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라 쓰고 “교회”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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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월버포스를 통해 본 하나님 나라
윌리엄 윌버포스를 아십니까? 월버포스는 우리 모두가 아는대로 당시 18세기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 섰던 인물이다. 그를 통해 수많은 노예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가 노예제 폐지에 앞장서게 된 계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각성이었다. 그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라는 창세기의 말씀을 중심으로 노예제의 부당함을 느꼈다.
어떤 한 노예의 자서전에 나와있는 노예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하는 내용을 소개한다.
“우리가 탄 배가 모든 화물을 싣고 준비를 마치자, 무서운 소리와 함께 우리는 모두 갑판 아래로 내려보내졌습니다. 그곳은 너무나 비좁고 더워서 각자가 몸을 돌릴 공간조차 없었습니다. 이러한 밀폐된 공간과 기후의 열기, 그리고 선내의 인원 수는 우리를 거의 질식시킬 지경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땀이 흘러내렸고, 공기는 곧 호흡하기에 부적합해졌으며, 다양한 역겨운 냄새로 가득 찼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노예들이 병에 걸려 죽었고, 이는 구매자들의 무분별한 탐욕의 희생자들이었습니다.”
단순히 사회개혁이나 인권수호가 불이한 법에 대한 저항이 아닌 가장 먼저 그의 심령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는 실제로 참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경제적 손실이었다. 영국의 주요 수출 품목은 바로 설탕이었다. 많은 설탕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당연 많은 인력들이 필요했고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많은 노예들이 투입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영국의 설탕 산업은 영국의 GDP의 약 20-25% 오늘날 화폐 가치로 환산한다면 108억 달러 원화로 약 19조에 해당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이었다. 실제 노예제 폐지 후 설탕을 제조했던 서인도 제도의 농장주들은 약 2000만 파운드 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오늘날로 환산한다면 약 24억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약 4조 2천억원에 해당되는데 충격적이게도 영국의 부채는 2015년이 되서야 국가적으로 모두 상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리고 마침내 1833년 영국 의회는 노예제 폐지 법안을 통과켰다. 법과 정치 그리고 인권과 흑인들의 삶에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는지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사도행전 문학적 기법으로 사도행전 이해하기

특별히 오늘 분문을 넘어 사도행전을 이해하려면 본문 3절에 나온 예수님의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 40일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넘어가야 한다.
가장 먼저 사도행전의 문학적인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 초반부인 사도행전 1:3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한 이야기로 사도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인 사도행전28:31에는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해 그곳에서 자신에게로 오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으로 사도행전는 마무리된다.
인용구절: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사도행전의 구조
서론: 하나님 나라(행1:3)
본론: 성령충만한 사도와 제자들의 복음전파
결론: 하나님 나라(행28:31)
*햄버거 구조
이를 전문 용어로 인클루지오라한다. 이는 중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 상기시키는 문학적 기법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문학적 특성은 사도행전의 전유물이 아닌 구약에는 시편과 전도서에서 나타나고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에서도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가 형성된다. 사도행전은 사복음서와 서신서 사이에 위치해 있다. 예수님의 사명의 행적을 보여주는 사복음서와 서신서를 이어주는 역할을 바로 사도행전이 한다. 그렇다며 사복음서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 나라”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을 불러모아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면 이는 떠나시기 전 유언과도 같은 기능을 했을 것이다. 또한 승천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는 때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가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앞으로 사명을 감당할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형성된다.
더 나아가 3년이라는 공생애 가운데 죽음과 부활을 지나 이제 승천하시기를 얼마 남지 않는 때에 자신의 사역과 사명을 계승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를 선택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전 생애가 바로 이 “하나님 나라”라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삶은 곧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사복음서에서 예수를 통해 이루어졌고 이제는 그 사명을 계승 받은 제자들이 사도행전에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각 나라 각 지역으로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통해 퍼져나갈 수 있었는지 역사적으로 보여주며 끝으로 서신서에서는 각 나라 각 지역에 세워졌던 교회를 통해 어떻게 그곳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하는지 우리에게 좋은 본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물리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성경구절이다.
인용구절:
이사야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이사야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이사야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사야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는 함께 공종할 수 없는 상반된 특징을 가진 자들이 다툼없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누군가를 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결핍과 아픔이 없고 온전한 것들로만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그 모든 것들이 연합되고 하나되며 결핍이나 아픔이 없고 온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모두에게 여호와를 아는 지식 절대적인 기준으로 가치로 진리로 자리잡혔으며 자리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원어로 하나님 나라 설명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리고 사도행전 초반부와 마지막에서 등장했던 하나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 나라는 어떤 어떤 특정한 인물에게 국한된 통치권이나 어떤 특별한 지역이라는 한정된 통치영역을 뜻하지 않는다. 한 논문에서 정의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을 소개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다. 이것은 “나라”를 가리키는 단어를 관찰해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나라”를 뜻하는 히브리어 ‘말쿠트(tWkl.m;)’/‘마믈라카(hk'l'm.m;)’와 헬라어 ‘바실레이아(basilei,a)’는 각각 왕을 뜻하는 ‘멜렉(%l,m,)’과 ‘바실류스(basileu,j)’에서 파생되었다.
