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2 금요기도회: 역대하 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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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하심 참으로 감사합니다. 벌써 5월이 된 가운데 오늘도 저희를 이 자리 가운데로 부르셨습니다. 연휴가 되어 다른 이들은 즐거움을 다른 곳에서 찾기 위하여 떠나기도 하지만, 저희는 하나님께만 안식이 있음을 알기에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모든 만족과 즐거움의 근원이 되신 그 하나님께 나아가니 저희의 마음에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을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저희의 모든 간구를 가지고 나아갑니다.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항상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뜻에 따라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역대하 32:1-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이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어느덧 벌써 5월이 되었고, 주말을 포함하면 최대 6일을 쉬는 연휴를 보내고 있는데요. 치열하게 지난 네 달을 지내고 이렇게 연휴로 쉴 수 있게 되서 참 감사한 것 같습니다. 짧다면 짧겠지만 잠시라도 육체적인 쉼을 통해 또 달려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육체적 쉼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마음의 쉼, 영적인 쉼입니다. 아무리 몸이 쉰다고 한들 마음이 쉬지 못하면 편안하지 못하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책 고백록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듯이 이 금요기도회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함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역대하 32장의 말씀으로 남유다를 앗수르로부터 방어하려는 히스기야 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앗수르가 남유다를 침공하려고 하자 히스기야 왕은 방어하려고 하는데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지키시고, 특별히 히스기야라는 직분자를 통해 어떻게 지키시는지 구체적으로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1절에서 역대하 기자는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히스기야가 충성된 일을 하였다는 뜻인데요. 히스기야가 무슨 일을 했냐면, 바로 29장부터 31장까지 성전을 개혁하였습니다. 모든 직분자들이 자신의 직무를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남유다의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앗수르는 남유다를 정복하고자 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신들이 믿는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로 했기에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산헤립은 남유다를 정복하고자 합니다. 마치 여호사밧이 경건의 모습을 취하고자 하자 아람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자 한다는 것이 잘 나타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찌됐든 이제 남유다에게는 갑작스러운 것인지, 예정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시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2절은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공격하러 온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데요. 여기에서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왔다는 이 말을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하자면 “예루살렘에 맞서는 전쟁을 위해 그의 얼굴을 고정하여, 얼굴을 들어”가 됩니다.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을 얼굴을 고정하다, 얼굴을 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죠. 오늘 말씀 뒤에 이것을 다시 언급하려고 하니 이 표현을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산헤립이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공격하려고 오자 히스기야는 3절에서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어떻게 하면 앗수르로부터 예루살렘을 지킬 수 있을지 의논한 끝에 히스기야는 크게 두 가지의 결정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로는 군사적이고 전략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군사 전략은 3가지 인데요. 3절 하반절과 4절을 보시면 앗수르가 예루살렘의 상수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군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식수입니다. 먹을 물이 없어 목 마르게 되면 사기가 떨어지고 전투력이 저하가 됩니다. 그래서 남유다는 이러한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특별히 4절에서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는 예루살렘에 공급하는 수로를 의미하는데, 시내와 샘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특별히 공급하신다는 사실과 열왕기하 19장을 보면 애굽의 시내를 마르게 했다는 산헤립의 자랑을 대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무슨 뜻입니까? 산헤립은 침략하면서 시내를 마르게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물을 공급하시니 결코 목 마를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방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백성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군사 전략은 5절에서 예루살렘 성벽을 보수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앗수르가 함부로 성벽을 넘지 못하고 어떠한 공성 무기로도 성벽을 부수지 못하게 단단하게 성벽을 보수합니다.
