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상할 때 드리는 세 가지 기도(시119: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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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1. 들어가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우리 삶에는 어느 하나 빠진 곳 없이 죄와 그 죄로인한 영향이 끼치게 되었습니다. 사실이 이렇다 보니 한 번씩 우리 잎에서 푸념이 나옵니다. “거참, 아담 할아버지, 하와 할머니가 사탄에게 속지만 않았다면...”하면서 우리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인간의 타락 이후로 사람의 마음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사람 스스로도 죄를 짓지만, 타인의 말과 행동 때문에도 우리 마음이 상하는 날이 참 많습니다. 마음이 상하는 문제는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 하루 가운데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우리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직장에서 일하다가 마음이 상하고, 가정에서 자녀들과 이야기하닥 마음이 상하고, 지금 현재 내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과들과 비교가 되면서 마음이 상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는데 결과가 마음이 들지 않아서 마음이 상하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는데, 당최 따라와 주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등등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마음 상하는 일만 쫌 없더라도 이 팍팍한 세상 그래도 버티면서 살겠는데, 뭐 그렇게 마음 상할 일도, 사람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가 마음이 상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여가에 집중한다든지,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놀면서 상황을 잊어버린다든지 하던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할까요?
맞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보면서 충분히 예상하셨을 겁니다. 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냥 냅다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 그냥 냅다 기도하는 것이 답이었다면, 굳이 오늘 이 시간에 설교를 통해서 말할 나눌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상할 때, 상한 마음의 해결하는 본질이 무엇이고, 따라서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지를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시편 중에서 가장 긴 장에 해당하는 시편 119편 17-24절의 내용을 통해 그 사실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2. 본론
2. 본론
1) 배경 설명
1) 배경 설명
오늘 본문은 시편 119편은 사실상 누가 썼느냐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시편이 쓰여진 시기에 대해서는 최근 구약학자들 사이에서 제2성전기 시대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제2성전기라고 하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했을 시대를 말하는 겁니다.
당시 유대 공동체는 많은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하에 정치적 압박과 유대 공동체 내에서도 포로에서 귀환된 사람들과 오랫동안 땅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인하여 많은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가운데 유대 공동체는 포로기 이전의 성전 제사 중심의 신앙에서 율법 중심의 신앙으로 탈바꿈 하게 되었습니다. 포로 생활을 하다보니깐, 당연히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그 방법이 말씀의 중심의 신앙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 귀환 이후의 유대 공동체는 이제 말씀 중심의 공동체가 되어 이 혼란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다시 세워가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가운데 시편 119편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119편 안에는 율법, 증거, 법도, 율례, 게명, 판단, 말씀, 약속 등과 같은 말씀 중심의 단어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하나님의 말씀 만이 시인을 포한 유대 백성 전체의 삶을 성찰하는 거울이라는 것” 핵심 가치로 여기며 내용이 전개됩니다.
2) 17-24절의 내용 요약
2) 17-24절의 내용 요약
그리고 오늘 본문은 상한 마음의 위로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 외부의 어떤 압박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들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서 안으로나 밖으로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상하게 할 일들이 많은 것처럼, 시인이 이 시를 쓸 당시에도 앞서 말씀드렸던 문제들 때문에 마음이 마음 상했던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도 있고, 이방인들의 관습이 유입되어서 나라가 엉망이 된 것도 있고, 기득권층이 부패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여 오직 말씀으로 다시금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찾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다시 건설되기를 갈망했던 시인은 마음이 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회복하는 일의 본질
3) 회복하는 일의 본질
말씀 중심의 이스라엘을 건설되기를 기대하며 온갖 외부 고관들의 비방으로 부터 마음이 상했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시인의 마음이 회복하는 일은 결단코 단순한 위로나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마음이 어려울 때, 친구들을 불러서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 부르며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회복을 위한 본질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말씀이 주는 은혜 가운데 다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의 상함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오늘 시편의 기자와 우리의 상황은 아주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주는 은혜로 들어가는 것이 모든 마음의 상함에서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황은 달라도 우리도 말씀 가운데 살아갈 때,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나를 향한 일하심과 연결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주어진 특별 계시, 곧 성경의 말씀을 통해 여전히 살아계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인격적으로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말씀 때문에, 그리고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떄문에 우리 마음의 상함 중에도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4) 마음이 상할 때 드리는 세 가지 기도
4) 마음이 상할 때 드리는 세 가지 기도
그래서 오늘 시인은 주의 말씀 곧, 율례라고도 하며 계명이라고도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된 중요한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시인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기도야말로 “마음이 상할 때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지1) 살게 하소서
대지1) 살게 하소서
먼저 시인이 드리는 기도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입니다. 함께 1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편 119: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시인은 하나님께 “주의 종, 자신에게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후대하여”라는 말은 “은혜를 베푸셔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깐, 지금 여러 일로 마음이 상해 있고, 상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려달라는 이유가 뭡니까?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게습니다.”라는 이어지는 구절을 보았을 때, 그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다라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음이 상한다는 것은 마음이 산산 조각이 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태 가운데 사실상 우리는 바로 생명의 말씀으로 들어갈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잘 알듯이 극도의 스트레스와 마음의 상함 또는 마음의 불안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는 아무리 눈 앞에 성경이 있어도 그 말씀을 펴서 진지하게 말씀을 바라보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하루 종일 사업과 직장에서 시달리고 와서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당신이 말씀을 읽지 않아서 지금처럼 풀이 죽어 있는 겁니다.”라는 말 만큼 어리석은 말이 없습니다. 원래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성경책 한 장의 무게는 몇 백톤의 무쇠보다 더 무거운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이런 가운데서는 시인의 기도 처럼 하나님께 일단은 좀 “살려달라고”기도해야 합니다. 마음도 안정되고, 잡념도 사라지고, 숨도 한 숨 돌리고 하는 등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어린 아이가 열병에 걸려서 누워 있습니다. 아이는 너무 괴롭습니다. 아이 자신에게는 지금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이불 밖을 나가 걷자니 머리가 어지럽고, 누워 있지니 온 몸이 불덩어리라 정신이 혼미합니다. 그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옆에 있는 엄마, 아빠에게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뿐입니다. 그 때 엄마, 아빠가 아이를 업고 병원을 가고 약을 먹이게 되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려서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겁니다.
