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장 1-10절 “예수님과 부활과 그 의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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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과 그 의미들(요 20:1~10)
20250420                                                설교: 신동구 목사(주님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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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1998년 5월 21일부터 2024년 5월 25일까지 방영되던 프로그램입니다. 위 프로그램은 “전국 노래자랑”, “아침마당”과 더불어 전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6년 동안이나 우리나라에 일어나는 진기한 일을 TV로 접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특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제목처럼 사람이든 동물이든 일반적인 모습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기에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약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나사렛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이야기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을까요? 스토리는 이러합니다. 
  이방 땅으로 놀림을 받던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하던 예수님이 수도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신성모독죄로 정죄를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생사여탈 권을 가진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소하여 예수님에게 채찍형이 선고되고, 또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사주를 받은 백성들이 총독에게 십자가형을 요구하자 그는 민란을 염려하여 예수님에게 십자가형벌을 선고합니다. 예수님은 총독의 최종 선고로 예루살렘 영문 밖 골고다(해골)형장에서 십자가 형벌을 받아 피와 물을 쏟으시면서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시체를 매달아 둘 수 없기에 산헤드린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장하여 돌문으로 그 무덤을 봉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만약 1세기 당시에 이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면 기득권자인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열을 통해 강제 종영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을 보십시오. 대제사장이 능력이 많은 예수님이 혹 그의 예언대로 부활할까 봐서 무덤 옆에 경비병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내려와 돌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여 사라지자 대제사장은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어(마 28:12)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갔다는 거짓 뉴스를 퍼뜨리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경험하듯이 불의한 세상은 하나의 진실을 덮기 위해 여러 개의 거짓 뉴스를 동원합니다. 진실을 목격하지 못한 이들은 여러 거짓 증인들의 반복되는 말을 듣고 분별력을 상실하면서 자신들의 정치 성향을 따라 진실을 믿기 보다는 거짓 뉴스를 믿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형벌을 목격했던 제자들조차 쉽게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뿐만 아니라 물까지 다 쏟아내신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했던 여제자들과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증거합니다. 골고다 형장을 떠나 도피 중이던 남제자들도 멀리서 십자가 형벌을 보았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쉽게 믿지 못하였습니다.
  요한복음은 소아시아 에베소교회 등을 위해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자서전과 같은 책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적인 생애 약 3년 6개월 정도를 다루는데 그 공생애의 끝이 십자가에서의 죽음, 장사됨,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과 예수님께서 부활의 몸을 친히 제자들에게 보이시면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제자들에게 위임한 것으로 끝맺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3가지 기사를 제공합니다. 
① 부활의 최초 목격자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 요한이 또 다른 목격자의 등장. 
② 제자들의 모임에 빠졌던 도마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심. 
③ 마지막 하나는 갈릴리 호수에 모였던 7명의 제자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사 베드로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긴 것.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예수님이 진짜로 부활하셨는가’와 ‘왜 부활하셔야 했는가?’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I. 예수님은 진짜 부활하셨는가?
  사(四)복음서가 언급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기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은 2개의 기사를 다룹니다(최초 목격자 막달라 마리아의 기사,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11제자를 만나 복음전파의 사명을 당부하시는 기사).
  마가복음은 3개의 기사를 다룹니다(최초 목격자 막달라 마리아의 기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기사, 11제자를 만나 복음전파를 당부하시는 기사).
  누가복음은 3개의 기사를 다룹니다(마가복음과 동일한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기사를 좀 더 자세하게 다룸).
  요한복음도 3개의 기사를 다룹니다.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마, 막, 눅)보다 늦게 출간된 복음서이지만 최초 목격자 막달라 마리아의 기사, 부활을 의심한 제자 도마의 기사, 그리고 7제자들을 만나 복음전파를 당부하시는 기사를 다룹니다. 특히, 요한복음 예수님의 부활기사 중 부활을 의심한 제자 도마의 기사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베드로를 만나 그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신 기사를 비중있게 다룹니다.
  사도행전은 2개의 기사를 다룹니다. 하나는 스데반 형제가 순교할 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 그를 영접한 기사(행 7장)와, 다른 하나는 기독교의 핍박자 사울에게 부활의 주님이 빛 가운데 음성으로 나타나신 기사입니다(행 9장). 사도행전 1:2은 예수님이 40일 동안 부활의 몸을 보이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예수님이 12제자에게 보이셨음을 말하는데(고전 15:5) 이는 보궐로 뽑힌 사도 맛디아도 부활을 목격하였음을 알려줍니다(행 1:26). 그 외 500여 명이 모였을 때에 부활의 예수님이 일시적으로 나타나셨으며 그 중 다수가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삭되지 못하여 태어난 미숙아와 같은 핍박자 사울 자신에게도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증인 규례는 신명기 19장에 따라 두세 명이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목격자는 차고도 넘칩니다(신 19:15~16). 
  우리는 부활의 증인들이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랐기에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복음서는 11제자들이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쏟으시면서 고통 속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을 다들 믿지 않았다고 기술하기 때문입니다(마 28:17; 막 16:11; 눅 24:11; 요 20:9).