세 번째 군사 전략은 6절에서 말하듯이 군대를 재조직하고 재정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군대 조직을 다시 짜서 효율적이고 명령 체계가 제대로 잡힌 군대가 되게 만들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히스기야는 방백들과 용사들과 의논하여 세 가지의 군사 전략으로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막고자 합니다. 군사적 전략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군사적 전략을 짜지 않는다면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남유다의 전쟁에서 이러한 군사적 전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히스기야의 두 가지 결정 중 나머지 두 번째 결정이었습니다. 이 두 번째 결정은 침략자들인 앗수르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군대 지휘관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왕적 통치가 바로 여기에서 가장 빛을 발합니다. 왕으로서 군대를 조직하고 전략을 짜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인 이 남유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었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여기에서 히스기야가 보이는 이러한 모습은 마치 여호수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주 듣는 여호수아서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민족들과의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하시면서 약속에 신실한 자신의 약속을 믿고 강하고 담대할 것을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을 이끄는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히스기야도 여호수아를 위로했던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7절에서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히스기야는 앗수르 군대를 두려워하지 말 것에 대한 이유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군대 지휘관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모든 백성들은 두려워하고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안심하게 되는, 신뢰하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텍스트로 접하지만 앗수르는 결코 만만한 국가가 아닙니다. 앗수르는 당시 근동 지방을 제패할 정도로 아주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특히 이 산헤립은 역사적으로 앗수르의 왕들 중 명군이며 정복군주로 뽑히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아주 강대하고 문명의 꽃을 피우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던 앗수르에 비하면 남유다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형제 국가인 북이스라엘마저 멸망당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강대국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온다고 한다면 그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그 어떤 왕이 걱정과 염려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남유다에게 다가온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 히스기야와 남유다의 백성들이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어쩌면 히스기야는 예배를 개혁한 뒤에 남유다에게 박해가 찾아올 것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게 된다면 박해가 반드시 찾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결코 자신에게 찾아온 박해와 고난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는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 가운데 히스기야는 모든 남유다 백성들을 왕의 직무에 맞게 너무나도 잘 이끌고 있습니다. 7-8절에서 하나님은 산헤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신 분이시며 그분과 함께 하는 자들은 강하며 반드시 우리를 도우실 것을 고백하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에서 수로를 끊고, 성벽을 보수하며, 군대를 재조직하고 재정비하는 실천적인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백성들, 특히 자신의 대리 통치자인 왕이 이러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버리시겠습니까? 아주 기뻐하시면서 기꺼이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 그리고 교회가 아주 강한 성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이 교회는 히스기야보다 뛰어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지키고 계시기 때문에 아주 강한 성입니다. 아까 제가 말한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다”는 이 말을 직역하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그의 얼굴을 고정하여, 그의 얼굴을 들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똑같이 사용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 똑같이 사용됩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에서 예수님께서 이제 때가 되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는 이 표현을 직역하면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자기 얼굴을 고정하는, 자기 얼굴을 드는”으로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같은 예루살렘을 향해 얼굴을 고정하지만,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위해 고정하는 것에 반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 더 나아가 우리를 죄로부터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얼굴을 고정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 죄와 원수는 우리를 절대로 해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죄와 원수와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십니다. 아니, 그분은 오히려 승리하셨습니다.
그러하면 이러한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계시는 교회에 있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게 되겠습니까? 바로 안심하게 됩니다. 강하고 담대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하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히스기야보다 위대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곳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신 그분께서 이 교회를 도우시고 대신하여 싸우십니다. 이 안에서 사는 우리는 영원히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핍박과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오면 결코 안심하지 못하며 마음 속에 불안감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고난과 핍박이 찾아와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히스기야가 앗수르라는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주의 말씀에 따라 예배를 개혁하고 그분을 신뢰하였듯이, 주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꼭 기억하시며 예루살렘을 향해 얼굴을 고정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복된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교회는 예루살렘보다 강한 성입니다. 이 성에서 안심하며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곳입니다. 이 교회에 사는 백성들은 안심하며 살아갑니다. 외세의 핍박과 고난이 찾아올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원수로부터 지키시는 왕이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이 교회를 강하게 만들어주시고 안심할 수 있게 하신 그분께 감사합시다. 더 나아가 이 교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주의 말씀에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