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1-11절(화평을 이루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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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험을 하나씩 들고 계실 겁니다.
보험은 나중에 일어날 사고나 질병에 대하여 미리 대비하는 용도 입니다.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였을 때, 보험을 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보험을 들 수도 없습니다.
저도 5월 말이 되면 자동차보험을 갱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벌써 4월 초부터 각 자동차보험 회사에서 계속해서 전화와 문자가 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제일 아까운 보험이 자동차 보험인 것 같습니다.
자동차 보험금을 타먹으려고 하면 사고가 나야되는데, 절대 사고는 나면 안됩니다.
그래서 갱신할 때마다 왠지 돈을 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보험들처럼 믿음도,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 믿음과 신앙을 보험처럼, 교회 다니는 것을 천국을 위해 보험 드는 것 처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로마서 5장은 4장의 내용을 이어받아 구원의 결과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구원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첫번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던 원래 우리의 정체성을 골로새서 1장 21절 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우리는 악한 행실로 인하여 이미 하나님과 마음으로 그리고 삶으로, 행실로 원수가 된 자 입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이고,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의 정체성 입니다.
그래서 불화의 원인제공자, 불화의 회복을 거절한 사람은 바로 나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고, 화평을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화평을 가능하게 한 원인도 우리에게 제공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 입니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사야 9장 6절 말씀 입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평화를 주시기 위함 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이 화평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공적이 화평 입니다.
세상에서 싸움과 분열과 전쟁의 소리들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대립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어디에 있습니까?
근본적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된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과 같이 눈에 보이는 전쟁들과 함께
무역전쟁 또,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 많은 분열과 갈등들,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엇으로 부터 시작되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그리고 타락한 인간들 안에, 그들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공적 화평이 있다면 두번째로 개인의 화평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불화한 자의 대표적인 상태는 불안감에 휩싸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 자리, 명예, 미래, 어쩌면 하나님과의 불화한 상태 가운데서 오는 심판의 두려움 까지
우리는 타인을 경계하고, 소유에 집착하며,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알고 바꾸기 위해 몸부림 칩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심판의 두려움에 벗어나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책, 상담, 학문적 연구들, 의학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화평과 더 멀어진 우리들의 죄악된 상태들 뿐입니다.
오늘날 더 심해진 하나님 과의 불화로 인하여 결국 개인의 화평이 회복되지 않은 채,
과거와 불안과 관계와 삶과 기억의 조각들로 인해, 황폐하고 피폐해진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얽매여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정말 필요하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의 위로와 안전과 회복을 이루고자 시도하는 모든 것들로 인하여
오히려 십자가가 없는 불화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넘쳐 납니다.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은 그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의롭게 여기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의롭게 여기다 는 헬라어로 디카이오오 라는 단어 입니다.
디카이오오 는 의롭게 여겨짐을 받았다 는 수동태 형 동사 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 노력하여, 열심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생각해주시는 것입니다.
즉,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옳다, 의롭다고 평가를 내려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한다는 것, 믿고 체험하는 것은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나 황홀한 경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을, 이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아는 것이며,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항상 현세의 소망과 행위의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욱더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화평과 평안이 없어서 불안감에 떨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만, 그것을 의지하거나 주님으로부터 오는 인내와 은혜보다는, 세상의 방법들을 더욱 의지하고,
또 말씀과 십자가로는 부족하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불행하고 불쌍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의롭다 여김을 받을 만큼 우리는 의롭고 선한 자 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와 화평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참된 화평과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옳다고 여기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일치 할 수 있습니까?
불화 덩어리인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와 불화를 그리스도와 피와 살로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과거의 기억, 우리를 괴롭히는 수 많은 문제들에 더 이상 사로잡혀 살아가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단번에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부어주셨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나의 필요를 채우고, 내가 원하는 것과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며, 응답이라는 합리화를 위해 악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주님의 선하고 의로우심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의 온유하고 자비롭고 정직한 성품을 배우고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우리에게 화평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화평이 내 삶의 모든 문제들을 제거하고, 잔잔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주신 화평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때로는 내 삶 가운데 수많은 문제의 파도가 치고,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에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존하며
붙들고 살아간다는 고백과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화평의 고백이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기를,
또한 믿음으로 고백하며 온전히 주님만 붙들고,
주님이 주시는 평화로 채워져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은혜로 들어감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출입증이 부여된 것입니다.
