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바람 앞에(요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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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4월 30일 수요일
제목 : 성령의 바람 앞에
본문 : 요한복음 3:1-8
1. 난해한 대답들
1) Q. 왜 우리는 난해한 대답을 하는가? A. 충분히 고민했는가?
저는 누군가 제게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잘생겨질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꽤나 고민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제 대답이 난해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잘생기려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초부터 잘생김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제가 어떤 대답을 하던 그것이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을 수 있어 난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대답이라는 과정에 있어서 종종 명확하지 않게 답변이 되는 경우는 질문에 대해서 평소 생각할 일이 없었다던가, 또는 질문에 대한 뚜렷한 답을 알지 못할 때 답변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새가족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이에 대한 답변이 조금은 뚜렷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10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교회 출석해야 한다거나, 십일조를 한 번도 빼먹지 않고 10년간 해야 한다거나, 최소 10명을 전도해야 구원을 받는다거나 하는 등 구체적인 기준이 있다면 답하는 우리나, 듣는 새가족이나 명확해서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압니다. 구원이 곧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라고 답할 것입니다.
이 대답은 뚜렷하고 명확한 답이지만, 이는 믿는 우리에게나 통용되는 대답일 것입니다. 여전히 새가족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는 불투명한 답에 멈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새가족이 한 번 더 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믿음이 생깁니까?”
이때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경험과 주관적 사고를 담아 대답할 가능성이 큽니다. “일단 교회를 가보자. 교회 가서 예배 드리다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이 날 찾아오시는 걸 알 수 있을거야.” “일단 성경을 읽어보자. 성경을 읽다보면 어느순간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꺼야.” “일단 기도해보자. 간절히 구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허락해주실거야.”
물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 더 많은 시간 상대방과 함께 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를 알아가듯, 예수님을 알기 위해 예배의 자리를 참석하거나, 성경을 묵상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 이라 표현하기 때문에, 예배나 묵상이나 기도와 같은 모든 행실은 곧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2) 어떻게 하면 거듭납니까? 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과연 명확한가?
그렇다면 거듭난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누군가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난해한 대답대신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고민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오늘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거듭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신약의 사람, 첫 번째로 다룰 니고데모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니고데모와 예수님
1) 니고데모, 그는 누구인가?
오늘 본문은 니고데모를 바리새인이라고,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명시 합니다. 다시 말해 니고데모는 율법적으로 충분히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율법에 있어서는 존중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 소속이기에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충분히 높은 위치에 있어 남 부러울 것 없이, 부족한 것도 없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예수님 역시 그를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표현합니다. 가르치는 능력도 있었고, 또 가르칠만큼 학식마저 깊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니고데모는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나 인정하고 누구나 존경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밤이라는 시간대를 택해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밤이라는 시간대를 택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너무나 업무가 바빠 끝내 밤에 올 수 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니고데모의 영적상태가 밤처럼 어두웠기에 밤이라는 시간대를 택하게 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니고데모는 예수님 앞에 서 있다는 겁니다.
2) 니고데모의 질문, “당신은 정말 메시아가 맞습니까?”
그리고 니고데모가 말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압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당신이 메시아 입니까?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당신입니까? 당신이 메시아가 맞습니까?” 라는 겁니다.
니고데모의 이러한 태도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만나게 된 설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당신 정말 메시아 맞아?’ 라는 의심 속에서 나온 태도인지 고민해 볼 수 있겠지만, 요한복음 2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으나, 그 마음 속에 예수가 없음을 이미 아시며 지나쳤던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만나주셨다는 사실에 우리는 니고데모는 정말 메시아에 대한 설렘이 있어 그런 질문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3) 예수님의 대답, “거듭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그런 니고데모를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남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쉽게 상태의 변화라고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한 방탕한 삶을 살던 아빠가 성실한 아빠가 된다면 이를 우리는 거듭났다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조폭에 몸 담았던 한 사람이 약자를 위해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게 된다면 이또한 우리는 거듭났다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반대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거듭났다 할 수 있을까요? 어려서부터 성실했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만큼 지혜로웠던 자가 술과 도박에 절여져 살게 되었다면 이를 우리는 거듭났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보다 살이 3-40kg이 찐 모습을 보며, 물론 누군가 “이야 거듭났네~” 라 말할 수 있겠지만 이는 조롱일 뿐, 거듭남의 진실된 의미를 담아내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이란 퇴화가 아닌 긍정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모습을 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속 거듭남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바뀌는 겁니다. 변화되어 지는 겁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으로부터 변화되어지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어떤 말씀을 니고데모에게 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그것은 바로 이겁니다. “지금 너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어. 사실 넌 지금 수많은 무리랑 다를 바 없어. 너, 쟤들하고 같아.”
그래도 니고데모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인데, 저 말에 자존심이 상할 법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오랜 시간 율법을 연구했고 가르쳤고, 전문가라면 충분히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 평가받을 수 있는 자였는데, “넌 안돼!” 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존심이 충분히 상할 법 합니다.
