 놔주질 않으세요. 어떻게든 데려다가 쓰시고, 또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는데도 가르쳐서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요나서는 하나님의 가르치심으로 끝나지만 유대인의 주석서인 미드라쉬라고 하는 본문에 보면 요나의 반응이 붙여져 있습니다. 번역을 해드리면 “그 때에 요나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이르되, '주여 긍휼을 따라 주의 세계를 다스리시옵소서. 기록된 바,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나이다'(다니엘 9장 9절) 하였더라” 라고 말합니다. 이 때에 비로소 요나의 하나님에 대한 법 감정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문 말씀에서는 요나의 반응이 없지요.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여러분의 법 감정,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법 감정은 어디에 있습니까?

결론

오늘 본문말씀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Jonah 4:4 NKRV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나는 자신의 법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격렬히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람을 아끼시는 마음을 드러내셨고, 끝내 요나를 긍휼의 길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우리 또한 살아가면서 자신의 법 감정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쉽게 분노하거나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요나처럼 부당함에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판단이 정의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정의를 무너뜨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오래 참으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니느웨를 즉시 심판하지 않으신 것도,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악을 버리지 않은 니느웨는 하나님의 공의 안에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즉각적으로 분노하거나 성급하게 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회개를 기다리시며 인내하시고, 긍휼로 생명을 살리려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오늘 이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저의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옳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화내기를 더디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긍휼하신 마음을 닮아가기를 힘쓰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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