부산대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때에 재학생들은 학생증만 있으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비를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졸업식을 하는 날, 졸업식이 끝남과 동시에 이 자격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후에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학비를 이제 안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발급되는 모든 출입증은 내가 투자하는 것에 대한 권리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와 영광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위해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혜의 출입증이 주어지고, 이것은 일회성이 아닌 영원한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은혜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으로 인한 가장 큰 은혜는 무엇이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삶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 축복을 받아 사업이 잘되고, 돈도 잘 벌고, 이렇게 순종했더니, 봉사했더니 취직이 잘되게 하셨더라, 내가 이렇게 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갚아 주셨더라 ..
이런 것입니까?
물론 이러한 것들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자 입니까?
병든 자를 고치실 수 있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때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고, 사업이, 취직이, 건강이, 삶의 계획이 틀어진다면, 우리는 다른 하나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가끔, 시험기간에만 가는, 어쩌다가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은 우리의 일상적인 거주지 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먹고 마시고, 쉬고, 잠을 자고, 일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은혜를 누립니다.
내 삶에 은혜가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실패도, 무산된 계획도,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하신 방향 속에 있음을 말씀하시고, 깨닫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에게는 세가지가 바뀌어 집니다.
첫번째는 우리의 기준과 관점이 달라 집니다.
물질과 건강과 계획과 성공과 자녀 등등 이런 세상의 기준과 관점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은혜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의롭다 여김을 받는 자의 삶은 너무나도 초라해보입니다.
이사야 53장 2-3절 입니다.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장 7절도 읽겠습니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는 오실 메시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영화에 나오는 힘이 세고, 능력이 특출한 히어로들 처럼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매력이 없고, 능력이 없고, 힘이 없고, 세상적 기준과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무능력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의 사랑과 우리의 질고를 지고 가신 그 은혜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놀라운 은혜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될 때,
그제서야 믿음의 삶이 너무나도 큰 은혜이며, 연약하고 무기력해보였던 예수 그리스도가
그 누구보다도 크고 위대하시며, 아무도 하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 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과 눈과 마음이 더 이상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고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참 자유와 평화와 무엇보다 십자가의 능력을 부어주신 주님만을 바라보고 붙들고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의 기준과 관점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 합니다.
두번째로 우리의 신분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 라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며, 왕이시며, 주권자 시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삶에 나의 생각과 계획과 행위를 주장 할 수 없습니다.
예배와 순종과 섬김과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라는 고백 밖에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의 권세 아래 놀아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과 권세 아래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입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이 은혜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 놀라운 은혜를 나만 누리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기억하고, 감당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의 신분이 복음으로 변화되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모습은
내가 기쁨으로 누리는 이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죽어있는 자들을 안타까워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의 보내심을 받은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과 삶을 닮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으면 사명도 없습니다.
구원이 없으면 사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국민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놀라운 사명의 기쁨과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삶의 가장 큰 자랑과 기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세번째는.. 2주 뒤에 이 시간에 계속 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려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누리고 있는 사람 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방해하기 위해,
세상의 수 많은 가치관들과 말들로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과 삶을 현혹합니다.
하지만 이 놀라운 화평의 주체는 하나님 이십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죄의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아 부으셨습니다.
이 은혜를 통하여 우리로 회개하게 하시고, 칭의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시려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화평을 누리며,
세상의 그 어떤 것들에도 현혹되지 않는 하나님의 보호와 능력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화평에
그리스도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추가될 수 없고, 그 어떤 노력도 자랑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자랑과 유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고, 말하고, 생각하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때로는 고난과 힘든 삶의 여정들 가운데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마음과 삶의 고백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우리를 은혜가운데 거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그 사랑과 화평을 누리는 자로써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 놀라운 운혜가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 충만하게 임하며,
또한 다시 회복되는 역사를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