-히브리어 의미
왕: מֶלֶךְ (melek/멜렉)
->나라 / 왕국 (통치): 말쿠트(מַלְכוּת malkût)/마믈라카(מַמְלָכָה mamlākāh)
뜻: 왕권, 통치, 왕국 (Kingdom, Reign)/더 구체적으로 영토/백성 포함된 ‘왕국’ 전체를 뜻함
-헬라어 의미
왕: βασιλεύς (basileús/바실류스)
->나라 / 왕국: βασιλεία (basileía)
뜻: 왕권, 통치, 왕국 (Kingdom, Reign, Rule)/신약 성경 전반에 걸쳐 “하나님 나라”를 표현할 때 사용됨
“사전적으로 정의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왕 되심”, 하나님의 “주 되심”, 곧 “다스리심”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개념이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국가 제도나 정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의 모든 차원에서 그리고 개인과 사회, 영혼과 육체, 교회와 세상, 인간세계와 자연세계, 내재와 초월을 포함하는 모든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 말 그대로 모든 영역이다. 우리는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왜 성령충만인가?
성령충만의 목적은 오직 단 한 가지이다. 바로 예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재미있는 것은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성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던 예수님 또한 하나님 나라의 실체로서 또한 그 나라의 통치자이자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시기 전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셨다는 것이다.
인용구절: 사명을 감당하시기 전 예수님의 성령충만
누가복음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누가복음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인용구절: 사도행전의 제자들의 성령충만
사도행전 2: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강림과 충만함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그 모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선재 조건이고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의 승패가 달려 있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또한 성령의 임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가 주어지는데 바로 권능과 증임됨이다. 이 두 가지는 각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기능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설명을 해야 하지만 서로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우리의 삶과 사명 안에서는 어느 것 하나만 배제하거나 추구할 수 없고 반드시 함께 쌍을 이루어야 한다.
인용구절: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두 가지 단어는 바로 권능과 증인이다.
먼저는 권능은

δύναμις(두나미스): 힘, 권능, 능력

뜻: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 영향력을 나타내는 특별한 모든 능력을
다음으로 증인은

μάρτυς(마르투스): 목격자, 증인, 순교자

뜻: 어떤 상황과 환경 심지어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도 보고 들은 진리를 증언하는 자
인용구절: 권능을 받아 증인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목
사도행전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사도행전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정리하자면 원어적 문법적으로 권능이 증인에 귀속되어 있거나 또는 권능이 전제되어야만 증인이 될 수 있는 근거는 찾아 볼 수 없으나 “성령의 임하심 후에 권능이 나타나고 권능을 받은 사람이 예수의 증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이 논리적 선후가 예수의 증은된 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권능과 증인의 상호작용
1)증인으로서 순교의 모습
여러 역사적 1세기 문헌에 따르면 많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기록에 따르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군인들의 칼에 의해 처형당하기도 하고, 원형 경기장에 갖혀 풀려난 맹수들에 의해 온 몸이 뜯기고 찢겨 지기도 하고, 도시의 거리마다 어둠을 밝히는 인간 횟불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약 A.D. 260~339)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역사학자이며 신학자, 주교입니다. 그는 특히 기독교 역사서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대표 저서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는 초대교회의 역사와 순교자들의 증언을 후대에 전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그가 저술한 교회사에 소개된 순교자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우리 또한 그 자리에 있으면서, 하루에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어떤 이들은 목이 베이고, 다른 이들은 불에 의해 고문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살육의 칼은 무뎌지고 약해져 부러졌으며, 심지어 형리들마저 지쳐 서로 교대하였다."
그들은 어떤 상황과 환경 심지어 죽음 가운데서도 자신들이 보고 들었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입술로만이 아닌 전인격으로 증언했던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성령의 권능을 받은 마르투스, 참된 증인이자 순교자였던 것이다.
2)증인으로서 시대에 맞서 저항한 그리스도인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했다. 다시 말해면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은 황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는 증언을 멈추거나 거짓으로 말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당시 1세기에 만연했던 황제숭배에 대한 종교적인 대항이 아닌 국가적인 대항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1세기 로마는 황제숭배를 통해 모든 것을 통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황제숭배는 바로 로마의 평화로 상징되는 팍스로마나의 주 원동력이었다.
로마제국이 원했던 것은 로마의 평화(팍스로마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을 통해 정복한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해야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답이 바로 황제숭제였다.
