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찬송 (눅 24: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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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상치 못한 여정

누가복음 24장 44절부터 53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 승천 직전의 마지막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예수님 부활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정치적 메시아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사실 누가복음 24장 초반부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했을 때 "놀라고 두려워했으며",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도 "놀라고 무서워하여 영을 보는 줄로 생각했습니다"(37절).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대면했음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시며,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여정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과 예수님께서 실제로 보여주신 길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간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누가복음 24:4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에 관한 모든 예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정치적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었습니다. 이 차이는 제자들에게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사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모든 희망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부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제대로 믿지 못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을 때에도 여전히 의심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인정했을지 몰라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의 한정된 시각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우리는 성공, 번영, 편안함을 기대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때로 고난과 인내, 그리고 믿음의 시험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격이 커질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많은 경우, 우리는 입 밖으로 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원망합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까?" "이것이 제가 충성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것입니까?"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기대가 일치하지 않을 때 불신과 원망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신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솔직하게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이런 순간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2. 성경의 전체적 관점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누가복음 24:45)
여기서 중요한 전환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제자들의 오해를 지적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영적 깨달음의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 넓은 관점, 하나님의 관점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구약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민족적 기대에 맞추어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으리라는 예언들을 보지 못했거나, 그것을 비유적으로 해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에 기록된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이 어떻게 자신을 통해 성취되었는지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종종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어섭니다. 이사야 55:8-9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본문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계획의 전체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전에는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사건들이 이제 하나의 완전한 그림으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드러납니다. 성령 강림 후에야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의 실패와 두려움은 담대함과 확신으로 변화되었습니다.

3. 이해를 넘어선 순종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46-4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중요한 선언입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복음의 본질을 설명하십니다. 메시아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이를 통한 죄 사함의 메시지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계획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기존 기대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아를 기대했으나, 예수님은 모든 족속을 위한 구원자였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해방을 기대했으나, 예수님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가져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이해의 완성은 나중에 올 것이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순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노아는 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방주를 지었습니다. 완전한 이해는 순종 이후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이해할 수 없지만 순종했던 순간들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완전한 이해가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4. 약속의 성취를 기다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4:4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약속을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단계를 시작하는 핵심적인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즉시 성취되지 않았다. 제자들은 기다려야 했다.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명령이 "가라"가 아니라 "기다리라"였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이었다. 그러나 이 능력은 그들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다려야 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성취 사이에는 종종 기다림의 시간이 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단순한 시간의 낭비가 아니다. 이는 준비의 시간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키시는 시간이다. 제자들은 이 기간 동안 함께 모여 기도했다(사도행전 1:14). 이 기다림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준비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기다림을 잘하지 못한다. 우리는 즉각적인 결과와 빠른 응답을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종종 우리의 것과 다르다. 이사야 40:31에서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한다.
기다림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영적 성장의 기회이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는 동안, 기도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은 준비되어 있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누가복음 24:50-53)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축복하셨고(율로게오), 제자들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율로게오).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축복과 찬송이 하나의 순환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면, 우리는 그분을 찬송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면, 그분은 다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아름다운 리듬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그분과 함께하게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인식하고 그분을 찬송할 때, 우리는 같은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우리의 기대와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신뢰할 때 우리는 평안과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론: 신뢰와 찬송의 삶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기대와 하나님의 계획이 다를 때, 우리는 불신과 원망 대신 신뢰와 찬송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으나, 예수님은 영적 구원자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의 해방을 기대했으나, 예수님은 죄로부터의 자유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들은 즉각적인 왕국을 기대했으나, 예수님은 성령의 시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자들은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혼란에서 확신으로,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을 찬송했을 때, 그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의 삶을 함께 돌아봅시다.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기대와 다른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 간격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불신과 원망으로, 아니면 신뢰와 찬송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제한된 시각을 넘어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십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는 것도, 나중에는 그분의 지혜와 사랑의 증거로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이해를 기다리지 않고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모두 축복과 찬송의 순환 속에서 살아가기로 함께 결심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듯이, 우리도 그분을 찬송합시다. 상황이 우리의 기대와 다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분을 신뢰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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