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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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근심에 함께 참여한 여러분들의 행함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근심에 함께 참여한 여러분들의 행함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바울은 오직 빌립보서에서만 자신의 근심에 동참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교회들도 바울과 함께 사역하고 동역했지만 빌립보 교회는 그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동기입니다. 아마도 다른 교회들도 물질로 기도로 바울을 후원하고 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근본적인 필요, 즉 바울이 왜 목숨을 걸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 되었을 때에 다른 교회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고민하고 당황하고 있었는데, 빌립보 교회는 바로 행동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빌립보 교회 내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의견이 갈리고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된 것을 알자 교회는 바로 행동을 합니다. 적어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동기를 이해하고 바울이 무엇을 근심하는지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고마와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초기 마케도니아를 떠났을 때 빌립보 교인 여러분 스스로도 알듯이, 주고 받는 일에 참여한 교회가 여러분 말고는 없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초기 마케도니아를 떠났을 때 빌립보 교인 여러분 스스로도 알듯이, 주고 받는 일에 참여한 교회가 여러분 말고는 없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협력한 것은 처음부터 였다고 말합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바울의 전도 여행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세운 것은 2차 여행 때 였습니다. 1차 선교 여행 후 바울은 다시 아시아 지역을 돌며 교회들을 격려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바울을 유럽 지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지역이 지금 바울이 이야기하는 마케도니아입니다. 이미 1차 선교 여행 때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복음을 전하는 초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인 유럽 지역을 이야기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아 제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이 전세계로 흩어졌을 때에도 유럽 지역에는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때 유럽 지역 최초로 세워진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고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 지역에 복음을 전할 때 물질과 기도와 마음으로 바울의 사역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1차 전도 여행 때 세워진 교회는 왜 바울을 돕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원래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동기와 행동에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바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도왔던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은 1차 선교 여행을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차 선교 여행을 통해 이제 바울은 내부적으로는 어느정도 인정을 받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원래 바울이 속했던 유대 그룹은 그를 배신자로 여기게 되었고 그를 제거하는 일에 총력을 다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갈등이 생기고 결국 바나바와 헤어져 따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이러면 이 소식을 들은 다른 교회들이 바울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누구 때문에 바울이 지금 이렇게 인정을 받았는데, 좀 컸다고 바로 은인을 배신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겠습니까? 거기에 아무도 복음을 전하지 않은 유럽 지역으로 어떤 다른 도움도 없이 간 바울에게 누가 후원을 하고 지지를 보냈겠습니까?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을 돕자고 하면 의견이 나뉘고 갈등이 일어날 그런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오직 빌립보 교회만 바울을 지원했습니다. 물론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상황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복음을 전해준 고마운 선교사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의 순수한 의도를 빌립보 교인들은 알았다는 것입니다. 복음 외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은 바울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배경 성격 능력 다 중요합니다. 그것을 무시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의도와 방향입니다. 그리고 더더 중요한 것은 그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면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를 이끄시는 하나님 때문에 기대를 하게 되고 응원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돕고 그의 고민과 고난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들은 내가 필요한 것들을 한번이 아닌 두번을 보내 주었습니다.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들은 내가 필요한 것들을 한번이 아닌 두번을 보내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 복음을 전한 두번째 도시입니다. 성경에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 두 도시를 언급했지만 그곳에서 복음을 따로 증거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데살로니가에 회당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에서 겪은 상황을 볼 때 이곳을 전진 기지로 삼을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곳에서 3주를 보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적지않은 헬라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의 귀부인들이 믿었음에도 바울은 오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갓 태어난 빌립보 교회가 삼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바울에게 두번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신선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는 거리가 160 Km 로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걸어서 일주일은 걸리는 곳이고 말을 타고도 이틀은 걸리는 거리입니다. 바울의 성격상 그리고 상황상 빌립보 교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도움을 주저없이 비용에 상관없이 보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그곳에서 빌립보 교회의 도움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빌립보 교회의 마음은 바울의 마음과 닿아 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선물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맺은 복음의 열매가 자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물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맺은 복음의 열매가 자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게 감사한 것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 자신이 필요한 그 무엇을 공급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도움으로 인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그 결과로 복음이 전 유럽에 전파되는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고 있을 당시에도 그 열매가 계속 자라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빌립보 교회도 바울도 단 한가지의 목적,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놀라운 것이 빌립보 교회는 갓 태어난 교회고 바울이 상당히 짧은 기간 머물렀던 곳인데, 바울의 진심과 의도와 복음의 능력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빌립보에 보내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빌립보 교회는 유럽의 첫 열매이기도 했지만 여러면에서 바울에게는 특별한 교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넉넉한 상태입니다. 에바브로디도로부터 여러분들이 보낸 선물을 받아 가득 차게 되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기뻐하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넉넉한 상태입니다. 에바브로디도로부터 여러분들이 보낸 선물을 받아 가득 차게 되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기뻐하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두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상황입니다. 바울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가득 차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설교에서도 만족함에 대해 말씀을 드렸지만 바울의 만족은 영적인 필요가 채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육적으로는 여전히 피곤하고 힘들었겠지만 그의 영적 필요가 채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만족이 바울의 참 만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서 빌립보 교회의 도움이 그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선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친밀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지 또는 슬프게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모를 때 사람들은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물론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련한 선택으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반복되면 우리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 중심 일때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면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필요를 알았고 채웠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킨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각의 필요를 하나님의 풍요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영광 안에서 채우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각의 필요를 하나님의 풍요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영광 안에서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런데 그 필요를 채우시는 것이 우리의 만족을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만족을 위함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필요는 내가 느끼는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시는 필요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와입니다. 아담은 하와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있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으라고 시키십니다. 이름을 짓다보니 반복되는 한 현상을 만납니다. 모든 동물들이 암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하루 종일 이름을 지었을 것이므로 본능적으로 아담의 머리 속엔 왜 내겐 짝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이 잠든 사이 바로 그 짝이 탄생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우리에게 상황과 환경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닿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완전하게 채우십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영원히 계속되는 영광이 있기를! 아멘!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영원히 계속되는 영광이 있기를! 아멘!
오늘은 5월 4일 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리고 세계적으로 스타워즈 팬들에게는 기념일입니다. 영화 스타워즈의 명대사 May force be with you. 의 기념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매일 매일이 기념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을 하고 그래서 우리는 예배합니다. 하나님께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을 돌립니다. 이 영광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끊임없이 지속되는 영광입니다. 그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그 영광이 우리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 안에서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영광을 당연하게 받으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당연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평안을 전하십시오.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여러분께 평안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평안을 전하십시오.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여러분께 평안을 전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여러분께 평안을 전하되 특별히 시이져 가문의 사람들이 평안을 전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여러분께 평안을 전하되 특별히 시이져 가문의 사람들이 평안을 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의 마무리를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빌립보 교인들을 격려함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없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투명했지만 영향력이 강했고 그 영향력은 하나님의 영향력이었습니다. 우리가 투명해질수록 하나님의 영향력은 강해집니다. 그런 하나님의 힘이 여러분들의 영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