로마는 각 분야 즉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를 통해 로마제국을 유지하고 확장하고 있었는데 그 각 분야를 로마의 평화라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주었고 어느 한 분야도 목표를 향해 이탈되지 않다록 서로의 접착제 역할을 바로 황제숭배가 했던 것이다.
각 분야에서 황제숭배를 통해서 로마의 평화와 질서를 유질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황제숭배는 곧 어마어마한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는 황제숭배를 통해 평화와 질서를 유지했고 각 분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몸담고 있었던 사람들은 황제숭배를 통해 엄청난 혜택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 받았다.
그러나 반대로 황제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당시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불이익 불함리함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만했다.
🏛 정치
제사 참여, 신전 건립, 칭호 부여
유익: 시민권 부여, 자치권 승인, 고위직 진출
불이익: 시민권 상실, 법적 보호 박탈, 공직 진출 금지
⚔️ 군사
황제에 대한 군사 맹세(Sacramentum)
유익: 복무 수당, 은퇴 보상, 로마 시민권 취득
불이익: 퇴역 보상 상실, 지금제한, 처형, 입대거부
💰 경제
길드의 제사 참여, 세금 납부, 축제 후원
유익: 무역권, 세금 감면, 상업 보호
불이익: 거래 금지, 재산/토지 몰수, 세금 혜택 제외
🤝 사회
축제·제사 공동 참여, 황제 기념행사 참석
유익: 사회 신분 상승, 네트워크 형성
불이익: 낙인으로 찍힘, 가족내 갈등과 고발, 결혼과 장례 제한
🎭 문화황제
기념 조각·연극·축제 제작
유익: 예술 후원, 공공명예, 문명화 인정
불이익: 교육/교양 배제, 축제 공연 참여금지, 사회적 예술 활동 금지
위에 설명했던 내용을 지금 현대시대 비유를 들어 와닿게 설명한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황제를 ‘신’이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날 우리가 겪는 카카오톡 단톡에서 쫓겨나고, 배민에서 정지당하고, 구글 계정이 막히고, 학업과 직장 면접에서 떨어지고, 법정에서 소외당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매장당하는 것과 같은 전방위적인 박해를 받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도 현대판 황제숭배가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치: 황제 대신 이념과 진영이 ‘신격화’되어 내 편만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경제: 황제 대신 ‘돈과 성취’가 숭배되는 시대가 되어 모든 것이 얼마 가지고 있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로 평가된다.
문화: 황제 대신 ‘대중 인기와 이미지’가 권위를 가지고 있어 도덕과 윤리 전통적 가치와 신앙적 진리를 지키기 보단 무엇이든 선택하고 시도할 수 있는 무법 천지가 되었다.
교육 학문: 황제 대신 ‘서열과 시험제도’가 삶의 질서를 지배는 시험 점수로 사람의 인격과 능력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
교회: 예수 대신 교회 시스템, 지도자, 실적이 ‘숭배’의 대상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확장을 위해 권능을 받아 증인이 된다는 것은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각 분야 정치, 사회, 문화, 군사, 경제에서 전 인격적으로 저항하며 하나님 나라의 참된 권능을 받은 증인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진정한 권능을 입은 증인이 추구해야할 것은
1)임정택 대표의 삶에서 나타난 하나님 나라
임정택 대표는 한동대학교 출신으로서 향기내는 사람들의 창업자이자 대표이다. 그는 카페사업을 하고 있으면 이미 전국에 35개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장애인들을 바리스타로 고용하여 경제활동과 스스로 자립하도록 돕고 있다.
임정택 대표의 장애인 고용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바 단순히 취업이 아닌 자신의 강점과 꿈을 실현하며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일자리 제공을 넘어 장애인의 전문성 개발과 지속가능한 업무환경을 조성하고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의 시작은 누군가의 위대한 만남이나 엄청난 사업 자금이나 엄청난 계획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에 울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는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으로 이런 귀한 사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의 심령에 울린 말씀은 그저 그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가 속한 공동체에 그리고 그가 사업을 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울려 펴지기 시작했다.
보통 장애인들은 장애인을 의무고용하는 곳에서 3개월 평균 18%에 그치고 있지만 임정택 대표가 운영하는 향기내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규정한 15가지의 장애인 유형중 가장 취업률이 낮은 정신장애인을 고용해서 고용유지율이 90%이상으로 유지함으로서 장애인 고용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있다.
이제는 장애인들이 바리스타뿐만 아니라 조경업, 교육업, 웰니스,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100개의 직무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전세계 장애인 11억 인구중 1억명 이상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한다. 이를 위해 매년 5만명 이상의 장애인들이 자신의 강점을 살려 직무훈련을 받을 수 있도 글로벌 학교 및 일자리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할 계획에 있다.
