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장 26-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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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아의 처형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좌를 노리던 아도니아는 공식적인 다윗의 선포로 인해 그의 모든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도니아는 아비삭을 요구하는 행위는 다윗왕위를 공식적으로 노리는 행위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이것은 아도니아의 의도된 요구였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하였을 때 왕궁을 차지한 그가 한 일은 다윗의 후궁들과 잠자리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비록 후궁이지만 왕의 아내를 취함으로 왕위의 정당성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도를 잘 알던 솔로몬은 즉각 아도니아를 처형합니다.
그 이후 아도니아와 함께 반역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후속조치가 취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제사장 아비아달을 불러 명합니다.
아비아달을 그의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5-6키로 정도 떨어진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작은 마을 입니다.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죽이지는 않지만, 다윗에게 충성하였던 점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였던 점을 감안하여 쫓아내고 제사장 직분을 파면 합니다.
이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비아달의 이 사건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본문 27절 입니다.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합니까?
아비아달은 엘리 제사장의 자손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2장 31-33절 입니다.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번째는 아비아달의 삶을 평가하며 이미 엘리 시대에 주어진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 되며, 그 하나도 허투루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두번째는 그렇다고 해서 아비아달의 삶이 저주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은 이미 그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 대해 주신 말씀이 당대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계속 제사장 가문을 이어왔고, 하나님은 충실한 자들의 사역과 삶을 인정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비아달은 제사장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 선택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 받던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한 결과를 가지고 하나님과 마주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결정과 뜻을 하나님의 뜻인것 마냥 포장하여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지 않는 가를 잘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이어서 요압에 대한 처분을 내리고 있습니다.
아비아달이 쫓겨났다는 소문을 들은 요압은 즉각 여호와의 장막에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았다고 합니다.
이는 출애굽기 21장의 율법의 내용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1장 13-14절 입니다.
13.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14.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이 피의 복수를 당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압의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요압은 다윗에 충성된 신하이면서도 군대장관 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때로는 다윗왕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 있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과 협상 도중 자신의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따라가 죽인 사건이나 ,
절대 죽이지 말라 했던 압살롬을 죽인 사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수 있음을 알고 군사령관 아마사를 죽인 사건들이 있었지만,
다윗은 마음대로 하는 요압을 어떻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2장 5절에서 불의한 피를 묻힌 요압을 죽이라고 명령하여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솔로몬이 당하지 않도록 당부 하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끌려나온 요압은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로써 군사와 종교 리더의 교체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요압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지금 가진 우리의 힘과 권세를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알아야 합니다.
악한 권세를 휘두르며, 왕도 어떻게 하지 못하였던 요압의 말년은 처절 합니다.
아비아달에게는 생명이 보전되었지만, 요압에게는 그런 자비도 없습니다.
다만 다윗과 함께 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치와 모욕을 당하도록 시신이 버려지지는 않고 자기 집에 장사됨으로 그 공로를 인정 받습니다.
결국 그의 욕망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불의한 피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때에 요압의 죄를 밝히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나가십니다.
우리에게 힘과 권력은 자신을 위해 휘두르는 도구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사명을 위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주를 위하여 그것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지금 당장은 아무 일이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것이 하나님으로 포장한 나 자신의 욕망이었음을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순간의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거짓 헌신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몸된 교회와 주신 사명을 위해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겸손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기억하여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설 수 있도록 오직 주님만 섬기며 살아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