마음의 상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도록 하고, 말씀이 우리 마음에 위로를 주며, 말씀이 우리에게 바른 방향을 가르쳐주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살려주셔야 우리가 그 말씀을 대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상해 있습니까? 만약 지금 마음이 아파서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여러분의 상황이라면, 그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며 나가길 원합니다. “주님, 살려주세요” 이 기도를 드리며 간절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정말 간절하게 “주님 내 영혼을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대지2) 보게 하소서
대지2) 보게 하소서
두 번째로 시인이 드리는 기도는 “보게 하소서”입니다. 이어지는 18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인은 은헤로 나를 살려주소서 라고 기도하고 살려주실 때 주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겠다고 고백한 후 이제는 자신의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 곧 말씀의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했다면, 이제 우리는 더 나아가 “말씀을 볼 수 있는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18절의 초두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여실 때”우리는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성경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여서 눈을 열어주 실 때만이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8절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게 하소서”라는 부분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 부분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 별을 보아라고 했을 때와 민수기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장대 위에 있는 놋뱀을 바라보라고 했을 때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예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이 보라고 명령하신 것들을 보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의 말씀을 보게 하소서 라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눈을 여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봐야할지를 알게 하소서라는 의미를 가진 기도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좋은 글들이 참 많습니다. 지금도 온/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삶에 지치고, 마음이 상한 자들을 위한 에세이가 참 많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글들도 우리 내면에 상한 마음을 치료하지 못합니다. 잠시 위로는 받을 수 있고, 공감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로 우리 상한 마음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의 말씀의 보도록 허락하실 때”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마음 속에 진정한 위로와 성경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이 되어 오늘 나의 상한 마음도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상한 마음 때문에 힘들 때, 살게 하소서에 이어 “주여, 눈을 열어 허락하신 말씀을 보게하소서”라고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 눈을 열어서 말씀을 보여주시고, 우리 마음에 회복을 더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대지3) 숨기지 마소서
대지3) 숨기지 마소서
마지막 세 번째 시인이 드리는 기도는 “숨기지 마소서”입니다. 함께 19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편 119: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시인은 이제 19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숨기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고 왜 이런 기도를 한 것일까요? 먼저 이 기도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가리워 져서 말씀을 봐도 이해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것을 막아달라는 것입니다.”
앞서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주시고, 보여주셔야만 말씀을 말씀으로 받고 알 수 있는 것처럼, 반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우리에게서 숨겨버리시면, 그야말로 말씀을 봐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반응하지도 못하고 결국 상한 마음도 어쩔 도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왜 이런 기도를 했을까요? 19절 초두에 보니깐, 시인 자신을 두고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 내에서도 하나님의 백성, 곧 성도의 삶으 ‘나그네’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그네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서 나가는 순례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소속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깐, 이런 나그네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하나님 백성에게는 삶의 궁극적인 기준이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어떤 경우에 라도 말씀이 “자신에게서 숨기지 말아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순례자요 나그네로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쉬운 인생이 아닙니다. 세상 안에서 죄로 가득찬 사람과 환경을 경험하며 살아갈 때, 마음의 상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가운데 “말씀이 보여달라고 하는 기도와 더불어, 주님 말씀을 숨기지 마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기도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를 살려주시고, 말씀을 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일평생 주님의 말씀을 내게서 숨기지 말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숨겨지면, 우리 영혼은 호흡하지 못합니다. 말씀이 숨겨지면, 우리 삶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어떤 상한 마음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의 말씀이 우리 삶을 떠나 우리의 영혼이 방황하지 않도록 기도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이어지는 이야기”
시인은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갈망하고, 이 말씀을 거부하는 자에게 책망이 있을 것을 말하며, 자신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시선을 거두며, 고관들의 모함이 멈출 수 있도록 구하며,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묵상하고 있음을 고배가며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3. 메시지
3. 메시지
오늘 말씀을 통해 나눈 세 가지 기도를 우리 삶에 잘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도저히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고통 중에 있을 때,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 회복하기 위하여 주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해봅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말씀을 향한 우리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해봅시다. 그리고 또 일평생 우리 앞에 말씀이 숨겨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이 세 가지 기도는 당장 우리 눈앞에 문제가 해결되서 우리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쾌감을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인생에서 상한 마음을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도요 방법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4. 결론
4.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상한 마음은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번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주의 일을 하다가도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 기자의 기도 내용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기도는 그 어느 하나도 말씀과 떨어진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세 가지 기도의 모든 목적은 “말씀”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곧 말씀이 우리 상한 심령을 회복하기에 시인은 오늘 나눈 세 가지 기도를 드렸고, 우리도 이 세 가지 기도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상한 마음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했을 때, 기도하지 않아서 말씀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마음을 상하게 만든 상황만 곱씹게 됩니다. 참 그게 사람을 힘들게 해요. 기도하지 않아서 말씀을 통해 회복하지 못하면, 상황을 곱씹으면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듯 삶을 살게 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 살기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절한 기도와 말씀으로의 회복을 통해,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더 가까이 행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저와 여러분 어떤 상한 마음의 상태에서도 오늘 세 가지 기도를 잊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올려드려 그 응답으로 말씀 안에 거하곘노라 다짐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