이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도행전 1:8의 말씀이 임정택 대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용구절: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먼저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만 머물지 않고 그의 전 인격을 통해 그가 가는 곳마다 이루어지고 있는데 먼저는 장애인들에게 그리고 기업과 다양한 직업군에 또한 사회와 그 사화 구성원들에게 더나아가 전세계 흩어져 있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그의 삶에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이루어지고 이제는 그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서 그가 가는 곳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이루지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고 있다.
2)이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하는 하나님 나라
2-1먼저 내 삶속에서 이루어지는 증인된 삶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바로 내가 가는 곳마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증언되고 그곳에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전인격으로 복음을 실천해야 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해야할 곳은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통해 증인으로서 복음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우리의 삶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에 가장 먼저 시작되야 할 것은 매일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복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우리의 인간은 결국 무엇을 많이 듣고 무엇을 많이 보고 무엇을 많이 생각하는지에 따라 그것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결국 그것이 내 삶에 기준과 가치가 되어 모든 선택과 결정의 기준에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내가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을 중심으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고 결정된 것들이 나의 삶의 팬턴되고 습관되고 문화가 되어 나의 삶을 완전히 장악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기준이 되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명확한 뜻을 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뜻을 기준으로 선택과 결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것들은 계속해서 내 삶에 자리를 잡게 되고 반대로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는 불의하고 불법한 것들은 내 삶속에서 뽑혀져 나갈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는 불법과 불의가 복음의 필터를 통해 거부되거나 걸러질 것이다. 이런 선순환을 통해 기어이 우리의 삶에 하나님 나라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2-2각 분야에서 증인된 삶
-칼 바르트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
당시 히틀러가 총통으로 독일을 다스리고 있을 때 각 분야에서 히틀러 자신을 숭배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는 앞서 소개한 황제 숭배와 같이 모든 국민과 분야를 하나로 통합시켜 강력한 독일을 만드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동시에 히틀러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불이익과 처벌을 통해 어떠한 분열과 자신을 향한 어떤 반란도 사전에 무력화 시켰다.
또한 법과 신학의 형식을 빌려 히틀러 자신을 신격화 시켰고 자신의 모든 행동일 옳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저항 하는 모든 자들은 결국 추방 되거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런 히틀러에 신앙적 양심 때문에 저항한 아주 유명한 신학자를 알고 있다 바로 디트리히 본회퍼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신학자가 있다 바로 칼 바르트이다. 그는 신학자이자 교수였다.
그는 디트리히 본회퍼와 같이 히틀러에 대한 충성맹세를 거부한 인물이다. 그는 신학교수였기 때문에 수업전 반드시 “하일 히틀러”라는 외침으로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오직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책임 안에서만 총통에게 충성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건을 내새웠다. 칼 바르트, 그는 히틀러에 대한 충성맹세 대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결국 그는 교수직에서 해고 되었고 공공장소에서 설교나 연설을 금지 당했다. 심지어 스위스로 추방을 당하기가지 했다. 그리고 끊임 없이 국가사회주의, 히틀러 그리고 우상숭배에 관련한 교회의 참여를 비판했다. 칼 바르트가 히틀러에 대한 충성맹세는 곧 하나님께 대한 우상 숭배라는 통찰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찬양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 된다는 것은 모든 지역과 나라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합당하지 않는 모든 것에 저항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각 지역마다 나라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법과 제도, 문화, 전통과 관습, 종교, 지도자 그 한 가운데서 합당한 증언을 해야 하고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수의 증인 된다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고난과 고통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증인은 특별히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증언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반대로 자신이 듣고 보고 경험한 것과 반대되는 모든 것들과 싸우고 배척해며 거부해야 하고 변증해야 한다.
때로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해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권능을 받아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서 우리가 속한 각 분야에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합당하지 않는 것들을 지적하고 거부하고 저항했을 때 그 분야에서 매장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사명과 목표
우리의 목표는 사회개혁과 인권수호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 나라에 포함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고 추구해야 하면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확장이다.
우리는 우리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복음을 들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하나님 나라의 증이된 삶으로 교회를 넘어 모든 영역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오늘 내가 속한 공동체 또는 기업 또는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참여가 관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 집단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들이 오래전 행해젔던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더라고 관연 수용하고 따라하는 문제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수가 원하고 다수의 입에서 옳다라고 했을지라도 하나님 나라와 맞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을 존중과 배려라는 이유로 따라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어떤 정책과 제도 그리고 규칙이 특정 부류를 차별하고 불합리한 구조를 만든다면 그래서 그것을 통해 다른 부류가 엄청난 유익을 보는 구조라면 그럼에도 과연 그것을 옹호하고 따라야 하는가 우리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서 계셨던 예수님
가장 먼저 우리를 대표해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서 가장 좋은 모델을 제시하셨던 예수님의 고백이다.
인용구절:
요한복음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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