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9일 새벽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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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 기적-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오병이어 기적-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시작하며
시작하며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기적 사건이기도합니다. 오늘은 마가복음에 기록된 오병이어 기적 기사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함께 듣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으신다.
마가복음 6장 7절에서 13절 말씀에 보면 열두 제자들을 둘씩 파송하시고 제자들이 어떻게 사역을 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세례 요한의 죽음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30절 말씀이 다시 연결이 되는데요. 열두 제자들이 사역을 한 후 예수님께 돌아와서 자신들이 어떻게 사역했을 했으며 어떠한 가르침을 전했는지 예수님께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제자들의 모습이 매우 힘들어 보였던 것 같습니다. 31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목마른 상태인가를 어느정도 알 수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유가 일어나고 귀신 쫓겨가고 복음의 말씀이 선포 될때 사람들이 막 몰렸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곳에서는 쉴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그 뒤를 쫓아갔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배를 타고 가는 예수님과 제자 일행 보다 걸어가서 먼저 그곳에 도착해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쉼을 위하여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지만 예수님과 제자자들이 이동한 곳에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보셨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현재 대한민국도 그러하지만 당시는 어떠했겠습니까? 나라를 잃은 상태이며 몇몇 지도자 계층외에는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사회였습니다. 목자 없는 양이라는 것은 실재로는 목자의 부재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바빴지 그들을 잘 돌보지 못햇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행하는 기적과 축귀 사역들은 그들의 갈망을 채워줄만했던 것 같습니다.
몇일을 굶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요? 먹을 것을 앞에 두면 이성을 잃게 되겠죠. 그렇게 무리들은 목자 없는 양으로서 자신들에게 꼴을 먹여줄 목자를 찾아 예수님을과 제자들을 쫓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수님께서는 쉬기를 포기하고 다시 복음을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십니다. 저는 이러한 예수님을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그냥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지만 우리를 위하여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창조의 안식일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자 그렇게 예수님께서 쉬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을 돌보시는 동안 날이 저물었습니다. 이제 저녁 밥을 먹을 때가 되었던 것이죠. 그때 제자들이 에수님께 나아와 이야기합니다.
“이 곳은 아무것도 없는 빈들입니다. 저녁을 먹을 때도 되어가니 무리를 촌과 마을로 보내어 무엇이라도 사먹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요한복음 6장 6절에 보면 빌립을 시험하시고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가복음은 그런이야기는 없습니다. 단지, 제자들의 반응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네 예수님? 이백데나리온이 있어도 저들을 다 먹이지 못합니다.” 이백데나리온을 계산해보면 예수님 당시 하루 노동자 품삯이 1 데나리온이었으니 200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연봉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을 들으셨는지? 어떠셨는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제자들이 알아보고 이렇게 답을 합니다.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적의 이름이 오병이어 기적이 된 것이죠.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을 먹이실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대로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로 하여금 100명씩, 50명씩 빈들에게 앉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아온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축복기도를 하십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죠. 떡이 나눠도 나눠도 계속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42절입니다. “다 배불리 먹고”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떡이나 물고기를 하나씩 먹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 이상 먹은 사람도 있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일이 더 있습니다. 43절 “남은 떡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자는 남자는 오천명이었더라.”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쉼도 포기하시고 그들의 영적인 필요도 채워주셨고 그들의 배고픔도 채워주었습니다. 저는 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분명히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4개의 복음서가 다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임을 말해주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건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런데 저는 오병이어 기적 자체가 사실이냐 아니면 과장된 이야기냐? 이것 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하여 설교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많이 들어봤는데 우리 성도님들은 얼마나 많이 들어보셔겠습니까?
어떤 복음송을 들어보면 요한복음 6장 내용을 바탕으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내어 놓은 한 아이의 믿음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이 말씀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37절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물론 제자들을 시험하고자 하신 말씀이었지만 마가복음은 전혀 예수님의 의중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은 이곳에 오기에 앞서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저 말씀은 진지하게 그 일을 행하라는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그 일을 하십니다.
저는 동일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저 불쌍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먼저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는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어라.” “그들의 영적인 배고픔, 그들의 갈망을 채워주어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시대가 겉으로는 종교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불확실하고 빠르게 변화하며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이 시대에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바라며 점집을 찾고 무속을 찾으며 영적인 것을 찾는 시대입니다.
쉬러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쫓아가는 그들의 배고픔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돌려보내야 하겠습니까? 그냥 내버려 둬야 하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 제자들, 성령세례 받기 전 제자들은 할 수 없다고 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세례 받은 자들은 그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세례 받은 중생한 그리스도인, 복음의 증인으로서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고 목자 없는 양들처럼 방황하는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갈수 있도록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한 주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화요일
권사님들 위하여 기도해주세요.
은혜의 동산 18기 7주차가 진행됩니다. 기도해주세요!
안식년으로 출타하신 담임 목사님, 사모님을 위하여
목자 없는 이 대한민국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들이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성도, 교회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