3) 니고데모의 질문, “거듭남,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지난 날의 삶을 송두리째 거부당한 니고데모는 분개할 수 있고 또 지금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버릴 수 있었겠지만 오히려 묻습니다. 4절,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저는 이 대목에 있어 니고데모가 결코 어리석어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면 되는가’ 를 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충분히 율법을 알만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차 메시아가 오실 것도, 또 메시아 하실 일이 무엇인지도 알았을 겁니다. 그런 그가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정황상 알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겐 기대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에겐 설렘이 있었습니다. 정말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고, 또 메시아가 약속된 일들을 행하실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다시 말해, 니고데모의 모태로 다시 들어가면 되냐는 말은, ‘지금 내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기대를 가집니다. 거듭남, 가능하다면 그 비밀을 제게도 알려주세요.’ 라고 묻는겁니다.
3. 더이상 난해하지 않은 거듭남의 영역
1) 거듭나야 하는 이유 : 우리의 정체성을 하나님께로 옮기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거듭나길 원하셨을까요?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정체성에 있습니다. 더이상 니고데모가 율법으로 메시아를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순 지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내길 소망하셨던 겁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께 존속된 삶을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겁니다. 지금의 아엘이는 제게 모든 걸 맡긴 삶을 삽니다. 예를 들어, 자기 딴엔 아무리 높은 곳에 있다해도 아빠가 잡아줄거란 확신이 있기에 높이 뛰어 제게 몸을 맡깁니다. 이때 맡기는 건 가령 몸만 맡기는게 아닙니다. 안전하게 보호할 것도 믿고 맡기는 겁니다. 또 그대로 안아서 슈퍼맨처럼 날려줄 것도 기대하며 맡겨보는 겁니다.
니고데모는 그런 기대로 하나님께 모든 걸 맡겼습니다. 내 육신도, 앞으로의 내 미래의 안전도, 또 날 인도하실 것에 대한 기대로 맡겨보는 겁니다. 정체성이 세상에서 하나님으로 바뀔 때 이 모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2) 거듭나기 위해서 : 1. 구경꾼이 아닌 예배자로
그렇다면 우리는 거듭남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먼저, 구경꾼이 아닌 예배자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수많은 무리와 달랐습니다. 그들처럼 구경만 하다 사라진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밤 중에라도 그는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시작이었습니다.
정말 애석하게도 이 자리에 앉아 있는다 해서, 설교를 듣는다 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호기심에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사실 얻어갈 것 하나 없습니다. 구경꾼에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진지하게 이야기 속에 들어와 니고데모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자리에 서 있는 자들이야 말로 세상이 줄 수 없는 무언가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예배자로 나아가는 일에 걸림돌이 됩니다. 때론 자녀가 걸림돌이 되기도, 물질이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건강이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만약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께서 “넌 안돼!” 라 말씀하셨을 때, 자신의 지식을 더 고귀하게 여겼더라면, 그래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왔더라면 결국 그걸로 끝이났을 겁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엎드렸습니다. 니고데모는 그냥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진지하게 그 말씀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3) 거듭나기 위해서 : 2. 성령의 바람 앞에
또 거듭나기 위해서 우린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6절부터 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 바람이 임의로 볼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에스겔 37장, 마른뼈를 다시 살릴 때, 하나님은 성령의 바람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른 뼈에 생기가 생겼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사람을 다시 살리고, 회복시키시고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마치 마른 뼈와 같기에 생기가 바람처럼 불어와 마른 뼈가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된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오시기 전에 이렇게 성령의 바람이 불었던 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바람은 오직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만이 불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이 바람을, 이 성령의 바람을 우리를 향해 불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른 뼈가 죽어 버려지기 보다 다시 살아 역동하길 소망하시며 우리게 그 바람을 불고 계십니다. 그 바람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거듭난 생명으로 살아낼 것입니다. 그런 성령의 바람 앞에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세상의 유혹 시험이 + 충만
- 세상의 유혹 모든 시험을 우리는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능히 무너트릴 능력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모든 전쟁의 승리 되시는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주님, 내 삶의 모든 것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듭난 삶, 오직 주의 손 붙들고 의존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늘 예수로 충만한 그런 우리 되게 하소서.
- 성령의 바람은 오늘 이 자리에, 또 오늘 우리 가정에 계속해서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무지가 그 바람을 놓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바라옵기로는 주님, 이제는 눈 들어 성령의 바람을 마주하게 하소서. 그렇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 다시 살아나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다락방, 우리의 공동체 되게 하소서. 곳곳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나게 하소서.
2. 충만 +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 기도가 필요한 우리 믿음의 동역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가족을 잃고 슬피 우는 자,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자, 새생명의 축복에 기뻐하기도 또 슬퍼하기도 하는 자, 직장의 어려움과 가정의 어려움으로 마음의 상처입은 자.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 이들의 마음을 위로케 하시고, 어루만지사 더이상 두려움 가운데 머물기 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우리 성도들 되게 하소서. 그들을 위해 함께 울며 기도하는 우리, 함께 웃어주며 축복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