  병원에서 죽음을 경험했다가 살아난 임사자들이 있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들의 죽음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채찍질과 가시관과 못과 창에 의해 갈갈이 찢겨진 몸입니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이 세마포에 싸여 장례를 치른 후 무덤에 묻히고 돌문이 그 무덤을 가렸는데, 그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부활의 첫 목격자인 막달라 마리아도, 베드로와 예수님이 사랑하는 막내 제자 요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한 명은 글로버), 그리고 의심 많은 제자 도마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좀 더 충격적으로 묘사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교통사고나 전쟁으로 죽음을 맞이한 흉측한 시신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확신과 같은 것입니다. 어떻게 비참하게, 처참하게 죽은 시신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처음 부활하셨을 때 첫 목격자들은 다들 기절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부활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복음서의 진술대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다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성적으로 부활을 의심한 헬라 철학자들과 그 영향을 받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관한 깊은 진리를 다양하게 풀어줍니다.
  하나는 목격자들을 소개함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고전 15:1~11). 
  다른 하나는 이론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고전 15:35~49). 곧 다양한 종자 씨가 죽음으로 또 하나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도 다 같은 육체가 아니라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는 육체가 있음을 소개합니다. 또 첫 사람(아담)은 흙에서 났지만 둘째 사람(예수 그리스도)은 하늘에서 나셨습니다. 따라서 무릇 흙에 속한 자는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라(고전 15:47~49)고 논증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짜로 살아나셨는가가 의심스러울 때 그 의심이 당연한 것이지만,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사복음서의 후반부 기사와 예수님의 부활을 논리적으로 증거하는 고린도전서 15장을 깊이 상고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활의 첫 목격자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여제자 막달라 마리아는 마치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PTS증후군을 겪는 것처럼 처참한 십자가 형벌의 목격자로서 PTS증후군과 유사한 증세를 앓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한 조건을 가진 막달라 마리아에게 당신의 부활의 첫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때 마리아는 그가 무덤을 지키는 동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일곱 귀신 들렸다가 고침 받은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삼으신 이유는 아마도 부활의 사실성과 부활에 담긴 깊은 의미들을 ‘교만한 자들에게 숨기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귀 있는 자들 곧 ‘겸손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앙망하는 자’에게 진리가 들려진다고 말합니다. 
II. 예수님은 왜 부활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부활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으시고 사흘 동안 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것에는 7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지심으로 부정한 자가 되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당하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값이 모두 지불되었다는 증표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정하신 삼일간의 무덤 생활이 종결되었다는 증표입니다. 마치 형량을 모두 수행한 이들이 감옥에서 나와 사회생활로 돌아가듯이 예수님도 하나님이 정하신 삼일이라는 형량을 모두 마치시고 무덤에서 나오사 일상생활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 앞에 자기 백성의 죄 값을 다 지불하셨기에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은 증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이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삼일 간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부정한 자로 서는 것이 아니라 의인으로 서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예수님에 의한 ‘십자가와 무덤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속(救贖)과정을 믿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그들을 의로운 존재로 받아주십니다. .
  넷째,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 앞에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첫 증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은 것입니다(고전 15:49).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에 믿음으로 연합된 이들도 장차 하늘에 속한 이와 동일한 형상을 입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하며, 그와 연합된 이들이 둘째, 셋째 등으로 그 다음 열매가 된다고 증거합니다(고전 15:20~23).
  다섯째, 예수님의 부활은 당신 안에 생명의 영이 함께 하시며, 또한 당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생명의 영으로 함께 하심을 증거합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십자가와 우리에게 각종 선물을 주시는 부활을 믿는 자 안에 예수님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성경은 이를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곧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심, 예수님의 영이 함께 하심, 성령님이 함께 하심 등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주님이요, 영생의 주님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 안에 성삼위일체의 영 곧 영원한 생명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섯째, 예수님의 부활은 당신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듯이 당신과 연합된 이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기를 촉구합니다(마 5:13, 14). 신명기는 출애굽 백성을 가리켜 그들이 열국 앞에서 ‘지혜와 지식’이 되기를 원하였다(신 4:6)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요,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2)라고 말합니다. 
  곧 부활의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증인으로, 그리고 베드로 및 제자들에게 주셨던 사명처럼(요 21:15~17)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와 의롭다 함과 영생 등을 선물로 주시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에 믿음으로 연합된 이들은 거룩한 삶과 의로운 삶, 그리고 선한 삶으로의 부르심을 수행해야 합니다.
  일곱째,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이 당신과 함께 영원한 통치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증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의롭다 함과 영생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승천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사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만유의 주로 통치하고 계시는데, 그리스도인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의 통치에 함께 참여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의 그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고 하늘로부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때 그 성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계 2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영상매체를 통해 증언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까요? 대답은 반반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닫지만, 여전히 들을 귀가 없는 자는 듣고 깨닫지 못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의심 많은 도마를 긍휼히 여기서 친히 부활의 몸을 보이셨습니다(요 20:24~29).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아직도 도마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이들이 요한복음의 독자인 에베소교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어지는데 부활은 못 믿겠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이적을 통해 부르시기도 하시며, 강론을 통해 부르시기도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방식이 2대 8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실 때 20% 정도는 이적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며, 80% 정도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봅니다. 그 증거가 누가복음 16:31입니다(눅 16:31- “이르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우리 주님의 이름의 권세가 만유의 권세이기에 그 이름으로 귀신이 두려워 떨며 쫓겨나며, 또한 각종 질병에서 고침을 받되 나이를 불문하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적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으나 우리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이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함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만큼은 역사적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신뢰하며, 더 나아가 부활의 7가지 효력을 깊이 상고하십시오. 그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나에게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 곧 선물들로 인하여 감사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라”는 신앙고백으로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진실로 부활신앙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로운 사회(나라)를 가꾸어가는 초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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